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재단 ‘변화의시나리오 프로젝트 지원사업’은 공익활동을 하고자 하는 시민모임, 풀뿌리단체, 시민사회단체를 지원합니다. 특히 성패를 넘어 시범적이고 도전적인 프로젝트를 지원함으로써 공익활동의 다양성 확대를 꾀합니다. ‘2021 변화의시나리오 프로젝트 지원사업’ 너머에는 어떤 분들이 일하고 계실까요? ‘익산참여연대’은 2021 변화의시나리오 프로젝트 지원사업으로 ‘지역을 바꾸는 힘! 시민정책평가 프로젝트!’ 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사업 너머의 사람. 김란희 활동가를 만나보았습니다. |
#내이름의빨간줄 #뚜벅이
제 고향은 전주인데요, 가난하고 어려운 현실에 정말 호기심으로 중2때 수업료를 들고 친구따라 경기도로 가출했다가 길에서 경찰관에게 붙잡혀 하루만에 귀가조치를 당했습니다. 지금 와서 이야기지만, 가출 당시 경찰관이 경찰서에 있던 컴퓨터를 가리키시며 ‘네 이름에 빨간줄 보이지? 10년 동안 가출 안해야 이 줄이 자동으로 없어진다. 명심해라!’ 라고 한 말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숨겼던 것을 보면, 가출도 범죄라고 생각했었나 봅니다. 큰 일 따윈 생기지 않는다는 것도 의경으로 생활한 남편을 통해 25살 결혼할 때 알았습니다.
가출해서 친구의 친적집으로 갔는데, 다음날 공장에 데려가 일을 시키는 바람에 전주 집으로 돌아가려고 강남 고속버스터미널에 갔습니다. 고속도로를 따라 걸어갈 생각으로요. 고속도로는 사람이 걸을 수 없는 것도 몰랐던 거죠. 지금도 생각 없이 걷는 것을 자주 합니다. 한여름을 제외하곤 출퇴근도 곧잘 걸어서 합니다. 마음이 맑아지는 것을 느끼게 돼요.자기소개가 너무 오랜만이라 과거 저의 민낯을 잠시 소개 해 봅니다. 과거의 저에겐 막막한 현실이었지만, 소중한 관계와 경험들이 저를 만들었습니다. 오늘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모두 품은 역사가 됩니다.
선생님의 과거가, 선생님의 미래에 어떤 의미가 되었는 지 궁금해요. 활동가를 업으로 삼게 되신 것과도 연결이 되는 지점이 있나요?
2년 뒤면 50세가 됩니다. 순수하고 무지했던 시절의 제가 얼마나 많이 변했을까요? 여전히 모르는 것 투성이이고, 가끔은 세상 물정을 잘 몰라서 지금까지 건강하게 사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런 제가 가진 고유한 특성이 있겠지요. 나답게 살아가는 힘, 나다워서 할 수 있는 것들. 어렵고 중요하지만 보이지 않는 것들을 생각하며 현실을 직시하고, 해야 할 것을 위해 행동하고 싶은 마음들이 제 삶을 이끌어온 것 같아요. 처음에는 아이가 세상 혼자가 아닌 더불어 살게 하고 싶은 마음에서, 아름다운가게나 어린이도서관 같은 곳에서 함께 봉사활동을 하는 정도였습니다. 그러다가 시민단체를 알게 되고 자연스럽게 엄마가 활동가로 변모해갔죠.
익산참여연대에서 보낸 시간도 10여년을 훌쩍 넘겼는데, 처음에는 어떤 곳이고, 어떤 활동을 하는지도 모르고 상근 할 사람을 구한다기에 서류를 냈어요. 들어와 보니 정말 중요한 일을 하는 곳이더라고요. 보통의 사고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죠. 바라는 것 없이 희생하며 이곳을 가꾸고, 만들고, 도전하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언어, 태도, 일, 관계까지.. 이곳에서 저는 하나에서 열까지 순간순간이 배움이고, 깨닫고, 꿈꾸는 시간이었습니다. 급여가 많고 적고도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이 일터를 선택했던 이유 중 하나는 홀어머니와 사회 취약계층으로 살아오며 제도권에서 받았던 고마운 마음을 갚으면서 살고 싶었던 것 때문이기도 했거든요.
의미가 우선순위가 되어도 힘든 순간은 존재할텐데, 결국 지속하며 살아가게 하는 선생님의 동력이 궁금해져요.
