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이면 찾아 뵙는 분이 있습니다
아름다운재단에는 작은 전통이 하나 있습니다.
아름다운재단에 처음 들어온 신입간사는 항상 아름다운재단 1호 기금 출연자이신 김군자 할머니를 방문하여 인사를 하는 일입니다.
김군자 할머니는 여러번 소개를 해드린 것처럼 아름다운재단 1호 기금인 ‘김군자할머니기금’을 출연하신 분이십니다.
13세에 고아가 되어 17세이던 1942년 일제에 의해 종군위안부로 끌려가 모진 고생을 하시고, 해방 후에도 중국에서 1달을 넘게 홀로 걸어 한국으로 돌아오셔서 또 다시 많은 고생을 하셨던 할머니 이야기는 이미 여러번 소개를 해드렸습니다.
그런 할머니가 평생을 모아오신 재산을 아름다운재단 설립 초기에 기부하여, 아동양육시설 퇴소 대학생들의 학비를 지원하는 ‘김군자할머니기금’을 조성을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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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부터 아름다운재단에서는 김군자 할머니를 재단의 가장 큰 어른으로 모시고 매년 명절과 생신에 방문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신입간사가 재단에 들어오면 김군자 할머니가 계신 <나눔의 집>을 방문하여 인사를 드리는 것이 하나의 전통이 되었는데, 지난 추석에도 올해 들어온 신입간사들과 함께 김군자 할머니를 방문했습니다.
이번 추석에는 어느 때보다 많은 7명의 신입간사가 함께 <나눔의 집>에 방문을 했습니다. 이전에 들어왔으니 지난 5월 김군자 할머니 생신에 할머니가 부조 제막식 관계로 재단에 방문을 하셔서 미처 <나눔의 집>에 찾아뵙지 못했던 간사들이 이번에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김군자 할머니는 의외로 수줍음을 잘 타십니다. 그래서 처음 보는 사람들은 좀 어려워 하시기도 하는데요, 그래서 기존에 김군자 할머니가 잘 아는 간사 2명이 7명의 신입간사와 함께 지난 추석 전인 9월 16일 오후에 김군자 할머니를 방문하기 위해 <나눔의 집>엘 다녀왔습니다.
아름다운재단에서 추석 등 명절에 <나눔의 집>을 방문할 때는 항상 할머니들이 드실 수 있도록 사과와 배 같은 과일과 선물을 들고 가는데요, 이번에는 특별히 지난 5월 김군자 할머니가 재단에 방문하셨을 때의 사진을 예쁜 사진첩으로 정성껏 만들어 함께 가져갔습니다.
할머니가 계신 경기도 광주의 <나눔의 집>에 도착하니 할머니가 벌써 우리가 간다는 소식을 듣고 아침 일찍 방청소까지 하시고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준비해 간 사진첩을 보여드렸더니, 그 날이 다시 생각 나시는지 즐거워 하시면서 사진을 한장, 한장 넘겨 보십니다.
그리고 옹기종기 않아서 할머니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할머니는 젊어서 얼마나 많은 고생과 경험을 하셨는지, 방문할 때마다 새로운 이야기를 해주십니다. 이번에는 처음 고아가 되어 동생과 헤어졌을 때와 돌봐주는 부모님이 없던 상황에서 마음에 없던 시집을 갈 뻔한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연세가 많으신데도 얼마나 총기가 좋으신지, 오래 전 일도 세세한 것까지 기억하시는 할머니는 말솜씨도 좋으셔서 간사들이 모두 푹 빠져서 한참을 들었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보금자리 ‘나눔의 집’
할머니가 현재 거주하고 계신 <나눔의 집>은 경기도 광주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나눔의 집>은 1990년대에 들어 당시 생계조차 어려웠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보금자리를 만들어주자는 취지로 사회 각계와 온 국민들이 성금을 모아 만든 곳입니다. 1992년 10월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서 시작되어, 혜화동을 거쳐, 1995년 현재의 경기도 광주로 옮겼다고 합니다.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은 2013년 현재 피해 신고자수가 237명이고, 이 중 59명이 생존해 계시다고 합니다. <나눔의 집>에도 초기에 함께 생활하시던 할머니 중 여러분이 이미 고인이 되시어 현재에는 8명의 할머니가 함께 생활을 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나눔의 집>에는 일본군 ‘위안부’역사관이 있습니다.
