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3월 4일부터 열흘간 역대 최장 기간 산불로 기록된 울진 산불.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된 울진에서 크고 작은 피해를 본 30개 마을의 주민들. 잿더미 가운데서도 몸과 마음을 추스르며 일상으로 서서히 되돌아오고 있다. 아름다운재단과 협력하여 그간 울진에서 ‘2022 울진 산불 피해 이재민 긴급지원사업’을 진행한 에이팟코리아(A-PAD KOREA, 비영리사단법인 아시아태평양재난관리한국협회) 이동환 이사 겸 긴급구호팀 팀장, 성종원 운영기획팀장을 만났다.
이재민 가운데 고령의 어르신들 비율이 높아
“산불이 나고 이튿날 새벽에 울진으로 가서 지금까지 저희가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넉 달 지났는데요. 이재민 가운데 80대가 제일 많으십니다. 거동이 불편하신 분들이 이렇게 많은 적은 처음이었어요. 앞으로 지역에서 재난이 일어나면 비슷한 경우가 자주 있을 것 같습니다.” (이동환 이사)
산불이 진화된 후 3월 말, 대피소나 친척 집 등에서 지내던 울진의 이재민 가운데 일부가 조립식 주택(1.5룸 컨테이너 임시주거시설)으로 처음 이주하기 시작했다. 고령의 어르신들은 조립식 주택에 설치된 전자도어락이나 성원으로 받은 최신 가전을 어떻게 쓰는지 잘 알지 못해 에이팟코리아에서 도와드리기도 했다.
에이팟코리아에서는 아름다운재단의 ‘2022 울진 산불 피해 이재민 긴급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조립식 주택에 TV장을 넣었다. 조립식 주택 방바닥에 TV를 놓고 불편하게 시청하는 어르신들을 위해서이다. TV장과 더불어 좌식의자, 효자손도 마련했다. 일명 ‘아름다운재단 작은변화 세트’이다.
많이 만나고 많이 들으며, 무엇이 필요한지 고민하고 찾아낸다
여름 이불과 접시 또한 ‘아름다운재단 작은변화 세트’에 포함됐다. 이불과 접시는 이재민 가구를 포함해 270여 가구에 폭넓게 배분했다. 군청은 물론 이재민 어르신들과도 줄곧 소통하면서 물품 품목을 정했다. 많이 만나고 많이 이야기를 들었다. 여름 이불은 차렵이불세트인데, 견본을 보고 감촉이 보드라운지 꼼꼼히 확인하기도 하고, 접시는 디자인이 세련되고 단단하기로 유명한 제품을 골랐다. 기성품이긴 해도 물품 선정에 공을 들였다.
“사람 마음이 다 똑같거든요. ‘아름다운재단 작은변화 세트’는 긴급 구호가 끝나고 두 달여 시간이 지난 후에 지원해 드리는 거라서 정성을 많이 들일 수 있었어요. 아름다운재단의 기부자님 여러분 덕분에 어르신들께 좀 더 좋은 제품을 드릴 수 있어서 기쁘고 고맙습니다.” (이동환 이사)
코로나 감염재난 속에서 이재민들이 겪은 울진 산불. 기후변화로 인한 가뭄 탓에 대형 화재로 번진 이번 산불은 사회적인 재난이기도 하다. 한순간에 삶의 터전을 잃고 객지 생활로 지친 이재민들. 그리고 비록 자신은 피해를 입지 않았거나 덜 입었지만 피해주민의 아픔을 가까이서 지켜보면서 같이 아파하고 슬퍼하는 이웃 주민들. 모두가 조금이라도 편히 주무시면서 하루하루 살아갈 힘을 내시길 바라며 생기를 불어넣고 싶다.
