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이른둥이의 작은 손을 잡아주세요!
고려대학교 안산병원 송지원 의료사회복지사
요즘 청년들을 일컬어 흔히 ‘삼포세대’라고 부른다. 연애와 결혼과 출산, 이 세 가지를 포기하는 청춘들이 늘고 있어서다. 여기서 끝나면 좋으련만 아이가 커갈수록 육아비용은 계속 늘어만 간다. 오죽하면 ‘베이비푸어(Baby Poor)’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났을까.
하지만 건강한 아이를 낳고 키우는 일은 이른둥이에 비할 바가 못 된다. 세상에 조금 일찍 태어난 이른둥이는 건강을 되찾는 것만도 이보다 몇 배 더 고단하고 힘든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외국인 가정에서 태어난 이른둥이 아이라면 상황은 더욱 심각해진다. 말도 안 통하는 이억만리 타국에서, 그것도 단일민족을 고집하며 외국인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나라에서 이른둥이 아이를 낳고 키운다는 것은 당사자가 아니면 결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참 다행한 일이다. 전국에서 가장 많은 외국인이 살고 있고, 그래서 외국 국적의 이른둥이 아이들이 많이 태어나는 안산지역에 그녀가 있어서 말이다. 단지 국적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세상 밖으로 밀려나는 작은 생명이 없도록 하기 위해 그녀는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아낌없이 쏟고 있다. 바로 고려대학교 안산병원 송지원 의료사회복지사다.
더 아픈 손가락을 위한 특별한 사랑
“신생아중환자실 입원자 명단을 확인할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요. 철수와 영희 대신 제임스나 줄리아처럼 낯선 외국 이름들이 하루가 다르게 늘고 있거든요. 병원 통계시스템이 아직 준비단계여서 정확한 숫자는 알기 어렵지만, 외국인 이른둥이 출산율이 급격하게 늘고 있다는 건 병원 관계자 누구나 체감하고 있는 사실이에요. 최근 일 년 사이에 아름다운재단에서 병원비 지원을 받은 다섯 명의 이른둥이가 모두 외국 국적인 것만 봐도 그렇고요.”
고대 안산병원에 둥지를 튼 지 올해로 10년이 된 송지원 의료사회복지사는 외국인 이른둥이 아이들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미처 다 자라지 못한 상태로 아이를 낳았다는 엄마의 죄책감, 매일 100만 원씩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어마어마한 병원비, 세상의 빛을 조금 일찍 봤다는 이유로 인큐베이터에서 고된 치료를 견뎌내야 하는 작은 생명들….
이른둥이로 태어난 아이와 그 부모, 누구 하나 애달프지 않은 이가 없지만 외국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이른둥이 아이들에게 유달리 마음이 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매일 출근하는 일터가 젊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절대다수를 이루고 있는 공단 인근에 위치하고 있다 보니 다른 어느 지역보다 외국인 이른둥이 아이들을 만날 기회가 많아서다. 일정한 조건만 갖추면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내국인 이른둥이와 달리, 한국 국적이 아니어서 또는 부모가 건강보험 가입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그 어떤 관심도 지원도 받지 못하는 작은 생명들이 너무나 안타까워서다.
“미국은 속지주의여서 자기 나라에서 태어나면 무조건 미국 국적을 줘요. 하지만 속인주의를 따르는 우리나라는 부모 중 한 명이 한국 국적이어야 한국인으로 인정해줘요. 문제는 대부분의 병원비 지원 제도가 한국 국적을 요구한다는 거예요. 외국인 이른둥이 아이들은 단지 부모가 외국 국적이라는 이유로 지원 대상에서 배제될 수밖에 없는 거죠.
물론 일부 민간재단에서 국적과 관계없이 병원비를 지원해주기도 해요. 하지만 부모 중 한 명이 건강보험 가입자여야 한다는 조건이 붙어요. 그렇다면 4대보험 직장에 다니지 않는 한 지역가입자로 건강보험료를 내야 한다는 건데, 외국인은 매달 내야 하는 돈이 같은 조건의 한국인보다 월등히 많거든요. 당장 입에 풀칠하기도 버거운 형편에 건강보험료까지 낸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죠. 현실적으로 외국인 이른둥이 아이들이 경제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거예요.”
송지원 의료사회복지사가 아름다운재단과 절친에 가까운 관계를 이어가고 있는 건 그래서다. 국적과 건강보험 어느 조건도 붙이지 않고 의료적으로 아프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모든 이른둥이에게 병원비를 지원해주는 거의 유일한 곳이기 때문이다.
