아름다운재단과 노동건강연대는 ‘산재보상 사각지대 해소 지원사업’을 통해 ‘일하다가 다치거나 아프게 된 사람이라면 누구나 산재보험으로 충분히 생계와 치료를 보장받아야 한다’고 이야기해왔습니다. 산업재해를 겪은 노동자에게 생계비를 지원하여 어려움을 해소할 수 있도록 돕고,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연구해 산재보험제도의 사각지대를 드러내고 있죠. 이를 통해 산재보험이 바뀌어야 하는 지점을 알리고 있습니다. 올해는 산재보험에 가입할 때 별도의 조건이 있어 가입이 어렵거나, 아예 가입이 불가하여 제도에 진입하기조차 어려운 직종인 농·어업 노동자와 돌봄노동자에 중점을 두고 산재노동자 생계비지원을 진행했습니다. 이번 취재기를 통해 지난 8월 22일부터 2박 3일 동안 순천·고흥 지역을 돌며 들은 어업노동자의 이야기를 공유합니다. |
험하고 고되기로 정평이 난 바닷일이지만, 어업노동자의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수협중앙회에서 제출한 통계에 따르면, 연간 약 140명의 어업노동자가 사망하고, 하루 평균 10명 이상이 사고를 당합니다. 해당 통계는 ‘어선원재해보상보험’(어업노동자가 어업활동과 관련하여 재해를 당했을 때 보상받을 수 있도록 만든 정부정책보험)에 가입한 어업노동자만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입니다. 어선원재해보상보험은 원양어선에는 적용되지 않고, 3톤 미만 어선은 가입할 의무가 없기 때문에 실제로 다치거나 사망하는 어업노동자는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게다가 어업노동자의 경우, 산재보험에 가입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법인에서 일하거나, 상시근로자수가 5명 이상이어야만 산재보험에 가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업노동자는 위험한 환경에서 일하고, 많이 다치고, 죽지만, 적절한 치료와 보상을 받기는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습니다. 2021년도 〈산재보상 사각지대 해소 지원사업〉에서 어업노동자에 중점을 둔 이유입니다.
고흥지역 김 양식장 방문, 양식장 노동자의 대부분은 이주노동자
한국 밥상에서 친숙한 김. 전국 김 생산량의 70%는 전라남도에서 생산됩니다. 그 중에서도 이번에 방문한 고흥에서 생산하는 김은 일본 시장에서도 인기가 좋아 2020년에는 수출액 140만 달러를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엄청난 양의 김을 생산하는 어업노동자의 대부분은 이주노동자입니다. 고된 업무환경 때문에 한국인 노동자 중에서는 어업에 종사하려는 사람이 없다 보니, 이주노동자가 없으면 일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을 정도입니다. 대부분 베트남, 스리랑카, 인도네시아, 중국, 태국 등에서 입국하는데, 이번 취재에서 만난 이주노동자 역시 모두 베트남에서 온 사람들이었습니다. 어업노동자가 직접 말하는 일하는 환경, 일하다 다친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들의 이야기는 다른 듯 닮아 있었습니다.
어업 이주노동자, 등록 여부에 상관없이 적절한 치료와 보상 받지 못해
이주노동자는 고용허가제(E-9비자), 외국인 선원제도(E-10비자) 중 하나를 취득하여 입국합니다. ○○ 씨는 고용허가제로 입국한 ‘등록 이주노동자’였습니다. 일을 시작한 통영에서 탄 통발잡이 배에 한국인은 선주 뿐이었고, 나머지는 모두 이주노동자였습니다. 배에서 생활하며 하루 중 두 세 시간을 제외한 대부분을 일하며 보내고 80만 원 남짓한 월급을 받았습니다. 하루는 배에서 넘어져 무릎을 다쳤는데, 아무리 아프다고 말해도 사장은 외상이 없으니 약을 사 먹으면 괜찮다며 ○○ 씨를 방치했습니다. 제대로 된 치료도 받지 못한 채 고강도의 업무가 이어지자 도망을 나왔습니다. 무릎 통증을 계속 느끼던 그는 순천이주민센터의 도움을 받고 나서야 대구의료원의 이주노동자 치료 지원사업을 통해 100여만 원을 자비로 부담하고 수술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 씨 역시 등록 이주노동자로 인천에서 일을 시작했는데, 배에서 줄을 돌리는 기계인 앙망기에 손이 끼는 사고를 겪었습니다. 바다에선 부상자가 발생하면 작업을 중단하고 항구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항구로 가는 다른 배를 기다립니다. ◆◆씨도 사고가 일어난 지 한 시간이 지나서야 항구로 출발할 수 있었습니다. 다행히 수술비를 비롯한 병원비를 선주가 부담했지만, 손에 장해가 남은 것에 대한 보상은 전혀 받지 못했습니다. 다른 사람이 사고나는 걸 본 적 있냐는 질문에 그는 비슷한 사고를 당한 사람은 많지만, 보통 본인이 알아서 해결했다고 답했습니다.
