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청년들이 말하는 ‘이 질병이 내 질병이다’
‘왜 젊은 사람이 몸이 이러냐’ 병원에서 검진하고 나면 곧잘 듣곤 이야기인데요. 반박도 못하고 ‘그러게요’하고 말았거든요? 병원을 나오면서 생각해보니 화가 나더라고요. ‘젊은 사람들은 늘 건강한건가? 세상에 아픈 청년들이 얼마나 많은데!’ 한편으로는, 아픈 청년들이 얼마나 안보이면 그럴까 싶었어요. 저도 몰랐는데 주변에 말하지 않았을뿐, 질병을 경험하고 있는 사람들이 참 많았어요. 아픈 몸은 들켜서는 안되는 약점같은 걸로 치부하다보니 어딘가에 말을 못했을 뿐이더라고요. 또 어디에 말해봤자 소용없다고, 결국 내 탓이라고 자책하면서요.
그래서 더욱 전해드리고 싶었어요. 청년들의 질병 이야기 속에는 누군가의 과거, 현재, 미래가 있을 테니까요. 질병이 오롯이 당신의 탓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거예요. 오늘은 듀이가 직접, 다른 질병을 앓고 있는 청년 세 명의 이야기를 담았어요.
※ 1~3번은 각기 다른 인물이며, 생생한 경험담을 공유드리기 위해 인터뷰를 1인칭 시점으로 구성했습니다.
1️⃣ 제가 암이라고요? 근데 어쩌라고요?
2020년 봄, 코로나19와 달고나커피로 한창 난리가 났던 시절이다. 어느날 눈뜨고 일어나니 목, 겨드랑이, 배꼽 언저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병원을 3-4군데 다녀봤지만 뚜렷한 병명이 나오지 않았고, 상급병원에 가기 전에 회사 근처에서 초음파로 목 부위를 봤다. 기왕지사 갑상선도 봐달라고 했다. 한참을 들여다보면 의사는 ‘갑상선암’이 의심된다고 했다. 조직 검사를 해봤지만 결과는 같았다. 다른 기관으로 전이된 상황은 아니라서 갑상선 한쪽만 절제(반절제)하는 수술을 했다. 매일 아침에 2시간씩 홈트를 했던 나도 체력이 떨어지는게 느껴졌다.
회사에서 흔쾌히 병가를 쓰라고 나섰다. 천지가 개벽할 일이었다. 연차를 조정해서 서로 겹치지 않게 써야하는 예의있는 회사인데다, 코로나19 에서도 회식과 워크숍을 감행하는 유쾌한 회사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 달도 안돼서 팀장에게 친절한 카톡이 왔다. ‘00씨, 언제 나올 수 있어?’. ‘없으니까 너무 티가 난다’ 복귀하고나서 목이 붓는다는 선배에게 ‘혹시 모르니 검진을 한번 받아보라’고 말했다가 ‘무슨 그런 재수없는 소리를 하느냐’는 면박을 당하기도 했다. 배려 대상이 되었다가, 고려 대상조차 되지 않았다가, 재수 없는 것이 되는 이상한 세계에서 어떤 포지션으로 살아가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오락가락 왔다갔다 행보를 보이던 그 회사는 내가 입장을 정하기도 전에 나를 해고하는 것으로 결론 내렸다.
해고가 나를 뒤흔든건 이틀이었다. 이후에는 나를 지키기로 했다. 정기검진 일이 가까워오면 마음이 쪼그라들고 무서운건 어쩔 수 없다. 교수를 만나고 나와 펑펑 우는 사람들에게서는 2년 전의 나를 발견하곤 코끝이 찡해져오곤 한다. 그래도, 좋아하는 홈트와 등산을 즐기고, 한두잔의 맥주도 마시며, 스우파 보고 헤이마마를 추는 나의 일상은 귀하고 소중하게 이어가고 있다. 회사 따위가 뒤흔들 수 없는, 나는 나니까.
