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아름다운재단 모금팀에서 개인& 기업 기부 상담 업무를 하면서 느낀 점에 대해 ‘삶의 변화’ 측면에서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삶의 변화라고 하니 좀 거창한 것 같지만, 재단의 업무는 한 사람의 삶을 변화시키기에 충분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리 많거나 혹은 많지 않은 나이에 다양한 영역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많은 생각이 듭니다.
누구나 조직에 속해 있으면 그 세계가 전부인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그래도 아직은 이 분야에 그리 녹록하게 묻히지 않았기에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래도 주관적인 감정을 배제하기란 어렵겠죠.) 다양성과 유연성이 존재하는 아름다운재단의 모금팀 담당자로써 느낀 변화를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가장 큰 변화, “그럴 수도 있겠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이전에 펼쳤던 주장과 생각들이 그 당시에는 최선이었겠지만, 아집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름다운재단 모금팀에서 사람들을 만나며 느낀 가장 큰 변화는 바로 ‘유연성’입니다. 정치, 경제, 사회, 예술, 비영리 등 다양한 영역의 사람들을 기하 급수적으로 만나다보니 닫혀 있던 사고가 열렸습니다. ‘저 사람은 왜 저렇게 특이하지’ 라고 말하던 제가 ‘그럴 수도 있겠다’라고 말합니다.
각자 걸어온 길마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고 여기면서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바뀌었습니다. 지금 많이 가진 자가 항상 그러리란 법도 없고, 지금 없는 자가 계속 없으리라는 법도 경험하게 되었죠. 그래서 사람의 단면을 보고 쉽게 판단하지 않습니다.
위안부의 삶을 살아오신 할머니는 정말 힘겹게 받은 보상금 전액을 기부하셨습니다. 쉽게 만나기 어려운 기업의 대표분들과 한 테이블에서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기도 합니다. 텔레비전 속에서 보던 연예인이 내 앞에서 기부금을 내밀고, 지극히 수수한 옷차림의 그는 유명 기업의 창립 멤버였습니다.
물론 유명하고 대단하다 느껴지는 사람들만 기부에 참여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고개 돌려 내 주위에서 언제든 찾아볼 수 있는 기부자들의 숫자가 훨씬 많았습니다.
십 년 넘게 고시 준비를 해오다가 차린 사업이 잘 되어 기부를 하겠다고 찾아온 기부자, 사랑하는 아내가 죽어 자식들과 함께 아내의 뜻을 기리고 싶다고 찾아온 남편, 삶에서 유일하게 찾아오는 이벤트인 결혼과 돌기념 나눔을 위해 찾아온 부부, 꽉 채운 빨간 저금통을 환한 웃음과 함께 들고온 기부자 등. 마치 TV 밖 인간 극장을 보는 것 같습니다.
효율적 의사결정을 위해 ‘옳다 / 그르다’를 빠르게 판단해야 했었던 영리의 의사 결정 방식과 달리, 아름다운재단은 사고의 유연성을 심어주었습니다. 생각이 유연해지니 얼굴의 근육도 풀어지고 행동도 자유로워집니다. 마음 속 유연성이 밖으로도 옮겨져 나오나 봅니다.
주위와 관계없이 내가 행복하다 느끼면,
많은 사람들이 ‘그 사람은 이기적이다’라는 표현을 씁니다. 이기적이라는 말에는 다소 부정적인 느낌이 포함되어 있는 것 같은데, 저는 그 말을 부정적으로 보지 않습니다. 누구나 자기 만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봅니다. 태어난 배경과 살아온 길이 다르다보니 그건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상대방에게 ‘틀리다’,’다르다’라고 말하는 것은 어찌 보면 특정한 자기 기준에서만 상대방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승진해야 한다, 더 크고 좋은 집에 살아야 한다, 고급 차를 타야 한다’라는 것에 대한 구체적인 생각들은 자신만의 기준이기 때문에 타인에게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생각이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한 평도 안 되는 구두방 안에서 구두를 닦으면서도 남 탓하지 않고 즐거운 얼굴로 검은 손 때 묻으며 일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누군가 볼 때는 너무 힘겹게 살아가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굴하지 않고 스스로 행복하다 느끼면 그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자기가 행복하니 다른 사람들도 같이 행복해졌으면 하는 마음에 기부도 합니다. 그 사람은 더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 상황과 여건에 만족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기 시작하면서 발생하나 봅니다. 대기업 임원으로 일하면서 남 잘 되는 것 배 아파하고, 계속 우울하다 느껴지면 그 사람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모금팀에서 다양한 기부자들을 만나면서 우리가 잊고 사는, 혹은 항상 생각하는 ‘행복의 가치‘에 대해 자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돈을 많이 버는 것 VS 돈을 많이 쓰는 것
아름다운재단은 종군위안부 김군자 할머니로부터 1억의 기부금을 받았습니다. 이 돈 안에는 할머니 혼자 보내셨을 외롭고 한(恨) 맺힌 억겁의 시간이 모두 담겨져 있습니다.
