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안전을 위해 한자리에 모인 사람들, 정체가 무엇일까요?
“초등학교 1, 2학년 같은 경우는 아이들이 연필을 입에 넣거나 지우개를 가지고 놀다가 입에 갖다 대는 일이 허다하거든요. 심지어는 책상을 핥는 일도 있어요. 아이들이 조심한다고 해서 될 일은 아니잖아요. 어른들이 챙겨서 보다 안전한 교구들을 준비해줘야 되는 거죠.”
서울정릉초등학교 교사인 김한민 씨의 이야기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학기 초마다 아이들의 학용품에서 유해물질이 발견되었다는 소식, 자주 들어보셨을 텐데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학교 관련 용품은 안전할 것이라 생각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학교 구성원들이 믿고 쓸 수 있는 안전한 학교 용품을 생산하고, 사용할 수 있으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들어보기 위해 11월 15일, 제3회 화학안전주간에서 진행된 ‘학교 안전을 위한 ECO교실 간담회’에 다녀왔어요. 정부, 시민단체, 학부모, 교사, 제조사 대표가 한자리에 모여서인지 더 나은 변화를 그리기 위한 이야기를 자세히 들어볼 수 있었어요.
지금 우리 학교의 화학안전은?
개선안을 논하기에 앞서 학교 현실이 어떤지 자세히 들어봤습니다. 아름다운재단과 일과건강은 ‘학생도 교사도 행복한 ECO-교실 만들기 사업’을 통해 학교의 유해물질 현황에 대해 조사한바 있어요.
실무자인 아름다운재단 신선영 간사에 따르면 초등학교 15개 학급에서 458개 제품을 조사한 결과 40%이상의 제품에서 안전 기준을 초과하는 납이 검출되었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출입문, 시트지, 바닥, 창호, 사물함 테두리, 손끼임방지대 등에서도 납과 카드뮴, 프탈레이트 등이 검출되었습니다. 납은 생식 및 신경독성물질, 프탈레이트는 내분비계 교란물질로 아이들이 노출되지 않아야 합니다. 아이들과 교사들이 수시로 이용하는 교구에서 이러한 독성 물질이 나왔다는 소식에 적잖이 충격을 받았어요. 학교가 생각한 것만큼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요.
안전한 제품으로 교체하면 건강한 교실이 됩니다.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최인자 분석팀장은 ‘학생도 교사도 행복한 ECO-교실 만들기 사업’의 결과를 통해 교실에서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소개했어요. 유해물질이 검출된 제품들은 환경산업기술원의 환경표지인증제품 중 PVC 재질과 프탈레이트을 사용하지 않은 제품을 추천받아 교체했고, 인증기준이 없는 제품(칠판, 게시판, 블라인드)은 연구기관 의뢰를 통해 검증해 교체했습니다.
교체 이후 교실 환경은 어떻게 달라졌을까요? 실내 먼지를 추출해 알아보니 4개 학급의 납 검출량이 53% 감소했어요. 제품 교체를 통해 환경 개선의 효과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아름다운재단과 일과건강, 노동환경건강연구소는 사업을 수행하며 환경표지인증 제품 확대가 필요하다고 짚었습니다. 환경표지인증제품이 없는 교구들이 많다보니 사료를 직접 체취해 조사하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이죠. 믿고 쓸 수 있는 제품들이 있다면 사용 또한 확산될 것이란 지적이었습니다.