“대피소에서는 며칠밖에 지내지 않는다고 여기고 편한 생활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못 합니다. 재난이 발생하고 며칠간의 기억이 이재민들에게는 가장 큰 잔상과 상처로 남습니다. 저는 임시대피소의 생활이 단 몇 시간이라도 편하고, 더 안락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발생할 재난에서 조금씩 문화를 바꿔나가고 싶습니다. 가령 두께 10㎝짜리 매트리스만 지원되어도 잠자리가 편해질 텐데, 이재민이 요구할 수도 공무원들이 지원할 수도 없는 상황입니다. 저희 같은 민간단체의 긴급구호 전문가들이 관찰하고, 사례를 만들고, 조금씩 바꿔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동환 이사)
마을 이장님들, 지역 청년들과 함께 배분한 ‘아름다운재단 작은변화 세트’
재난을 입은 이재민들에게 그때그때 무엇이 가장 필요한지 현장에서 당사자의 말 하나하나 소중히 귀담아듣는 동시에 전체의 회복을 위해서도 애쓰는 에이팟코리아. 그래서 ‘아름다운재단 작은변화 세트’ 물품을 조립식 주택 200세대에 넣는 작업은 더욱 특별했다. 자신의 용달차를 끌고 오신 마을 이장님들뿐만 아니라 지역에 사는 청년들 5명도 배분 작업에 함께 했기 때문이다. 에이팟코리아에서는 일부러 수소문해서 지역의 청년들을 찾았다.
“지역에서 군에 출퇴근하며 근무하는 청년이나 군입대를 두세 달 앞둔 시간 남은 청년들과 같이 조립식 주택에 물품을 넣었어요. 이 청년들이 읍내나 인근에 살긴 하는데 (직접적 피해가 없어서) 뉴스로만 산불 소식을 알고 실태를 잘 몰라요. 현장을 한 번 가서 본 거하고 안 본 거는 굉장히 다르거든요. 같은 지역의 젊은이들이 와서 왔다 갔다 하면서 도우니 저희도 흥이 나고, 무엇보다 어르신들께서도 힘을 내시더라고요.” (이동환 이사)
이장님들과 청년들에게 ‘2022 울진 산불 피해 이재민 긴급지원사업’ 예산 가운데 일부를 써서 인건비도 넉넉히 지급했다. 산불 직후부터 이리저리 뛰며 무척 고생하신 60~70대 이장님들, 그리고 자신들이 사는 지역의 어려움에 기꺼이 동참한 청년들을 북돋고자 함이다. 재난이 일어난 해당 지역에서 자생적인 회복력을 키워나가기를 바란다.
“일상 복귀 지원은 개개인은 물론, 지역공동체를 회복한다는 목표를 염두에 두고 해야 하거든요. 그래서 사람에 투자해야 하는 면도 있고요. 이런 게 어쩌면 사소해 보일 수도 있지만, 변화를 이뤄낼 지원이자 사회혁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사람을 생각해 (회복) 사례를 하나씩 만들어 나가는 거예요. 이런 것들이 켜켜이 쌓이면 다시 일어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동환 이사)
어느 날 갑자기 닥친 사회적 재난……
실상 이번 산불의 영향은 결코 작지 않다. 매일같이 우시며 소화불량을 호소하시던 어르신들은 이제야 겨우 현실을 받아들이시면서 “나, 지금 힘들다”고 털어놓기 시작하셨다. 느닷없이 닥친 크나큰 재난의 여파로 공동체의 회복은 예상보다 더디고 순조롭지만은 않다.
“대피했을 때도 코로나도 있고, 워낙 모이질 못했어요. 마을로 돌아오는 데에도 오래 걸렸고요. 주민들이 비슷한 입장이니까 서로 대화를 나누며 고립에서 벗어나야, 모여야 한시름 놓고 회복을 향할 수 있는 부분이 분명 있거든요. 하지만 감염재난도 있고 복합적 재난이라 사실 여의치 않았어요.” (이동환 이사)
집이 통째로 불타는 바람에 입던 옷과 신발 그대로 급하게 피난한 세대, 집이 타지는 않고 창고만 탔지만 막심한 손실을 본 세대. 집이 다 타지 않았거나 세입자라서 보상금이나 기부물품 배분이 적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세대. 또 생계를 꾸릴 수단을 잃은 이들도 있다. 전례가 없어 아직 보상금 책정 기준이 준비되지 못해 버섯을 키우던 원목이 다 타버렸는데도 발을 동동 구르는 송이버섯 농가. 벌통이 타버리는 바람에 일단 빚을 내서 원래 하던 양봉업을 이어가는 양봉 농가…….
산에서 지천으로 돋아나는 산나물을 캐서 시장에 내다 팔다가, 이제 살길이 막막한 할머님들도 계시다. 그런가 하면 관련 행정을 담당하느라 바쁜 군청 공무원들도 내색은 안 하지만 산불 피해를 입은 경우도 있다. 에이팟코리아 이동환 이사와 성종원 운영기획팀장이 전해준 다양한 상황을 들으니, 울진 주민들이 한꺼번에 받은 경제적·심리적 충격과 고통을 조금이나마 헤아려볼 수 있었다.