모금팀에서 더 많은 기부금을 모으기 위해 제안을 하고 설득을 하면서도 ‘이 돈은 받아도 되나’ 싶을 때가 많습니다. 돈이 돈을 번다고 돈을 쉽게 번 사람들도 많겠지만, 돈을 버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런데 아름다운재단 모금팀에서 일하다 보니 돈을 많이 쓰는 것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됩니다. 더 자세히 말해 ‘돈을 잘 쓰는 것’, 이것도 참 어려운 일입니다.
로또를 통해 100억에 당첨되면 100억을 쓰기 위해 무엇부터 할까 생각해봤습니다. 좋은 집 사고, 차 사고, 맛있는 거 먹고, 해외 여행도 가고, 백화점 가서 비싼 옷 가격표 보지 않고 사고, 마사지/골프도 마음껏 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의 십시일반 모여진 기부금 100억을 사회를 이롭게 하는데 잘 쓰라하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해봤습니다.
“저소득 가정 학생들에게 장학금 천 만원씩 나눠줬는데,
그 아이들의 부모님이 술값으로 다 써버린다면?”
“팔순의 거동이 어려운 어르신께 병원비로 백 만원씩 나눠 드렸는데,
안 쓰고 끙끙 앓다가 돌아가신 체 발견된다면?”
“장애 아동들에게 천 만원씩 나눠줬는데,
그 아이들이 나쁜 사람들 꼬득임 넘어가서 휠체어 하나 못 바꾼다면?”
시중에 갑자기 들어온 유혹의 돈은 분명 독이 됩니다. 돈을 모으는 것도 참 힘들지만 모두가 이롭도록 잘 쓰는 것은 도대체 얼마나 힘든 일인가 생각해보게 됩니다. 그러니 고민하게 되고, 긍정적인 스트레스가 되도록 남을 위한 밝은 마음과 밝은 표정을 계속해서 유지해야 합니다. 기부자를 만나 보이지 않는 무형의 가치를 위해 상대방을 설득하는 일은 내적으로 강한 신념이 필요한 일입니다.
모금가의 초심
도움과나눔의 모금가 입문과정 교육을 들으러 갔을 때, 고액 기부 담당자의 조건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전략적 분석과 실행능력, 파트너십 능력이 요구되는 대중 모금에 비해 고액 모금은 좀 달랐습니다. 고액 기부 담당자의 자질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습니다.
1. 자존감이 높다
2. 사고가 유연하다
3. 경쾌하고 상냥하다
4. 사랑이 많다
5. 부자에 대한 거부감, 적개심이 없다
추상적인 개념이라 그렇다, 안 그렇다 말하는 것이 모호하지만, 일하며 만났던 고액 기부 담당자들의 자질을 포함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제품과 서비스가 아닌 무형의 가치를 설득하는 기술은 쉽게 평가하기도 어렵고, 마음먹은 것만큼 잘 해내기도 어렵습니다.
너무나 다양한 삶의 모습으로 살아온 기부자들, 서로 다른 이해 관계 속에서 서로의 의견을 설득해 가는 과정, 다양한 개인과 단체를 연결하는 역할로써 존재하는 아름다운재단. 생각했던 것보다 더 복잡하게 얽혀있지만… 그래도 모금팀에서 일하는 모금가로서 다잡았던 초심, ‘선한 의지, 긍정적인 자세, 사랑하는 마음’을 잃지 말아야지 되뇌입니다.
글 | 손영주 간사
멜로이
첫 줄부터 마지막 줄까지 정말 좋은 내용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