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단한 삶에 희망의 선물을
황인국 기부자
어디에도 길이 없을 때 몸을 밀어 길을 내곤 했다. 허허벌판이거나 산이거나 바다인 인생에서 그것만이 살 길이었다. 몸뚱어리로 빚어낸 길 위, 단내 건한 고단한 일상을 꾸리며 종종 무릎이 꺾였다. 하지만 자신이 지나야 뒤가 밝으니 멈칫거리지 못했다. 그래서 내도록 달린 ‘어제’들이었다. 아무리 드문드문 난 길이라도 삶을 물려주려면 멈출 수가 없었노라고 황인국 대표는 말한다. “2000년에 고향인 대전으로 내려와서 요식사업을 시작했어요. 그 전까지는 광고회사에서 그래픽디자이너로 일했는데 IMF 터지고 나서 회사도 예전 같지 않고 뭐랄까, 염증이 났어요. 94년에 입사해서 퇴사할 때까지 밤 11시 이전에 퇴근해본 적이 없었거든요. 육체적,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어서 다른 삶을 모색했죠. 그런데 망했어요, 아주 크게!” 사실 음식점을 차릴 때도 별 두려움이 없었다. 아무리 회사 생활이 힘들다곤 해도 금전적으로 풍족했기에 실패를 걱정하지 않았다. 긍정적인 미래만 생각하고 겁도 없이 덜컥 시작한 제2의 삶.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그저 살 뿐인데 빚이 늘었다. 불안이 차곡차곡 쌓이자 공포로 둔갑했고 예상치도 못한 흑빛 시간이 그를 덮쳐왔다. “요식업을 하는 6년 동안 빚이 늘어서 생계가 힘들었어요.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데 막막하더라고요. 어떻게 하면 이 어려움을 헤쳐 나갈 수 있지, 골몰해야 되는데 난생 처음 겪는 어려움이라 직장을 왜 그만뒀을까, 같은 도움도 안 되는 부정적인 생각에 휩싸였어요.” 이제야 담담하게 이야기하지만 지옥 같은 시간이었다. 막바지였던 2006년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었다. 일하는 아내 대신 초등학교 1학년인 딸아이를 돌보다가 “아빠 없어도 잘 할 수 있겠니?”라며 몹쓸 소리도 했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초등학교 운동장엔 슬픔이 가득했다. 그 순간 아무것도 모르는 천진한 아이가 그를 향해 웃었고 그는 다시 한 번 기운을 냈다. 아무리 다독이려 해도 꿈쩍 않던 부정적인 생각이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새로운 희망을 부른 ‘기부선물’ 시작을 위해 찾은 곳이 ‘샘머리’였다. 고즈넉한 아파트 단지의 따뜻한 기운이 마음에 들었다. “지인들의 조언을 뒷심 삼아 인테리어 가게를 내보자 마음먹고 우연찮게 샘머리를 지나다 활용도가 없어서 계속 비어있는 이 공간을 발견했어요. 길이 8미터, 폭 2.4미터 정도인데 여기서 시작하면 되겠다 싶었죠.” 보증금 500만 원을 들고 시작한 문방구 옆 인테리어 가게, 샘터. 물이 솟는 자리라니 희망이 솟았다. 좁기는 해도 부족하지 않았다. 큰 욕심도 없었다. 3천8백 세대의 크고 작은 인테리어에 성심을 다하자는 것 외엔 달리 목표를 품지 않았다. 황 대표가 가진 건 오로지 삶을 바라보는 진정 어린 마음뿐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주민들이 그의 진심을 알아봤다. 기부가 시작된 건 그로부터 1년 후였다. “손님이 하나둘 늘어나니까 평소 관심 가졌던 기부를 해야 겠다 결심이 섰어요. 2007년부터 ‘행복한동행기금’에 기부하기 시작했고 2008년부터는 기부선물로 확장됐죠. 처음엔 잘 몰랐는데 기부를 선물할 수 있다니 멋졌어요. 공사를 마친 분들에게 집들이 선물로 화장지 같은 걸 선물했는데 그것보다 훨씬 의미 있는 일이더라고요.” 