앞으로 더 한걸음, 일상 회복을 위하여
“바닷가 앞 굉장히 경치가 빼어난 집에 홀로 살고 계신 어느 할아버지가 계세요. 제가 ‘할아버님, 댁이 아주 좋은 곳에 있네요.’하고 말을 건네니까, 할아버지는 ‘너무도 힘들고 외롭다’라고 하시면서 재난 당시 본인의 마음속에 꼭꼭 담아두었던 얘기들을 그제야 꺼내시는 거예요. 제가 떠나려 하니까 음료수를 하나 더 꺼내오며 붙잡으시더라고요. ‘앉았다 가.’하시는데, 마음이 참 안타까웠습니다. 지금 저희는 주민 여러분께서 지속가능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도움을 드리는 단계인데요. 그래서 요즘 가장 중요하게는 ‘아직도 어르신들을 신경 쓰고 있어요.’라고 이런 마음을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성종원 운영기획팀장)
아름다운재단과 협력사업으로 ‘아름다운재단 작은변화 세트’ 배분이 끝난 이후에도 에이팟코리아는 울진에 머무르고 있다. 피해주민 한 사람 한 사람의 회복을 목표로 한결같이 활동한다. 지난 6월 6~8일까지 에이팟코리아에서는 ‘찾아가는 사진관. 다시, 봄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불이 나면서 가족사진, 자신의 사진을 몽땅 잃고 만 이재민들의 마을회관을 찾아가 근사한 프로필 사진을 찍어주는 행사이다. 이 행사를 계기로 그동안 데면데면하던 이웃끼리 대화의 물꼬를 텄다고 한다. 그전에 집이 불탔는지 아닌지를 두고 거리감을 느껴서 별로 말을 나누지 않던 이웃 사이가 변하기 시작했다.
한편 최근에 도무지 집 밖으로 나오질 않고, 한사코 사진찍기도 마다하신 어르신이 계셨는데, 막상 댁에 찾아가서 사진을 찍어드리니 모델 같은 포스를 풍기며 포즈를 취하셨다. 출력해서 액자에 담아서 드린 사진을 보시고는 환한 표정을 지으셨다고 한다.
이웃 간 연결을 복구하기 위한 지혜
요즘 에이팟코리아는 마을 주민들이 같이하는 신체이완 스트레칭으로 생활의 활력을 되찾을 프로그램을 구상 중이다. 앞으로도 공동체 회복을 위해 지혜를 열심히 짜내고 실행해 나가려 한다. “상황이 나아지지 않을 것 같을 때면 할 수 있겠다고 의지가 더 강해진다”라면서 “누군가에게 힘이 될 수 있는 현장에서 보람과 원동력을 느낀다”라고 힘주어 말하는 이동환 이사와 성종원 운영기획팀장. 멋지고 든든하다.
화마가 휩쓸고 간 상처에서 빠져나오기가 쉽지는 않지만, 서로의 아픔을 위로하고 찬찬히 살펴보고 차근차근 노력하다 보면 괜찮아질 것이다. 에이팟코리아의 이동환 이사와 성종원 운영기획팀장은 이토록 값진 희망을 안고 주민들 곁에 있다.
“‘긴급 사태 후 몇 달 지나면 재난 끝이다, 회복 다 됐다.’와 같은 관념을 저희는 바꾸고 싶어요. 일상을 살아가야 하는 피해주민의 입장으로, 좀 더 길고 넓은 시야로 재난을 당한 지역을 다시 일구고 싶습니다. 오는 10월쯤에는 울진 해변가와 마을을 주민들과 외부 사람들, 젊은이들이 함께 돌아보며 걷는 ‘걷기 부흥대회’를 해볼까 계획 중입니다. (산불 피해로) 민둥산이 보일 터이니 좀 흉한 풍경을 볼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면 일 년이 지나든 이 년이 지나든 계속 주민들은 여전히 과거의 재난 한복판에서 살아갈 수도 있거든요. 사람이 중요하고, 또 사람이 움직이는 게 중요합니다. 사람을 연결하여 재난 현장에서 좋은 사례를 만들어내고 싶습니다. 결국 모든 건 사람이 하는 거니까요.” (이동환 이사)
글 | 조승미 작가
사진 | 임다윤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