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재단과 노동건강연대는 2022년 7월부터 2023년 1월까지 〈2022 청년여성 산재회복 지원사업〉을 진행했습니다. 본 사업을 통해 총 50명의 청년여성에게 산재회복을 지원했으며, 여성 노동 관련 기관 및 산재회복지원비 지원자 인터뷰를 통해 청년여성이 일하면서 겪는 어려움을 확인했습니다. 본 사업이 ‘청년여성의 노동’과 ‘건강’을 연결하여 이해하는 발걸음에 작은 보탬이 되기를 바랍니다. |
“일하시는 많은 여성분, 몸이 안 좋아질 때까지 버티지 마시고, 아프면 바로 병원 가보시고…”
“저처럼 참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열심히 살았다는 건 잘하는 거지만, 내 몸의 변화를 무시하고 감정을 억누르면서까지 버틸 필요는 없는 것 같습니다.”
“버틴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에요.”
〈2022 청년여성 산재회복 지원사업〉에서 산재회복을 지원받은 청년여성들이 다른 청년여성들에게 남긴 말들이다. 많은 청년여성이 서로에게 ‘버티지 말라’고 이야기했다. 한국 사회에서 일하는 청년여성은 과연 어떤 것들을 ‘버티며’ 일하느라 건강이 나빠지고 있었을까.
‘어린 나이의 여성’으로 일하기…잡일 떠맡고 성차별적 대우 견뎌야…
지원사업에서 만난 청년여성들은 ‘어린 나이’의 ‘여성’이라는 점 때문에 직장 내에서 부당한 업무 지시나 잡일을 떠맡았다.
2022 청년여성 산재회복 지원사업 인터뷰 참여 기관 |
“막내니까 당연하게 심부름도 해야 하고, 뭐든지 다 솔선수범해야 하고요. (중략) 암묵적으로 제 일인 거죠. 그걸 따지면 회사를 못 다니니까 ‘네’ 하는 거죠.”
“저희 팀장님이 (저더러) 대표님이랑 부사장님 건강 비타민이랑 약즙, 그걸 아침에 한 번, 오후에 한 번 챙겨드리래요. 마시는 걸 다 보고 가지고 오래요. 저는 다 마실 때까지 이러고 기다리고 있죠.”
“저만 청소하고 있어요. 키판에 이끼 같은 게 끼니까 락스 풀고, 솔로 문지르고… 40 넘은 과장님이 청소할 수는 없잖아요. (중략) 근데 자꾸 (과장님이) 딴지를 걸더라고요.”
대학에 진학하지 않은 청년여성에겐 차별적인 대우가 더해졌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에 바로 취업한 청년여성은 직장에서 ‘가장 어린 여직원’이 되기 때문에 취약성이 중첩될 수밖에 없었다. 대학에 가지 않았다는 이유로 능력을 의심받거나, 저평가 당했고, 대학에 진학할 것을 주변에서 끊임없이 권유했으며, 연봉이나 승진에서 불이익을 받기도 했다.
2022 청년여성 산재회복 지원사업 인터뷰 참여 기관 |
“제가 지금 납땜이나 용접이나 이런 거 다 하거든요. (중략) 여기에서 일하면 외근이 좀 많아요. 외근을 나가면 외근 가는 날마다 더 돈을 줘요. 저보다 늦게 들어오신 분이 두 분이 계신데, 한 명은 사장 아들이고, 한 명은 대졸이란 이유로 주임으로 들어왔고요. 제 밑으로 두 분이 들어오신 건데, 이 두 분은 (외근이 많은) 그쪽에 있어서 저보다 급여가 높아요. 대졸이기도 하고. 결국 저보다 늦게 들어온 사람이 4명이나 있는데, 이 회사에 통틀어서 (제가) 가장 급여가 적기도 하고요.”
“제가 외국어를 하니까 ‘네가 어떻게?’ 그런 시선인 거예요. 자존심 상하는… 고졸이 올라갈 수 있는 한계가 있어요. (중략) 아예 대놓고 표시가 나요. 일을 잘 안 주려고 해요. 중요한 업무를 안 맡긴다거나요. 얘는 (고졸이라) 어차피 못 할 것 같으니까. 어떻게 보면 이해는 되기는 해요.”
청년여성은 차별에 맞서는 방법으로 본연의 업무 외 추가 노동을 선택하여 ‘능력을 증명’하거나 ‘인정’ 받으려는 모습을 보였고, 이 과정에서 건강을 해치는 선택을 이어나가기도 했다.
