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부모들에게 육아는 곧 생존과 직결됩니다. 불안정한 노동으로 육아와 생활을 모두 병행하다 보면 아이와 부모 모두 위험한 상황에 놓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생명의 무게, 그리고 보호자로서의 책임을 온전히 짊어진 청소년부모에게 따뜻하고 안전한 주거공간이 꼭 필요합니다. 아름다운재단은 청소년부모들에게 적정주거와 함께 학업, 취업, 자녀 양육 등 복합적인 문제를 함께 풀어갑니다. 각 가정마다 다른 상황을 고려해 초밀착 사례관리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청소년부모 주거 지원사업에 참여한 정수지, 강인석 청소년 부부의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
청소년부부를 지원하는 곳은 처음 봤어요.
아름다운재단과 함께 청소년부모 주거 지원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청소년부모지원 킹메이커’의 배보은 대표는 2021년 10월 “갈 곳이 없다”는 정수지 씨의 전화를 받았다. 당시 그녀는 만 17세였고, 남편 강인석 씨와 함께 6개월 된 아이를 키우고 있었다. 부부는 아이를 양육하기 위해 다니던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불안정한 일자리를 전전했다. 강인석 씨는 자동차 부품 제조부터 핸드폰 카메라, 코로나 키트 제조까지 많은 공장을 전전하며 일을 했다. 정수지 씨 역시 출산 후 바로 뷔페식당에서 일하며 고된 노동을 감당했다.
“아이를 키우다 보니까 남편이 혼자 버는 돈으로는 빠듯했어요. 아이 병원비나 보험금은 줄일 수 없어서 저희가 먹는 거, 입는 거부터 줄였어요. 그렇게 해도 모자라서 출산하자마자 뷔페식당에서 알바 했어요. 초밥도 만들고, 설거지도 하고요.” (정수지 씨)
무엇보다 시급했던 건 주거였다. 수지 씨의 부모님 집에 임시로 머물던 그들에게는 살 집이 필요했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쉴 새 없이 일해도 보증금을 마련하는 일은 요원했다. 그때 수지 씨의 눈에 들어온 것이 아름다운재단과 킹메이커가 지원하는 ‘청소년부모주거지원사업 – 인큐베이팅하우스’였다.
“‘이런 게 있다고?’ 인스타그램에서 보고는 너무 놀랐어요. 그동안 많이 알아봤지만, 청소년부부를 지원하는 곳은 처음 봤거든요. 아름다운재단 지원사업이 유일했어요.” (정수지 씨)
인큐베이팅하우스, 본격적인 자립의 시작
인큐베이팅하우스 선정 후, 부부는 아이를 업고 집을 보러 다녔다. 아이와 함께 산다고 생각하니 고려할 점이 많았다. 복도식 아파트는 아이의 울음소리가 퍼져 이웃에 피해가 갈 것이 우려되어 피했다. 집의 내부 환경은 좋았지만, 바로 앞에 모텔이 있어 제외한 곳도 있다. 아기가 다니는 병원과도 가까웠으면 했다. 그렇게 신중하게 고른 공간이 지금 사는 인큐베이팅하우스다. 2021년 10월 29일, 이곳에 입주하며 두 사람의 본격적인 자립이 시작됐다.
“독립하기 전에는 저희 엄마가 아기도 봐주고, 밥도 해주고, 이것저것 사주셨어요. 이 집에 오고 나서는 집안일이든 밥이든 다 저희 손으로 해야 했고, 아기 돌보는 시간도 훨씬 많아졌어요.” (정수지 씨)
“월세랑 보증금을 지원받으면서 여유 시간이 생겼어요. 그 시간에 공부해서 검정고시도 합격하고, 더 좋은 일자리를 알아볼 수 있었어요. 3t 이상 지게차운전기능사도 취득했고요. 이전보다 책임이 더 크게 생긴 것 같아요. 돈이든 생활이든 이제 저희가 다 해야 하니까요.” (강인석 씨)
무엇보다 달라진 건 둘의 관계다. 부모님 집에 머물 때는 갈등이 생겨도 숨겨야 했다. 인석 씨는 그때마다 “서로 응어리만 지고 답답했다”고 말한다. 독립하고 나서야 둘은 “너 죽고 나 죽고 하며 싸울 수 있었다.”고 한다. 결별 위기까지 간 적도 있지만, 숱한 싸움 끝에 상대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다. 이 과정을 지켜본 배보은 대표(킹메이커)는 “집만 해준다고 잘 사는 게 아니다. 주거 지원은 출발일 뿐이다.”라고 말한다. 초밀착사례관리가 필요한 이유다.
“집을 해줬으니까 바로 잘 살 거라고 기대하는 분들도 많지만, 이혼하는 사례도 종종 있어요. 주거 지원은 출발이지 전부가 아니에요. 현장에서는 많은 부침이 있어요. 부부가 같이 살아가는 과정에서 갈등을 겪는 건 누구든 자연스러운 거잖아요. 경제적 지원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지지 기반이 없는 청소년부부가 그런 갈등을 잘 넘어갈 수 있도록 상담해 주고, 필요할 때마다 대화를 나누는 등 초밀착사례관리가 필요한 이유예요.” (배보은 대표)
인큐베이팅하우스는 보증금, 월세, 살림살이 지원 같은 경제적 지원에서 그치지 않는다. 일례로 지원받는 청소년부부는 매달 가계부와 양육일지를 써서 보고한다. 이 과정에서 이들은 경제관념을 키우고, 아이를 키우는 과정을 성찰하게 된다. 정수지 씨는 집에 컴퓨터가 없어 처음 1년간은 PC방에 가서 가계부와 양육일지를 쓰곤 했다.
