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강하다
이봄이(가명) 이른둥이 엄마의 이야기
우리 아기와 나의 첫 만남은 울음소리는커녕 애써 고개 돌려 핏기 없는 발가락만 본 게 전부였다.
하루에 1그램씩 크는 우리 아기
벚꽃이 만개해서 마치 따스한 봄날 눈 내리듯 그런 아름다운 날 만나겠거니 했던 우리 아기. 모든게 처음이라 철도 없고 준비도 없던 나에게 추운겨울, 마음도 춥게 그렇게 와주었다.
1㎏의 작은 아기. 드라마를 보면 울음소리도 크고, 아빠가 탯줄도 자르고, 엄마와 아빠가 기쁨의 눈물도 흘리고, 가슴팍에 안아 젖도 물리고 다들 그렇게 하던데.. 우리 아기와 나의 첫 만남은 울음소리는커녕 애써 고개 돌려 핏기 없는 발가락만 본 게 전부였다.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은 머릿속이 하얀 느낌으로 “손가락 발가락은 다 있나요?” 참.. 바보 같은 첫 질문이 입에서 튀어나왔다.
아침에 태어났는데 저녁까지 엄마인 나에게만 보여주지 않았다. 가족들은 그저 작게 태어났다고만 말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다들 충격 때문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던 것 같다. 저녁이 되어서야 나에게도 면회시간이 주어졌다. 심각하긴 한가보다. NICU(신생아중환자실) 안에서도 분리보호 되어있었다.
인큐베이터 작은 유리관속에 내 한손에도 들어올 만한 작은 아기가 꼼지락 거리고 있었다. 아기의 팔뚝이 내 새끼손가락보다도 가늘었다. 눈코입은 다 있나.. 손가락, 발가락도 하나,, 둘,,셋,,열.. 모두 다 있구나. 조금 빨리 나오면 어떤가. 조금 작으면 어떤가. 이렇게 완벽하고 귀엽게 내 곁에 와주었는데. 슬프지도 않고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잘 키우면 되지. 더 크게 키우면 되지.
2박 3일만에 나는 퇴원해야했다. 내 아기가 유리관에서 젖도 한번 못물어보고 생사의 문턱에 있는데 몸조리고 뭐고, 가슴이 미어졌다. 펄펄 끓는 기름을 심장에 쏟아 부운 것 같았다. 하루에 1g씩 몸무게를 늘렸다가, 조금 안 좋으면 더 많이 빠졌다가, 우리 아기 병원에서 정말 힘들게 사투하고 있었다.
위로 연결된 호스를 통해 시간마다 1g의 모유. 그 한 방울을 먹이기 위해 집에서 나오지도 않는 젖을 쥐어 짰다. 목 아래 가슴팍부터 어찌나 훑어서 쥐어짰는지 속 몽우리가 없어 가슴이 배까지 축 쳐져 내렸다. 그때 나는 여자가 아니라 부족하지만 엄마였기 때문에 가슴이 쳐지던 닳아 없어지던 중요하지 않았다. 그렇게 하루에 1g씩 크는 우리 아기, 안아볼 날만 손꼽아 기다렸는데, 시간이 지났나보다. 그렇게 더디게 느껴졌던 시간도 지나가긴 지나가나보다.
추운 겨울 신생아중환자실에서 힘겨운 시간을 보낸 봄이는 벚꽃피는 날 엄마품에 안겨 집에 돌아왔습니다.
길고 긴 재활치료의 시작
벚꽃 피는 날, 원래 만나기로 했던 그런 날씨 문턱에 우린 비로소 집에 올 수 있었다. 그렇게 아빠, 엄마, 딸은 온전한 가족이 되었다. 퇴원할 때도 큰 문제없이 몸무게만 잘 늘리며 키우면 된다고 했다. 뒤집기가 느려도 눈맞춤이 잘 안되어도 모든게 느려도 일찍 태어나서 좀 늦거니 했다. 반응 없는 아기를 키우는게 참 힘들었다. 소통 없이 그냥 먹이고, 재우고, 씻기고.. 그런 반복되는 시간들이 흘러갔다.
아직 걷지도 못하고 돌이 되어 가던 우리 아기. 돌도 되기 전 나는 싱글맘이 되었다. 아이를 작게 낳고도 눈물 쏟지 않았던 나는 아기 첫 생일, 그동안 참아왔던 눈물을 다 토해냈다.
한동안은 느린 걸 인정했다. 아무래도 일찍 태어났으니..
