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락되지 않은 땅에서 사랑을 배우다”

미등록 이주노동자 올가말 부부 이른둥이 ‘아민이르든’ 이야기

 

숱한 죽음의 사인을 비집고 용케도 생명이 들어서다. 이른둥이 ‘아민이르든’ 이야기

 

 

 

 

2013년 가을, 언론은 연일 참담한 지구의 자화상을 그려냈다. 초대형 태풍 하이옌은 필리핀을 강타했고, 일본 후쿠시마 원전에서 흘러나온 방사능은 태평양으로 이동했으며, 미국에선 총기 사건이, 유럽에선 테러가 멈추지 않았다. 아프리카 난민은 여전히 바다 위를 떠돌았고 해적이 인기 직종으로 떠오르는가 하면, 대리모 아기 공장과 인신매매도 등장했다. 경쟁하듯 앞다퉈 일어나는 사건은 인위적이거나 자연적이거나 상관없이 재앙이었다.

 

 

매 시 매 분 줄지어 서 있는 그들의 촘촘함에 무시로 등골이 오싹했고, 죽음이 목전인 듯 부쩍 불안했다. 한데 이 시절, 신기하게도 숱한 죽음의 사인을 비집고 용케도 생명이 들어섰다. 이른둥이 ‘아민이르든’과 함께 날아든 ‘세계이른둥이의 날’ 소식이 바로 그것이다. 누구도 재단할 수 없는 “출생 시부터 부여받은 생명권”에 요동치던 죽음도 수굿해졌다. ‘무엇보다 생명’이라는 희망의 주문이 두른 결계 때문이다.

 

 

 

 

신생아 집중치료실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아기

   선택하지 않은 단어 ‘불법체류자’ 이른둥이 아민이르든의 부모는 몽골인 미등록 이주노동자, 소위 ‘불법체류자’다.

 

처음부터 불법체류자이었던 건 아니다. 그들도 한때 정당한 외국인이었다. 올해 스물아홉인 남편 이데르비타로는 2010년 산업근로자로 입국했고, 스물넷의 아내 올가말은 2009년 학생 비자로 한국에 들어왔다. 다른 나라에 불법으로 머물러 있는 이방인이라는 꼬리표가 붙은 지는 얼마 안 됐다. 나쁜 사장을 만나 임금이 체불됐고 지불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아 일터를 떠난 이데르비타로의 불법체류기는 전형적인 착취 사례다. 만연해서 보편인가 싶은 그의 이야기는 단숨에 한 인간에게서 정당성을 빼앗았더니 ‘끈기 없는 불법 인생’ 꼬리표까지 선사했다.

  

“한국에선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월급을 적게 주잖아요. 12시간 일한 돈을 받아야 하는데 안 되니까 일을 그만뒀어요. 아내는 조금 다른데 아민이르든을 갖고 공부도 일도 할 수 없게 됐어요. 그래서 지금은 우리 둘이 불법체류자가 되어버렸죠.”

 

올가말이 남편을 만난 건 2년 전이었다.

이것이 좋다, 저것이 나쁘다 가늠하기 전에 낯선 타국에서 만난 몽골 사람이라 좋았다. 사실 일하면서 공부하는 게 쉽지 않았다. 가족이 살고 있는 몽골도 아닌 삭막한 도시에서 2년여를 지내니 외로웠다. 누구도 말 걸어주지 않는 존재로 대도시의 한 구석에서 꾸리는 일상은 때때로 고달팠다.

  

“몽골에서 취직하려고 면접 보러 가면 열 명 중 다섯 명은 한국에서 공부하고 온 사람이에요. 그래서 언니가 한국에서 공부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권했고 유학을 결심했죠. 한국어학당 2년 다니고 한성대학교 무역학과에 입학한 뒤 학교 안 다니는 날엔 열심히 일했어요. 단추공장 다니면서 학비와 생활비를 버느라고 정신없었는데 지난봄에 임신한 걸 알았어요.”

 

870g의 작은 아기 아민이르든이 태어났다. 임신 25주만에 세상밖으로 나온 아기였다.

 

생각지도 않은 일이었다. 유학생, 그것도 불법체류자와 연애하는 상황에 임신이라니. 공부와 일만으로도 모자란 시간인데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게 가능할까 걱정이었다. 그래서 자신을 찾아온 이 반가운 인연에 덜컥 겁이 났다.

 

허락되지 않은 땅에서 배운 사랑

 

지난 여름의 폭염 속에서 아민이르든이 태어났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양수가 터져 있었다. 고작 25주밖에 안 된 상황이라 이데르비타로와 올가말 부부는 당혹스러웠다.