부양 부담 짊어진 청년여성, 자녀·부모·형제 부양하거나 생활비 상당 부분 부담
이번 지원사업에서는 ‘부양 부담’을 폭넓게 정의하였는데, 가족이나 동거인을 부양하는 경우, 가구 생활비 일체 또는 일부를 부담하는 경우 모두 부양 부담이 있는 것으로 보았다. 지원 대상자 가운데 부양 부담을 지고 있는 사람들이 34%(17명)를 차지했다. 혼자서 아이를 키우는 사람이 4명, 홀어머니를 부양하는 사람이 8명이었다. 이들은 경제적 부담뿐만 아니라 아픈 부모님을 간병하는 등 가정에서 ‘돌봄’ 역할을 함께 수행하느라 신체적‧정신적으로 소진되고 있었다. 부양 부담이 있는 청년여성은 생활비를 벌기 위해 쉬지 못하고 계속 일하다가 건강이 더 나빠지기도 하였다.
근골격계질환부터 정신질환까지…신청자 400명 중 34.8% 정신질환 호소
여성은 신체 부담 작업을 하지 않는다는 사회적 편견과 달리, 지원 대상자 50명 가운데 상병명에 근골격계질환을 적은 사람이 33명(66.0%)에 달했다. 연골·디스크 파열이나 골절을 겪은 사람이 10명이었는데, 중량물 취급 작업이 아닌 다른 일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았다. 장애인의 이동을 보조하며 오래 걸을 수밖에 없었던 장애인 활동 지원사, 아동을 지도하느라 낮은 책상에 맞추어 장시간 허리를 숙이고 일해야 하는 아동미술학원 강사, 카페에서 반복적으로 아이스크림을 푸는 카페 아르바이트 노동자, 종일 서서 관람객을 안내해야 하는 해설사 등 다양한 직종에서 근골격계질환이 발생하고 있었다.
“물류 정리할 때는 젤라또 5kg짜리 바트가 한 번에 40개에서 70~80개 정도 들어와요. 음료 컵도, 있고, 뚜껑, 홀더, 티슈, 숟가락도 들어와요. (중략) 혼자서 다 나르고요.”
“면접 볼 땐 이런 업무가 있다는 걸 못 들었어요. (중략) 와인을 담아줄 때 돌려서 이렇게 담거든요. 근데 그걸 하루에 300~400만 원어치를 혼자서 매일 반복하니까 이게 어깨가….”
“목이랑 허리 쪽이 많이 아파요. 잘 안 펴지더라고요. (중략) 원장님이 교사가 앉아 있는 거를 별로 안 좋아하셔서.”
정신질환을 호소한 비율도 높았다. 상병명에 정신질환을 1개 이상 적은 사람이 지원 대상자 50명 중에선 6명(12.0%), 지원사업에 신청한 전체 400명을 기준으로 보았을 땐 139명(34.8%)으로 나타났다. 청년여성들은 성희롱, 직장 내 괴롭힘을 겪은 뒤 정신질환이 발병하거나 기존에 가지고 있던 질병이 심해지는 경험을 하였다.
“카드 줄 때 제 (손을) 이렇게 꼭 잡아서… (중략) 다음날에 또 오셔서 매번 (결제할 때마다) 손잡고… 한번은 음료 나오는 동안에 계산대에 이렇게 팔 놓고 (저를) 계속 쳐다보면서 기다리는 거예요. 진짜 신고하고 싶었는데, 괜히 신고했다가 ‘별것도 아닌데 왜 신고하고 그러세요’ 이런 말을 들을까 봐 참았거든요.”
“제가 분란을 만들면 학교 후배들이 현장 실습할 기회를 뺏길까 봐, 그것 때문에 계속 참았던 것 같아요. (중략) 제가 편집하고 나면 그분이 검토하면서 ‘너 일 잘한다’라고 칭찬하면서 제 엉덩이를 두드리려고 하는 거예요. 제가 ‘부장님, 뭐 하시는 거예요?’라고 하니까 ‘왜, 나 내 아들한테도 이렇게 하는데’… 너무 수치스러운 거예요.”
조직문화나 극심한 업무 강도가 원인이 되어 질환이 발병하기도 하였다. 청년여성의 정신건강과 일하는 환경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지점이다.
“기본적으로 여성 활동가들을 신임하지 않아요. 묘하게도 아니고 노골적으로? 이를테면 뭔가 결정하거나, 논의할 때 그동안 저와 논의했어요. 근데 진짜 중요할 때는 저랑 소통하지 않는 거예요. 그럴 때는 40대 남성 활동가한테 전화하는 거예요. 그런 식이에요.”
“혼자서 500만 원 가까이 매출 찍었던 날이었는데, 직원은 저 한 명이었거든요. 혼자서 그 많은 사람을 응대하는데, 숨이 확 막히는 거예요. 답답하고, (중략) 점장님이 그때 놀라서 뛰어왔거든요. 너무 사람이 안 줄어서 본인도 놀란 거예요.”