어른인 우리들이 해야 할 것은 바로 곁에서 지켜보는 일
“아름다운재단 신선영 간사,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최인자 분석팀장의 발표 내용이 현행 초등학교와 중학교 사회교과서에 수록되어 있어요. 어린이, 청소년들이 안전하고 건강한 환경에서 공부하고 싶다는 내용인데요.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변화의 한 가운데에서 열린 세션이니까요.” 서울송중초등학교 배성호 교사
조용히 내쉬었던 한숨이 쏙 들어갔어요. 물리적 안전에만 주목했던 과거를 지나 이제는 화학안전을 위한 변화를 만들어가고 있으니까요. 서울시를 비롯한 광주, 세종, 전라남도 교육청에서도 안전한 학교를 만들기 위해 ‘학교 유해물질 예방 및 안전 관리’ 조례를 제정하기도 했습니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어린이날 100주년을 맞아 초등학교 교육환경 화학안전 현황 확인과 개선 사례를 만들어 준 민간의 노력에 감사하다.”며 “조례 제정 이후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있으며 오늘 나온 내용도 반영하여 더 안전한 교육환경을 만드는데 보조를 맞추겠다.”는 인상깊은 축사를 남기기도 했어요. 이어 자리에 참석한 관계자들도 한마음 한뜻으로 필요한 것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칠판을 생산하는 기업인 페트라의 이연승 본부장, 손끼임 방지대를 제조하는 베스트포유 백대식 대표이사의 이야기로 포문을 열었는데요. 페트라는 ‘학생도 교사도 행복한 ECO-교실 만들기 사업’을 함께 한 기업이기도 합니다.
“개선보다는 개혁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조금씩 개선하는 것은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아요. 조례와 같은 법률적인 것들도 갖춰졌고, 시민단체와 선생님들의 교육이 이뤄지고 있으니 이제는 학부모님들이 모니터링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기업이 학부모님들을 무서워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희도 친환경 제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페트라 이연승 본부장
학부모이자, 환경표지인증 실무를 맡고 있는 환경산업기술원 녹색전환지원실 방혜원 실장 역시 “환경표지인증 제품이 확대되기 위해서는 사용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져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환경표지인증 제품 확대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있지만 학교에서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많지 않으면, 또 기업들이 제품 인증을 받지 않으면 기준이 폐지될 수 있습니다. 많이 사용해주시면 좋겠습니다. 학교 유해물질 안전관리 조례에서 친환경 제품 공급할 수 있는 ‘안전한학교용품지원센터’ 설립을 규정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했는데요. 저희도 센터와 연계해서 인증 제품이 많이 쓰일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지금의 변화에서 안주하지 않고 나아가야 해요.”
학부모이자, 학교 안전 관련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정치하는엄마들 김숙영 활동가는 중고등학교의 환경 파악도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초등학교 유해물질 현황을 파악하고 개선사례가 만들어진 것이 기쁜 일이지만 중, 고등학교 현황도 파악하고 개선해주시길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과학실 내에 있는 환기시설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화학물질들이 잘 보관되고 있는지 살펴보고 바꿔가면 좋겠어요.”
학교환경 연구를 진행한 한국자원경제연구소 송민경 대표는 특성화고의 현실을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네일아트나 미용을 공부하는 학급은 전문가용 제품을 쓰고 있어서 아이들이 안전한 상황인지 생각하게 돼요. 학교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만큼 유해물질로부터 어떤 방어막이 필요한지 고민해서 조례에도 반영될 수 있도록 고민해보려 합니다. 실제로 학교에서 조례로 법적인 뒷받침이 되었을 때 사각지대도 조금 더 해소될 수 있거든요. 속도를 내는 계기가 될 수 있고요.”
노동환경건강연구소 김신범 부소장은 아이들과 직접 만나 유해물질 관련 강의를 하기도 했습니다. 늘 아이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했지만 오늘의 자리가 있어 이젠 다른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아이들이 나쁜 제품들을 찾아낸 다음에 함께 바꾸는 경험을 한다면 우리 사회가 나아질 거라 믿지 않을까요. 또 사회를 바꿀 수 있는 아이들로 성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의구심을 주지 않고, 변할 수 있다고, 더 좋아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태도를 가르칠 수 있는 학교를 만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간담회에 참석한 참가자 모두의 공통적인 의견이 있었어요. 함께 모여서 무엇이든 해보자는 거였죠. 각자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움직인다면 안전하고 건강한 학교는 더 빨리 우리 곁으로 찾아올 거란 확신이 듭니다. 함께 목소리 내고, 바꿔보아요!
사진: 임다윤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