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양육시설 출신 신선 캠페이너가 그룹홈, 가정위탁 아동들을 만나 자립교육을 진행했습니다. 왜 그룹홈, 가정위탁 아동을 위한 자립교육이 필요할까요? 왜 1:1 맞춤형 교육으로 진행했을까요? 신선한 자립교육 이야기! 자립전문가 신선이 알려드립니다! |
12년 만에 찾은 나의 집, 그룹홈
영준이는 가정불화로 가족과 분리되어 일시보호시설에서 맡겨졌다. 일시보호기간이 종료된 이후 영준이는 자연스레 보육원으로 옮겨졌다. 보육원에서의 삶 역시 낯설었다. 형들의 눈치를 봤으며, 단체생활이라는 이유로 많은 것이 통제되었다. 처음 시설로 온 지 12년이 지나, 영준이는 마지막으로 그룹홈으로 전원이 됐다. 그룹홈은 최대 인원이 7명밖에 되지 않았고, 눈치를 주는 형들도 없었다. ‘진짜 집’ 같은 그룹홈에서 영준이는 이전에는 누리지 못한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여러 번 시설을 옮겨 다닌 영준이. 그 때문인지 돈을 많이 모아 안정적인 삶을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렇게 경제에 관심을 갖게 된 영준이는 경제적 자립을 위해 미래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룹홈에는 자립 준비를 도울 시스템이 부족했다. 영준이의 그룹홈에는 자립을 준비하는 게 영준이가 거의 처음이었다. 그래서 원장님도 모르는 부분이 많았다. 심지어 영준이가 살고 있는 경기도에는 그룹홈 아동을 돕는 자립전담요원이 단 1명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영준이의 고민을 해결할 만큼 많은 도움은 받지 못했다. 영준이는 퇴소 후 받을 수 있는 경제 지원이 무엇인지, 집은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등 자립 정보를 혼자, 스스로 알아봐야 했다.
유독 눈빛이 반짝이던 아이
나와 영준이는 구면이었다. 우리는 민간재단에서 진행한 자립교육 프로그램에서 처음 만났다. 그때 나는 시설을 먼저 자립한 선배로, 자립을 앞둔 후배들을 만나 자립생활을 공유하는 강사 역할을 하고 있었다. 교육을 하다 보면, 아동들은 제각기 거부반응을 보이곤 했다. 대부분 억지로 교육에 참여했고, 졸거나, 떠드는 일은 다반사였다. 그런데 그 속에서 유독 눈빛이 반짝이던 아이가 한 명 있었다. 영준이었다. 영준이는 대학에 가는 방법, LH로 집 구하는 방법 등 적극적으로 질문을 했다. 강연이 끝난 뒤, 따로 연락처를 받아 가기도 했다.
이후 이따금씩 영준이는 행복주택이 뭔지, 대학에 가면 받을 수 있는 장학금에는 뭐가 있는지, 자신이 알게 된 정보가 맞는지 물어보기 위해 연락을 하곤 했다. 영준이는 그룹홈에서는 얻을 수 없던 자립 정보를 알려주는 사람을 만나 반가워 보였다.
영준이는 이번 교육 후기에 이렇게 적었다.
“자립에 있어서 정보가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찾아보면 저희들을 돕는 지원들이 많은데 그걸 전문적으로 알려주는 사람이 없어서 불편했어요. 우리 같은 친구들은 받을 수 있는 지원이 많은데, 이용하지 않는다면 손해인 거잖아요.”
“40평대 아파트를 마련하는 게 꿈이에요!”
영준이는 유독 주거 공간에 관심이 많았다. 미래를 위한 계획도 꽤나 구체적으로 세워놓은 상황이었다. 자립정착금을 받게 되면 1,000만원을 모두 저축할 것이며, 주거지는 비싼 서울보다 경기도 외곽으로 구할 생각이라고 했다. 알바로 버는 돈은 꾸준히 저축도, 투자도 하고 있었다. 나중에는 40평대 아파트를 자기 힘으로 마련하는 게 꿈이라고 했다.
