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끈을 놓지 않을래요”

• 2008년 5월30일 1,600g으로 태어난 권위 엄마의 이야기 •

하늘이 주신 선물

어쩌면 그건 이미 정해진 인연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남편을 만날 당시 저는 중국 청도에 있었습니다. 남편은 2003년부터 중국 청도에서 김치공장을, 저는 같은 지역에서 일식집을 경영하고 있었던 거죠. 남편은 부인과 사별 후 사내 아이 둘을 기르면서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저 역시 남편과 이혼 후 아들 하나와 함께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지금의 남편을 만나 2006년 재혼을 했답니다.

참 단란한 가정이었습니다. 결혼과 함께 아들들이 셋으로 늘어났으니 얼마나 요란했겠어요. 그러던 중 더욱 기쁜 소식을 접하게 됐습니다. 제가 임신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근데 정말 놀라운 것은 제가 쌍둥이를 임신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처음 쌍둥이 임신 소식을 듣고 기쁜 마음과 함께 걱정이 많이 됐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 말아야 할 생각도 했었습니다. 낙태를 고려했던 거죠. 하지만 저희 부부는 하늘이 주신 커다란 선물이라 여기고 출산을 결심했습니다. 그러던 중 사건이 생겼습니다. 남편이 회사일로 한국에 출장을 갔는데 중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2008년 4월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임신 중인 제가 한국행 비행기에 올라타야만 했습니다. 임신 중이긴 했지만 건강에 큰 문제가 없었기에 괜찮을 것이라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사흘만에 다시 중국으로 돌아온 제 몸에 이상이 생겼습니다. 몸이 많이 붓기도 하고 임신중독증과 비슷한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하는 거였습니다. 정말 큰 사건이 생긴 건 그로부터 한 달 쯤 뒤였습니다.

2008년 5월30일 새벽, 갑자기 새벽에 진통이 시작됐습니다. 급작스러운 진통과 함께 양수도 터지고 말았습니다. 임신 31주였습니다. 병원에 후송돼 진료를 받던 중 태아가 위험하다면서 지연제를 맞고 출산을 늦춰야 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각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첫째 아이와 둘째 아이를 13분 간격으로 자연분만 출산 하게 됐습니다. 큰아이가 1.6kg, 둘째아이가 1.4kg. 정말 작았습니다. 아이들의 생명은 모두 위험했고 급히 인큐베이터가 있는 청도시립아동병원으로 긴급 후송됐습니다.

두 아이는 그 작은 몸에 인공호흡기를 달고 폐확장제 주사도 맞고 할 수 있는 치료를 다 하고 있었습니다. 차마 눈뜨고는 볼 수 없을 만큼 가련한 두 아이를 인큐베이터 안에 덩그러니 남겨놓은 제 마음은 정말 찢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미안함과 안타까움으로 단 한순간도 마음을 놓을 수 없었습니다. 인큐베이터 안에 누워있는 두 아이들을 보면서 저는 다짐하고 또 다짐했습니다. 이 다음에 퇴원을 하게 되면 내 목숨이라도 아끼지 않고 최선을 다해 사랑해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새로운 시련

그렇게 2주가 흘렀습니다. 둘째 아이가 인공호흡기를 뗐습니다. 스스로 호흡을 하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둘째에 비해 첫째는 상태가 좋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스스로 호흡할 수 없었고 인공호흡기에 의존해야 했습니다. 20일이 흐르고 드디어 첫째 아이도 자가 호흡이 가능해졌습니다. 퇴원을 앞두고 아이들은 여러 가지 검사를 받았습니다. 이른둥이와 관련된 각종 검사였습니다. 둘째아이는 무척이나 건강했습니다. 모두 정상소견이었던 겁니다. 그런데 그 와중에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어야 했습니다. 첫째의 뇌실에 출혈이 보인다는 거였습니다. 저는 의사에게서 그 소식을 듣는 순간 병원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하늘이 노래진다는 게 그런 말인 듯 했습니다.

남편의 부축으로 일어서서 정신을 차렸습니다. 눈물이 앞을 가렸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울고만 있을 때가 아니었습니다. 앞으로 이 아이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이 되었습니다. 아이들이 자라서 몸무게가 2kg이 되던 때 드디어 퇴원을 했습니다. 둘째 아이는 여러 퇴원검사에서도 모두 정상이라는 소견이었지만, 첫째는 큰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으라고 했습니다.

둘째의 정상소견 소식에 기쁨을 감출 수가 없었지만, 첫째의 출혈 흔적 때문에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저희 부부는 상의 끝에 중국 보다는 한국에 가서 보다 세밀한 검사를 받아 보는 것이 낫겠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첫째와 함께 한국에 도착했습니다. 아주대학교 병원에서 각종 필요한 검사를 받았습니다. 담당의사는 출혈 흔적은 대게 70퍼센트 정도의 환자들에게서는 자연적으로 흡수되어 별 문제가 되지 않고 일부 약 30퍼센트 정도의 환자들에게서 약간의 장애가 나타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4개월 후에 다시 검사를 받아보라고 했습니다. 저희는 염려 했던 것보다 희망적인 소견이라 기쁜 마음과 희망을 안고 중국으로 되돌아갔습니다.