그러나 첫 생일이 지나고, 두 번째 생일이 지나고, 세 번째 생일이 될 때에도 우리 아기는 “엄마”라는 소리 한번 내지 못했다.
병원에서는 전반적 발달지연이라고 했다. 너무 어린 아이에게 장애라는 말은 붙이기 그렇고, 발전 가능성이 있으니 두고 보자는 식이였다. 희망고문이긴 했지만 또 믿었다. 유명한 병원이란 병원은 다 찾아 헤맸다. 아기가 분명 보통 아기들과는 다르다는걸 인지했다. 그냥 속 시원히 무엇 때문에 그런지만 알고 싶었다. 병이 있으면 이유도 있을거라 생각했다. 신만이 아는걸까. 난 아직도 이유가 뭔지도 모르는 우리딸의 병과 싸우고 있다.
재활치료를 시작한지도 3년이 지나고 있다. 아이가 아프다보니 24시간 붙어있는 보호자가 필요했고, 자연스레 일을 할 수도 없었다. 처음엔 좋다는 치료실을 모두 찾아다니며 치료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2~3년안에 말도 트고 모든게 평범해질 수 있다는 막연한 기대감이 있었나보다. 장기전이 될텐데..
일을 하지 않으니 금새 부담이 되었다. 때마침 병원 사회복지사 선생님이 <다솜이작은숨결살리기> 사업을 소개해주었고, 도움으로 잠시 끊겼던 치료를 다시 진행할 수 있었다. 가뭄에 단비처럼 어찌나 고맙던지.. 누구에게 도움을 받아본 게 처음인데, 정말 너무너무 아쉽던 시기에 도움이 많이 되었다. 아름다운재단에도 감사하고 조건 없이 베푸는 기부자분들도 너무 감사하다. 나도 언젠간 이 도움을 다시 베풀 날이 있으리라 기대한다.
아름다운 엄마들
‘여자는 약하지만 엄마는 강하다’란 말이 이제 실감이 좀 난다. 세상에는 평범해 보이지만 너무 대단한 엄마들이 많이 있다. 나처럼 아픈 아이를 가진 엄마, 가슴으로 자식을 낳은 엄마, 여러 아이를 낳아 키우는 엄마, 어린나이에 혼자 아이를 키우는 엄마..
사연 없고 자식 안이뻐하는 부모가 어디 있을까. 병원에서 아이 치료시간을 기다리고 있노라면 아이들만큼 많이 보이는게 엄마들이다. 마음 고생으로 가슴은 시커멓게 타들었겠지만 얼굴엔 미소도 있고, 가끔은 박장대소 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누구하나 농담하면 소녀들처럼 웃음을 터트리며 시름을 날린다.
자기 자신 가꾸려고 화장을 할 시간도 좋은 옷을 입을 시간도 없는 엄마들이지만 걷지 못하는 아이 한발 내딛게 하려고, 말하지 못하는 아이 한마디 하게 하려고 이 악물고 노력하는 엄마들이 내 눈에는 너무 아름답게 보인다. 아픈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지치고 힘들 때 많겠지만 남들과는 조금 다른 우리 아이들이 잘 커갈 수 있도록 서로서로 울타리가 되어 버팀목이 될 수 있길 모두가 생각하는 그런 세상이 좀 더 빨리 찾아오길 같이 노력했으면 좋겠다.
내 딸아,
엄마가 표현 안한다고 답답하다 꾸중도 하고, 대소변 못 가린다고 화도 냈던거 정말 미안하구나.
그런 엄마인데도 항상 와서 뽀뽀해주는 이쁜 우리딸.
외사랑 받게 해서 너무너무 미안하고, 대신에 평생 울 딸 옆에서 엄마가 영원한 친구가 되어 줄게.
너는 남들과 다름을 넘어 특별한 사람이 될 거야.
엄마는 그렇게 믿고 있으니까 우리 같이 잘 이겨내보자!
내 모든걸 주어도 아깝지 않은 내딸, 사랑해!
이봄이(가명) 이른둥이는 <다솜이작은숨결살리기>사업을 통해 재활치료비를 지원받았습니다.
아름다운재단은 교보생명과 함께 다솜이작은숨결살리기기금을 토대로 ‘2.5kg 미만 또는 37주 미만으로 태어난 이른둥이 입원치료비 및 재활치료비 지원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ㅎㅗㄹ
아기들은 보통 하루에 30~40g씩 몸무게가 느는대… 그 더딘 나날을 견뎌낸 엄마와 아기가 대견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