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체어가 실내놀이터에 들어간다는 게 상상이 좀 안 돼요. 휠체어 바퀴가 더럽다고 말하니까요. 워터파크에 갔는데 휠체어를 가져왔더니 바퀴를 닦으라고 그래서 입구에서 저랑 남편이랑 걸레 가지고 막 휠체어를 닦아서 들어갔거든요.”
“(실내놀이터에 보면) 짚라인 있잖아요. 그런 거를 하고 싶어해요. 다른 애들 내려오는거 보면 스릴 있고 좋아보이잖아요. 타고 싶은데 못 타니까 시무룩한 거예요. 안전 장비가 있거나 위로 올라갈 수 있는 장치가 있어서 아이가 제한 없이 이용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 무장애 실내놀이터 조성 매뉴얼 內 장애아동 보호자 인터뷰 발췌
코로나19, 미세먼지로 야외활동이 어려워진 지금, 어린이와 보호자들에게 ‘나가서 논다’는 말은 낯선 표현이 되었습니다. 오히려 키즈카페와 같은 민간형 실내놀이터로 발걸음을 옮기는 게 자연스워졌는데요. 장애아동과 보호자들의 경우 휠체어 출입을 거부당하거나 아이와 함께 들어갈 수 없어 발길을 돌리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아름다운재단과 무장애연대는 모든 어린이들이 마음껏 놀 수 있는 무장애 통합 실내놀이터를 조성하기 위해 2022년 한 해 동안 힘을 모았어요. 그 결과 서울시 양천구에 무장애 실내놀이터 조성을 진행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2024년 상반기 완공을 목표로 열심히 달려가고 있어요. 자세한 소식은 아래 보도자료를 통해 보실 수 있습니다.
[보도자료] 아름다운재단-서울시-양천구, 통합 실내놀이터 조성한다
무장애연대 김남진 국장(이하 김남진), 아름다운재단 임주현 매니저(이하 임주현)를 만나 함께 만들어온 변화와 앞으로 만들어갈 무장애 실내놀이터의 모습에 대해 상세히 들어봤습니다.
실내놀이터, 장애아동만 예외여야 할까요?
Q.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무장애 통합놀이터 이용이 쉽지 않아졌어요. 장애아동과 보호자들의 경험을 조금 더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김남진: 장애아동과 보호자가 실내놀이터 출입을 거부당한 적이 있어요. 인권위에 차별 구제 진정을 할지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는데 아이들이 어떻게 입장한다고 해도 놀 수 있는 구조가 아니더라고요. 문턱이 있거나 바닥이 쿠션으로 되어있으니 휠체어로는 접근조차 어려웠어요. 고민이 깊던 차에 아름다운재단과 연이 닿아서 2022년부터 무장애 실내놀이터 지원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Q. 최근 지자체마다 공공형 실내놀이터를 조성하고 있는데 같은 상황인가요?
김남진: 키즈카페같은 민간형 실내놀이터와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공공형 실내놀이터 모두 비장애아동을 위주로 설계되어 있어요. 놀이기구나 시설물을 장애아동이 이용하기는 어렵죠. 무엇보다 미취학 아동 위주의 공간이다 보니 시설물이 아이들에게 맞춰져 있어요. 한번은 발달장애 아동이 정글짐에 들어갔다가 겁을 먹어서 나오지 못하고 있는데도 입구가 좁아서 보호자가 들어가서 데리고 나오기가 힘들었다고 해요.
무장애 통합놀이터 조성 이후 7년, 달라진 세상의 시선
Q. 아름다운재단과 무장애연대는 2015년 어린이대공원에 ‘꿈틀꿈틀놀이터’라는 무장애 통합놀이터를 만든 인연이 있어요. 조성 이후 그간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김남진: 많은 것이 달라졌어요. 실외놀이터를 리모델링할 때 장애아동이 놀 수 있도록 고려하게 되었고, 지자체에서 내는 입찰이나 공고에 보면 평가 기준으로 장애아동 접근성이 있습니다. 또 다른 지자체에서 놀이터를 만들 때 꿈틀꿈틀놀이터의 놀이기구를 벤치마킹하기도 했어요. 바구니 그네, 턱이 없는 평평한 회전무대를 설치했었는데 이후에 같은 놀이기구가 많이 설치되었어요. 굳이 무장애 통합놀이터를 가지 않더라도 동네 놀이터에서 놀이기구를 하나라도 탈 수 있게 된 거죠.