  

“아내와 함께 동네 병원에 갔더니 양수가 터졌다면서 큰 병원으로 가래요. 감염 위험도 있고 아직 6개월밖에 안 됐으니까 인큐베이터도 필요하다고. 그래서 경희의료원을 갔어요. 다행히 정상 분만했지만 아기 몸무게가 겨우 870g이었어요.”

 

870g에서 2kg으로. 믿을 수 없을만큼 건강을 되찾고 있는 아민이르든. 그러나 치료 동안 발생한 비용은 엄청났다.

               

1kg도 안 되는 아민이르든은 신생아 호흡곤란, 급성신부전증, 고빌리루빈혈증, 기관지 폐 형성 이상 등으로 신생아중환자실 인큐베이터에서 키워졌다. 고비의 순간은 많았으나 수술은 피해갈 수 있었다. 그토록 작던 아민이르든은 3개월 동안 집중 치료를 받으며 훌쩍 자라 2kg이라는 놀라운 몸무게를 자랑했다. 혹시나 잘못될까봐 노심초사하던 부부에겐 기적 같은 일이었다.

  

“아민이르든은 의사선생님들이 잘 돌봐주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됐는데 문제는 돈이었어요. 불법체류자 신분이라 제대로 일할 수 없는데 의료보험도 없으니까요. 하루 병원비가 100만 원인 상황이라 한 달이면 3,000만 원이니. 돈이 없다고 이제 막 1kg 넘긴 아기를 퇴원시킬 수도 없고 앞이 캄캄했어요.”

  

돈이 없다고 이제 막 1kg 넘긴 아기를 퇴원시킬 수도 없는 상황

  

못사는 나라에서 온 외국인이라고 임금을 체불 당해도, 더럽고 치사해서 일터를 박차고 나와 이삿짐센터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길 가던 사람들이 힐끗힐끗 쳐다보며 경계할 때도 이렇게 서럽진 않았다.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하니까 이쯤은 견딜 수 있다고 이데르비타로는 스스로 다독였다. 한데 인큐베이터 속 아이를 보니 슬픔이 밀려왔다. 허락되지 않은 땅에서 태어난 작은 생명에게 한없이 미안했다. 올가말도 마찬가지였다.

  

“남편하고 돈 걱정할 때 경희대 사회복지사께서 아름다운재단 <다솜이작은숨결살리기>를 알려줘서 500만 원씩 두 번 1,000만 원을 지원받았어요. 병원에서도 반액을 지원해 줘서 3개월간 병원비 9,000만 원 중 1,500만 원만 지불하면 돼요. 남편이 이삿짐센터에서 일해서 열심히 돈 벌고 있으니까 곧 갚게 되겠죠.”

  

생면부지의 사람들의 도움으로 엄청난 병원비를 해결했다. 한국에 들어와 불법체류자 꼬리표를 달게 되고 임신하고 이른둥이를 출산한 것만큼이나 놀라운 일이다. 어쩌면 이 모든 시련이 타인과 연결돼 있음을 확인하는 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미등록 이주노동자 부부 이데르비타로와 올가말은 이른둥이 아민이르든 덕분에 조금 다른 관계를 경험했다. 나와 당신 또 그들과 저들이 어떻게 연결돼 있는지 비로소 깨달았다. 점점이 놓인 ‘이 점’과 ‘저 점’, ‘저 점’과 ‘그 점’을 잇는 거미줄 같은 인연들. 어느 한 점이 움직이면 금세 출렁이는 이 그물망을 어째서 ‘관계’라고 부르는지, 의도적이거나 필요에 의해 선택한 찰나적 관계조차 인연으로 여길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았다.

  

고비 마다 곁을 지켜준 사람들이 있었기에 버틸 수 있던 시간들

  

“아기가 조금 나아지고 기운을 차리면 몽골로 돌아갈 거예요. 혼자라고 느낄 때마다 곁에 있어준 사람들, 이 고비를 잘 넘기게 해줘서 감사해요. 아민이르든과 우리 부부를 지켜봐주고 도와줘서 고맙습니다.”

  

그들 부부는 이제 단번에 큰 성공을 안겨줄 누군가만이 귀인이 아니라는 걸 안다. 세상 모두가 인연이요 귀인이라는 걸 경험한 까닭이다. 아민이르든이 힘겹게 제 삶을 지키며 우리에게 알려준 진실은 지구에 부려진 이들은 누구나 서로 운이고 선물이라는 사실이다. 

  

아민이르든 이른둥이는 다솜이작은숨결살리기를 통해 입원치료비를 지원받고, 지금은 건강을 회복해하고 있습니다. 

 

글. 우승연 사진. 정김신호, 김흥구

 
아름다운재단은 교보생명과 함께 다솜이작은숨결살리기기금을 토대로 ‘2.5kg 미만 또는 37주 미만으로 태어난 이른둥이 입원치료비 및 재활치료비 지원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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