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른 낫자’, ‘건강이 최고다’, ‘아프지 말자’는 이야기 한 번이라도 들어보셨을 거예요. 염려와 걱정, 사랑이 담긴 말이라는 건 잘 알고 있지만 어딘가 개운하지 않더라고요. 모두가 알고 있듯, 사람은 언제나 건강할 수 없으니까요. 또 치료가 어려운 질병도 많고요.

그러나 한국 사회는 당연한 팩트들을 외면하는, 건강중심사회예요. 건강에 좋다고 하면 다 잡아먹어서 유해생물도 사라진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잖아요. 건강에 이토록 집착하는 이유, 아프게 되었을때 잃는 게 많아서죠. 그냥 건강만 똑 떼서 잃는 게 아니라 학교나 직장에서도 배제되는 분위기잖아요. 대부분의 시설도 ‘정상’이라고 간주되는 몸을 기준으로 설계되어 있고요.

조한진희 활동가는 10년간 질병을 경험하며, 아픈 몸들이 배제된 세상을 깨닫게 됐어요. 그래서 아픈 몸에 대한 글을 쓰고, 또 질병을 경험하는 사람들과 만나 글쓰기 모임을 이어갔습니다. 2018년부터는 ‘다른몸들’이라는 시민모임을 만들어 질병권 담론을 확산하고 있죠. 질병을 두려워하는, 그래서 사람인 모두에게 전하고 싶은, 조한진희 활동가의 이야기를 꾹꾹 눌러 담아봤습니다.

조한진희 / 다른몸들 활동가, 책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 저자

조한진희 / ‘다른몸들’ 활동가, 책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 저자

질병권 담론이 확산되는 것, 작지만 큰 변화입니다.

조한진희 활동가는 10여명의 시민들이 모인 ‘다른몸들’을 통해 질병권 운동을 전개해나가고 있습니다. 여기서 ‘질병권’은 ‘잘 아플 권리’로, 아픈 몸으로도 온전한 삶을 살 수 있을 권리를 의미합니다.

“2015년도에 매체를 통해 처음 질병권을 이야기했을때는 ‘올바른 헛소리’처럼 치부되는 분위기가 있었거든요. 그런데 최근 2~3년 사이에 질병을 둘러싼 다양한 서사들이 쏟아져 나왔어요. 2020년부터 이어지고 있는 팬데믹도 일정 정도 영향을 미친 것 같아요. 질병이라는 것이 굉장히 멀리 있지 않다라는 것, 그리고 질병이 사회적인 것과 굉장히 연결되어 있는 주제라는 것을 학습하는 계기가 됐다고 해야할까요. ‘내가, 우리가 조심한다라고 해서 질병을 피할 수 없다’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긍정적인 관심이 늘어난 것 같아요. 같은 맥락으로 ‘잘 아플 권리’라는 개념도 예전에는 비아냥거리는 사람들이 있었다면 지금은 진지하게 수용하고 더 알고 싶어해요.”

혹시나 질병권이 몸이 아픈 사람들의 권리로만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조한진희 활동가는 질병권을 모두의 권리라고 강조합니다.

“질병에 대한 두려움은 모든 인간들이 갖고 있어요. 특히 한국 사회는 건강에 대한 기준도 높고, 건강에 대한 조심성도 되게 높은 사회죠. 만약 조금 더 안전하게 질병을 겪을 수 있고 덜 불행하게 경험할 수 있는 사회가 보장된다면 그 두려움도 줄어들거라고 생각해요. 영원히 건강한 사람은 없거든요. 노화로 몸의 기능이 쇠해지는 것도 현대 의학에서 다 질병으로 보기 때문이죠. 무엇보다 사회가 약자를 중심으로 변화됐을 때 모두의 삶이 편리해집니다. 지하철에서 텍스트로 다음 역을 안내하는 기능이 있잖아요. 이건 농인들뿐만 아니라 청인들에게도 편리한 시스템이거든요.”

연극으로, 책으로… 아픈 몸들의 이야기가 세상을 바꾸고 있습니다.

지난 몇 년간 다른몸들이 전해온 질병서사는 이제 다양한 매체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난치의 상상력, ‘젊은 ADHD의 슬픔’ 등 자신의 질병 이야기를 기록한 책도 속속 출간되고 있고요. 조한진희 활동가가 처음 질병권을 이야기했을 때와는 분명 다른 기류가 느껴집니다.