임주현: 예전에는 장애 아동들이나 보호자들이 놀이터에서 노는 것을 크게 기대하지 않았는데 통합놀이터 조성 이후에는 아이들이 충분히 놀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놀 권리가 있다는 인식이 확대된 것 같아요.
Q. 무장애 통합놀이터가 장애아동도 놀 수 있는 공간으로 소개되지만 사실 비장애아동과 함께 놀수 있는 통합적 관점의 놀이 공간이잖아요. 조금 더 쉽게 설명을 해주신다면요?
김남진: 장애아동만을 위한 공간은 아니예요. 아이들마다 신체 능력이나 특성이 다르니 놀다가 어른이나 언니, 오빠의 도움을 받기도 하는 것이 자연스럽잖아요. 키가 작은 아이들이 높은 곳에 있는 링을 잡을 때는 보호자가 들어서 안아주거나 발판을 놓아주기도 하는 것처럼요. 어떤 놀이 시설은 불편할 수도 있겠지만 불가능하지 않도록 도와줄 수 있어야 하고, 또 장애가 드러나는 게 자연스러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임주현: 2022년 무장애 실내놀이터 지원사업으로 통합적 관점을 전달하려 했어요. 장애 아동만 가지고 노는 게 아니라 비장애아동도 가지고 놀 수 있는 무장애 놀잇감을 만들었고, 어린이들이 같이 노는 놀이터를 상상해볼 수 있도록 무장애 실내놀이터 상상그림 공모전을 진행했어요. 무장애 실내놀이터를 조성할 때 참고할 수 있는 매뉴얼도 개발했고요. 작년 활동을 기반으로 2023년에는 무장애 실내놀이터 조성을 계획하고 있어요. 꿈틀꿈틀놀이터가 그랬던 것처럼 하나의 기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어요.
놀이는 결과가 아니라 과정에 초점을 두어야 해요.
Q. 말씀하신 무장애 실내놀이터 지원사업으로 제작하신 무장애 놀이키트 ‘모두누리’가 인상적인데 어떤 관점이 담겨있는지 궁금해요.
김남진: 유니버설 디자인의 원칙 중 하나이기도 한데 실패에 대한 유연성과 융통성을 고려하려 했습니다. 기존 놀잇감은 얇은 종이로 되어있어서 힘 조절이 안 되거나 손 조작이 어려울 땐 찢어지기 쉽다보니 보호자가 도와줘야만 하거든요. 모두누리 인형은 두꺼운 골판지로 되어있는데 조금만 밀어도 꺼낼 수 있어요.
장애아동의 형제, 자매가 같이 놀 수 있는 놀잇감이 없다는 의견이 있어서 같이 놀 수 있도록 설계한 부분도 있어요. 필름지에 최소한의 줄만 그어주기만 해서 아이들이 이야기를 만들 수 있거든요. 무장애 놀이키트 어린이 기획단 워크숍을 하면서 아동의 조작 능력에 따라서 놀이의 레벨이 달라지거나 잘하고 잘못하는 식으로, 결과가 드러나는 건 지양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놀이에도 순위가 매겨질 수 있겠더라고요. 결과물을 평가하는데서 오는 두려움이나 상실감이 있을 수 있고요.
임주현: 상상의 여백이 있는 놀잇감을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라이트박스 위에 자유롭게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죠. 규모가 큰, 탈 수 있는 것들도 처음엔 기획했었는데 김남진 국장님과 논의하면서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누구나 놀 수 있는 형태의 놀잇감으로 변경하게 되었어요.
Q. 어린이들이 그린 무장애 실내놀이터 상상그림를 보면 함께 논다는 의미를 잘 이해하고 있는 것 같았어요. 아이들 작품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 궁금해요.
김남진: 깜짝 놀랐어요. 현실에서 구현할 수 있는 놀이터를 그려주었거든요. 무장애 통합놀이터를 경험해봤고, 또 찾아본 게 아닐까 싶었어요. ‘꿈틀꿈틀놀이터’에 있는 회전무대가 그려져있기도 하거든요. 같이 놀아야된다는 마음도 느껴졌어요. 아이들이 그림을 설명한 내용을 보니까 ‘어떻게 어떤 친구들이 이렇게 해서 놀 수 있다’는 설명을 적어주었더라고요.
