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와 비장애를 넘나드는 양육일기

유다은 이른둥이 이야기
 
  
심리운동치료 중인 다은이

심리운동치료 중인 다은이

조금이라도 허투루 지내면 아이의 재활이 어려울까봐 꾀부릴 틈이 없었다는 김선정 씨. 해야 될 일이 분명해서 하루가 어떻게 흐르는지도 몰랐다는 그녀의 이야기에서 고단함이 묻어난다. 

 

“다은이가 태어나고 4년 반 동안 정말 최선을 다해 병원에 다녔어요. 할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으니까요. 운동하면 낫는다니까 하루라도 빠지면 안 되는 줄 알고 집중했죠.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외부와 단절되더군요. 제가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아직은 엄마 사랑이 필요한 7살 다경이

아직은 엄마 사랑이 필요한 7살 다경

 

한 살 위인 다경이를 어린이집에 던져놓고 다은이 재활에만 신경 썼던 시간들. 더 잘 할 수 없을 만큼 최선을 다해 뛰어다녔건만 별로 나아지는 건 없었다. 외려 조금씩 일상이 틀어졌다. ‘이게 아니구나, 이렇게 지낼 순 없구나’ 위기감을 느낀 건 다경이 때문이었다. 

아픈 아이가 눈에 밟혀 온 신경을 집중해 양육하는 사이 다경이가 소외되고 있다는 걸 알지 못했던 것. 몸의 건강에 방점을 두니 마음이 어떤지 헤아릴 수 없었다. 사실 김선정, 유근식 부부에게 다경이는 무엇이든 혼자서 하고 알아서 자라는 순한 아이였고 그게 늘 고마웠다.  

 

“다은이 위주로 흘러가는 게 다경이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깊이 생각하지 않았죠. 한데 올해 들어 다경이가 부쩍 울고 다은이와 동등하게 대해 줄 것을 요구하면서 뭔가 각성이 됐어요. 언니라고 해봐야 겨우 일곱 살 아이인데…. 

다경이가 달리 보이니까 다은이도, 남편도, 미래도 이전과 같지 않더라고요. 스스로에게 어떻게 살 것인가를 진지하게 묻게 됐어요.”   

 

잠들지 않는 도시 한복판에 정전이 발생하면 그제야 별이 등장한다더니 그 말이 맞았다. 밝아서 보이지 않던 밤하늘의 은하수는 당혹스러운 사건 이면에 펼쳐지는 뜻밖의 삶이었다. “별들의 지붕” 아래 사는 줄도 모르던 지난 시간을 추스르게 만든다고 할까. 아이 때도 안 하던 다경이의 애기 짓에 흠칫 놀란 김선정 씨는 그래서 이 상황을 위기가 아닌 출구로 받아들였다. 잊고 지내는 걸 제대로 보라는 신호에 그녀는 감은 눈을 번쩍 떴다. 

  

돕는다는 것의 의미 

힘든 치료도 잘 참아가며 받는 예쁜 다은이

힘든 치료도 잘 참아가며 받는 예쁜 다은이

결혼한 지 5년 만에 다경이를 낳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은이가 들어섰다. 무호흡 때문에 뇌출혈로 고생한 다경이에 비하면 다은이는 별 문제될 게 없었다. 

징후 없이 28주 만에 1.3kg으로 태어났지만 인큐베이터에서 건강히 자란 까닭에 걱정하지 않았다. 의료진도 경미한 뇌병변이 있지만 괜찮을 거라고 김선정, 유근식 부부를 안심시켰다. 

  

“괜찮다고 해서 별 일 없을 줄 알았어요. 어느 날 아이 몸이 뻣뻣해서 신경과를 찾았을 때도 이 정도면 물리치료 받으면 된다기에 그런 줄 알았죠. 그 말을 붙들고 3년 반 동안 지낸 거예요. 

뇌성마비 중 다행스런 케이스라기에 치료만 열심히 받으면 낫는 줄 알았는데… 현재 보행이 안 돼요. 물론 그것뿐이긴 하지만… 그래서 그것만 해결하면 된다고 달렸어요.”

 

국립재활원, 시립어린이병원, 서울재활병원 등을 두루 거치며 재활에 매진했다. 내일 걸을 수도 있을 거라는 믿음이 그녀를 사로잡았다. 걷기만 하면 삶이 달라질 것 같았다. 그 덕분에 병원만 다니느라 일상이 사라지고 있는 걸 눈치 채지 못했다. 

물론 그녀의 믿음 혹은 희망이 잘못됐을 리 없다. 부모라면 당연한 행보였을 터. 하지만 김선정 씨는 되짚을수록 그간의 시행착오가 뼈저리단다. 다경이를 통한 재구성이 없었더라면 어쩌면 모르고 지났겠구나 싶어 아찔하다. 