'다른몸들'이 기획한 책, 질병과 함께 춤을

‘다른몸들’이 기획한 책, 질병과 함께 춤을

📡 배철수의 음악캠프 인트로 멘트에 소개된 책 ‘질병과 함께 춤을’

“(중략) 질병을 극복의 대상으로만 보는 건 편견입니다. 어떤 질병은 완치될 수 없고, 평생 함께 춤을 추며 갈 수밖에 없기 때문인데요. 연휴 뒤의 사람들, 저마다 다른 몸으로 이 저녁을 맞이합니다. 9월 23일 목요일입니다. 배철수의 음악캠프 출발합니다.”

 

책 출간 이전에는 연극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를 성공적으로 마치기도 했습니다.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는 다낭성 난소종, 조현병 등 질병 당사자의 언어를 그대로 담아 구성한 연극입니다. 많은 관객들의 호평은 물론, 백상예술대상 젊은연극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죠.

“다른몸들은 연극을 만드는 단체는 아니예요. 그래도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를 제작한 이유는 급진적인 내용을 대중들에게 친숙한 방식으로 전하기 위함입니다. 일반 극작 형태의 연극이 아니라 아픈 당사자들이 무대 위에서 자기 이야기를 하는 방식으로 연극을 구성했거든요. 참여자들을 공개 모집해서 자신의 이야기를 다 써서 제출하게 했고, 질병을 사회적인 주제와 연결시킬 수 있는지, 또 내용의 구체성이 담보되는지 등을 살펴서 최종 인원을 선발했습니다.”

연극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 스틸컷

연극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 스틸컷

불현듯 이런 의문이 들었습니다. ‘아픈 몸의 이야기를 하는 게 과연 쉬운 일일까?’ 직장에 병을 알리는 것도 쉽지 않은 세상인데 무대위에서 사람들에게 공개적으로 질병 이야기를 한다니, 쉽게 상상이 되지 않더라고요.

“몇 년간 일다와 비마이너에 아픈 몸들에 대한 글을 써왔어요. 글을 팔로잉하는 독자들이 점점 늘어났고, 저희가 던지는 문제의식이 무엇인지도 잘 아는 분들도 생겨났죠. 질병은 생사와 닿아있다보니 종교 이야기와 결부시켜서 이야기하곤 하는데, 의외로 그런 분들이 신청하는 경우는 별로 없었어요. 오히려 질병을 사회적 맥락으로 보는 문제의식에 부합하는 분들이 신청을 많이 하셨죠. 그간 형성된 독자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아픈 몸들이 공통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자책감과 책임감이예요.

조한진희 활동가가 질병권 담론을 이야기할 수 있었던 건 2010년부터 5년간 실제로 투병생활을 했기 때문인데요. 아픈 자신에게 덕담처럼 오고간 말들 속에서 어쩐지 뒷맛이 쓰고 불편한 감정이 들었다고 합니다.

“아프니까 예민해져서 사람들의 염려를 수용하지 못하는 건 아닌가 생각했어요. 그런데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라는 말은 응원의 말인 것 같지만, 사실은 아무리 노력해도 건강을 회복할 수 없는 사람들을 되게 패배자로 만드는 말이라는걸 깨닫게 됐어요. 그 순간 제가 삐뚤어진게 아니라는 해방감과 자유로움이 느껴졌죠. 선한 의지로 하는 말들 안에 숨어 있는 차별과 구조를 읽어내면서 내가 느낀 불편함이 정당한 것이라는 걸 알게 되고, 그래서 자책하지 않을 수 있고, 현실을 부정적이지 않게 수용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질병이 발생한 원인으로 ‘자신’을 꼽습니다. 건강관리를 하지 않아서, 영양제를 챙겨먹지 않아서, 운동하지 않아서, 즉 무엇을 하지 않아서 내가 아프게 되었다고 생각하는거죠. 다른몸들은 질병과 사회적인 원인을 연결시켜보는 워크숍을 통해 사회 구조적 문제를 개인의 몸으로 환원하는 이데올로기를 짚어냅니다.

“예를 들어서 늘 만성 피로에 시달리는 사람이 있어요. 원인이 어딨는지 살펴보면 출퇴근에 4시간이 걸리는 거예요. 그럼 사람들이 직장이랑 가까운 곳으로 집을 옮기라고 하죠. 근데 그게 쉽나요. 일자리는 서울에 집중되어 있고, 서울 집값은 너무 비싸고… 출퇴근에 많은 시간을 쓰다 보면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요가를 하고, 퇴근해서 좋은 음식을 챙겨 먹을 만한 에너지가 남아있지 않아요. 이런 현실을 살펴보면서 자책감을 멈추고, 아픈 몸에 대한 분노와 짜증이 어느 방향을 향해야 되는지 알게 되는 거예요. 자신의 몸을 아프게 만드는 사회, 그리고 아픈 몸을 배제하고 자책하게 만드는 사회에 목소리를 낼 때 구조가 깨진다는 얘기를 드리려 해요.”


