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적으로 코로나 19를 겪으며 생태계 파괴와 기후 위기의 심각성을 이제야 실감하고 있지만, 20년 전부터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며 더불어 사는 삶의 중요성을 알고 일상에서 실천하고 있는 이도 있습니다. 아름다운재단 10년차 기부자로 지역 내 환경 운동 활동을 하고 계신 최세현 기부자님을 경남 산청에서 만나고 왔습니다. 최세현 기부자는 간디유정란농장을 운영하며, 지리산생명연대 대표, 숲해설가로도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자연의 이치를 따르며 사는 삶과 작은 이들의 목소리가 모여 큰 힘이 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
띵동~ 계란이 왔어요
아름다운재단에 계란이 배달되었다. ‘누가 보냈나?’ 봤더니 간디유정란! ‘아, 최세현 기부자님이구나! 10년차 감사 전화를 드렸더니 계란을 보내셨구나!’ 최세현 기부자님이 계신 곳으로 찾아가기로 했다.
차가운 회색빛 도시를 지나 최세현 기부자를 만나러 경남 산청으로 향할수록 사방에 초록빛 그러데이션이 짙어졌다. 지리산이 가까워질수록 마음이 차분해졌다. 꼬불꼬불한 산길을 지나 18개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 간디고등학교 옆에 위치한 안솔기 마을에 도착했다. 주변이 아늑하고 고요했다. 조금 안쪽으로 들어가자 기부자가 직접 지은 통나무 집이 보였다. 마당에는 상사화, 치자꽃이 피어 있고 매실과 감나무가 자리 잡고 있었다.
자연의 순리를 따르는 삶으로 전환
최세현 기부자의 첫 직장은 단양의 시멘트 공장이었다. 그곳에서 11년간 직장 생활을 했다. 마흔이 되던 해에 산을 파괴하는 삶은 체질에도 맞지 않고 점점 회의가 들어 삶의 방식을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직장 생활을 접고 괴산에 있는 눈비산 마을에서 야마기시 양계 농법을 배우며 귀농을 준비했다. 야마기시 양계는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지 않는 생태적인 자연 농법으로 닭이 자연상태에서 가장 가깝게 살 수 있는 양계 방식이다. 약 1년 반정도 귀농을 준비하던 중 2000년 1월 간디학교 생태 마을을 조성한다는 소식을 듣고 경남 산청으로 가족의 보금자리를 옮겼다. 그곳에서 소규모로 800수의 닭을 키우며 생산부터 회원모집, 배달까지 직접 했다.
양계장은 집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었다. 인근 간디학교 학생들이 이름 붙여준 ‘꼬꼬호텔’ 명칭에서 닭들이 편히 머물고 지내는 곳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양계장 밖에는 윤기 나는 깃털을 꼿꼿이 세우고 위엄 있는 자세로 산책하고 있는 닭들이 무척 건강해보였다. 대규모 공장식 양계장과 달리 특유의 냄새도 나지 않았다. 이곳은 닭들이 자연을 스스로 이겨 내어 면역력을 키울 수 있게 여름이나 겨울에도 인위적인 냉난방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평소 강한 환경에서 자라서인지 닭들은 웬만한 조류 인플루엔자 등의 바이러스에도 끄덕없다고 한다. 더 큰 규모로 운영할 수도 있지만 닭 800수를 키우며 네 식구 밥 먹고, 학교 보내고 생활하는데 충분하여 욕심내지 않는다 하셨다.
덜 가지고 덜 먹고 덜 쓰고 덜 소유하자
최세현 기부자의 양계 방식에서 그의 삶의 철학을 볼 수 있듯이 평소에도 생태적인 삶을 지향하고자 노력한다. 그는 우리가 좀 더 나은 삶을 위해 조금은 덜 소유하고 그냥 사는 법을 익혀야 한다고 했다.
