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재단 ‘변화의시나리오 프로젝트 지원사업’은 공익활동을 하고자 하는 시민모임, 풀뿌리단체, 시민사회단체를 지원합니다. 특히 성패를 넘어 시범적이고 도전적인 프로젝트를 지원함으로써 공익활동의 다양성 확대를 꾀합니다. ‘2022 변화의시나리오 프로젝트 지원사업’에도 다양한 프로젝트들이 진행되고 있는데요. 고원예산공작소는 예산감시를 하는 시민모임으로 진안군의 예산을 감시하고 분석하며, 이를 바탕으로 대중적 이해를 돕는 흥미 있고 의미 있는 정보를 전달할 수 있도록 시각자료를 디자인하여 배포하고자 합니다. 변화의시나리오 프로젝트 활동을 ‘사업’으로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 활동가가 추천하는 도서나 영화, 드라마, 다큐멘터리를 통해 더 다양한 관점으로 이야기해 보았습니다. 고원예산공작소 임준연 활동가를 만났습니다.

 

사는 게 뭘까? 행복한 게 뭘까? 이런 생각을 종종 해요. 편안하고 안락하고 행복감을 느끼면서 사는 게 최선의 삶이라고 생각하는데, 최선의 삶을 만들기 위해 내가 바라는 건 뭔가 하는 생각이요.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내가 발 딛고 사는 지역에 발생한 위기 상황을 공동체적 혜안으로 해결하는데 역할을 하고 싶은 마음이 크더라고요. 공동체의 힘은 사람과 사람 간의 느슨한 연결을 통해 발휘되는데, 진안에서 어떻게 가능하게 할지가 고민입니다. 굳이 모든 인프라가 갖춰진 서울에서가 아니어도, 한적하고 평화롭고 공기 좋고 물 좋은 시골에서 특히 지역에서 소수자인 청소년들이, 하고 싶은 활동에 크게 제약받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에요. 설사 물리적으로 완벽하게 갖춰지지는 못한다고 하더라도 응원하고 애쓰는 어른들이, 이웃들이, 서로가 있다는 것을 느끼면서 생활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지역에 활기를 더하는데, 집도 주고 일자리도 줄게 식으로 외부 사람을 유입하는 것도 방법이지만, 우선은 지금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만족스러웠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그런 방식도 힘을 얻을 수 있는 거 아닐까요?

드라마를 보면서도 그런 생각을 했어요. 만족이라는 게 뭘까. 자기 욕구가 크면 큰 대로 그렇지 않으면 않은 대로 만족하지 못하고 계속 쫓겨가는 사람들이, 어쩌면 일반적이라고 생각하는 길에서 조금 벗어나 생각하면 본인만의 만족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드라마에는 그런데도 꾸역꾸역 서울로 출퇴근하는 경기도민의 애환을 담았지만, 저는 반대로 경쟁 중심의 삶이 빡빡해서 서울을 벗어난 케이스거든요. 학교 다니면서는 성적으로, 취직해서는 영업실적으로.. 저에게는 귀촌이 해방이었어요.

물 아래 생태계를 수면위로 띄우는 작업

공익재정연구소 이상석 씨와 이후연구소 하승우 씨의 대담을 담은 책을 우연히 접했는데 몰입해서 읽었어요. 이상석 씨는 예산운동을 30여 년 동안 꾸준히 해 왔는데 지형에 변화를 일으켰더라고요. 잘못이 드러나도 사과도 하지 않는데, 지자체장이 사과든 퇴진이든 하게 만들더라고요. 멋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강물은 유유히 흐르지만, 평온하게 흐르는 강물 아래로 물고기들의 생태계가 있듯이, 보이지 않는 물 아래 연결된 모르던 세상이 있고 그 안에서는 ‘이런 것쯤이야’ 로 치부되는 관행이 흐르고 있다고 느끼는 순간이 많았어요. 물 밖으로 끄집어내고 투명하게 만드는 작업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야 미래가 있겠다고.. 그걸 꼭 제가 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제가 하면 잘 할 것 같았습니다.

예산서를 처음 접하면 보는 순간 그런 생각이 들어요. 아, 이건 전문 영역이구나! 숫자가 빼곡히 쓰여있고, 잘 쓰지 않는 행정용어와 단위사업들이 적혀있어요. 전체가 통합된 것도, 세입, 세출이 구분되고, 지출 카테고리로 다시 나눠진 것도 있고요. 시작이 좀 어려웠는데 예산계획 발표 때랑 추가경정 때랑 해서 일 년에 3~4차례의 예산서와, 내부문서 정보공개 청구해서 2년 정도를 봤더니 조금 수월해졌어요. 서당 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데 나는 사람이니까(웃음) 2년 정도 되니 읊겠더라고요. 잘 보이니까 속도가 붙고 속도가 붙으니까 공무원들에게 질문이 가능하게 되더라고요. 지금은 큰 줄기는 파악한 상태에서 흐름을 읽을 수 있는 정도는 되었습니다. 예산서를 보는데 예전만큼의 에너지나 품이 들지 않아요. 문제가 발견되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알겠고요.