2013년 정도에 사람 문제로 단체가 한번 힘든 진통을 겪었습니다. 회원도 대거 탈퇴를 하고, 한 달 정도 문을 걸어 잠갔습니다. 많이 울고, 속상하고, 죽고 싶은 마음도 먹었던 때였습니다. 수렁 속으로 빠져들고 해결이 되지 않을 것 같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다시금 제자리를 찾고 딛고 일어서게 되더라고요. 겨울에 찬물을 큰 다라이에 받아놓고 사용하면 미지근해서 찬물 목욕도 할 수 있습니다. 몸에 뿌리면 몸의 온도로 하얀 연기도 나는 걸요. 처음이 힘이 들지, 길들여지고 익숙해지면 힘든 것도 좀 견딜만해지는 것을 알게 됩니다.
좋고 필요한 일을 하는 곳이지만 세상과 또 다른 벽도 존재 하는 것 같아서 답답할 때도 많습니다. 그렇지만 먹고 사는 문제에 비하면 그 어려움은 크지 않다는 생각입니다. 처음 마음으로 있는 동안 최선을 다하고 싶어요. 사람이 주는 선한 영향력을 믿고 있습니다. 본보기가 되는 것이 중요하고, ‘왜’ 라는 물음 속에서 답을 찾는 과정으로 살아가려고 합니다.
참여를 통한 변화를 가장 가깝게 느껴보신 적이 있나요? 선생님 본인이 직접 참여했던 경험도 좋고, 참여의 자리를 마련했던 경험도 좋고, 혹은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애정이 있는 사례가 있다면 소개 받고 싶어요.
익산에도 시민단체가 여럿 있습니다 열심히 활동하는 조직들도 많이 있고요. 하지만, 각자의 역할과 자리에서 경쟁하듯 살아가다 보니 정서적인 교감이나 교류를 가질 수 있는 기회는 거의 없었습니다. 다시 복직하여 2019년 7월 두루 만나고 연락해서 큰 맘 먹고 모임을 조직했습니다. 일로는 만나지 않되, 삶의 균형을 찾아주는 우리들만의 활동을 해보자고요. 『대화의 희열』이라는 이름의 여성 공익활동가 모임인데, 여성의전화 상근자, 귀촌한 농업 활동가, 호스피스 자원봉사자, 시민단체 30대 청년 회원, 청소년상담 활동가, 청소년 2명, 저까지 8인이 구성원입니다.
10대부터 50대까지 세대가 어울리는 경험을 하면서, 아름다운재단처럼 작은 변화를 꿈꾸고 있습니다. 각자 쓰지 않는 물건을 모아 벼룩시장을 해 보고, 함께 영화를 보고 이야기를 나눠 보기도 했습니다. 아이돌 댄스도 한번 배워보았습니다. 서로 만나고 싶고, 어울리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는 것은 저희에게도 참 행운입니다. 함께 하는 분들의 좋은 점을 배우고, 느끼며 함께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깊이 알게 됩니다.
말씀 해 주신 『대화의 희열』 과 같은 모임이 참여로 연대를 이루가 위해 가장 중요한, 필요한 것이라는 생각도 들어요.
앞서 이야기 했듯 익산에 단체가 여럿 있지만 꼭 성과위주는 아니라 해도 사회의 많은 모순들 속에서 경쟁 아닌 경쟁에 노출되어 있는 현실입니다. 그래서 모두의 마음에 여유가 없다는 것이 느껴지기도 해요. 여유의 결핍은 서로 협력하게 하는 데 장애가 됩니다. 먼저 손을 내밀어도 열정과 의지를 꺾어 버리기도 하고요. 또 가끔은 시민운동과 정치는 다르지만, 또한 멀리 동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도 듭니다. 하여 많은 혼란과 격변을 겪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익산참여연대도 그렇지만, 지역사회도 열린 마음이 부족합니다. 하나를 잘 만들기 위해서 시간을 내고, 충분히 소통하는 과정들을 반복하며 함께 했으면 합니다. 각자가 잘 할 수 있는 영역과 분야를 정해서 조금씩 힘을 보탰으면 합니다. 그 과정에서 서로를 제대로 알고 이해하며,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수 있는 에너지가 될 테니까요. 지역을 위해 오래오래 함께 할 수 있는 관계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선생님 스스로에게, 또 오래오래 함께 하고 싶은 관계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을까요?
일과 일상의 균형을 잃지 않았으면 합니다. 일하는 것도 쉬는 것도 열심히 하라면 표현이 이상한가요? 휴식은 보약보다 더 큰 힘이 있습니다. 매 순간 자신을 좀 편안하게 내려놓는 연습을 하면 좋겠습니다.
글| 박혜윤
전(前) 변화의시나리오 담당자 / 귀 기울여 듣고 애정을 담아 질문하고 싶은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