김 양식일 장시간노동, 화학약품 노출 등, 배 수리까지 도맡아 사고위험은 여전해
김 양식에는 성수기와 비수기가 있습니다. 어촌계장 □□ 씨에 따르면, 성수기인 9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는 멀지 않은 바다에 위치한 양식장에 나가 4~5시간 머물며 일한 뒤 육지로 돌아와 손질 및 정리작업을 한 뒤 퇴근한다고 합니다. 다른 어획작업에 비하면 바다에 머무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짧고, 육지로 퇴근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고흥 나로도에서는 가구당 서너 명의 이주노동자를 필요로 하니 수요도 많습니다. 각기 다른 어촌에서 일하던 이주노동자들이 사고를 겪은 뒤 고흥으로 이동한 이유입니다. 하지만 김 양식일이라고 해서 마냥 덜 위험한 것은 아닙니다. 인터뷰에 참여한 이주노동자들은 입을 모아 성수기에 하루 13~15시간씩 일한 적이 있다고 할 정도로 장시간 노동을 하는 데다가, 김을 양식할 때 사용하는 각종 화학약품에 노출되기 쉽고, 적은 시간이어도 배를 타고 작업하기 때문에 어선원이 겪을 수 있는 각종 사고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 씨는 다른 이주노동자에 비해 늦은 나이에 한국에 들어왔습니다. 부산에서 장어를 잡는 배에서 일했는데, 선주가 배를 다른 사람한테 팔면서 그도 새로운 선주와 일하게 되었습니다. 선주가 바뀐 뒤 월급을 제대로 받지 못했고, 임금체불이 계속되자 부산을 벗어나 친구의 소개로 나로도로 와서 김 양식을 시작했습니다. 사고는 배를 수리하다가 일어났습니다. 비가 오는 날이었는데도 선주는 용접 작업을 지시했고, ●● 씨는 안전장비도 없이 용접 작업을 하다가 손을 다쳤습니다. 병원에 바로 가지 못하고 붙이는 약으로 해결하다가 순천이주민지원센터의 도움으로 치료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인터뷰에서 만난 이주노동자들이 다쳐도 계속 일하고, ‘불법체류자’로 일컬어지는 미등록 상태가 되어서라도 일을 계속 하는 이유는 비슷했습니다. 이주노동자는 합법적으로 비자를 발급받을 때조차 많게는 1인당 1천여 만 원을 담당업체에 지불합니다. 이때 드는 비용 외에도 중간업체가 수수료 명목으로 가져가는 돈이 많아서 입국하고 나서 몇 년 간은 빚을 갚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월급 120만 원을 받으면 노동자가 실제로 받는 월급은 60~80만 원 남짓입니다. 많게는 절반가량을 중개업체에서 가져가고, 각종 수수료가 빠져나가기 때문입니다. 비자 기간이 종료되면 절차를 밟아 본국에 갔다가 재입국하는 비용 역시 부담이 되긴 마찬가지입니다. 위험을 감수하고 미등록 이주노동자 상태로 일하게끔 만드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는 셈입니다.
양식 비수기에는 고용 불안정, 돌아다니며 일하다가 사고 겪기도
김 양식 비수기가 되면 성수기보다 짧게 일하고, 그물을 손질하거나 장비를 손봅니다. 일이 많지 않으니 가구당 고용하는 이주노동자도 한두 명 수준입니다. 시기에 따라 고용되는 노동자가 가구당 최대 세 명까지 차이가 납니다. 성수기와 비수기별로 필요한 인원에 차이가 커서 고용하는 입장에서도 비수기에 자유롭게 해고할 수 있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일부러 찾기도 합니다. 즉, 같은 미등록 이주노동자여도 선주의 마음에 드는 노동자는 비수기에도 같은 곳에 머물며 일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노동자들은 비수기가 되면 돈을 벌기 위해 이곳 저곳으로 흩어집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아프거나 다쳐도 말조차 꺼내지 못한 채 일하거나, 고용되지 못한 이주노동자가 비수기에 다른 일을 하다가 사고를 당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 씨는 김 양식 비수기에 순천 지역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일하다 절단 사고를 겪었습니다. 기계로 나무를 자르는 일을 했는데, 빨리 작업하라는 독촉에 한 번에 여러 개를 작업하다가 손가락이 절단되었습니다. 2012년에 한국에 온 뒤 겪은 네 번째 사고였습니다. 차를 타고 병원으로 이동해서 수술을 받았는데, 병원비 290만 원 정도를 직접 부담했습니다. 일용직 노동자도 산재보험으로 보상이 가능하지만, 이주노동자인 △△ 씨에게 누구도 그런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순천이주민지원센터의 수녀님은 당시 건설 현장 담당자가 △△ 씨를 조기 퇴원시키려고 했던 일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법을 어긴 사람들이 노동해서 얻은 생산물이 밥상에 올라온다고 어떻게 말하겠어요?”
