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솜이작은숨결살리기> 전문위원 김기수 교수

생명의 권리, 그 아름다운 원칙

우리의 꿈들은 원칙을 먹고 산다. 많이 배웠건, 안 배웠건, 못 배웠건 간에 제일 쉬운 게 원칙대로 사는 거라는 의미다. 그것만이 수 갈래로 파생된 입장을 하나로 수렴하며, 지난한 일상을 다독일 수 있다. 거기에 열정이 스미면 그것이 ‘원더풀’이고 ‘퍼펙트’이다. 이 거대한 잡탕 속 한 점일 뿐인 인생에서 원칙과 열정만 제대로 꽂으면 되는 거다. 그런 후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리며 제 길을 걸으면 그것이 복된 삶이다. 때론 고리타분하고 대개 실천하기 어려운 이 간단명료 튼실한 삶의 주인공이 바로 ‘다솜이 작은 숨결 살리기’의 전문위원 김기수 교수(울산대학교 의과대학 김기수 학장)다.
 

ⓒ 아름다운재단

“왜 이 길을 선택했느냐, 간단합니다. 76년에 서울대학교 의대에서 공부를 시작한 것도 89년에 아산병원 소아과로 온 것도 모두 삶의 원칙에 가장 맞닿아 있기 때문이에요. 그 길 위에서 많은 신생아와 만났고요. 나름의 원칙과 그에 따른 열정이 제게 ‘지금’을 주었습니다.”

솔직히 처음엔 선천성 심장병에 관심이 있어 소아심장과를 선택하려고 했다. 들숨과 날숨이 부자연스런 아이들에게 자연스런 삶을 선사하고 싶었다. 한데 운명은 그를 신생아에게로 이끌었다. 이제 막 세상에 태어나 ‘생명’ 그 자체로서 존재하는 신생아들. 그들이 벌이는 죽음과의 고단한 싸움을 지지하고 함께하기 위해 시작된 여정이 벌써 23년째다. 가장 기본적인 것을 박탈당했거나, 남들은 거저 얻는 것을 애써 부여잡아야 하는 이들에게 힘이 되고자 시작한 길 위의 날들. 어떤 상태, 무슨 상황이든지 간에 태어났다는 그 자체로 축복받고 이후 펼쳐질 삶을 존중받을 권리를 원칙 삼은 김 교수라서 가능한 시간이었다.
 
불모지였던 신생아 분야를 개척하다 “그때만 해도 신생아 분야는 불모지였어요. 그래서 미국에서 오랫동안 신생아를 진료했던 피수영 선생님을 모시려 했는데 무산되고 고생 좀 했습니다. 신생아중환자실에 미국에서 들여온 좋은 장비와 시설을 갖추긴 했는데 이를 운용할 인력이 부족했죠. 서울 시내에 있는 모든 작은 아이들이 매일 들어와선 일주일 만에 다 죽는데 정말… 고민이 많았습니다.”
이른둥이에 대한 개념이 없던 시절, 김 교수는 이틀에 한 번씩 당직을 서면서 신생아를 지키려고 고군분투했다. 임상을 더 폭넓게 공부하기 위해 1991년부터 1년 6개월 동안은 미국연수도 다녀왔다. 그곳에서 많은 경험을 쌓으며 가장 부러웠던 건 신생아를 좌우지할 수 있는, 그래서 너무도 막중한 책임감에 짓눌린 보호자에 대한 배려였다. 신생아를 위한 선진 시설과 치료 방법도 부러웠지만 이른둥이에 대한 정부와 민간단체의 다각적인 지원이야 말로 김 교수가 바라던 시스템이었다. “매번 이 얘기를 하게 되는데, 90년대만 해도 아기를 낳은 후 “이 아기가 어떻게 되겠느냐”는 보호자의 물음에 “살 가능성이 60%”라고 대답하면 퇴원을 준비하곤 했습니다. 2달 내지 2달 반을 입원하면 총 진료비가 3,000만 원 정도 나오고 그 중에 본인 부담금이 2~3,000만 원을 웃돌았으니 할 수 없었겠죠. 게다가 아기가 장애를 가질 확률도 높았고요. 매일 그런 편견과 싸워서 신생아들을 지켜내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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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죽하면 당시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이른둥이를 낳았다고 하면 아기 할머니가 통장을 아기 아빠에게 건네주면서 “내 전 재산인데 이걸로 아기를 살려라”는 장면이 있었겠는가. 때문에 김 교수는 매번 퇴원하겠다는 부모들과 싸웠다. 살 가능성이 60% 이상이나 되는데 왜 집에 가냐고 물으면 그들을 되레 “선생님이 아기가 살 가능성이 100%이고 죽을 가능성이 0%라고 하면 치료하겠습니다”라고 말하며 답을 요구했다. 밖으로는 펀딩을 끌어오느라, 안에서는 보호자를 설득하느라 진이 빠지는 건 당연지사. 그때마다 김 교수는 ‘아기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치료받을 권리가 있는 시절이 어서 왔으면 좋겠다’고 되뇄다. 자신이 의학을 공부하고 신생아를 선택한 바로 그 ‘생명’의 권리, 아름다운 원칙을 자꾸 매만졌다.

