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 같은 지예와 만나다!
“누구세요” 소리치며 현관으로 달려 나온 세 살배기의 환한 미소. 손님을 안내하는 폼이 제법 능숙한 다예는 김선호&박진아 부부의 둘째다. 낯가림 없이 호기로운 다예를 따라 들어선 거실 한 켠의 의자에 첫째 지예가 앉아있다. 손님 마중을 끝낸 둘째는 어느 새 언니 곁을 맴돌며 이것저것을 참견한다. 자매의 다정한 투덕거림 언저리, 소파에 앉아 아이들을 바라보는 박진아 씨가 갓 태어난 막내를 안고 있다.
50일밖에 안 된 막내는 엄마의 심장소리를 자장가 삼아 곤히 잠들어있다. 눈으로는 첫째와 둘째를 좇고 품안엔 막내를 둔 박진아 씨가 느릿하게 움직인다. 그들의 나른한 여름 한 때는 폭염으로 성마르기 쉬운 바깥세상과 다르다. 주변마저 수굿하게 만드는 단란한 가족의 평안이랄까. 그것은 김선호&박진아 부부가 5년여 간 부단히 노력해서 얻은 결과다. 임신 7개월부터 자라지 않던 지예를 39주차에 어렵게 출산한 뒤 겪은 낙담과 절망이 길어낸 소중한 순간이다.
“남편과는 동갑이에요. 고등학교 때부터 사귀어서 스물다섯에 결혼했죠. 그리고 이듬해인 스물여섯에 첫째, 지예를 낳았어요. 선물처럼 와준 지예가 기뻤죠. 기반이 없긴 해도 젊어서 뭐든 할 수 있을 것만 같던 출발선이었거든요. 그때만 해도 지예가 아플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으니까요. 7개월 동안의 인큐베이터 생활은 시작에 불과했어요.”
출생 당시 2.08kg이었던 지예는 스스로 호흡하지 못했다. 먹는 것도, 체온 조절도 어려웠다. 인큐베이터에서 겨우 그 세 가지를 추스르고 퇴원했지만 심장은 시한폭탄과도 같았다. 결국 대동맥을 묶는 것을 포함해 총 세 차례의 수술이 불가피했다. 바늘 하나 꽂는 것도 안타까운데 수술이라니 눈앞이 캄캄했다. 제대로 울지도 못하는 지예가 그 고통을 견뎌낼 순 있을까 생각하면 눈물이 앞섰다.
“심장수술 이야기 듣고 남편도 저도 정말 많이 울었어요. 그래도 그것만 하면 자가호흡을 할 수도 있을 테니 잘 넘어가자고 마음먹었죠. 다행히도 1년 후엔 호흡기를 땔 수 있었고 재활치료도 가능해졌어요.”
꾸준한 재활치료의 기적!
재활치료를 시작할 때만 해도 지예는 목도 가누지 못한 채 누워서 생활했다. 그런 지예를 데리고 아주대학교병원 외래 재활치료를 다니는 게 만만할 리 없었다. 가장 힘든 건 버스를 타고 안산에서 수원까지 이동하는 것. 안산 최재활의학과의원 낮병동으로 옮겨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버스로 오가는 건 나았다. 간혹 검사 때문에 서울까지 가야 할 땐 유모차를 끌고 지하철을 타야 했다. 단순히 물리적인 이유만으로 힘든 건 아니었다. 거리를 오가면서 맞닥뜨리는 사람들의 시선이 박진아 씨를 위축시켰다. ‘아픈 아이’에 대한 편견은 고단함보다 고통에 가까웠다.
“치료를 그만두고 싶을 만큼 어려웠어요. 그래도 꾸준히 하면 아이가 나아진다니 포기할 순 없었죠. 그러다 둘째 출산 예정일이 다가오자 운전면허를 따야겠다고 결심이 서더라고요. 갓난아기까지 데리고 다닐 엄두가 안 났어요. 아기를 맡길 상황은 안 되니까. 그래서 다예 출산 한 달 전에 운전면허 땄죠. 그로부터 3년이 지났네요.”
어떤 상황에서도 재활치료를 멈추지 않았다. 박진아 씨는 물리치료와 작업치료, 인지치료, 음악치료 등을 꾸준히 제공하는 게 지예의 건강을 지키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랬더니 조금씩 상황이 달라졌다. 누워있던 지예가 양팔로 몸을 지지하더니 이내 무릎으로 지지하기 시작했고, 배밀이가 가능하더니 기어 다니게 되었다. 팔로 물건을 치고 잡는 동작이 나타나는가 싶더니 한순간 엉덩이가 들렸고 이젠 스스로 앉아있을 수도 있다. 간절히 믿고 싶었지만 믿기 어려웠던 재활치료의 결과가 기적처럼 눈앞에 펼쳐졌다.