아파도 괜찮은 사회를 위해서는 ‘이것’이 필요해요.

그럼. 질병을 개인의 탓으로 여기는 사회를 벗어나, 아파도 괜찮은 사회를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요? 조한진희 활동가는 건강보험 보장률 증가와 함께 돌봄이 공기처럼 당연해지는 세상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합니다.

“돌봄이 공기처럼 흐르기 위해서는 첫째, 돌봄이 공공화되어야 해요. 제도화된 의료 안에 포함된다는 뜻인데요. 가족 간병을 하는 사회가 한국이랑 대만 밖에 없다라는 통계도 있어요. 가족이 직접 병원에 와서 간병한다는게 쉬운 일인가요. 가족 간병이 빨리 폐기되고 간호 간병 통합 시스템이 제대로 자리 잡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두번째, 돌봄노동자에 대한 처우개선입니다. 돌봄노동은 지금도 저평가되고 있거든요. 예를 들어 형광등 안정기를 교체하는데 20~30분 정도 걸리고, 5만 원 정도 비용을 받아요. 반면 간병 노동자들이 12시간 간병하면 보통 10만 원 정도 받아요. 노동 시간이랑 비용을 따지면 진짜 말이 안 되는 얘기죠. 노동 비용의 차이가 어디에서 오는지 보면 전문성과 위험성이예요. 근데 가래 흡입하는 의료용 석션을 아무나 할 수 없죠. 기저귀를 교체하고 목욕을 하는 과정에서 수치심을 느끼지 않도록 감정을 교감하는 것 등도 굉장히 고도의 노동이고요. 나아가 위험성도 있어요. 청도 대남병원에서 코로나가 확산되었을때 간병노동자들이 감염되어서 사망했잖아요. 어떤 질병, 어떤 바이러스는 대소변을 통해서 감염되기도 하는만큼 간병노동자들에게도 위험수당이 별도로 필요합니다.

마지막으로는 돌봄 받는 것을 수치스러워하는 분위기도 전환되어야 해요. 특히 노년으로 갈수록 ‘내가 밥 숟가락 뜰 때까지만 살겠어’란 말들을 하시잖아요. 이 말은 다른 사람이 나에게 밥을 먹여주는 행위에 대해서 되게 수치스럽게 여기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누구든지 돌봄 받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사회로 전환되었으면 합니다.”

아픈 몸도 일할 수 있는 세상, 그래서 잘 살아갈 수 있는 사회로

조한진희 활동가가 2015년 처음 연재한 글의 마지막 문장은 “우리 사회에 더 많은 질병 서사가 돌아다니는 걸 보고 싶다”였습니다. 실제로 다른몸들이 최근 몇년간 집중해온 일이기도 하고, 사업의 목표이기도 했는데요. 이제는 아픈 몸이 기본값인 사회가 되려면 어떤 변화가 필요한지 그려보고, 만들기 위한 사업들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하반기에는 ‘아픈 몸의 노동권은 어떻게 보장될 수 있을까’, ‘질병 이야기는 저항의 언어가 될수 있을까’, ‘질병권 개념 정밀화 시키기’ 등의 라운드 테이블이 준비 되어 있어요. 구인 사이트에 보면 ‘신체 건강하고 용모 단정한 자’를 뽑는다고 되어있잖아요. 그럼 저처럼 완치도 아니고, 죽음도 아닌 시기를 살고 있는 사람들, 신체 건강하지는 않지만 노동력이 없지도 않은 사람들은 어디에서 일해야 할지 반문해보게 되더라고요. 건강중심사회를 지나, 몸이 아픈 사람들도 노동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세상이 된다면 많은 것들이 변할 거라고 생각해요. 일단 노동자의 자기 통제권이 높아질 거고, 총 노동시간도 어느 정도 줄어들 거예요. 상병수당(질병 등의 건강 문제로 근로 능력을 잃은 노동자의 소득을 보전해 주는 제도)이 제도화되는 것도 빨리 자리 잡을 수 있을 거예요.”

짧은 시간동안 다른몸들이 일으킨 변화는 굉장히 많습니다. 질병권이 실현되는 사회를 향한 한 걸음을 떼었고, 걸음마다 더 많은 아픈 몸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파급력 또한 커지고 있죠. 혹시 인터뷰를 읽으면서 그 걸음에 함께 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면, 망설이지 말고 써보세요. 질병 속에 담긴 맥락을 알아가다 보면 질병 너머로 응시해야 할 다른 것들이 보이기 시작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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