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이라는 색연필
이른둥이 아이를 키우는 일은 하얀 도화지를 채우는 일이다. 각자의 색연필을 들고 다양한 색으로 조금씩 채워나가는 하루하루에는 기쁨 사이사이 어려움이 숨어있다. 힘을 합쳐 자신만의 색을 칠하는 이른둥이 가족에게 희망이라는 색연필을 쥐어주는 사람들이 있다. 건강가정지원센터에서 이른둥이 가족보듬사업을 함께 하는 김은정 상담팀장과 김보영 상담사가 그들이다.
엄마와 아이의 더 행복한 관계를 위해
이른둥이 가족보듬사업은 0세에서 6세까지의 이른둥이 자녀를 둔 가정을 대상으로 이른둥이 출산 및 양육으로 인한 가정의 어려움을 해소하고 건강한 양육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사업이다. 현재 12가족이 동대문구 건강가정지원센터에서 사례관리와 심리상담을 받고 있다. 아직 의사표현이 활발한 나이대의 아이들이 아니기에 놀이치료를 통해 아이들의 심리를 들여다보고 그와 동시에 엄마들의 심리상담도 병행한다.
“저희가 처음에 사업을 시작하면서 목표로 했던 건 어머니들의 심리안정이었어요. 그런데 어머니들은 아이들을 제일 먼저 걱정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이른둥이들의 놀이치료를 기반으로 어머니들의 심리상담, 부부와 가족 관계 사례관리를 큰 줄기로 잡고 사업을 진행하고 있어요.”
놀이치료는 모래놀이, 피규어 놀이 등 아이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다양한 놀이로 진행한다. 아이들이 피규어를 놓는 방법이나 모래를 쌓는 방법, 아이들끼리 노는 형태 등을 상담사가 관찰하여 아이들의 심리를 파악하고 어머니들에게 전달한다. 이어 어머니들의 심리상담이 이어진다. 대부분의 이른둥이 어머니들은 이른둥이들의 신체건강에만 집중하기 때문에 본인의 심리에 무감각한 경우가 많다. 그러나 부모의 심리상태가 안정이 되어야 이른둥이들이 잘 성장할 수 있기에 어머니들에 대한 심리상담은 이 사업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뤄지는 부분이다.
“현재 장애를 겪고 있는 이른둥이 아이들이 있는 가정을 대상으로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른둥이가 장애가 있다 보니 어머니들의 관심사는 오로지 아이의 신체발달인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심리치료는 무척 중요해요. 이번 사업을 하면서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어요. 놀이치료를 하면 이른둥이들이 보여주는 또래관계 설정이라든지 욕구들을 어머니들이 파악하게 되는데, 그러다보면 심리적으로 이른둥이에 대한 건강한 분리가 가능해져요. ‘내가 어떻게 했을 때 아이들이 행복하구나,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했지만 아이에게는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구나’와 같은 생각들이 가능해지는 거죠.”
정기적인 상담프로그램의 필요성
상담을 진행하면서 어머니들의 마음가짐도 달라졌다. 지원을 받는 이른둥이 가정의 어머니들은 마음의 짐과 함께 경제적인 부담도 같이 지는 경우가 많다. 이른둥이들을 매일 재활치료실에 데려가야 하고 재활치료에 들어가는 비용도 부담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어머니들은 본인 스스로 자신들의 마음을 돌볼 여유를 잊고 만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어머니들과 소통하는 김보영 상담사는 어머니들이 자신의 얘기를 편하게 하게 된 것을 가장 기쁜 일로 꼽는다.