  

“아기 때는 두 놈을 업고 안고 다니느라 힘들었는데 아이들이 크니까 다르긴 해요. 그냥 먹이고 재우는 걸 해주는 게 엄마는 아니더라고요. 걷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면 안 되겠다고 생각한 것도 요즈음이에요. 재활치료는 생각보다 더 오랫동안 하게 될 수도 있으니까 이 상황을 받아들이고 더불어 건강하게 사는 걸 고민하려고요.”

 

그런 자각 이후로 김선정 씨는 다경이에게 다은이를 단순히 ‘아프다’라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근육이 이러저러해서 물리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다경이에게 다은이가 아프고 불쌍한 게 아니라 능력이 달라서 협력해야 할 동생으로 자리하길 바라서다. 그녀의 바람은 의외의 곳에서 변화를 가져왔다. 

 

“이젠 다경이가 다은이 양치하는 걸 도와줘요. 간혹 제가 옷을 입혀주려고 하면 혼자 할 수 있는 건 스스로 하도록 내버려 두라고 잔소리도 하고. 대신 자기를 봐달라고 할 땐 엄마 관심이 고팠구나 싶지만(웃음). 내겐 반복되는 일상이라 몰랐는데 아이들은 그렇게 자랐더라고요.”

 

치료사 선생님과 함께

치료사 선생님과 함께

  

읽고 싶은 당신과 더불어 살다

다경이와 다은이를 바라보며 김선정, 유근식 부부는 요즘 부쩍 더불어 사는 것이 무엇인가를 고민한다. 훗날 의지하고 지낼 자매의 삶을 가늠해 보는 것이기도 하거니와, 지난 2010년 11월 아름다운재단의 <다솜이작은숨결살리기>에서 재활치료비를 지원받고, 2014년 1월 다시 대상자로 선정돼 2차 지원금 150만 원을 받은 까닭이다. 

 

“매달 평균 100만 원여의 병원비를 지출하는데 이렇게 지원을 받으면 한 달이 가볍게 넘어가니까 정말 고마운 일이죠. 쉬지 않고 달려야 하는 장거리 경기 중에 숨 좀 돌리고 걷는 기분이에요. 그런 여유가 다경이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있어요.”

  

다경, 다은을 통해 더불어 사는 삶에 대해 배워가는 엄마 김선정 씨

다경, 다은을 통해 더불어 사는 삶에 대해 배워가는 엄마 김선정 씨

 

아이의 재활에 몰입하느라 4년을 고군분투했더니 이제 차 한 잔 같이 할 사람이 없다는 김선정 씨에게 재활치료비 지원은 고립을 끊는 신호다. 혼자 고민하지 말라는 다독임이고 좀 더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하라는 지지이다. 당신이 건강하게 사는 것이 다경이, 다은이를 건강하게 만들고 그들의 친구인 여러 아이들, 그들의 부모를, 부모의 지인을, 지인의 지인을 행복하게 만드는 까닭이다. 

 

네트워크가 무엇인지 새삼 깨닫는 요즘, 김선정 씨는 지난날을 더듬는다. 모퉁이를 돌 때마다 마주하는 선택의 순간, 장애와 비장애를 경계를 잇기 위한 조언을 듣고 싶었으나 닿을 곳 없어 황망했던 그간의 마음을 헤아리다 이내 녹록해지는 스스로를 알아차린다. 그래서 이렇게 용기를 내서 누군가에게 요청한다. 인간을 한 권의 책이라고 누군가 이야기했듯 그녀는 자신을 또 다은이, 다경이를 한 권으로 책으로 바라봐 주며 관심을 기울여 읽어주기를 바란다. 이것은 지난 4년 동안 장애와 비장애 아동을 양육하며 김선정, 유근식 부부가 얻은 열린 해답이다. 

 

“금전적 지원도 필요하지만 요즘 바라는 건 만남이에요. 인적 네트워크이기도 한데, 선배들을 만나는 거요. 전문가의 조언도 좋지만 저보다 2~3년 전에 직접 경험하신 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시행착오를 줄이고 싶은 거죠. 앞선 이들의 지혜가 있는 만남,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글. 우승연 | 사진. 정김신호

 

* 유다은 이른둥이는 2013년 7월과 2014년 7월 <다솜이작은숨결살리기> 사업을 통해 재활치료비를 지원받고 있습니다. 

 


아름다운재단은 교보생명과 함께 다솜이작은숨결살리기기금을 토대로 ‘2.5kg 미만 또는 37주 미만으로 태어난 이른둥이 입원치료비 및 재활치료비 지원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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