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재단에는 2000년 설립 이후 가장 처음 조성된 1호 기금인 [김군자할머니기금]을 시작으로 2013년 현재 200여개의 기금이 조성되었습니다. 모든 기금은 하나 하나마다 수많은 기부자의 사연과 나눔이 담겨 있는 소중하고 아름다운 기금들입니다.

하지만 아름다운재단 웹사이트가 블로그 형식으로 개편되면서 예전 게시판에 소개되어 있던 기금 소식과 사연들이 잊혀지는 것이 아쉬워 [아름다운기금 이야기]라는 시리즈로 기금에 담겨 있는 소중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앞으로 [아름다운기금 이야기]에는 아름다운재단 초기의 기금 조성과 확대에 참여해주신 많은 분들의 이야기들을 차례로 소개해 드릴 예정입니다.

 

아름다운재단의 첫 마음, 김군자 할머니

아름다운재단의 첫 기부자이시자 첫 기금 출연자이신 분,
우리나라 역사의 아픔을 온 생에 오롯이 간직하신 분,
좋은 시대에 태어나셨다면 여장부로 분명 큰일을 하고도 남으셨을 분,
그 분 김군자 할머니께서 가회동 이층집에 오셨습니다.

간사들이 간간이 찾아뵙긴 했지만, 전 재산 5천만원을 전해주기 위해 오신 2000년에 이어 6년만의 일이니 간사들이 설레는 마음으로 아침부터 청소를 한다, 선물을 산다 부산스러운 것도 당연한 일이지요.
혹시 몰라 할머니께서 만드신 기금으로 장학금을 받은 친구들에게 할머니께서 오신다는 소식을 전했습니다.
급한 일정이었는데도 장학생 2명이 할머니를 뵙겠다며 달려와 주었습니다.

‘생신 때 뵈었을 때 건강이 더 나빠지신 거 같아 걱정인데, 너무 무리하시는 거 아닐까?’
‘시간 아끼라고 어서 가라고 하시는 분이시니, 마실 오듯 그냥 놀러 오시는 건 아닐 거 같은데…’
‘아니야. 우리가 그동안 어떻게 모양새를 갖췄나 와보고 싶으셔서 그런 거지 무슨!’

아름다운재단을 자식처럼 생각해주셔서 생신 때 찾아 가는 것도 돈 아끼라고 타박하시는 분입니다.
이렇게 갑자기 오신다 하셔서 아름다운재단은 좋으면서도 할머니 신변에 혹 안 좋은 일이 있는 건 아닌지 걱정이 앞선 것도 사실입니다. 설레고도 불안한 마음에 하루 종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차곡차곡 모은 5천만원을 더 기부하셔

지팡이를 짚고 숨을 몰아쉬시면서도 의연하게 가회동 이층집에 오르신 할머니.
의자에 앉으시자마자 가쁜 숨을 돌리기도 전에 품에서 하얀 봉투를 꺼내십니다.
아름다운재단에 처음 기부한 돈과 꼭 같은 금액 5천만원을 가져오신 것입니다.

“내가 아무래도 마지막인 거 같아서, 차근차근 정리하려고 왔어. 장학금에 돈을 더 내고 싶어서 가져왔어요.” 

가만 보니까 1년 동안 아껴 모으면 1천만 원은 모을 수 있더군.
돈 많은 양반들에겐 별거 아니겠지만, 나한텐 쉽지 않았어요.
옷이야 몸에 냄새나지 않을 정도만 갖추면 되는 거고,
먹고 자는 거야 몸 누일 곳이 있으니 됐고,
돈이 들어오면 그저 아이들에게 장학금 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차곡차곡 모은 거야.
모쪼록 부모 없이 공부하려고 고생하는 아이들에게 잘 전해줘요. 

할머니가 가장 따뜻하게 바라본 이들은 다름 아닌 장학생들.
‘김군자할머니 기금’이 만들어진 후 아름다운재단 1% 기부자와 기업들이 그 뜻을 이어 추가로 기부해감에 따라 올해까지 30명의 시설퇴소 대학생들이 장학금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 친구들이 할머니께 직접 전하는 감사의 인사는 화려한 수사가 없어도 그 진심만으로 충분한 감동을 전해주었습니다.

나눔교육을 위해 아름다운재단을 방문해 자리를 함께한 인천 지역 청소년들에게 덕담 한 말씀 해달라고 부탁드리자, 학생들을 한참 동안 들여다보시다가 입을 여셨습니다. 

난 일찍 고아가 되서 공부하고 싶어도 못했어요.
늦둥이로 나를 낳으신 부모님이 얼마나 나를 귀하게 키웠는지..
하늘 아래 둘도 없는 아이 키우듯 하셨지..
내가 열 살 되던 해 부모님을 여의지만 않았어도 내가 일본놈들에게 그렇게 끌려갔겠어요?
지금은 자기가 노력하면 뭐든 할 수 있지 않아요?
속상하고 아쉬운 일이 있어도 꾹 참고 열심히 살아 주어요. 그게 내 부탁이에요. 

할머니의 빈손이 던지는 질문

이렇게 다 줘버리시면 무슨 재미로 사시냐며 던진 실없는 농담에
“내가 다 궁리를 해서 준비해온 거야. 홀가분하고 인생의 짐을 또 하나 던 거 같으니까 잔소리하지 말아”라며 미소를 띠십니다.

처음 문을 열던 날의 굳은 의지가 어느덧 느슨해졌을지도 모를 아름다운재단과 간사들에게 할머니가 보여주신 또 한번의 빈손은 ‘지난 6년의 세월이 내 손을 잡기에 부끄럽지는 않느냐’는 질문을, 그리고 ‘네 손은 비어 있느냐’는 질문을 던지고 있었습니다.

그랬습니다.
정말이지 아름다운재단으로 모이는 것은 돈이 아니라 「사람」이고,「사랑」입니다.
할머니, 자꾸 약한 말씀하지 마시고 6년 뒤, 16년 뒤에도 아름다운재단의 정신으로 함께해주셔야 합니다.
사랑합니다. 

[2006년 8월 2일]

글 | 한태윤 국장

댓글 정책보기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