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인테르]가 2022 변화의시나리오 스폰서 지원사업에 참여하여 난민아동통역 인식개선과 보호를 위한 교육 프로그램 개발과 가이드북 제작을 진행습니다. 이 글은 호모인테르에서 보내온 사업후기입니다. <변화의시나리오 스폰서 지원사업>은 공익컨텐츠의 생성과 확산을 위해 5인 이하의 소규모 단체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
본 사업을 시작하면서, 특히 저희 이번 사업의 주요 결과물인 가이드북을 작성하면서 이런 질문으로 시작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왜 이 작업을 하게 되었나?’. 떠올려보면 아마도 대략 15년 전이었던 것 같은데, 제 친구 중 한 명이 프랑스의 난민 이주민 법률지원단체인 씨마드(La Cimade)에서 자원활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 친구가 난민 가족을 만나러 간다고 하여 무작정 함께 따라나서게 된 게 제 인생에서 처음으로 난민을 만나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가물가물한 기억을 통해 다시 떠올려보면, 그때 당시 적어도 한 가족 이상 되겠다 싶은 사람들이 모여 우리를 맞이해 주었습니다. 저는 풍성하게 차려주신 음식들에 놀라며 아주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풍성한 음식의 기억과 함께 강하게 남은 기억은 제 친구와 가족들이 언어적 한계로 인해 서로 어렵게 어렵게 대화를 이어나가던 중 결국 누군가를 동시에 바라보며 대화를 이어나간 장면이었습니다. 초등학생 정도로 보였던 아이에게 의지하여, 부모님 특히 어머니가 여러 서류에 대해 문의하시고, 우리는 답변하면서 서로의 대화가 이어졌습니다.
이러한 장면은 15년 전, 프랑스에서만 일어났던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지금도 전 세계적으로 계속해서 펼쳐지고 있는 일입니다. 사실 아동통역, 즉 흔히 생각하는 아동을 위한 통역이라기 보다는 이 프로젝트의 주요 주제이기도 한 아동이 통역을 하는 역할과 상황에 연관되어 있으며, ‘아동언어중개’(CLB: Child Language Brokering)라는 용어로 보다 일반화되어 있는 이 아동통역은 아주 오래전부터 이루어져 왔습니다. 나와는 무관한 일이라고 생각하신다면, 혹시 주변에 어린 시절 이민을 간 가정과 친구에게 – 그러한 관계가 있기를 바라며 – 물어보시길 바랍니다. 대부분의 아동이 이러한 경험을 최소한 한 번은 했음을 증언할 것입니다.
이주배경의 가정에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아동들이 일상 속에서 자주 경험하고 있는 현실이지만, 그럼에도 국내에서 이에 대해 언급되는 것을 보기는 대단히 드문 일이고, 혹은 듣게 된다 해도 부모님(또는 양육자)의 시각에서는 아동들이 가족을 위해 통역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거나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한다거나, 아이들에게도 역시나 자존감이 높아지고 언어 능력이 향상될 수 있다는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방향에서만 아동통역을 바라보고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럼 다시 처음 시작의 질문으로 돌아와서 저희는 왜 이 연구와 실천을 위한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었을까요? 또 이 프로젝트를 통해서 무엇을 하고 싶은 것일까요? 어찌보면 국내에서 지금까지 거의 다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 국외에서 역시 비교적 최근의 연구라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어른들(부모 또는 가족)을 위해 언어, 문화적으로 매개하는 아이들은 비가시성이라는 형태로 경험, 설명되고 때때로 고통받는다. 그러한 비가시성은 단지 언어 문화적 매개라는 역할 자체로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아동이라는 사실, 그리고 전통적인 방식에 따라 보여지고, 침묵되어지고, 인식되지 않은 존재(muted and unperceived beings and subjects)라는 사실로 인해 악화된다.’(Antonini, 2010)
이 프로젝트는 이러한 ‘비가시성’에 존재하는 이들을 가시적인 세계로 불러오기 위한 마음에서 시작하였으며, ‘비가시성’과 함께 아동을 바라보는 우리의 전통적인 방식, 즉 우리 스스로가 아동을 바라보는 관점에 대해서도 스스로에게 묻게 되었습니다. ‘… 전통적인 방식에 따라 보여지고, 침묵되어지고, 인식되지 않은 존재라는 사실…’ 그것은 무의식적으로 아동을 대상적으로 바라보고 있을 수 있는 우리의 관점이기도 합니다. 솔직히 초반에 ‘보호’라는 이름으로 접근하면서, 아동이 통역하는 상황 자체, 그럴 수밖에 없는 현실에도 불구하고, 인터뷰를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부정적인 영향에 더 귀를 기울였던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여러 문헌들과 인터뷰를 통해 실제 당사자들의 이야기인, 긍정적인 경험과 자신들이 원했다는 마음을 – 물론 이러한 마음은 섬세하게 들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여겨집니다만 – 들으며 아동을 주체적으로 바라보게 되는 전환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아름다운재단의 지원을 통해 진행되는 호모인테르의 이번 프로젝트는 아동 최상의 이익에 따른 돌봄과 보호 측면, 그리고 권리적 주체로서 아동이라는 점을 함께 고려하며, 이주민의 삶에서 통역인이 상시 필요하고 가족 내 신뢰의 문제 등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아동이 통역하는 상황이 발생하는 현실에서, 조화의 지점을 찾으려는 노력의 연속이었습니다.
지난 5월부터 진행된, 5개월 남짓한 너무나도 짧은 기간의 여러 활동들 – 문헌연구와 인터뷰에서부터 아동을 위한 프로그램, 사용자 교육과 가이드북 제작, 게다가 영어와 아랍어로 번역까지 – 지극히 제한된 예산으로 구현된 이번 프로젝트을 돌아보며 의욕에 앞서 너무 과욕을 부렸나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인터뷰에 참여해준 모든 분들의 공통된 마지막 말인 이 프로젝트와 우리의 고민에 대한 감사는 기운을 얻으며. 이를 통해 우리는 프로젝트의 의미와 필요성을 온전하게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어서 처음 시작에 앞서 단기 프로젝트의 한계를 인지하며 나름 마음의 준비를 하였지만, 단지 실험적인 파일럿 프로젝트로 마무리되는 것은 아닌가 염려하였던 초심을 떠올립니다. 결코 간단하지 않은 주제인 ‘아동통역’ 프로젝트를, 특히나 ‘사적인 영역’으로 여겨지기에 다루어지기 조심스러운 이 이슈를 최대한 다양한 측면의 조화를 고민하며 공공의 이야기로 가져온 것을 이번 프로젝트의 커다란 의의로 삼으며, 이후에도 계속 활발하고 확장된 논의와 실제적 실천을 위한 기존의 호모인테르의 노력들과 함께 지속하기를 다짐해 봅니다.
글 : 호모인테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