아름다운재단 신입 간사들은 김군자 할머니 방문을 위해 <나눔의 집>에 가면 꼭 이 역사관을 들어가서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다양한 자료를 보고, 할머니들에 대해서 다시 한번 정확하게 알고 배우는 시간을 가집니다.
이번 방문에도 예외 없이 할머니께 인사하고 이야기를 나누다가 마침 월요일이라 휴관이었던 역사관을 <나눔의 집> 관계자 분의 양해를 받아 관람을 했습니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나눔의 집>에 처음 가서 역사관을 들어갔다 나온 사람들의 표정을 보면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조금은 다릅니다.
들어갈 때는 숙연함과 함께 살짝 호기심을 가지고 들어갔던 사람들이 역사관에 있는 ‘위안부’ 할머니들이 고생한 것에 대한 다양한 자료와 역사적 사실, 현재의 상황 등을 보고 나올 때는 그 숙연함이 더욱 커지고, 이보다 더욱 크게 분노와 안타까움을 얼굴에 담아 가지고 나오는 모습을 많이 보았습니다.
이번에 함께 방문한 신입 간사들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처음 방문한 한 간사는 ‘재단에 들어오지 않았으면 평생 모르고 살았을지도 몰랐을 곳과 사실들을 새삼스레 알게 됐다’는 간사도 있었고, ‘분노가 일어 너무 답답하다’는 간사도 있었습니다.
사실 아름다운재단 신입 간사들의 김군자 할머니 방문은 단순히 기부해주신 고마운 어르신의 방문에 그치지 않습니다.
이런 경험들을 통해 우리 역사와 사회로부터 소외받은 분들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하고, 또 그 분들조차도 실천하고 있는 나눔의 삶을 되돌아 보면서 우리가 하고 있고, 해야할 일에 대해서 다시 한번 곱씹어 보는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보고 느낀 것
그렇지만 항상 할머니를 방문할 때면 할머니를 뵙는 것만으로도 참 좋습니다. 이 날도 할머니의 이야기 보따리에 푹 빠졌다가 돌아오기 전 아쉬움에 함께 기념 촬영을 합니다. 함께 갔던 신입 간사들은 어떤 생각들을 했을까요? 모두에게 한마디씩 들어보았습니다.
“역사에 대한 엄청난 분노와 그에 비례하는 감사함을 느낍니다.” 함 간사
“아름다운재단 첫 기부로 함께 해주신 김군자 할머니, 할머니 계신 곳으로 찾아뵙게 되어서 참 좋았습니다.” 권 간사
“아픔을 갖고 계신 할머니의 나눔이 다른 사람의 아픔을 치유할 수 있는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박 간사 #1
“밝고 환하게 먼저 손을 내밀어 주시는 김군자 할머니께 애정과 존경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 간사
“말로만 듣던 나눔의 집을 처음 방문했습니다. 가슴이 먹먹했고 역사의 소중함을 깨달은 시간이었습니다.” 김 간사
“할머니의 차곡히 쌓인 슬픔과 사라지지 않은 분노가 아픈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이 나처럼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기부를 행하신 그 마음이 너무 커서 고개가 숙여지는 시간이었습니다.” 박 간사 #2
“‘나눔의 집에 한 번 가야되는데’ 라고 늘 마음의 빚처럼 갖고 있었는데 재단 덕분에 김군자 할머니도 알게 되고, 나눔의 집도 방문하게 되어 개인적으로 감사한 하루였습니다. 우리가 온다고 몸이 편치 않으신데도 방청소도 하시고 언제 올까 기다리셨다는 할머니. 할머니가 보여주신 나눔과 무욕의 정신에 비하면 우리의 방문은 얼마나 미미한가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작은 방문에 기뻐해주시는 할머니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고, 또 자주 찾아뵙고 인사드려야겠습니다.” 신 간사
앞으로도 아름다운재단 신입 및 기존 간사들의 김군자 할머니 방문은 쭈욱~! 계속됩니다.
할머니 항상 건강하세요!!
글 | 한태윤 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