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학교와 함께하는 사람들 몽당연필]가 2022 변화의시나리오 스폰서 지원사업에 참여하여 청년교류사업 <우리또래 4기 in 제주>를 진행했습니다. 이 글은 몽당연필에서 보내온 사업후기입니다. <변화의시나리오 스폰서 지원사업>은 공익컨텐츠의 생성과 확산을 위해 5인 이하의 소규모 단체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
제주에서 만난 나의 재일조선인 친구
재일조선인? 재일동포? 동포 친구를 어떻게 불러야 할지도 조심스럽고, 재일조선인이라는 말이 어색한 한국의 청년들과 ‘나는 누구일까’ 자신의 정체성을 치열하게 고민하는 재일조선인 청년들이 만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지난 8월 26일부터 28일까지 2박 3일간 30명의 청년들이 제주에서 만났습니다. 재일조선인, 한국, 일본의 청년들이 역사를 통해 서로의 존재가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고, 이를 통해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의 해답의 실마리를 함께 찾는 시간이었습니다. 2박 3일간 제주에서 나와 우리의 역사를 배우는 프로그램으로 첫째 날은 재일조선인 친구의 본적지를 찾아가 보고, 둘째 날은 제주의 역사인 4.3을 배우고, 마지막 날은 재일조선인, 한국의 역사를 배우고 토론하는 일정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참가자들의 후기를 중심으로 뜨거웠던 <우리또래 in 제주>를 소개합니다.
나의 재일조선인 친구
오직 할아버지, 할머니가 살았다는 제주의 주소만을 가지고, 경로당에 찾아가고 주민들에게 물어가며 친구의 집을 찾는 하루는 강렬한 경험이었습니다.
<동갑내기 친구가 본적지를 찾고자 왔는데 내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어야지 하던 마음으로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다 보니 어느새 친구의 본적지를 찾아냈다. 시작할 때만 해도 분명 도움을 주고자 했던 일이 그 집을 찾았을 때는 이미 나의 일이 되어있었다. 그땐 몰랐지만, 친구의 가족에게 이야기를 듣고 돌아오면서 생전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 마음속에 남았던 것 같다.>
친구가 된다는 것은 그 사람을 둘러싼 세계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입니다. 나에게는 이제 한 사람의 재일조선인 친구가 생겼고, 더 이상 나와 상관없는 일이 아닙니다.
<‘내가 왜’라는 질문이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친구는 ‘나는 어떤 사람이지?’ 고민하면서, 부모님과 자신이 재일동포라는 사실이 싫어 조선학교에 가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나의 고향과 존재의미에 대해 되뇌었을 무수히 많은 시간들에 눈물이 났다. (…) 비단 누구의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우리 할머니도 어린 시절 중국에서 생활하셨다고 한다. 일정 시기에 한국으로 돌아오시지 않으셨다면 나 또한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을 것이다. 그냥 조상이 타국에 가지 않았다는 이유로 편하게 살고 있다는 미안함과 그 자리에서 당당히 목소리를 빛내주어 고마운 감정이 한데 뒤섞였다.>
나를 구성하는 한 조각
출생지(일본)와 국적(한국,조선,일본), 사용언어(일본어,한국어)가 일치하지 않는 재일조선인의 후손들이 자신은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에 답을 하는 것은 지난한 과정입니다. 재일동포 청년들은 그러한 정체성 고민의 연장선에서 한국 유학을 선택합니다. 그러나 한국에서 마주하는 것은 재일동포에 대한 무지와 편견입니다.
<내가 지금까지 재일동포로서 길러온 자긍심과 자존심, 일본 사회에서 홀로 걸어온 반항심 그리고 한국인, 조선인이라는 정체성들은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이라는 나라에 와서 완전히 갈 곳이 없게 되어 버렸다. 그만큼 나의 재일동포 자의식은 강하면서도 본질적으로 매우 여렸다. 이렇게 입국한지 두 달도 되지 않았을 때 나는 무너졌고, 한국 사회에 아주 쉽게 버려졌다. 결국 ‘우리’ 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것이었고, 속해 오지도 않았던 것이다.>
나의 정체성을 손쉽게 ‘일본사람’으로 취급해버리는 한국 사회에 지친 재일동포 학생들이 나의 조선인 정체성이 시작된 할아버지의 생활공간을 직접 확인하고, 서류에만 존재하던 고향땅을 밟아보았습니다. 그동안 설명할 수 없어 빠져있던 나의 한 조각을 드디어 되찾은 것처럼 느껴집니다.
<충격적이었다. 증조할아버지의 사촌이신 할아버지를 뵀을 때 친할아버지랑 너무나도 비슷하게 생기셔서 “여기에 바로 내 뿌리가 있다!”라고 거의 확신에 가까운 생각이 들었다. 계속 고민해 왔던 “뿌리”에 대해 친할아버지와 붕어빵인 할아버지를 뵀다는 것만으로 “확신”마저 생겨버린 나 자신이 너무 단순해서 스스로 어이가 없었고 웃겼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에 앞서는 단순한 “연결”의 실감이 어쩌면 내가 여태까지 가질 수 없었던 것이자 가장 원하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을수록 나의 “뿌리”가 점점 더 굵고 단단해져 가는 느낌이 들었다. 친할아버지나 그 형제분들의 이야기를 공통의 화제로 삼을 수 있다는 게 너무 신기했고 제주에 내 존재를 인정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뜨거워졌다.>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
참가자들은 여름밤 제주 바다 앞에서 밤새 나눈 못다 한 이야기, 함께 부른 노래들이 헤어지자마자 애틋해지는 친구가 되었습니다. ‘왜 우리가 지금까지 서로를 모르고 살았을까’ 의문스러웠지만, 3일 동안의 배움을 통해 현재진행형의 역사를 살고 있기 때문이라는 답을 찾았습니다.
<제주도에서의 3일이 제 생각을 바꿨습니다. 나의 역사에서 항상 연결되지 않았던 “뿌리“와 “정체성“을 보다 선명하게 해석할 수 있었습니다. 처음 만났는데도 낯익은 친척의 모습이나 자신의 뿌리에 대해 고민하고 함께 마음을 나누고 울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것, 그것 자체가 나의 뿌리가 일본뿐만 아니라 여기에도 확실히 있다는 것, 역사나 슬픈 동정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연결고리에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왜 역사는 이 땅을 갈랐고 우리를 갈라놓았을까, 만약 일제 강점의 역사가 없고, 이 땅이 갈라지지 않았다면, 남쪽에서 이념을 가르며 동포들을 배제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어떻게 만나게 되었을까를 상상하게 된다. 그리고 앞으로는 정말 이곳이 우리의 집이 있는 곳이자 고향이야 라고 서로 이야기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고, 그런 세상을 만들어 나가야겠다 다짐하게 된다.>
자이니치(在日), 그저 일본에 있는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재일조선인은 제대로 불릴 이름이 없었습니다. 아직까지도 재일조선인, 재일한국인, 재일코리안 등 한반도의 분단과 한국 사회의 무관심으로 불리는 이름조차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청산하지 못한 역사는 나, 내 친구의 이름을 부르지 못하게 하였고, 제주에서 수많은 목숨을 이유 없이 앗아갔지만 여전히 이름 없는 4.3으로 존재합니다. 제주에서의 만남을 통해 참가자들은 역사적 책임과 역할을 고민하며 실천하고 연대하자고 다짐했습니다. ‘우리의 만남은 우연이었지만, 우리는 필연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니까.’
글 : 몽당연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