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그대로의 사랑
연동연 이른둥이 이야기
그해 여름, 초극소저체중아로 태어났던 이른둥이 동연이(5)는 뇌출혈, 백질연화증, 망막증, 수두증, 패혈증, 장폐색 등 미숙아 합병증 중 비껴가는 병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하나같이 중증으로 심각했다. 오죽하면 병원조차 동연이를 체념하는 듯했다. 하지만 단 한 사람, 엄마 이남희 씨(33)만큼은 그 생명을 포기할 수 없었다. 1년 동안 12번이나 각각의 대수술을 시도했던 동연이. 이남희 씨의 간절한 모성으로 동연이는 운명을 거슬러 살아날 수 있었다.
다만, 의사는 동연이에게 뇌병변장애 1급을 진단했다. 그날 이후, 이남희 씨는 동연이를 안아들고 재활 전문 병원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러기를 2년 6개월, 동연이는 네 개 병원을 돌아가며 재활치료는 물론 언어치료, 인지치료, 음악치료, 감각통합치료 등을 수행했다. 그 사이 이남희 씨는 무릎도 살짝 망가지고 몸살도 더러 앓았지만 동연이의 회복을 위해 단 하루도 낭비할 수 없었다.
죽음도 물리치는 엄마의 사랑
정기 검진을 위해 찾아갔던 산부인과. 진통도 없이 자궁이 열렸다는 진찰에 이남희 씨는 곧장 입원했다. 여느 엄마처럼 첫아이 양육에 직장 생활, 그리고 집안일이 그녀에게는 무리였던 것일까? 임신 23주 6일 만에 느닷없이 들이닥친 원인 불명의 조산이었다. 그런데 그 산부인과에는 인큐베이터가 없었다. 이른둥이는 자가 호흡이 불가했기에 그곳에서 출생하면 곧 사망할 터. 일촉즉발의 순간, 그녀는 지인을 통해 인큐베이터가 남아있는 부산 인근의 병원을 가까스로 찾아냈다.
“동연이가 720그램이긴 했어도 태어나기 전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어요. 하지만 이른둥이는 뇌가 부드러워서 산소를 버텨내지 못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뇌출혈이 불가피했는데요, 그것으로 합병증이 왔던 거죠. 출산하고 사흘 만에 죽음을 준비하라는 말을 들었어요.”
그렇게 서너 번쯤 사경을 헤매었던 동연이. 이남희 씨는 그런 동연이를 위해 이른둥이 관련 정보들을 수집했다. 그리고 부산에서 서울까지 전국 가장 권위 있는 신생아 전문의를 찾아 방문했고, 그녀의 간곡한 청으로 동연이의 수술을 허락받았다. 엄마 이남희 씨는 동연이를 위해 최선을 다할 뿐이었다. 그런 마음을 알았을까. 동연이는 12회의 대수술을 비롯해서 수차례의 치료를 받아냈다.
“안과에서는 사시랑 안구 진탕 수술을 한 번 더 시도하자고 그러더라고요. 동연이가 뇌출혈로 인한 뇌손상으로 눈동자가 자꾸 흔들리거든요. 그 이후에는 수두증 때문에 삽입한 션트를 관리하는 정도에요. 그것 말고는 천만다행으로 전부 완치됐어요.”
엄마의 사랑에 화답하듯 동연이의 예후는 경이로웠다. 이제는 동연이의 재활에 집중할 차례였다. 이남희 씨는 동연이를 안아들고 2년 6개월 동안 네 곳의 재활 병원을 쉬지 않고 전전했다. 그 결과, 동연이는 현재 20개월의 인지 수준으로 학습하고 있고, 흔들리는 눈동자 속에서 독립 보행을 위해 각별히 노력하고 있다. 음악치료, 감각통합치료, 언어치료 등도 꾸준히 병행하는 중이었다.
세상의 것이 아닌 위대한 사랑
지금껏 이남희 씨는 24시간도 모자를 만큼 필사적으로 동연이를 보살폈다. 그러는 동안 병원비는 1억 원에 육박했기에 그녀는 거처를 시댁으로 옮길 수밖에 없었다. 태아 보험을 들은 데다 보건소의 지원을 받았지만 가장인 연제광 씨(37)의 수입으로 생활을 꾸려나가기에는 솔직히 버거웠다. 사실 동연이의 병원비를 제외하고라도 첫째 동건이와 셋째 동욱이의 교육비 및 양육비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런데 아름다운재단에서 재활치료비를 지원해준다고 해서 너무 기뻤어요. 매달 재활치료비는 고정 지출이잖아요. 무슨 선물 같았어요. 게다가 작년에 다솜이 희망산타도 신청했거든요. 봉사자들이 동연이랑 재미있게 놀아줘서 정말 감사하더라고요.”
이남희 씨는 아름다운재단을 통해 동연이를 향한 각별한 사랑을 더욱 확인했다. 그러고 보면 막내인 동욱이도 동연이 덕에 태어났는지도 모르겠다. 그 당시 그녀는 동연이가 곁에 없는 상실감에 우울함이 몰려왔다. 그래서 부부는 상의 하에 셋째를 출산할 계획을 세웠다. 물론 동욱이 역시 이른둥이로 출산할까 봐 무척이나 두려웠다.
“감사하게도 동욱이는 예정일에 맞춰 태어났어요. 그런데 동건이, 동연이, 동욱이, 제가 오롯이 셋을 키워야 하니까, 한 아이한테 집중할 수가 없더라고요. 거기서 많이 속상했어요. 실제로 동연이 간병하느라 동건이한테 신경을 못 써줘서 동건이의 이가 모조리 썩기도 했거든요.”
이남희 씨는 세 자녀를 두루두루 챙겨주지 못해 미안했던 적이 많다. 그래서일까, 그녀는 세 아들이 그냥 건강하게 자라주기만을 소망했다. 그러나 그녀는 동연이에게만큼은 한 가지를 더 희망했다. 똑똑하지 않아도 괜찮으니까 타인의 시선이 불편하더라도 자신의 현실을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이 단단한 아이로 자라는 것이었다.
이쯤 돌이키면 그녀는 동연이와 함께 오늘까지 당도하느라 여간 애를 먹은 것이 아니었다. 그야말로 그녀는 단 하루도 동연이를 포기한 적이 없었다. 결코 사랑하지 않은 순간이 없었다. 죽음의 문턱에 선 동연이를 잡은 그녀, 생명을 살려내는 엄마의 사랑이란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듯도 하다. 이제 그 사랑은 동연이의 삶을 위한 단단한 채비를 해나가고 있다. 사랑 그대로의 사랑, 동연이는 어른이 돼서도 엄마 이남희 씨의 사랑만으로도 행복한 사람으로 살 수 있을 것만 같다.
글. 노현덕 사진. 임다윤
소소지램 변화사업국 특별사업팀│서지원 간사
이 세상을 움직이는 힘은 희망이다(마르틴 루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