생각해 보면 영준이는 예전부터 행복주택, LH 전세 임대 등에 관해 집요하게 물어보곤 했다. 주거지에 대한 관심이 많은 영준이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었다. 그래서 선택한 교육이 ‘주택청약 가입하기’였다. 보호종료아동을 위해 LH 전세 임대제도라는 게 존재하지만 이건 평생 내 공간이 될 수 없다. 거주 기간에 최대치가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결국에는 내 집 마련을 위해 다른 기회가 필요했다. 남들처럼 부모님의 지원을 기대할 수도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혼자가 아니라 함께여서
오프라인 교육 날, 우리는 같이 은행에 방문했다. 영준이는 주택청약은 알고 있었지만, 어떻게 신청하는 건지 몰랐다고 했다. 또 은행을 혼자 가볼 일이 별로 없다 보니 은행에 가서 물어볼 엄두도 못 냈다고 했다. 뽑은 번호표를 꼭 쥔 영준이는 많은 게 낯설어 보였다. 그런 영준이에게 주택청약이 뭔지, 왜 중요한지 차분히 설명을 해주었다.
번호가 불리고 창구로 갔다. 나는 영준이의 오른쪽에 앉아 영준이가 놓칠 수 있는 것을 대신 물어봐 주었다. 가입 서류를 절반 정도 작성했을 때였다. 은행원의 말을 한참 듣기만 하던 영준이가 입을 떼었다.
“자동이체는 어떻게 해요?”
“1번에 1년치는 낼 수 없어요?“
이날 영준이는 주택청약 통장에 2만원을 저축했다. 그리고 꾸준히 저축할 것이라 다짐했다. 주택청약 가입으로 당장 변화되는 것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어린 시절 일시보호시설, 보육원, 그룹홈을 전전해야만 했던 영준이에게. 이번 교육이 안정적인 삶이라는 꿈의 작은 시작이 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그 시작이 혼자가 아니었듯이, 앞으로도 영준이의 삶이 혼자가 아닐 것이라 말해주고 싶었다.
아동복지법에 따르면 아동 30명 이상인 아동양육시설에는 자립지원전담요원을 1명 배치하고, 100명 초과 시 1명을 추가로 배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와 달리 그룹홈의 자립지원전담요원은 ‘필요인원’이라 규정되어 있다. 그래서 그룹홈의 자립지원전담요원은 서울, 경기, 전남에서만 자체예산을 지원, 전국에 총 4명(서울 2명, 경기 1명, 전남 1명) 뿐이다. 영준이도 전담요원이 있다는 건 알았지만, 나를 담당하는 요원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전담요원으로부터 정보를 얻겠다는 생각 자체를 못했다고 한다. 내가 거주했던 양육시설에는 자립전담요원이 배치되어 있었다. 나는 자립전담요원 선생님과 함께 자립 계획을 세우고, 3일간의 자립 체험도 하며 혼자 생활해 보기도 했다. 전담요원 선생님과 자립정착금을 신청하고, LH 전세임대지원제도에 대해 배우기도 했다. 하지만 영준이는 이 모든 걸 스스로 알아야 했다는 게 안타까웠다. 2019년 기준으로 전국에 있는 그룹홈은 578개, 그룹홈 보호아동은 2,949명에 이른다. 하지만 이들의 자립을 돕는 전담요원은 단 4명뿐이라니.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그룹홈 출신 퇴소아동들은 홀로 정보를 찾아 가야만 한다. 만약, 자립준비에 필요한 자립정보와 궁금증을 해결해 주는 누군가가 좀 더 가까이 있다면, 교육을 받고자 하는 의지와 자세가 훌륭한 영준이가 이뤄낼 자립이 더 멋진 모습이 되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