아파도 쉬지 못하고 일한다..지원 대상자 50명 중 2명만 ‘유급병가’ 써봤다
이렇듯 지원 대상자들은 여러 건강 문제를 겪고 있지만, 일하다가 건강에 문제가 생겼을 때 일을 쉬어본 적이 있느냐는 물음에는 20명(40%)이 ‘아니오’라고 답했다. 쉰 적이 있다고 말한 30명 중에서도 절반에 가까운 사람이 ‘무급 병가(46.6%)’로 쉬었다고 응답했다. 유급병가로 쉬었다는 사람은 단 2명뿐이었다. 일 때문에 아픈 몸을 회복하려면 무급 병가나 개인 연차를 소진해서 ‘알아서’ 쉬어야 하는 현실이다. 한국 사회에 ‘일하다가 아프면 쉰다’라는 개념이 제대로 확립되어있지 않기 때문에, 직장에서 가장 연차가 낮고, 나이가 어린 청년여성 노동자는 일 때문에 몸이 아파도 상대적으로 더욱 쉬기 어려운 환경에 놓여있다.
지원사업에 신청한 400명 중에서 일하다가 건강에 문제가 생겼을 때 치료비를 어떻게 부담했는지 물었을 때도, 건강보험으로 해결했다는 응답이 48.5%로 1위를 차지했다. 실비보험 등 개인보험으로 해결했다는 응답이 23.3%로 뒤를 이었고, 산재보험으로 처리했다는 응답은 2.1%에 불과했다. ‘눈치 보면서’ 겨우 병가를 쓰더라도, 아픈 이유가 ‘일’ 때문이라는 것을 인정받지 못한 채, 또다시 ‘알아서’ 치료비를 부담하는 상황이다.
회복 지원비 대부분 치료비와 생활비로 사용, 88%, 지원사업 만족도 5점 만점
지원 대상자 50명에게 지원비를 어디에 썼는지 물은 결과, 상위 3개 항목이 치료비, 생활비, 식비로 나타났다. 혼자서 오롯이 지고 있던 부담을 회복 지원비를 통해 조금이나마 덜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회복 지원비 수령 이후 생긴 변화에 관해 31명이 정기적·비정기적으로 병원에 방문하고 있다고 답했고, 20명이 건강을 회복하기 위한 활동(운동 등)을 시작했다고 응답했다. 제도를 보완하여 적절한 지원이 이루어지게 되면, 청년여성이 겪는 경제적인 어려움을 덜어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운동·노동시간 변화 등 회복을 위한 적극적인 행동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줄 수 있는 셈이다. 지원 대상자의 88%는 이번 사업 만족도를 5점 만점으로 평가했다.
더 많은 청년여성의 일하는 이야기로! 산업재해의 얼굴을 다양하게 만들자!
어떤 말들은 얼굴을 가지고 있다. 말의 얼굴은 사회적 결과물이다. 가령, 특정 직업이 특정 성별의 얼굴로만 떠오르는 식이다. ‘간호사’가 여성의 얼굴로, ‘의사’는 남성의 얼굴로, ‘라이더’는 남성의 얼굴로, ‘돌봄교사’는 여성의 얼굴로 비친다. 그렇기에 얼굴을 바꾸어서 생각해보자는 제안은 곧 사회적 인식을 바꾸어보자는 말이기도 하다. 대표적인 얼굴에서 벗어나는 이들의 이야기는 쉽게 모이지 않고, 찾기 어려워서 자칫 없는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노동건강연대와 아름다운재단은 〈2022 청년여성 산재회복 지원사업〉을 통해 ‘산업재해’의 얼굴을 바꾸어서 생각해보고자 했다. 한국 사회에서 ‘산업재해’의 얼굴은 떨어지거나, 깔리거나, 끼이거나, 절단되는 큰 사고로 대표된다. 중대한 사고를 겪는 노동자는 대부분 제조업·건설업에서 일하는 중장년 남성 노동자이기에, 산업재해는 특정 직종에서 일하는 특정 성별을 가진 노동자들만의 문제로 인식되곤 한다.
사회문화적 토대가 청년여성이 건강하게 일하기 힘든 환경을 만들고, 그 환경에서 일하다가 건강 문제가 발생하고, 제도의 부재와 사회 분위기 때문에 청년여성 스스로 문제를 감내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저는 정말 산재라고 생각을 못했고, 당연하게 그냥 제 건강 문제고, 회사에서 뭔가 해줄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했어요.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고요.”
“노동으로 다친 게 아니라 내 신체 문제인 걸로 합리화했는데, 사실 노동이 원인이 있는 게 아닌가 새롭게 생각해보게 되었어요.”
지원 대상자로 선정된 청년여성의 경우, 자신이 겪는 건강 문제를 개인적인 문제로 한정해왔으나, 이번 사업을 계기로 자신의 경험을 ‘산업재해’로 정의하게 되기도 했다. 이를 통해 여성의 노동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인정이 청년여성의 노동과 건강에 대한 인식에 영향을 준다는 것을 확인
글. 사진 박한솔 노동건강연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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