그러다 남편의 회사에 재정적인 문제가 생겼습니다. 더 이상 중국에서 사업을 이어가기 어려워졌고 저희는 한국으로 귀국하기로 결정했습니다. 2008년 9월이었습니다. 저희는 남편의 고향 집에 새로운 둥지를 틀고 한국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남편은 시골에서 새로운 직장도 구했고 넉넉하진 않았지만 열심히 생활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큰 아이에게서 이상한 증세가 나타났습니다. 왼쪽 팔과 왼쪽 다리가 순간적으로 오그라들었다 펴지고 하기를 몇 차례 하는 것 이었습니다.

그 증상을 먼저 발견한 것은 고등학생인 큰 아들이었습니다. 다음 날 놀이방에서 그런 일이 다시 있었고 급히 전북대학 병원 응급실을 찾았습니다. 응급조치를 취한 후 입원을 하여 정밀 검사를 받았습니다. 각종 검사결과 뇌실주위 백질 연화증과 간질이었습니다. 폐렴과 천식 또한 동반 되었습니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꿈과 희망은 산산이 부서지고 절망만이 저를 엄습했습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지도 알 수 없었습니다. 머릿속은 텅 빈 백지가 돼 버렸습니다. 삶의 끈마저 놓아버리고 싶었습니다.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이 오는 것인지, 왜 하필이면 나여야 하는지. 끝없는 절망과 원망만이 가슴에 가득 차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이의 얼굴을 보면 희망의 끈을 놓아 버릴 수만은 없었습니다. 이 아이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 이 아이에게 약속 했던 것처럼 이 목숨을 대신 해서라도 이 아이를 위해 무언가를 하겠다고 결심을 하였습니다.

다시 한 번 희망을 꿈꾸며

하루에 한 두 차례씩 지속되는 간질을 치료 하는 것이 급선무였습니다. 하지만 간질은 쉽게 멈추질 않았습니다. 아이가 간질 때문에 고통스러워할 때 저는 갈기갈기 찢어지는 아픔으로 아이를 지켜봐야만 했습니다. 그 순간 제가 할 수 있는 것 이라고는 고작 아이를 품에 안고 팔과 다리를 마사지밖에 해줄 수 없었습니다. 희망을 버리지 말자고 끝없이 다짐했지만, 순간순간 절망이 밀려왔습니다. 전 그런 제 자신이 싫었습니다. 자식이 이렇게 병마와 싸우고 있는 순간에도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 너무나 싫었습니다. 죽고만 싶었습니다.

집안 형편도 점점 어려워지고 있었습니다. 남편은 집에 있는 아이들 때문에 직장에도 더 이상 다닐 수 가 없게 되었고, 그로인해 가정 형편은 극도로 어려워졌습니다. 병원비가 없어 치료를 하지 못할 형편까지 되고 말았습니다. 그때 한줄기 희망을 만나게 됐습니다. 병원 사회복지사로부터 ‘다솜이작은숨결살리기’ 지원사업 안내를 듣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재단의 도움으로 치료비를 지원받고 우리 아이는 지금 간질은 멈춘 상태입니다.

그렇지만 폐렴과 천식으로 여러 차례 위험한 고비를 넘기고 있습니다. 또한 뇌병변장애로 인해 목 가누기도 되질 않습니다. 하지만 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습니다. 희망을 놓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놓고 싶지도 않습니다.

이 아이를 위해 사랑으로 최선을 다한다면 꼭 좋은 성과가 있을 것으로 굳게 믿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비록 누워만 있지만 언젠가는 일어서서 휠체어라도 탈 수 있는 그날이 반드시 오지 않을까요. 그날을 위해 오늘 열심히 준비 하고 있습니다. 재활 치료도 열심히 받고 있습니다.

작년부터는 이런 도움의 만 분의 일이라도 갚고 싶어서 매월 만 원씩 아름다운 재단에 기부도 하고 있습니다. 작은 돈 이지만 제가 받은 혜택을 나누고 싶어서입니다. 저희같이 어려운 형편으로 인해 제 때에 치료 받지 못하는 이른둥이가 없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작은 실천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제 곁에서 이른둥이 쌍둥이 중에 아프지 않은 작은 아이 권희가 같이 놀아주지 않는다고 투정을 부리네요. 저에게 힘이 되고 용기가 되고 희망인 우리 권희와 놀아줘야 할 것 같아요. 이만 맺을까 합니다. 모두 힘내시길 바랍니다.

 

– 다솜이 작은 숨결 살리기 이른둥이 수기집 2010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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