“어머니들께서 좋았다고 말해주실 때가 가장 기뻐요. 놀이치료 끝내고 아이들이 웃는 횟수가 많아졌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 기쁘고요. 무엇보다도 이른둥이를 돌보면서 힘들다는 얘기를 못하던 어머니들이 저에게 편하게 자기 얘기를 해주실 때가 제일 성취감이 있죠. 한 예로 어머니 혼자 이른둥이 쌍둥이를 포함해 아이들 셋을 돌보는 가정이 있어요. 결혼하면서 바로 육아를 시작하고 또 이른둥이를 낳아 키우고…… 어찌 보면 몇 년간 본인의 삶이 없으셨던 거죠. 친정에도, 친구에게도 말 못하고 일상을 버티고 계셨는데 상담을 끝내고 속이 후련하다고 하시는 거예요. 처음으로 속내를 털어놓으신 거죠. 상담을 통해서 정서적으로 스트레스가 해소 되고 어머니들의 마음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발현되는 걸 볼 때 가장 기쁩니다.”
일반적으로 이른둥이 아이를 낳은 엄마들은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게 된다. 이른둥이가 크면서 장애를 갖게 되는 경우 그 죄책감은 두 배로 커지게 된다. 그런 불안한 마음들이 결과적으로는 이른둥이와 엄마의 관계, 그 가족의 관계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른둥이 가족보듬사업의 최종 목표는 가족 심리상담과 자조모임 및 집단 상담을 통해 불안감을 해소하고 안정적인 가족관계를 이루도록 돕고 이른둥이가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른둥이 동생을 둔 형의 경우 오히려 형의 심리상태가 위축이 되는 경우도 있거든요. 어머니의 모든 관심사가 이른둥이 아이에게 향해 있다 보니 장애가 있더라도 이른둥이 아이의 정서는 안정적인데 오히려 형은 소외감을 느끼고 또 무조건 양보해야 한다는 강박에 싸여서 감정적으로 소극적이 되는 거죠.”
이런 아이들의 심리상태를 포착해서 어머니와 형제의 감정적인 불평등을 조화롭게 맞추는 일도 놀이치료와 심리상담을 통해 가능하다. 한 번에 답이 나오는 일이 아니다보니 꾸준한 노력과 인내가 필요하지만 상담이 거듭될수록 아이가, 어머니가 밝아지는 게 느껴질 때마다 가족 상담이나 가족 지원사업의 필요성을 깨닫는다. 김은정 팀장은 단기간에 끝날 수 없는 일이니만큼 장기적인 자조모임이나 개인상담 프로그램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장애가 있는 이른둥이 가정의 경우 사각지대에 속해 지원을 받기 어려운 취약계층인 경우가 많다. 일반적인 소득을 웃도는 가정이라고 할지라도 재활치료비를 자기 부담으로 하는 경우가 많고 아이를 맡기기 어려워 외벌이 가정이 된다. 생활수준이 떨어진다고 해도 지원 대상자가 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심리 안정을 위한 심리정서 지원사업은 성과가 바로 드러나지 않다보니 예산편성이 힘든 경우가 많아 정말 도움이 필요한 부분임에도 불구하고 지원을 받기가 어렵다.
“외국의 경우 아예 이른둥이가 태어날 때부터 병원에서 심리지원 서비스가 이뤄지는 사례가 있더라고요. 아이들을 돌보기 전에 엄마의 심리상태 먼저 들여다볼 수 있는 거죠. 그러면 가족 간에 불화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어요. 우리나라 복지가 점점 성장하는 단계에 있고 그렇다면 초기부터 시작하는 심리상담 서비스도 필요하지 않을까요? 눈에 보이지 않지만 꼭 필요한 사업은 사실 국가에서 예산 편성을 받기 어려운 경우가 많거든요. 그래서 이런 상담 프로그램은 기부자님들의 도움이 없이는 이뤄질 수가 없는 부분이기도 해요.”
이른둥이라는 것만으로도 아이에게 미안함을 가지고 있는 어머니들의 다친 마음을 어루만지고 엄마와 아이들이 건강한 유대관계를 갖게 해주는 것이 김은정 팀장과 김보영 상담사의 공통 목표다. 아이들의 놀이치료를 기반으로 가족 구성원 모두의 마음에 희망이라는 색을 칠해주는 일의 즐거움. 오늘도 두 사람은 더 진한 색의 희망을 품는다.
글 이경희 l 사진 조재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