어업노동자의 산업재해가 잘 알려지지 않은 이유를 여쭤보자 순천이주민지원센터의 수녀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법을 어긴 사람들이 노동해서 얻은 생산물이 밥상에 올라온다고 어떻게 말하겠어요.” 밥상에 오르는 김은 어업노동자가 일한 결과입니다. 김을 생산하는 사람들이 안전하지 못한 환경에서, 일하다 사고를 겪고도 제대로 된 치료와 보상을 받지 못한 채, 아픈 상태로 일한 결과입니다.
어느 문 닫은 상점 길게 늘어진 카페트 갑자기 말을 거네
난 중동의 소녀 방 안에 갇힌 14살 하루 1달라를 버는
가수 루시드폴이 부른 ‘사람이었네’를 듣고 있으면 우리가 소비하는 모든 게 누군가 노동한 결과라는 새삼스러운 사실을 깨닫는 동시에 그 노동이 착취는 아니었는지 고민하게 됩니다.
아름다운재단과 노동건강연대는 ‘산재보상 사각지대 해소 지원사업’에서 ‘일하다 다친 사람이라면 누구나 산재보험으로 충분히 생계와 치료를 보상받아야 한다’고 말해왔습니다. 산업재해를 겪은 노동자에게 생계비를 지원하여 조금이나마 어려움을 해소할 수 있도록 돕고,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산재보험이 바뀌어야 하는 지점을 알리고 있습니다. 이번 취재를 통해 한국에서 어업노동자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이 어떠한 이유로 이렇게 일하게 되었는지, 어떤 환경에서 일하고 있고, 무슨 일을 겪었는지 조금이나마 알려졌으면 합니다. 지금보다 많은 사람들이 어업 이주노동자의 목소리를 전해 듣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글 ㅣ 박한솔 노동건강연대 활동가
사진 ㅣ노동건강연대, 시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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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영
제목은 ‘순천/고흥지역 어업노동자 취재기’인데 소개된 사례는 대부분 다른 곳(통영, 부산)에서 또는 다른일(건설업)을 하다가 다치신 분들이네요. 제목만 보고는 고흥 지역 어민들에 대한 오해의 소지가 생길 것 같습니다.
아름다운재단
안녕하세요. 아름다운재단입니다. 먼저 글을 읽어주시고 의견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말씀 주신 부분에 대해 아래와 같이 의견드립니다.
해당 글은 순천, 고흥지역에서 어업노동을 하는 외국인노동자분들과 선주님들을 만나뵙고 작성된 콘텐츠인만큼 제목을 <순천/고흥지역 어업노동자 취재기>로 붙였습니다. 순천/고흥지역은 우리나라에서 이주어업노동자가 많은 지역 중 하나이기에 더 생생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곳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산재보상사각지대해소 사업의 취지를 듣고 적극적으로 협조해주시고 인터뷰까지 해주신 선주와 그 분들과 노동자들의 상생을 위해 노력하는 단체가 있는 곳이기도 했습니다.
인터뷰 본문에 등장하신 분들은 모두 순천/고흥지역에서 일을 하시다 다친 분들이며, 통영과 인천에서도 부상을 입으셨지만, 고흥에서도 추가로 다치셨거나 기존의 부상이 심해진 경우입니다. 어업노동의 특성상 비수기에는 소득이 없다보니 무리하게 건설업 등 다른 직종을 하다가 다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짚고자 했습니다. 이에 넓은 의미의 ‘어업노동자 산재’도 산재보상사각지대의 하나로 볼 수 있다는 점도 함께 전달했습니다.
추가로 궁금하신 내용은 give@beautifulfund.org 혹은 노동건강연대 정우준 국장 010-3179-3976 으로 말씀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