Q. 무장애 실내놀이터를 조성할 때 참고할 수 있는 매뉴얼도 작업하셨는데요. 놀이기구의 실제 사례와 장애아동 보호자들의 인터뷰까지 담겨있어서 인상 깊게 봤습니다. 주요하게 고려한 것들이 있다면요?
김남진: 놀이터 기획자들이 매뉴얼을 보면서 기존 놀이터를 다른 관점으로 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어요. 사실 장애 아동들을 배제하려고 기획하는게 아니라, 모르기 때문에 비장애아동 위주의 설계가 나오거든요. 무장애 실내놀이터라고 이름 붙지 않은 놀이터여도, 설계할 때는 당연히 장애아동을 고려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변화의 시작이 될 무장애 실내놀이터의 모습을 그려보고 있어요.
Q. 올해는 무장애 실내놀이터 조성 사업을 시작하시게 될 텐데 어떤 고민을 하고 계신가요?
김남진: 장애아동들의 개인적인 성향이나 특성이 다 달라요. 활동적인 놀이를 하고 싶어하는 어린이가 있는가 하면 정적인 놀이를 선호해서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 경우도 있는데요. 아이들의 모든 특성을 다 고려해서 하나의 놀이터 안에 담기는 어려워요. 그래서 우선 지체장애 아동들이 이용할 수 있는 놀이터를 염두하고 있어요. 보조기구나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아동은 혼자서 손잡이를 잡고 올라가는 것들을 자유롭게 할 수가 없거든요. 무장애 실내놀이터 조성을 기점으로 더 많은 놀이터가 생겨나서 아이들이 선호하는 놀이터를 골라서 갈 수 있을만큼 놀이터의 면면이 다양해지는게 바람직할 것 같아요.
Q. 이용연령은 어떻게 고려하고 계신가요?
김남진: 장애아동 보호자들이 고민이 많은 부분인데요. 시중의 실내놀이터는 연령에 따라 난이도가 너무 높아지거든요. 아이 나이에 맞춰서 가려니 난이도가 어렵고, 신체 능력에 맞춰서 가려니 미취학 아동이 이용하는 놀이터를 가야하는데 7살 이상이라고 못들어가는 경우도 있어요. 초등학교 1~2학년만 돼도 장애 아동들이 갈 수 있는 곳이 거의 없는 거죠. 초등학생까지 다 아우르면서 난이도를 조율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어요. 정서적인 부분으로 넘어가면 ‘큰형이 왜 여기에서 놀지?’라는 생각으로 쳐다보는게 부담스러워서 안 가게 될 수 있거든요. 이런 것들도 어떻게 풀어낼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Q. 무장애 실내놀이터가 생기면 어떤 변화가 이어질지 기대됩니다. 2022년 사업을 이어오시면서 어떤 것들을 느끼셨는지 한 단어로 표현해주실 수 있을까요?
임주현: 바라보기와 책임감. 통로 하나를 봐도 턱이 있거나 좁다는 것들을 못보고 지나쳐왔는데 이제는 시야가 넓어지고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게 되었어요. 또 아이들이 그린 그림을 보면서 책임감이 느껴지더라고요. 아이들이 꿈꾸고 상상하는 놀이터가 잘 구현되어서 아이들이 놀고 웃고 즐기는 날이 왔으면 좋겠어요.
김남진: 변화. 무장애 통합놀이터 ‘꿈틀꿈틀놀이터’를 조성했을 때도 물밑에서 열심히 노력해 큰 변화를 가져왔던 것처럼 실내놀이터도 같은 변화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또 다른 변화를 시작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국내에 무장애 통합놀이터가 몇 개 있나요?” 무장애연대 김남진 국장이 가장 많이 받는 질문입니다. 저도 무장애 통합놀이터의 증가 추세를 파악하고 싶어 같은 질문을 던지려 했는데요. 김남진 국장은 통합놀이터를 몇 개 늘리는 것에 집중하기보다는 어린이들이 일상에서 불편함 없이 놀 수 있도록 기존 놀이터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또 어떻게 바꿔나갈지 주목한다고 말합니다. 현실에서 어린이들의 삶을 바꾸어나가고 있는 어른의 진심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었어요. 2023년 아름다운재단과 무장애연대가 만들어갈 변화에 더 많은 어른들이 진심을 담아 함께해 주시기를 바라봅니다.
사진: 조재무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