활동을 체계화하는데는 작년 아름다운재단 공모사업의 힘이 컸어요. 그동안은 혼자 했지만, 지원사업을 받게 되는 바람에 알음알음 함께 하자고 얘기했던 분들이 실제로 모여서 6개월 동안 거의 매주 만나고 2~3시간씩 예산서를 봤죠. 예산서를 분석한 책도 만들게 되고요. 쉽게 읽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일부러 그림도 많이 넣고 하면서 신경을 썼어요. 결과가 나오니 주변에서도 관심을 두더라고요. ‘예산 없다고 하더니 이렇게 많았다니!’ 놀라시는 분도 있고, 이제까지 시민단체에서 받아 본 책 중에 제일 흥미롭고 가치있는 책이라는 칭찬도 들었습니다. 기분은 좋지만 한 번 칭찬받자고 한 일은 아니어서 어떻게 지속적이고 효과적으로 지자체 예산에 관심을 갖게 할 수 있을까가 고민입니다. 우리 지자체가 어떤 일에 어느 정도의 예산을 쓰는지 제대로 알고, 돌아가는 일에 조금이나마 관심을 두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에요. 머지않은 미래에는 ‘아, 이게 정말 중요하고 필요한 일이었구나’가 전달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꾸준할 수 있는 힘, 그리고 해방의 시작

얼마 전에 비슷한 질문을 받았는데, 완전히 소진하지 않고 설렁설렁해서 그런 것 같다고 답했습니다. 정말 그런 것 같아요. 꾸준히, 집요하게, 그렇지만 지치지 않을 정도로 조급해하지 않고 천천히요. 또 하나는 아무래도 작은 지역이고 사람이 많지않다 보니 정치적 효능감이 있어요. 정치인이 아님에도 뭔가 발언하고 행동했을 때 비교적 파급효과가 큰데 그것도 꾸준히 예산을 들여다볼 수 있는 동기가 됩니다. 제대로 보고 제대로 지적하고, 제대로 바꾸고 싶은 마음이랄까요.

진안은 작은 지역이라 한 다리, 아니 반 다리만 걸쳐도 지인들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그게 가장 어려운 부분 중에 하나거든요. 워낙에 관계도 끈끈하고 정치 지형도 뚜렷하잖아요. 오롯이 30년 넘게 한 당이 독식하는 양상이라 정치 변화가 일어나기 힘들기 때문에 예산 감시를 한다는 건 갈등이 생길 여지가 크죠. ‘니가 뭔데 이걸 들여다보려고 하냐’ 이런 식으로 대해지기도 쉽고요. 그러다보니 더더욱 예산감시에 참여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적어요. 손대면 불편해질 관계들이 있으니까요. 그렇게 생각하면 혼자 일하는 걸 어려워하지 않는 게 다행인 지점이기도 하죠.

그렇지만 그 실험은 해 보고 싶어요. 후원만으로 예산 활동이 가능하게 하는 것. 직접 활동하는 게 부담스럽다면 그건 내가 기꺼이 하겠다. 다만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재정적으로 지원해달라. 그러면 저도 훨씬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물리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요. 안정적으로 활동비가 지원되고, 예산 활동을 관심있게 지켜보고 응원하는 백그라운드도 생기는 거잖아요.

오롯이 재정적인 부분에 대한 염려 없이 생활 임금 정도를 받고 충실하게 예산 활동만 할 수 있으면 그게 일차적인 해방이지 않을까요. 완벽하게는 아니더라도 저는 그게 출발일거라고, 해방의 길로 한층 가까워지는 거라는 생각합니다.

우직한 한 걸음으로 채우는 일상

<나의 해방일지>에서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던 장면 기억하세요? 일과를 다 마치고, 집을 정돈하고, 저녁밥 앉히고 잠깐 누워서 잠자듯이 돌아가셨잖아요. 죽음도 일상의 일부인 것처럼. 어떤 거창한 걸 하기보다 지금 해야 할 일을 하고 해야 할 말을 하면서, 현재에 충실하고 싶다고 생각해요. 물론 매 순간의 작은 성취에 힘을 얻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그다음, 또 그다음을 생각하면서 우직하게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딛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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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ㅣ박혜윤
귀 기울여 듣고 애정을 담아 질문하고 싶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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