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터면작은도서관]이 2021 변화의시나리오 스폰서 지원사업에 참여하여 마을 인터뷰 영상을 제작했습니다. 이 글은 하마터면 작은도서관에서 보내온 사업후기입니다

<변화의시나리오 스폰서 지원사업>은 공익 콘텐츠의 생성과 확산을 위해 5인 이하의 소규모 단체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마을인터뷰 동영상_하마터면 작은도서관 제공>

<마을인터뷰 동영상_하마터면 작은도서관 제공>

어느 누구의 소유도 아니었던 골목길

우리는 전포동에 산다.

아주 예전에는 전두환도 포기한 동네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만큼 열악한 환경이었다고 하니 삐까뻔적하게 변한 지금의 모습으로는 감히 상상도 하기 힘들다.

우리는 모두 전포동에서 살고 있다.

짧게는 10년 길게는 40년을 넘게 전포동에 살고 있는 주민들이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우리 동네를 몹시도 사랑하게 되었다. 우리들 모두에게 전포동이라는 지역은 아이들을 키우고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앞으로의 새로운 꿈을 꿀 수 있게 하는 모든 생활의 물리적인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하마터면 작은도서관 제공>

어느 순간부터 동네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미 오래전부터 예정된 재개발이었지만 동네 어귀를 장승처럼 지키고 있던 목욕탕 굴뚝이 쓰러지는 것을 시작으로 아침저녁으로 변하는 마을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자니 그제서야 재개발이라는 사건이 크게 와 닿기 시작했다. 마치 동네의 골목에서 살았던 우리 각자의 지난 삶을 부정 당하는 듯 한 충격의 여운은 꽤 오랫동안 머물렀다.

부산의 주거 문화인 산복도로는 다른 지역에는 없는 말이라고 한다. 산복이라는 말을 산의 배꼽 부분이라는 뜻인데 지역의 특성상 산 허리에 만들어진 길을 따라 주거지역이 형성된 부산만의 특별한 주거 형태라고 한다. 산복도로의 성냥갑 같던 집들이 있던 자리에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기 시작한 것은 비단 우리 전포동만의 이슈만은 아니다. 그러나 원주민들과 합의하지 않고 원주민들의 삶을 빼앗는 무분별한 재개발에 대해 우리는 너무 쉽게 동의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어느 누구의 소유도 아니었던 골목길이 있던 자리에는 대형 건설사에서 시공한 브랜드 아파트가 들어섰고, 우리는 관계의 시작이었던 골목을 잃어 버렸다. 과거의 골목이란 집과 집을 잇고 사람과 사람을 이으며 건강하게 관계 맺는 법을 가르쳐 주던 가장 인문학적인 공간이었지만 생활권이 훨씬 가까워진 요즘 우리는 오히려 관계없이 사는 것에 익숙해지고 있다.

전포동은 현재 재개발이 진행된 곳, 진행되고 있는 곳, 진행 예정인 곳으로 블록이 나뉘어 있다. 이미 진행된 곳은 그 원형을 알아 볼 수 없을 만큼 달라졌지만 재개발이 진행 예정인 곳들은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몇 년 동안 마을의 활동가로 활동하며 마을의 역사에 대해 공부하는 동안 마을 어르신들에게 이야기 들을 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 묻지 않았다면 하마터면 사라질 뻔한 귀한 말씀 속에서 우리들은 어떤 유의미한 기록의 중요성에 대해 고민할 수 있었고 그로 인해 마을의 골목들을 그림, 사진, 글 등으로 아카이빙 하는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하마터면 작은도서관 제공>

 
 

본격적인 활동은 지난 4월 시작된 동네 탐방으로 마을의 다양한 모습들을 사진으로 남기는 작업부터 시작되었다. 사진으로 기록된 동네의 모습들은 어반스케치 기법으로 다시 2차 작업을 하는 과정을 거쳐 우리의 활동 내용들을 동네의 학교나 지하철 역사에 전시하는 방법으로 무분별한 재개발에 대한 고민을 마을의 주민들과 함께 나누고 싶었다.

전문가들이 아니다 보니 우리의 그림 실력은 아직 형편없다. 연필 잡는 법을 배우고 색칠하는 법을 배우는 어린 아이처럼 갓 시작된 우리의 ‘여러 오늘’들이 모여 ‘단단한 내일’이 만들어질 것이란 믿음으로 하마터면 사라질 뻔한 기억들을 기록해 나아가겠다.

<하마터면 작은도서관 제공>

<하마터면 작은도서관 제공>

그러나 작년부터 시작된 코로나19라는 변수가 우리의 만남을 자꾸 주춤하게 만들었다. 모일 수 없는 기간에는 동아리 밴드를 개설하여 각자가 그린 작품을 공유하거나 온라인 회의를 통해 서로 독려하는 분위기를 만들었지만 서로의 체온을 느끼며 함께 만들어가는 공동의 목표가 여전히 아쉽기는 했다.

<하마터면 작은도서관 제공>

재개발이라는 거대 담론은 사람보다는 자본이라는 맥과 맞닿아 있다. 자본주의가 팽배해 지고 갈수록 매체와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우리 모두는 전화번호 하나 외우는 것도 어려운 바보들이 되어 가고 있지만 그 누구도 이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이라는 점들이 모여 관계라는 선을 만들고 선들이 이어져 면을 이루고 면으로써 만들어진 공동체의 장이 우리가 활동해 온, 그리고 앞으로 마을의 주민으로 활동해 나아갈 궁극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같이 작은 단체의 손을 내밀어 주신 2021 변화의시나리오 스폰서 사업은 확실한 마중물이 되어 주었다.

무엇보다 마을의 다양한 세대의 주민들이 함께 참여했다는 것이 가장 큰 성과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그동안 다양한 마을 활동을 해왔지만 이번 사업의 활동 결과를 돌이켜 보니 이렇게 세대 간의 응집력이 높았던 활동들이 또 있었을까 싶을 만큼 우리 내부 자체 평가의 만족도로 상당히 높았다.

<심살롱 전시날 심수환화백과 동아리 식구들과 함께 기념사진_하마터면 작은도서관 제공>


사라져 간 마을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시작된 스케치 동아리 활동. 참가자들은 그동안 찍어놓은 마을의 모습과, 재개발이 결정된 마을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겼다. 그렇게 마을 구석구석을 깊이 있게 관찰해온 덕분에 마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수 있었다.

또, 전리단길 갤러리에서 진행된 심싸롱 ‘그리다’ 전시로 인해 마을의 유관기관 및 마을 주민들에게 마을을 사랑하는 사람들로써의 활동내용을 알릴 수 있어 아주 뜻깊은 시간이었다. 뿐만 아니라, 활동 내용이 알려지며 그동안의 작품을 옆 마을과 전철역사 등에서 초대전시 요청이 오기도 했다. 이에 동아리 구성원들 간의 응집력과 활동 자체의 자부심이 굉장히 높아졌다.

발터 벤야민이라는 철학자는 “한 걸음이 진보다.”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모든 결과는 행동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으로 나뉘듯 우리는 진보를 위한 한걸음의 힘찬 발걸음을 내딛었다. 우리는 이제 두 번째 발걸음으로 도약하기 위해 다시 시작한다. 

글 : 하마터면 작은도서관 | Face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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