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만 행복하면 좋겠다
박정하 이른둥이 이야기
엄마는 갓 난 이른둥이가 말을 못 한다고 그 앞에서 함부로 행동하지 않는다. 자식의 고통이 안쓰러워 흘러내리는 눈물조차 절제하고는 애써 웃음으로 피어 올린다. 그도 그럴 것이 이른둥이는 인격체로서 혹여 눈물이 악영향을 미칠지도 모른다고 염려하는 탓이다.
그해, 그래서 엄마인 이현주 씨는 이른둥이 딸인 정하에게 해로울 수 있는 감정은 모두 숨긴 채 그저 온몸 다해 사랑한다고, 온 맘 다해 사랑한다고, 생명 다해 사랑한다고 말하고 또 말하였다. 정하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모성은 결코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정하는 그 사랑에 화답하듯 조촘조촘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손바닥만 한 인격체
임신 24주. 병원에선 조산의 기미를 엿보았는지 가만히 누워만 있으라고 진단했다. 하지만 현주 씨는 다섯 살 난 아들도 보살펴야 하는 엄마였다. 어느 정도의 움직임이 불가피했다. 그 때문일까, 이내 끊임없는 하혈이 시작됐다. 그녀는 소아과를 병행하는 병원을 수소문한 끝에 겨우겨우 입원할 수 있었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태아가 거꾸로 돌아서 있단다. 되는 대로 분만 억제 주사를 네 대나 맞았지만 여전히 태동은 심상치 않았다. 일촉즉발의 위급한 순간, 기적적으로 태아가 몸을 원상태로 돌려 줬고, 가까스로 그녀는 자연 분만할 수 있었다.
“아기 어떠냐고, 살았냐고 그것부터 물어봤어요. 그러니까 병원에서는 아기를 한번 봐야 된다고 하더라고요. 덜컥 겁이 났는데요. 인큐베이터의 아기를 본 순간 진짜 눈물밖에 안 나오더라고요.”
아기는 720g의 초극소저체중 여아였다. 아무래도 인큐베이터에서 링거를 매단 채 삶과 사투를 벌이는 손바닥만 한 딸을 직시하기가 힘겨웠다. 아닌 게 아니라 누가 봐도 속상한 그 모습을 두고 엄마가 멀쩡할 리는 없다. 게다가 딸은, 정하는 신생아괴사성장염으로 튀어나온 소장을 매만지기 위해 당장 소장절제술까지 견뎌 내야 했다.
“의사 선생님이랑 간호사 선생님한테 매번 질문했어요. 우리 정하 호흡기는 언제 떼요? 우리 정하 콧줄은 언제 떼요? 그래도 건강하게 퇴원하는 아기도 있으니까, 우리 정하도 다 떼고 집에 갈 수 있겠죠? 그렇게 내내 물어봤어요.”
꿈만 같은 기적
지난 11월, 정하는 소장의 길을 올곧게 열기 위해 장루형성수술 또한 감당했다. 집에서나 밖에서나 현주 씨는 병원 생활 중인 정하를 잠시 잠깐도 잊을 수가 없었다. 밤마다 새하얗게 다음날의 면회 시간만 기다렸다. 아마 정하도 엄마를 그리워했으리라. 모녀가 나눈 사랑의 교감, 그것으로 정하는 점점 회복되는 듯했다. 모르긴 해도 면회 시간마다 서로 체온을 나눌 수 있었던 캥거루 케어도 한몫했을 터다. 그래서 정하는 1월 2일, 새해가 되자마자 건강하게 퇴원할 수 있었다.
“그런데 병원에서 5개월쯤 생활하다 보니까 정하가 집이 잘 적응이 안 되나 보더라고요. 일주일 동안은 밤에도 안 자고 눈만 말똥말똥 뜨고. 뭐, 지금은 괜찮아요. 현재로는 별다른 이상도 없다 하고요.”
실제로 줄기세포 임상 실험까지 마쳤지만 정하에게 특별한 문제를 감지하진 못했다. 물론 이른둥이인 탓에 다소 폐가 약하고 전체적으로 슬쩍 부족한 면이 드러나는 것도 사실
이다. 그래도 지금껏 정하의 이 같은 회복은 꿈인 듯한 기적이었다. 여기에는 남편인 박병용 씨의 외조와 아들인 성하의 오빠 노릇이 너무나도 든든했다.
“남편이 정하를 곧잘 봐주는 편이에요. 성하도 처음에는 정하가 낯선 듯하더니 지금은 정하, 정하 하고요. 제가 음식을 하거나 화장실에 가거나 하면 까꿍도 해 주고 딸랑이도 흔들어 주면서 동생을 아끼더라고요.”
나눔과 행복의 마음
정하의 건강은 썩 괜찮았지만 그렇다고 아직은 방심할 수 없었다. 그래서 정하는 내일도 안과를 비롯하여 정기적인 진료를 받기 위해 나설 예정이다. 그런데 돌이켜보니 정말이지 병원비가 부담스러웠다. 생명을 돈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1억 원에 가까운 병원비가 만만할 리는 없었다. 다만, 천만다행으로 병원 관계자가 알려 준 <다솜이작은숨결살리기> 및 보건소의 치료비 지원은 가뭄에 단비 같았다.
“저희도 저희지만 또 다른 이른둥이들이 <다솜이작은숨결살리기>를 통해 두루 지원을 받는다면 좋겠어요. 숱한 이른둥이들이 궁금해져요. 아마도 정하가 이른둥이로 태어나지 않았다면 이러한 지원 사업도 전혀 몰랐을 거예요.”
현주 씨의 시야는 반년 사이 제법 달라져 있었다. 이른둥이인 정하를 사랑하는 동안 또 다른 이른둥이를 들여다볼 수 있는 나눔의 마음이 깃들고 말았다. 뿐만 아니라 그녀는 평범함이라는 어마어마한 행복 또한 발견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녀의 꿈은 더도 덜도 말고 ‘이대로만 행복하면 좋겠다’였다.
“정하야, 이렇게 예쁘게, 또 건강하게 자라 줘서 고마워. 이젠 안 아플 거지?”
그간의 애달픈 심정과 훗날의 간절한 소원을 담은 현주 씨의 속삭임. 당연히 태어난 지 반년 남짓한 정하는 아무런 대답도 할 수가 없다. 그러나 아이는 항상 그래 왔듯 삶으로 엄마한테 반응해 줄 터였다. 다름이 아니라 이제껏 엄마의 사랑과 믿음, 소망에 매번 건강한 모습으로 화답해 주었듯 아이는 소리 없는 안간힘으로 한껏 생명력을 아우성치리라 확신한다.
글. 노현덕 | 사진. 이현경
박정하 이른둥이는 2013년 12월 <다솜이작은숨결살리기>를 통해 초기입원 치료비를 지원받았습니다.아름다운재단과 교보생명이 함께하는 다솜이작은숨결살리기에서는 ‘2.5kg 미만 또는 37주 미만으로 태어난 이른둥이 입원치료비 및 재활치료비 지원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