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사회단체 및 시민모임의 다양한 공익활동을 지원하는 변화의시나리오 프로젝트, 2021년 사업 뒷이야기를 담습니다. 오늘 소개할 모임은 제주 순정 TV입니다. 2021년 아름다운재단 변화의시나리오 프로젝트를 통해 ‘’사라지는 제주, 제주를 지키는 사람들’에 대한 현장기록’ 사업을 진행했습니다. 유튜브 미디어를 통해 정기적으로 제주 난개발과 기후위기의 징후가 심각한 현장을 직접 찾아다니고 취재하여 시민들이 영상으로 볼 수 있도록 하여 사회적 파급을 만들어 냈습니다. |
2019년, 그가 이 팀을 시작한 목표는 단 하나였다. 제주도청 앞 천막촌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국에 전하는 것. 달랑 휴대전화 2개로 소외된 목소리를 담기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니던 영상 기록팀이, 지금은 제주의 다양한 이슈를 함께 고민하는 독특한 지역의 매체로 자리잡았다. ‘순정’이라는 키워드와는 썩 어울리지 않게 제주 구석구석에서 발생하는 환경 문제를 깊이 있게 다루고 있다. 얼핏 엉뚱해 보이는 이름에 담긴 의도는 제주를 향한 그들의 순수한 애정의 표현일 것이다.
제주의 현안을 바라보는 시선
2019년은 제주 제2공항 건설 문제를 두고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충돌하며 팽팽한 긴장감이 맴돌던 시기였다. 공항 건설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하나둘 도청 앞에 천막을 치고 농성을 시작하면서 천막촌이 형성되었고, 이 문제를 관심 가지고 지켜 보던 부순정 대표는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세상에 전하고자 마음먹었다. 그렇게 작지만 뚜렷한 성격을 가진 지역의 작은 매체가 시작되었다. 1년이 지난 2020년 5월, 그는 제주의 현안을 더 많은 사람에게, 올곧게 전하기 위해 촬영과 기획 인력을 보강하여 유튜브 채널 ‘제주순정TV’를 설립했다.
제주의 환경은 모든 것의 시작
제주순정TV가 가장 주목하는 이슈는 환경이다. 제2공항, 군사기지, 난개발 등의 토건 사업들이 갖는 문제를 다루는 한편, 최근 더욱 심해지고 있는 기후 위기의 여파도 다루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환경파괴에 대한 문제의식이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부 대표가 환경에 이토록 집착하는 것은 바로 제주섬의 특성 때문이었다.
“제주에서 환경은 정말 중요한 문제예요. 제주의 과거와 현재, 미래는 이 환경이라는 문제와 떼어 놓고 말할 수가 없죠. 섬이 가지는 유한성은 제주도민의 삶, 그리고 독특한 지형과 그곳에서 파생된 관광 산업 역시 지속가능하지 못함을 떠올리게 해요. 언제까지 어디서 어떻게 지하수가 나올지 모르겠고, 척박한 땅과 이상기온에서도 작물의 생산량 유지를 위해 점점 증가하는 농약 사용량이 결국 어떤 피해로 연결될지 몰라 불안에 떨고 있거든요.”
최근 환경에 대한 도민들의 관심이 높아지며, 도민을 대상으로 한 주요 설문조사에서 ‘지금의 환경을 보존해야 한다’는 의견이 80%에 달했다. 그리고 환경 문제와 관련한 정책 및 사업이 끊임없이 논의되고 있다. 하지만 개발이라는 실행 과업 앞에서 70만 인구가 사는 이 섬의 지속가능성이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다고 부 대표는 말한다. 이런 상황 속에서 활동가들은 매체의 존재 이유를 확신하게 되었고, 구독자 수가 늘어나는 것을 보며 활동 목표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다양한 계층의 참여가 다양한 시선으로
“제가 참 많은 사람을 만나왔지만, 그중에 정말 기억에 남는 분이 계세요. 성산에서 철새를 탐조하는 김예원 님이신데요, 나이가 20대 정도 되었을까요? 정말 어렸어요. 이분은 새를 너무 사랑해서 많은 사람과 함께 새를 탐조하며, 그 매력을 전하고 있어요. 큰 충격을 받았죠. 40~50대인 저희 세대는 제주 환경이 무너지는 것에 절박함을 느껴 문제 제기를 하기 시작한 것인데, 이 젊은 친구는 자신이 좋아하는 대상을 보존하기 위해 전문성을 키우고, 실제로 그 문제를 현장에서 해결하고 있는 거예요. 단순히 새를 예뻐하고 즐기는 것이 아니라, 그로부터 동기를 얻어 행동으로 옮기는 모습에서 많은 시사점을 느꼈던 것 같아요.”