 
이른둥이를 위한 생명 원칙 그러던 차에 95년, 피수영 선생이 아산병원에 정착했고 그것이 신생아중환자실의 분기점이 됐다. 김기수 교수는 피 선생은 물론이요 김애란 선생과 팀을 이뤄 그간 꿈꿨던 일들을 하나하나 펼쳤다. 더불어 이른둥이의 당연한 삶, 신생아의 권리에 대한 대중들의 인식을 변화시키려고도 노력했다.
“한국평가원에서 조사한 걸 보면 한 아기가 태어나서 잘 자라면 그 사회에 40억 원 정도의 이익을 가져다준대요. 생명을 효율로 따질 순 없지만 ‘돈 때문에’라고 주저하게 된다면 이보다 더 명확한 답은 없는 것 같습니다. 인구 한 명이 몇 십억 원을 벌어다 준다는데 그 한 명을 구하는데 1억 원쯤 못 쓰겠습니까.”
김 교수를 비롯한 숱한 이들의 바람 때문이었을까. 이제는 신생아가 태어나면 그 순간부터 치료받을 수 있는 권리가 100% 있고 보호자가 치료를 중단할 수 있는 권리가 없다. 진료비 지원도 굉장히 많이 좋아져서, 보험 치료비 항목은 무료이고, 비보험 진료비 중에서 1천만 원까지는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다. 만약 그 천만 원을 넘는다면 그때 아름다운재단 ‘다솜이 작은 숨결 살리기’에 노크하면 된다. 김 교수가 그 옛날 미국에서 경험했던 지원 시스템이 불과 20년 사이 우리나라에도 정착하게 된 것이다.
  “사실 국가에서 해주는 건 일반적인 80%를 위한 거예요. 나머지 더 아픈 20%를 위해 다른 지원 사업이 필요한 법이거든요. 뇌성마비라든지 지능이 떨어진다든지 하는 신경학적인 후유증이 있다든지 아니면 퇴원했다가 재입원을 해야 한다든지 하는 경우 국가 지원 규정 가지고는 보호자들이 힘들어요. 100~200만 원 내기도 버거운 사람들이 있고요. 그래서 ‘다솜이 작은 숨결 살리기’가 참 반갑고 고마워요.”
사각지대의 아이들이 늘 마음에 쓰였던 김 교수에게 ‘다솜이 작은 숨결 살리기’는 썩 좋은 파트너다. 신생아 치료에 직접적으로 금전적 도움을 주는 까닭이기도 하지만 그것만큼이나 중요한 건 이른둥이에 대한 홍보, 이른둥이 권익 보호를 위해 동분서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두말 않고 전문위원 자리를 받았다. 그의 행보로선 자연스러운 결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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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존과 상생으로 거듭나다 김 교수가 1년에 만나는 신생아중환자실의 환자는 650명여. 그 중 350명이 이른둥이이고, 120명 정도는 1500g 미만이다. 그 중에 130명이 선천성심장질환 수술을 받아야 하고, 나머지 100명 정도는 식도가 없다든지, 장이 막혔다든지 하는 외과(장)계통의 질환을 가지고 있다. 나머지 몇몇은 선천성기형을 비롯한 여러 기형을 가지고 있고, 또 몇몇은 분만할 때 입은 뇌손상으로 온 아기들이다. 이렇게 불면 날아갈까 쥐면 꺼질까 싶은 신생아들을 돌보기 위해서는 그래서 반드시 집중력이 요구된다. 예상하지 못한 순간 이른둥이 부모 타이틀을 획득하듯 신생아중환자실의 의사들 또한 무시로 생과 사의 갈림길에 놓이기 때문이다. 그때마다 필요한 게 원칙에 근거한 흔들림 없는 선택! 앞서 말했던 ‘생명에 대한 존중’을 늘 품고 다녀야 하는 이유다. 바로 그 지점에서 김 교수는 ‘다솜이 작은 숨결 살리기’와 공존, 상생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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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어느 순간이든 이 아이가 내 아이라면 어떻게 할까, 생각합니다. 내 가족이라고 생각하면 보호자도 이해가 되더라고요. 아마 ‘다솜이 작은 숨결 살리기’의 모든 분들도 그리 생각하실 거라 믿습니다. 그래서 이른둥이를 지원 사업이 훨씬 더 힘을 발휘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요. 좀 더 바란다면 핫라인 시스템 등을 도입해서 언제라도 손 뻗어 닿을 수 있는 네트워크를 만드는 것입니다. 더불어 사각지대 없는 지원으로 거듭나시기를 바랍니다.”

글. 우승연사진. 임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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