“양육일지는 매주 아기가 뭘 먹었는지, 무엇을 하고 노는지, 아픈 데는 없었는지 적어요. 처음에는 생각보다 적는 시간이 오래 걸려서 힘들었는데 다 적고 나니까 아기가 한 달 동안 어떻게 놀았는지, 얼마나 자주 아팠는지 돌아볼 수 있어서 좋았어요.” (정수지 씨)
산타가 생긴 기분이에요
두 사람은 최근 둘째 아이를 낳았다. 기쁜 소식이었지만, 주변에서는 축하보다는 두 아이를 어떻게 감당하겠냐는 우려와 걱정의 소리가 더 크게 들려왔다. 정수지 씨는 청소년부부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편견을 일상에서 자주 경험한다고 말한다.
“아기들을 데리고 밖에 나가면 시선부터 느껴져요. 저희가 어려 보이는데 아기가 둘이나 있으니까 쳐다보고, 수군거리기도 해요. 신경 쓰이죠. 시장에 가도 어르신들이 나이부터 물어보면서 어리다고 걱정하시고, 아동병원에 가서도 보호자가 맞냐고 계속 확인하고요.” (정수지 씨)
청소년부부가 사람들에게 낯설고 기이한 존재로 비치는 만큼, 청소년부부에 대한 사회적 지원도 전무한 게 현실이다. 수지 씨는 둘째를 어린이집에 온전히 맡길 수 있을 때가 되면 간호조무사 자격증도 따고 다시 일을 시작하려고 한다. 마음 같아서는 자신의 꿈인 간호사가 되기 위해 대학에 가고 싶지만, 두 아이의 분윳값과 기저귓값을 생각하면 엄두가 나지 않는다. 간호사라는 꿈은 그녀가 어릴 적, 과학실험을 하다 안구 화상을 당한 동생과 병원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는 동안 키운 꿈이다.
“너무 큰 꿈이긴 하지만, 간호사도 되고 싶고, 공무원도 되고 싶고, 자격증도 따고 싶어요. 공부를 계속 못 한 게 제일 아쉬워요. 친구들이 인스타그램에 수능 본 이야기를 하고, 졸업장 사진을 올릴 때가 가장 힘들었어요. 내가 만약 고등학교 다녔으면 나도 저랬을 텐데. 학교 다니는 거를 좋아했거든요.” (정수지 씨)
배보은 대표(킹메이커)는 한부모가정처럼 청소년부부에 대한 지원이 있었다면, 정수지 씨가 공부를 놓지 않을 수 있었다면서 안타까워했다. 부부가 같이 아이를 키운다는 이유만으로 취약한 상황에 놓인 청소년부부가 지원받지 못하는 건 잘못된 정책이라고 그는 말한다.
“이 부부 말고도 전국에 청소년부부가 얼마나 많겠어요. 대부분 원가족과 관계가 끊어지고, 미성년자라는 이유만으로 자립이 어려워요. 자립한다고 해도, 원하는 공부를 할 수 있는 경우는 극히 드물고요. 분유만 해도 얼마나 비싸요.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우리나라에서는 산모가 사망해야만 분유 바우처를 주는 게 현실이에요. 아름다운재단과 킹메이커가 청소년부부 주거 지원사업을 시작한 지 벌써 4년이 됐는데, 여전히 유일한 민간 지원이라는 게 안타까워요.” (배보은 대표)
정책적 지원이 전무한 상황 속에서도 두 사람은 두 아이와 살아가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정수지 씨는 올해부터 간호조무사 자격증을 따려고 계획하고 있고, 강인석 씨는 인터뷰 다음 날부터 물류센터에 지게차 기사로 출근한다는 소식을 전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물으니, 정수지 씨는 지원과 지지를 보내준 사람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표현했다. “덕분에 이만큼 성장했습니다.”라고 말하는 그에게 그가 생각하는 성장의 의미를 물었다.
“부모님이 아니라 서로에게 의지하게 된 거예요. 부모님 집에 있을 때는 서로가 아니라 부모님한테 의지했는데, 여기서 1년 넘게 살면서는 서로에게 의지하고, 서로를 보듬어주고, 응원하는 마음으로 바뀌었어요. 저희에게는 이 집이 큰 선물이에요. 배보은 대표님이 ‘잘 지내?’라고 물어보는 한마디, 한마디가 고맙고, 크리스마스 선물로 주신 폴라로이드 카메라도 감사해요. 마치 산타가 생긴 기분이에요. 생판 모르던 저희를 도와달라는 말 한마디로 이렇게 지원해주셨잖아요. 덕분에 이만큼 성장했습니다.”
글 우민정ㅣ사진 김민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