“뭐 사려고 할 때 10번 정도 더 생각해보고 정말 이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인지 생각해보아야 해요. 사지 말고 그냥 살면 어떨까요. 소비를 줄이려 노력하면 환경을 보호할 수 있어요. 이미 우리 지구에는 많은 것들이 생산되고 넘쳐나고 있어요. 그것이 고르게 분포되어 있기보다 한 쪽으로 치우쳐져서 한쪽은 너무 많이 소비하고, 다른 한쪽은 너무 부족해요. 불균형, 불평등으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고요. 덜 가지고 덜 먹고 덜 쓰고 덜 소유하면 지구 온도도 낮아진다고 해요. 있는 그대로 살면 되는데 자꾸 좀 더 하려고 하는 욕심 때문에 그렇게 되는 거예요.”
작은 목소리가 모여 만드는 변화
최세현 기부자는 오전 일과를 끝낸 후 오후에는 지역 내 환경 운동을 한다. 그는 ‘있는 그대로’ 지리산의 아름다움을 지키자는 운동으로 지리산 둘레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는 지리산생명연대 대표로 활동하며 지리산 댐 건설 반대 운동, 케이블카 설치 반대 운동, 지금은 산악열차 반대 운동과 지리산 관통 도로 복원 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현재 세대가 보고 느끼고 경험한 지리산의 위엄과 경이함을 미래 세대에도 그대로 물려주고, 자연과 인간이 더불어 살기 위한 대안을 모색하며 지리산 지키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이 나음을 알고, 어깨동무 해가며 조금씩 세상을 바꿔나가는 게 중요해요. 시민들의 어깨동무로 지리산 댐을 막아냈어요. 오랜 시간 걸렸음에도 옳은 일을 위해 함께 한 신뢰 덕분에 지리산을 지킬 수 있었어요. 어깨동무하면 혼자서는 불가능할 거라 여겼던 일을 해낼 수 있어요. 소수의 목소리가 연대를 하므로 막아낼 수 있는 그런 게 연대의 힘이에요.”
나눔의 특별함
인터뷰를 하며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최세현 기부자 둘째 딸의 이름은 ‘최나눔’이다. 자연스럽게 나누며 살기를 바라는 마음에 지어주었는데 지금은 여성단체에서 자기 능력을 나누고 살고 있다며 자랑스러워하며 한편으로는 아직은 여성운동이 너무 힘들고 열악해서 고생한다며 안쓰러워했다.
그는 20여 년 전부터 ‘나눔’과 특별한 인연을 가진 분답게 기부를 망설이는 분들께 “우리의 작은 발걸음, 몸짓이 모이면 매우 큰 영향력을 나타내기 때문에 망설이지 말고 동참해주세요. 우리가 모일 때 엄청난 힘이 되어 상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현실로 만들 수 있어요. 작은 기부가 생각도 못 했던 엄청난 일을 만들 수 있어요.”라며 함께 해달라는 뜻을 전했다. 아름다운재단이 초창기부터 우리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잘 발휘하고 지금도 잘 이어져 오고 있다며 앞으로도 꾸준히 노력해 달라고 당부하시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올라오며 10년 차 감사 전화에서 하셨던 말씀이 떠올랐다. “누가 보든 안 보든 지속적으로 좋은 일을 해나가”라고 하신 말씀이 꼭 최세현 기부자님의 삶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했다. 언제나 한 자리에서 묵묵히 서서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닮은 최세현 기부자님은 10년, 아니 20년 뒤에도 늘 아름다운재단의 든든한 버팀목으로 함께 해주실 것 같다.
나눔은 나무에요. 딱 어울리는 나무를 짚을 수 없어요. 숲에 들어가면 모든 나무가 똑같이 소중하거든요. 모두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죠. 모든 나무는 평등하게 아름다워요. 모든 나무는 산소를 만들고 꽃을 맺고 열매를 맺고 자신이 가진 것을 다시 땅으로 돌려보내주고 나누며 살아요. – 최세현 기부자 인터뷰 중에서
사진 | 김권일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