2️⃣ 15년 간의 피부염이 남긴, 삶의 분화구
“피부만 깨끗하고 좋아도, 사람 인상이 달라보여.” 그 옆에 서 있는 나는 초라하기 짝이 없다. 벌겋게 각질이 덮인 피부를 안고 서 있는 나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까. 벌써 15년째 안고 사는 지루성 피부염과 건선은 마땅한 처방이 없는 난치성 피부질환이다.
여드름 하나에도 난리가 나는 분위기에서 나는 우둘투둘한 별종, 어떻게든 도와주고 싶은 사람이 되곤 한다. 뭘 발라바라, 먹어봐라, 다녀봐라… 나름의 사랑이자 응원임을 모르지 않지만, 당사자는 그 모든 것들을 여러명에게서 듣는다. 심지어 그 중 뭐 하나만 소홀해도 자기 관리에 소홀한 사람으로 비춰지곤 한다. 해도해도 나아지지 않는 진흙탕 같은 질병 앞에서 어떤 항변도 하기 싫었다. 귀찮고, 무기력해졌다.
시간이 지나면서 피부는 다른 장기들과 세트로 나빠지기 시작했다. 약이나 연고가 효과가 없으니 한방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차도는 있었고, 한순간 희망이 보였고, 비로소 끝나는가 싶었지만 또 실패였다. ‘깨끗이 나아 행복해졌답니다’ 이런 결말은 없다. 지금도 매일 피부가 랜덤으로 바뀌고, 가렵고, 뜨겁다. 망할 피부염은 오늘도 내 삶 곳곳에 분화구를 남기길 반복한다. 피부 열 좀 식혀보겠다고 식단도 바꿔보고 스트레스도 조절하면서, 정 못견딜땐 연고도 발라가면서 그냥 저냥 지낸다. 그러니 여러분, 얼굴보고 이러쿵 저러쿵 말아줘요. 울퉁불퉁 제 피부는, 제가 알아서 할게요.
3️⃣ 목디스크가 천재지변이라고? 이거는 회사지변이야.
“무슨 일 해요? 이 나이에 이런 상태는 드문데.” 버스 타고 가다가 접촉사고가 났다. 허리가 좀 뻐끈한거같아서 병원에 갔더니만 의사가 대뜸 이런다. 허리도 아니고 목 디스크라는거다. 이런 각도와 이런 상태는 드물다나? 내 오랜 과로가 이렇게 깊은 흉터를 남길 줄은 저도 몰랐어요, 선생님.
광고대행사에서 3년간 일했다. 하루에 20시간씩 일하는 날이 부지기수였다. 아프지 않았느냐고 되묻는다면 물론 아팠다. 목도 뻐근하고 오른쪽 엉덩이도 욱신거렸다. 출근해서부터 퇴근할때까지 자세를 신경쓰면서 일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제맘대로 수정안을 보내오는 클라이언트, 내일까지 제안서를 제출하라는 상사, 일의 규모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인력…. 너나할 것 없이 거북목에 구부정한 자세로 밀려오는 일을 쳐내기 급급했다.
‘병원에 갔다 올게요’, ‘아프니까 연차 좀 쓸게요’ 퇴사 전까지 결국 내뱉지 못한 말들이 되었다. 입사 3년차, 대상포진 두 번을 앓았고, 회사를 나왔다. 그리고 퇴사 1년 뒤, 별안간 버스 사고로 목디스크를 발견한 거다. 이직한 회사는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곳이어서 한동안 병원 다니면서 집중 치료를 할 수 있었다. 사무실에서도 가급적 바른 자세를 도와주는 밴드를 차고 일할 수 있다. 오늘도 아픈 손목에 보호대를 차고, 뚝뚝 부러지는 목 스트레칭을 해내며 일하고 있을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아 더 아플 통증을 안고 사는 모두에게, 말하고 싶다. 일이 나를 집어 삼키게 두지 말자고, 어떤 회사도 나를 갈아서 쓰도록 두지 말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