“재활치료를 꾸준히 하면 대근육 활동에 진척이 있을 거란 신뢰가 있어요. 근긴장도도 이전보다 증가했고요. 현재 지예는 양쪽 청각부진과 오른쪽 시력이 없어 왼쪽시력에 의존하고 있거든요. 여러 장애 때문인지 균형 감각이 많이 떨어지고 복부 근육이 없어서 흔들림이 많아요. 재활치료만 꾸준히 하면 그 부분 또한 나아질 거라고 생각해요.”
모두와 나누며 더불어 살다!
지속적인 재활치료를 위해 간과할 수 없는 건 돈이다. 지예를 치료하다보면 물리치료는 물론이고 비급여치료인 감각통합치료, 인지치료, 음악치료 비용과, 소안구증으로 인한 1년 주기의 오른쪽 의안 교체, 청력을 위한 보청기 구입, 심장과 시력의 정기검진 등 비보험 의료비가 주기적으로 발생한다. 워낙 체력이 떨어져서 장염이 걸려도 완전 탈수로 위험하고 중이염이 낫지 않아 환기관삽입도 수차례 가져야 한다. 잦은 감기와 폐렴 치료까지 포함한다면 매달 넉넉잡아 200만 원 가량의 치료비를 마련해 둬야 한다는 이야기. 한마디로 빚 없이 재활치료를 지속하는 게 쉽지 않다는 말이다.
“현재 지예는 지적 2급, 시각 6급, 장애2급 진단을 받았는데 그게 보통의 5~6개월 아이들과 비슷하대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기 위해서라도 재활치료를 멈출 수 없어요. 지예랑 같이 시작해서 졸업한 친구도 있는데 걸어서 어린이집도 다녀요. 그런 거 보면 부럽죠. 그래서 더 열심히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남편 월급만으로는 부족해요. 생활비와 치료비를 생각하면 암담하죠. 그 와중에 최재활의학과의원 사회복지 선생님을 통해서 다솜이작은숨결살리기 치료비 지원사업에 신청하게 된 거예요. 꽉 막힌 숨통을 틔어준 소중하고 고마운 지원사업이에요.”
2016년 1월부터 12월까지 지원받게 된 박진아 씨는 보험 면책기간 등의 이유로 잠시 미루려 했던 지예의 치료를 지속할 수 있어서 기쁘다고 덧붙였다. 단 1~2주만 쉬어도 원점으로 돌아가는 재활치료의 특성상 지속가능한 치료는 굉장히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박진아 씨는 기부자가 정말 고맙다. 끊어진 징검다리를 잇는 단단한 바위덩이인 셈. 이번 치료비 지원사업은 박진아 씨에게 ‘더불어 사는 것’을 다시 한 번 곱씹는 계기가 되었다.
“외래만 다니면 낮병동이란 걸 알기 어렵고 낮병동을 모르면 여러 지원 정보를 얻기 어려워요. 함께 한다는 건 그것만으로도 큰 의미를 지녀요, 특히 우리 같은 이른둥이 엄마들은요. 앞으로 어느 정도 안정을 찾으면 지예가 받은 것만큼 누군가에게 나눠줬으면 좋겠어요.”
그 맥락에서 박진아 씨는 이제 막 이른둥이와 세상을 헤쳐 나가기 시작한 양육자에게 낙담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우리의 시선이 아픈 아이라는 낙인을 찍는 거라고, 아이들은 다만 불편할 뿐, 다른 기준을 가지고 있으니 슬퍼하지 말자고 다독인다. 꾸준히 치료하다 보면 계속 나아질 것이라는 신념. 그것을 항상 뒷심처럼 품어주길 당부한다. 그것은 일부러 찾은 희망이 아니다. 지예와 더불어 살며 박진아 씨가 터득한 보편이자, 낙담과 절망이 길어낸 소중한 평안의 토대다.
글 우승연 l 사진 임다윤
류정묵
반드시 나아질라고 믿어요.
부모님들 힘내요.
다솜이작은숨결살리기
다솜이작은숨결살리기가 이른둥이와 가족들을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