“최근에 신생아중환자실에 입원한 우간다 아이의 경우 부모 모두가 난민 신청 중이었어요. 우간다는 종교적인 문제가 있을 경우 생명의 위협을 느낄 정도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가장 빨리 비자를 받을 수 있는 한국으로 왔는데, 첫째 아이는 다행히 건강하게 태어났지만 둘째는 1.06kg 극소저체중아로 태어난 거예요. 보통 2kg이 넘어야 퇴원을 고려하는데 그러자면 최소 3개월 입원에 치료비가 1억 원 정도 들거든요. 아름다운재단에서 도와주지 않았다면 지금쯤 어떻게 됐을지 생각만 해도 아찔해요.”
다름 인정하기, 사랑으로 끌어안기
세계보건기구(WHO)에서 정의하는 건강은 단순히 질병이 없고 허약하지 않은 상태가 아니다. 신체적으로 건강한 몸, 정신적으로 건강한 마음, 사회적으로 건강한 만남이 두루 균형을 이룰 때 비로소 건강한 상태라고 말한다.
의료사회복지사의 존재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의사와 간호사가 신체적인 건강을 책임지고 있다면, 의료사회복지사는 물리적인 치료 이외의 영역을 도맡고 있어서다.
수술로 종양을 없애고 약물로 염증 수치를 낮춘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아프다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문제들을 수반한다. 건강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 병에 걸렸다는 죄책감,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치료비에 대한 부담감, 옆에서 돌봐줄 가족이 없을 때 간병의 문제, 당뇨나 신장 투석처럼 장기적인 치료와 관리가 필요한 경우 등 외과적인인 치료 이외에도 다양한 영역에서 도움을 필요로 한다. 그 간극을 메우는 것이 바로 의료사회복지사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경제적 지원이 필요한 사람에게 조건에 꼭 맞는 지원 프로그램을 찾아 연결해주려면 전문적인 지식은 당연하고, 상처받은 마음과 스스로를 탓하는 마음을 다독이고 치료를 포기하지 않도록 끊임없이 독려하는 일은 열린 마음으로 환자와 깊이 공감하려는 자세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자기 일에 대한 소명의식이 없으면 결코 끝까지 해낼 수 없는 일이 바로 의료사회복지사인 것이다.
“솔직히 힘들 때가 많아요. 안타까운 사연들을 매일 접하다 보면 저도 모르게 우울한 감정에 빠져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에요. 그럴 때마다 ‘마음껏 숨 쉴 수 있고, 원하는 대로 움직일 수 있고, 아프지 않은 것에 감사하자’고 마음을 다잡는 편이에요. 저부터 건강해야 환자 분들의 건강을 도울 수 있으니까요.”
그녀에게 가장 큰 힐링은 단연 건강을 되찾은 환자들이다. 건강한 모습으로 병원 밖 일상으로 돌아가는 환자들을 지켜볼 때마다 그렇게 신날 수가 없다.
“입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640g으로 태어난 이른둥이가 입원했어요. 정말 손바닥만한 아이였는데 다행히 6개월 정도 치료받고 건강하게 퇴원했죠. 그리고 몇 달쯤 지났나? 어느 날 어머니가 병원에 찾아와 떡을 나눠주시는 거예요. 아이 백일 떡이라면서요. 그렇게 환하게 웃는 모습은 처음 봤어요. 그때 의료사회복지사 하길 참 잘했구나 생각했죠.”
하지만 환자들이 진정으로 건강을 되찾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더 많은 것들이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그녀다. 아름다운재단 말고는 기댈 곳 하나 없는 외국인 이른둥이 아이들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어느 기사를 보니까 현재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외국인이 170만 명쯤 되고, 2020년이 되면 250만 명이 될 거라고 하더라고요. 다문화 가족도 100만 명 수준이 될 거고요. 이미 다문화 사회로 진입한지 오래라는 거죠. 아직 단일민족사상이 강하게 남아 있어서 외국인이라면 일단 적대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지금처럼 출산율이 계속 내려간다면 어쩌면 가까운 미래에는 이 아이들 덕분에 유지되는 사회에서 살아가게 될지도 몰라요. 더 늦기 전에 그들을 마음으로부터 우리의 이웃으로 받아들이고 다양함에 대해 열린 생각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 시작은 외국인 이른둥이 아이들을 사랑으로 끌어안는 것일 테고요.”
혼자 꾸는 꿈은 꿈으로만 남지만,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고 했다. 이른둥이 아이들이 걱정 없이 치료받고 국적에 상관없이 모든 작은 생명들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나라, 송지원 의료사회복지사의 말처럼 이 꿈을 향해 우리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마음을 모은다면 단지 꿈이 아니라 가까운 미래가 되지 않을까?
글. 권지희 | 사진. 김흥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