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으로 세상을 바꿔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던 아름다운재단의 월간지 ‘콩반쪽’이 있었습니다. 재단 초창기에 재단 소식과 함께하는 사람들의 꾸밈없는 이야기를 전달하는 잡지였어요. ‘콩반쪽’에 실린 기부자님들이 어떻게 지내실지 궁금한 담당 간사는 한 통의 전화를 받습니다. 아이가 성년이 되어 기부를 물려주고자 한다고요. 과거 ‘콩반쪽’에도 직접 쓴 편지와 이야기를 전해주신 이 가족을 다시 만나야 한다!라는 욕심에 인터뷰 요청을 드렸어요. 2005년에서 훌쩍 뛰어넘어 다시 만난 ‘이재용, 이재희’ 가족 기부자님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
20년 가까이 기부를 이어온 이영열, 홍미영, 이재용, 이재희 가족
이재용 씨 가족과 아름다운재단의 인연은 깊다. 2005년 콩반쪽 5월호에 동생 이재희 기부자와 함께 부모님의 인터뷰가 실린 것이다. 아버지 이영열 씨가 재용 씨가 태어난 것을 기념해 기부를 신청하며 남긴 편지가 인연이 되었다.
재용 씨의 탄생과 함께 시작된 기부
“재용이 출생신고를 하고 아이의 주민등록번호로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어 기부하면서 글을 남겼는데, 아름다운재단에서 인터뷰 요청이 왔어요. 최연소 기부자 가족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면서 말이죠. 쑥스럽더라고요.”
이영열 기부자는 겸손하게 말하지만, 아이를 사랑하는 아버지의 부정이 담긴 따뜻한 글은 많은 이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렇게 네 살의 개구쟁이 꼬마였던 재용 씨와 갓난아기였던 재희 씨 남매와 부부의 나눔 이야기는 세상과 만났다.
“인터뷰했을 때를 돌아보니 세월이 많이 흘렀네요. 재용이는 21살, 재희는 17살, 우리 부부도 중장년의 나이로 접어들었으니까요.”
환하게 웃어 보이는 어머니 홍미영 씨의 말처럼 시간은 훌쩍 흘렀고, 가족의 외형도 달라졌지만, 기부의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2003년 1월 ‘사회참여 영역기금’으로 시작한 기부는 20년 가까이 이어져 오고 있다. 오랜 기간 빠짐없이 기부를 이어갈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좀 싱거울지 모르지만, 의식을 하지 않은 게 비결같아요. 어쩌다 기부금 이 나간 걸 보면 ‘아, 이번 달도 무사히 잘 살았구나. 다음 달도 열심히 살자’라고 생각했어요. 아름다운재단과 같은 믿을 만한 곳을 만났기에 마음 놓고 맡겼던 것도 있었고요.”
호흡처럼 자연스러운 기부로 20년을 이어오다
재용 씨 가족에게 기부는 당연하기에 비결이랄 게 없다. 호흡처럼 자연스러운 일이기에 습관처럼 해 왔을 뿐이라는 것이다. 아버지가 시작한 기부는 대를 이어 아들이 넘겨받았다. 지난 2월 영열 씨는 CMS 자동이체 계좌를 성인이 된 아들 이재용 기부자의 계좌로 변경했다.
“아버지가 처음에 기부할 때 제가 돈 벌 나이가 되면 스스로 나눔을 이어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셨데요. 저 역시 자연스레 제가 해야 한다고 여겼고요.”
아직 학생이라 경제활동을 활발히 하진 못하지만, 용돈을 아끼면 충분히 할 수 있다며 웃어 보이는 재용 씨.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계좌변경을 결정했다는 그를 보며 미영 씨가 입을 열었다.
“돌이켜보면 참 감사해요. 어느 집이든 그렇겠지만 아이가 아팠던 적도 있고, 길을 잃어버려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던 적도 있거든요. 그런 순간들을 겪고 무탈하게 성장해 성인이 되고, 기부를 이어간다는 사실이 감격스럽네요.”
기부란 발자국, 물려받을 유산, 그리고 연대
‘나에게 나눔이란 어떤 의미인가?’ 라는 질문에 재용 씨는 태어나면서부터 지금까지 걸어왔고, 앞으로도 걸어간다는 의미에서 ‘발자국’이라 대답했고, 재희 씨는 ‘물려받을 것’이라고 적었다. 부연설명을 요청하니 재희 씨는 명쾌한 대답이 내놓았다.
“아빠가 물려줄 유산은 없지만 물려줄 나눔은 있다고 하셨거든요. 오빠가 그랬던 것처럼 저도 나눔을 자연스럽게 물려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어릴 때는 잘 몰랐는데 부모님과 오빠를 보니 알 것 같아요. 기부와 나눔의 기쁨을 느끼는 삶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를요.”
마음으로 가르친 나눔의 씨앗이 자녀들의 마음에 아름다운 열매로 맺어지고 있음을 확인하며 부부는 더없는 보람을 느낀다. 나아가 더 많은 사람이 이 기쁨과 행복을 느끼길 바라고 있다.
“새로운 인터뷰 요청이 왔을 때 굳이 해야 할까? 우리가 나가는 게 맞나 고민이 깊었어요. 그런데도 용기를 낸 건 누군가 우리 가족의 이야기를 보고 기부 한번 해볼까? 그런 마음을 갖게 된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싶더라고요. 더 많은 분이 아름다운재단과 함께 나눔의 기쁨을 느껴보셨으면 좋겠어요.”
인터뷰 말미. 영열 씨는 ‘기부는 아름다운 연대’라고 힘주어 말했다.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을 위해, 내가 가진 것을 나누는 기부는 선행이 아니라 당연한 도리이자 책임이며 사회와 연대하겠다는 약속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어요. 힘들고 어려움도 있겠지만 서로 손을 잡고 나아가다 보면 개개인의 삶, 나아가 사회 전체가 더 나은 쪽으로 갈 수 있지 않을까요? 기부를 결심하는 것만으로도 연대의 기쁨과 즐거움을 느낄 수 있어요. 우리 가족이 그 증거가 아닐까 합니다.”
인터뷰 내내 재용 씨 가족은 꾸밈없이 이야기를 나누었고, 스스럼없이 웃어 보였다. 재용 씨와 재희 씨는 티격태격 현실 남매의 모습을 보이다가도 기부 이야기만 나오면 진지하게 속내를 털어놓았고, 부모와 함께 호흡하며 생각을 나누었다. 재용 씨 가족들에게 기부는 사회와 연대뿐 아니라 가족의 온전한 연대를 가능케 했다. 기부가 준 가장 큰 선물이다.
글 : 김유진 | 사진 : 김권일
경
멋진 가족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