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둥이를 향해 달려라, 루돌프 썰매

인터내셔널택시 기사 홍영택 봉사자

  세월은 둥글게 퍼진다. 제아무리 이상한 지문(指紋)이어도 원의 일부를 그리고, 곁 없이 바투 앉은 나이테도 끝내 곡선으로 내달린다. 시간에 시간을 더할수록 둥글어지는 삶. 그래서 그 곡선을 가만 들여다보면 ‘아하’ 무릎을 치게 된다. 순환하는 삶으로 모진 귀퉁이를 토닥이란 말이겠지 싶어 고개를 주억거리고 만다. 물결인 양 둥글게 퍼지는 세상 것들이 아름다울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 세월을 무엇으로 채웠느냐는 차후 문제다. 그저 오랜 시간을 지냈기에 아름답고, 숱한 고단함을 견뎠기에 또한 아름답다. 예순의 홍영택 씨 역시 그리 둥글게 삶을 빚었다.  

인터내셔널택시 기사 홍영택 봉사자

  친해지기 위해 기부를 선택하다   “외국인에게 고품격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수익을 증대시키겠다는 취지로 ‘인터내셔널택시’를 시작했습니다. 법인, 개인, 미8군에서 일하는 스마트택시, 모범택시, 대형택시 이렇게 5개 단체가 모여서 만들었죠. 서울시에서 주관하는 외국어시험과 인성시험을 패스한 사람에게 자격증을 주는데, 2년에 한 번씩 갱신 시험을 봅니다. 현재 380명 정도가 가입돼 있어요.”   2009년 5월 1일에 발기했으니 벌써 5년째다. 처음엔 서울시의 위탁사업체로 한국스마트카드회사가 인터내셔널택시의 운영을 담당했으나 시간이 흐르며 상황이 달라졌다. 운영상의 시행착오가 인터내셔널택시 대중화의 발목을 잡았지만, 그래도 차별화된 서비스로 남다른 경험을 선사하겠다는 그들의 패기는 여전하다.   “서울시에서 조사해 본 결과 외국인에게 저희 택시 호응도가 좋대요. 생각해보면 당연한 결과예요. 낯설고 두려운 타국에서 언어가 통하는 누군가를 만난다는 게 얼마나 안심이겠어요. 게다가 폭리를 취하지 않는 안전한 교통수단이니 만족도가 높은 거죠.”   홍영택 씨는 발기한 다음해인 2010년 2기 회장직을 맡았다. 단일 사업체도 아니고 사장이 있는 것도 아니라 조직 형성이 어려울 수밖에 없는 인터내셔널택시의 문제를 타개하려고 그가 선택한 것은 유대(紐帶)와 연대(連帶)였다.   “시스템 없이 운영하려니 덜커덩거리는 게 당연하죠. 그래서 제가 회장을 맡았던 2009년, 아름다운재단 이영주 간사님께 봉사를 하고 싶다고 문의 드렸어요. 인터내셔널택시 구성원이 좀 더 성숙한 목적으로 만나기를 바랐어요. 좋은 일을 함께 하며 결속력을 다지고 싶었다고나 할까요. 그래서 다솜이작은숨결살리기의 산타 행사에 참여하게 된 것입니다.”   380여명의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한 마음으로 움직일 수 있을까 고민하던 중에 떠오른 봉사활동. 처음엔 누군가를 ‘돕는다’는 사실보다 이렇게 ‘착한 일을 하는 인터내셔널택시’에 방점을 찍었다. 이른둥이에게 달려가는 산타의 썰매가 된다는 그림도 좋았다. 한 마디로 홍보 차원의 재능기부였다.  