아름다운재단 홈페이지에서 발견한 문구가 마음을 움직였다. 살아가다 만나는 좋은 날, 축하와 감사의 인사를 전해야 하는 날을 기념하는 기분 좋고 남부럽지 않은 선물이라니. 이것이야 말로 축복 가득한 마음의 선물이었다. 이후 황 대표는 공사 규모에 상관없이 샘터 인테리어의 고객에게 이 특별한 선물을 배달했다. 최근까지 그의 마음을 전달받은 고객은 무려 126명. 한 달에 7~15만 원 정도를 기부선물하는 그는, 고객과 함께 공동체의 의미를 되새김질할 수 있는 요즘이 더없이 고맙다. 그로 인해 다시 마주한 평온한 시절이 반가울 뿐이다. 모두의 삶을 응원하다 “특별히 이른둥이에 관심을 갖는 건 개인적인 이슈와 맞닿아서이기도 해요. 힘들었던 시절, 아내가 둘째 아이를 유산했거든요. 충격이 꽤 컸어요. 그래서 다솜이작은숨결살리기가 더 애틋하죠. 무엇보다 그 조그만 아이들이 세상에 나오자마자 시련을 겪는 거잖아요. 고단함을 겪어낸 사람으로서 용기 있게 세상과 맞서는 이른둥이에게 힘을 주고 싶습니다.” 사실 급작스런 시련에 휘청거릴 때만 해도 자기 연민에 빠져 ‘세상에 나보다 힘든 사람이 어딨냐’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시 살기’ 시작하면서 세상이 달리 보였다. 이기적인 자기 자신을 발견했고 힘겹게 희망을 부여잡은 숱한 이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그들 중 가장 최전방에 자리한 이들이 이른둥이였다. 기부선물은 채 1kg도 안 되는 생명체의 경이로운 의지를 응원하는 황 대표의 마음이나 다름없다. 해외 아동을 위해 월드비전에 기부하고 아름다운재단의 행복한동행기부로 장애인을 도우며, 정기적으로 중증장애인 시설로 봉사 활동을 나가는 것 역시 그러한 마음의 연장선이다. “이런 인터뷰, 좀 쑥스러워요. 훌륭한 기부자도 많잖아요. 그런데도 흔쾌히 인터뷰를 받아들인 건 기부선물 하면서 뭔가 깨달아서예요. 음, 기부선물 받은 고객들이 이런 걸 알게 돼서 기쁘다, 주위에도 알려야겠다고 하시거든요. 의외로 마음은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시작을 못 하는 분도 꽤 많더라고요. 제 이야기가 그런 분들에게 좋은 정보가 되길 바라요.” 기부가 이제껏 보듬지 못한 자신의 자존감을 회복시켜 줬다고 이야기하는 황인국 대표는, 꾸준히 기부하는 것만큼 중요한 게 기부를 알리는 일이라고 강조한다. 그의 궁극적 목표는 ‘샘머리의 3천8백 세대에 기부선물하기’다. 더불어 좀 더 적극적으로 봉사활동을 가지고도 싶다. 의례적인 나눔이 아닌 매순간 깨어있는 ‘더불어 살기’를 꿈꾸기 때문이다. 그것은 힘든 순간을 무사히 건널 수 있도록 자신을 지지해준 이들에 대한 보답이다. 무사히 눈 떠서 아침을 맞이하고 무탈하게 하루를 마치는 게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된 삶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며, 고단한 길 위에 서 있는 많은 이들을 위한 응원의 발자국이다.
아름다운재단은 교보생명과 함께 다솜이작은숨결살리기기금을 토대로 ‘2.5kg 미만 또는 37주 미만으로 태어난 이른둥이 입원치료비 및 재활치료비 지원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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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신o
흐규.. 눈물나요.
맞아요. 세상에서 자기가 제일 힘들 것 같지만, 저의 고난은 고난도 아니라는 거 ^^
아침에 따뜻한 글 읽어 좋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