올해 2명의 인원이 팀에 합류했다. 그중에는 10대도 있다. 10대부터 60대가 협업하면서 더 폭넓은 이슈를 다룰 수 있게 되었다. 요즘은 그것이 새로운 동력이 되어, 지금까지와는 다른 에너지를 발산하는 것 같다고 부 대표는 생각했다.
이 프로젝트에 관심을 두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제주순정TV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환경을 당연히 지켜야 한다’는 생각은 모두 하지만, 막상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던 분들이 제주순정TV를 통해 ‘나도 무언가를 해야겠다’라고 연락이 오고 있다고 한다. 계층의 확산이 많은 변화를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지역의 대안 매체, 다음을 고민하다
영상을 하나 만들 때마다 여러 차례의 기획회의와 자료조사, 인터뷰이 섭외, 대본 작성과 검토, 영상 촬영, 편집과 수정, 업로드와 홍보, 피드백 등 많은 과정을 거친다. 매 과정마다 큰 공이 들지만 편집을 마쳤다고 해서 모두 송출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2020년 9월, <훈데르트바서와 각시물_섬 속의 섬, 우도 난개발 과정의 문제점들>과 <우도에서 만난 우도 사람들_변화하는 우도의 고민>이라는 주제로 촬영을 진행했다. 올해 3월 훈데르트바서 파크는 결국 개장했고, 제주순정TV는 그 현장을 다시 찾아갔다. 공사 과정에서 톨칸이해변으로 가는 길이 무너진 모습을 목격했다. 그 장면을 본 순간 팀원들은 큰 좌절에 빠졌다. 함께 천천히 오래도록 자연과 함께하고 싶다는 바람이 무색하게 우도는 점점 콘크리트로 뒤덮이고 있었다.
매년 100만 명 관광객이 입도하며 발생한 문제와 주먹구구식 개발 사업 등으로 우도의 가치는 점점 퇴색하고 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주민들 간의 갈등의 골이 깊어져, 이제는 이 중요한 문제에 관해 논의하지 않는 점이다. 결국 올해 9월에 촬영한 후속 취재 영상은 방송으로 송출할 수 없었다. 주민들의 침묵 속에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겠다는 무력감을 느꼈다.
요즘 부 대표는 제주순정TV가 맞닥뜨린 근본적인 한계에 대해 고민한다.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다양한 이슈들이 여기저기서 제기되고 있지만, 정작 우리가 매체로서 할 수 있는 실질적인 역할이 무엇일까 하는 고민에 자주 빠진다.
“우리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에 대한 근본적 물음을 던지게 되었어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후속 활동을 이어갈 수 없는데) 이렇게 들춰 내기만 하는 게 의미가 있을까?” 매체의 역할이란 사실과 정보를 객관적으로 전달하는 데 충분한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겠으나, 너무나 중요하고 절실한 문제들이 제대로 논의되지 못하고 묻히는 실상을 현장에서 체감하니, 취재 이후의 역할에 대해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는 것 같았다.
제주순정TV 부순정 대표의 한마디
“매 순간 생각보다 깊은 고민을 하게 되는데, 영상을 찍는 전날까지도 거의 매번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였어요. 자료를 정리하다 보니, 결국 우리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에 대한 근본적 물음을 던지게 된 거였죠. 우리가 해결도 할 수 없는데, 이렇게 들춰내야만 하는 게 의미가 있을까? 고민은 계속 깊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