  이른둥이의 순수한 미소에 반하다   여러 회사의 연합체라 행사 참여를 유도하는 작업이 만만치 않았다. 공지만으로는 회원이 모일 리 없었다. 그래서 당시 회장이던 홍영택 씨가 나섰다. 일일이 만나 모월 모일 모시 진행되는 다솜이작은숨결살리기 산타 행사 기부에 참여해달라고 정성껏 설득했다.   “산타로 행사에 참여하는 회원이 있는가 하면, 단순히 썰매 역할만 하는 회원도 있었어요. 못해도 반나절을 소요하는 행사라 처음엔 다들 부담스러워했죠. 수입과 직결되는지라 단순한 재능기부일 수 없거든요. 개인택시는 그나마 나아요. 회사에 매여 있는 분들은 그날그날 채워야 할 금액이 있잖아요. 부탁하는 입장에서 그게 참 마음에 걸리더라고요.”   방법은 하나였다. 좋은 일인데다 우리를 홍보할 수 있는 기회라고 열심히 설득하고 독려하는 것. 우여곡절 끝에 첫 기부를 마쳤고 결과는 상상 밖이었다. 열정적인 호응에 홍영택 씨는 어리둥절했다. 봉사나 기부를 어렵게만 생각했는데 좋은 기회였다, 시작이 어렵지 한 번 발을 떼니 진심을 쏟게 되더라, 이른둥이에게 힘이 되는 순간을 함께 하니 좋았다, 생명을 향해 달리니 절로 기운이 났다는 게 총평이었다. 가슴 따뜻한 서비스를 최우선 과제로 여기는 인터내셔널택시 회원들에게 그날의 경험은 묘한 자극이 되었다. 루돌프 썰매가 불러온 사명이랄까. 처음 행사를 기획했던 홍영택 씨에게도 이른둥이와의 만남은 남달랐다.   “누군가를 기쁘게 해준다는 게 좋아요. 어린이의 순수한 미소를 선물 받은 느낌이에요. 계속 이어질까 싶었는데 올해로 4번째네요. 작년엔 눈이 많이 와서 고생을 좀 했어요. 사고가 나기도 했고 중간에 못 가겠다는 연락도 받았고… 그래서인지 더 기억에 남아요. 갈수록 참여 회원 모집에 애를 먹지만 끝까지 이 기부를 연중행사로 이끌고 싶습니다. 그게 제 바람이에요.”  

다솜이희망산타 봉사에 나선 인터내셔널택시 기사들. 하루 영업을 포기하고, 이른둥이를 위한 봉사에 나선 이들의 웃음이 밝기만 하다. 맨 왼쪽 첫번째가 홍영택 봉사자.                ⓒ 아름다운재단

 

선순환을 경험하며 힘을 얻다 행사에 참여하기 전엔 이른둥이를 몰랐다고 홍영택 씨는 이야기한다.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작은 생명을 구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놀라웠다고도 고백한다. 돌아보면 ‘친절’에 머물러 있던 서비스의 개념이 다솜이작은숨결살리기를 만나면서 좀 더 확장된 게 사실이다. 그리 되니 밖을 보지 않고 일에만 매진하던 지난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났단다. 너무 열심히 살아내느라 관심 주지 않던 주변 사람들이 하나둘 눈에 띄기 시작했다. 하나의 생명을 지켜내기 위해 여러 사람의 관심과 사랑이 필요하다는 것도 깨달았다.   따지고 보면 무엇이든 접촉해야 진짜와 만날 수 있다. 택시를 몰기 전엔 택시가 뭔지 몰랐다. 처음엔 택시를 A라는 지점에서 B라는 지점까지의 이동하는 수단으로만 생각했다. 한데 인터내셔널택시를 운전하면서 ‘목적지까지 최선을 다해 손님에게 만족감을 선사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무역회사를 다녔는데 잘 안 됐어요. 제조업을 시작했는데 경기가 안 좋아져서 더 이상 지속할 수 없더라고요. 그때가 13년 전인데 늙어서도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싶더라고요. 그래서 개인택시를 선택한 거예요. 몸이 허락하는 한 이 일을 계속하고 싶어요. 손님들의 만족스런 표정이 제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이거든요.”   택시 운전을 멈추는 날까지 이른둥이와 매년 만나기를 희망하는 홍영택 씨. 그는 이른둥이가 인터내셔널택시 회원들에게 어떤 희망을 선사한다고 귀띔한다. 저마다의 사연으로 가슴 속 깊이 아픔을 품고 있는 택시기사들이라서다. 그래서 이른둥이와 기부는 이제껏 생각하지 못한 아름다운 위로이다. 누가 누구를 다독이는지, 어떤 게 먼저이고 얼마나 더 큰 위로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된다는 사실이 중요할 뿐이다. 그것은 홍영택 씨가 인터내셔널택시를 운전하면서, 다솜이작은숨결살리기 산타 행사에 참여하면서 얻은 진정한 선순환이다.  

글. 우승연 | 사진. 정김신호

 
 

아름다운재단은 교보생명과 함께 다솜이작은숨결살리기기금을 토대로 ‘2.5kg 미만 또는 37주 미만으로 태어난 이른둥이 입원치료비 및 재활치료비 지원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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