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리스행동]이 2021 변화의시나리오 스폰서 지원사업에 참여하여 여성홈리스 구술생애사를 발간했습니다. 이 글은 홈리스행동에서 보내온 사업후기입니다. <변화의시나리오 스폰서 지원사업>은 공익컨텐츠의 생성과 확산을 위해 5인 이하의 소규모 단체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
통계 속 수치로 잡히지 않는 여성들은 어디에 있을까
‘여성홈리스’ 구술 생애사 작업을 통해 해당 여성들이 홈리스가 되는 과정의 초반에 일정한 ‘폭력’이 존재하거나 구조적으로 빈곤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환경이 존재하는 것을 확인했다. 이는 한국 사회에서 여성 전반이 겪는 문제와 무관하지 않았고, 불안정한 주거 안에서도 더 불안정한 공간, 화장실 등으로 내몰리게 되는 여성홈리스의 특징은 ‘홈리스’로 뭉뚱그려질 수 없는 부분이었다.
쪽방, 거리, 화장실, 고시원 등 다양한 환경에 있는 여성홈리스는 정신 장애 및 지적 장애가 홈리스가 되는 이유이거나 혹은 홈리스 상황이 만든 결과임을 보여주어 ‘장애’의 문제와도 연결된다. 빈곤/젠더/장애의 연결고리 안에서 여성홈리스들의 삶을 깊게 들여다보는 시간이었고 더 많은 시간을 들여 찬찬히 들여다보고 싶어지기도 했다.
서울이라는 거대한 도시의 한 복판에서 살아가지만 삶의 가장자리에 있거나 혹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여성홈리스의 이야기를 다시 도시 복판으로 끌어오고 싶었다.
보고서에 등장하는 화자들은 40대에서 7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여성이며 정신장애, 지적장애, 우울증 외에도 신체적인 질병을 지니고 있다. 이들의 삶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때로는 아팠지만 대부분은 싸움의 언어였다. 용산역 여성은 자신의 짐을 쓰레기취급하는 서울역 공무원들과 싸우며, 그럴 때면 자기 자신에게 스스로 높임말을 쓴다고 했다.
누구도 존중하지 않는다면 내가 존중하겠다는 그의 선언, 자신의 짐을 가져가는 것은 절도라는 그의 규정, 세금도 안내는 홈리스라는 비난에 내가 사는 모든 물건에 10프로의 세금을 내고 있다는 그의 반박은 거침없다.
오갈데가 없어서 고생스럽긴 해도 역에서의 노숙이 무서울게 뭐 있냐는 영주, 남자보다 활동이 좋다며 거리에서 만나는 ‘나와 똑같이 생긴’ 여성홈리스들을 대신해서 분노하고 홈리스 관련 기자회견이 있을 때면 늘 앞장서 맨 앞에 서는 서가숙, 동자동에 온 이래로 매일매일이 무서웠지만, 놀면 뭐하냐는 마음으로 급식소 식도락에 나와 80인분의 식사를 매일 준비하며 오가는 사람을 살피는 박영자, 작은딸을 데리고 노숙인쉼터에서 2년여의 시간을 보낸 경험을 나눠준 김진희, 자신의 얘기를 할 때도 남의 얘기를 할 때도 눈물이 많은, 그러나 불합리하게 운영되는 노인정의 비리를 파헤치기 위해 매일 기록하고 싸우는 길순자,물이 필요한 사람에게 물을 떠다주고 담배를 나눠주며 싸우는 사람이 있으면 말리기도 하면서 매일 서울역이라는 공간에서 자신의 삶을 넓혀가는 김미애, 다동공원 화장실에서 10년째, 화장실에 들락거리는 사람들이나 청소노동자와 커피를 나눠마시며 자신의 공간인 화장실을 깨끗하게 치우는 이가혜.
그들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우리는 무슨 질문으로 가슴을 열어낼 수 있을지, 때로는 들려주고 싶지 않은 이야기는 더 묻지 않고 그대로 지나가며, 15분짜리 이야기를 듣고 내쫓기고 나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을 다시 만나러 갔다. 인터뷰 도중에 화자가 사라지기도 하고 싸우기도 했다. 도통 나의 삶과 그의 삶이 서로를 마주하기까지 그 거리는 좁아졌다가 다시 넓어지고 때로는 아득해져서 무엇을 담아내야 할지 망설여지기도 했다. 한 여성과 다른 여성이, 화자와 청자로서, 화자와 또 다른 화자의 이야기가 교와 차로 얽혀가며 그렇게 여름과 가을이 갔다.
지난 사업을 회고하며
화자들은 공통적으로 ‘여성은 자기 얘기를 꺼려한다’, ‘여성 홈리스는 만나기 어렵다’, ‘여성홈리스는 사람보다 화장실과 친하다’고 말한다. 통계 속 수치로 잡히지 않는 여성들은 어디에 있을까. 우리가 아직 만나지 못하고 듣지 못한 이야기들은 어디에 적히고 있을까. 아직 듣지 못했을 뿐 말하지 않는 것이 아닌, 그 말들을 우리는 더 들어보려고 한다.
짧은 시간 사업을 수행하는 것이 아쉬웠고 예산 사용 등에 있어서 사업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상황에 맞는 적절하고 융통성 있는 적용이 있었으면 한다. 그럼에도 여성홈리스들이 홈리스가 되는 과정, 홈리스로서 살아가는 삶의 전략, 그리고 앞으로도 이어지는 여성 홈리스들의 이야기를 듣는 소중한 기회였고, 이 작업이 더 긴 이야기로 이어질 수 있는 시작을 만들 수 있는 프로젝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