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부모들에게 육아는 곧 생존과 직결됩니다. 불안정한 노동으로 육아와 생활을 모두 병행하다 보면 아이와 부모 모두 위험한 상황에 놓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생명의 무게, 그리고 보호자로서의 책임을 온전히 짊어진 청소년부모에게 따뜻하고 안전한 주거공간이 꼭 필요한 이유죠. 아름다운재단은 킹메이커와 함께 청소년부모를 위한 적정한 주거 공간과 초밀착 사례관리를 지원하고 있는데요. 최근 119응급하우스에 입주한 청소년부모의 사례를 공유드립니다. |
“6월 말에 출산했어요. 아이는 태어난 지 63일밖에 되지 않았고요.”
김나영 씨(가명, 만 22세)는 일어나자마자 와서 밥도 먹지 못했다며 희미하게 웃었다. 킹메이커 사무실에서 우리가 만난 건 오후 1시였다. 아이 때문에 새벽에 잠을 설쳤냐고 물으니 힘들긴 하지만 아이가 기특하게도 서너 시간은 연달아 잔다며 웃는다. 아이 이야기에 얼굴이 금세 환하다. “애가 좀 빠른 거 같아요. 목도 벌써 가누고, 움직이면 쳐다도 보고요.” 아이 키우는 게 힘들지 않냐고 물으니, 경제적인 게 가장 힘들고 다음으로는 아이 키우는 법을 몰라서 어렵단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부모님과 연을 끊었다는 나영 씨는 우는 아이를 달래는 법도, 아이가 열이 날 때 대처하는 법도 유튜브를 통해 배웠다.
빛이 들지 않는 반지하에서 살던 청소년부부 “입양 보낼 생각에 병원도 가지 않았어요.”
임신 사실을 안 건 작년 10월이었다. 이동수 씨(가명, 만 23세)와 동거한 지 두 달만이었다. “임신이 그렇게 쉽게 되는지 몰랐다”던 두 사람은 출산과 양육을 위한 어떤 대비도 되어 있지 않았다.
“빚이 많았어요. 생활비가 감당이 안 되니까 계속 신용카드를 쓰게 되더라고요. 신용카드 한도도 다 써서 나중에는 대부업체까지 찾게 되었구요. 처음엔 2천만 원이었던 빚이 4천만 원으로 늘었어요. 이런 상황에서 아이를 키울 수 있을까 막막했죠.” -김나영
설상가상 동수 씨가 일자리를 잃었다. 임신 5개월 차였다. 생활비가 없어 3층 원룸의 보증금을 빼서 반지하로 이사했다. 이사한 집은 아침에 눈을 떠도 낮인지 밤인지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로 어두웠다. 안방 천장부터 주방 모서리, 화장실 타일 사이까지 곰팡이가 폈다. 빨래를 널고 일주일이 지나도 마르지 않았다. 어른도 살기 힘든 환경인데 아이를 키울 수 있을까. 갚아야 할 빚만 매달 170만 원인데. 나영 씨는 아이를 입양 보내겠다는 생각을 이때 굳혔다.
“처음 임신했을 때 병원에 한 번 가고 출산 전까지 한 번도 안 갔어요. 입양 보내겠다고 결심했기 때문에 정이 들까 봐요. 남편도 탯줄을 안 잘랐어요. 자르면 부성애가 생길까 봐 자기가 못 하겠다고 하더라고요.” -김나영
아이를 낳으면 바로 입양 보낼 생각에 출산용품 하나 사지 않았다. 돈도 없었지만, 남은 물건을 보며 아이를 그리워할 것이 두려웠다. 하지만 환희(가명)가 태어난 지 이틀 만에 결심은 무너졌다.
“아기 낳고 이틀 동안 병원에서 분유도 주고 기저귀를 갈면서 정이 들어버렸어요. 신기하다고 해야 할까. 어떻게 이런 애가 내 배에서 나왔나 싶기도 하고. 남편한테 아무래도 입양은 힘들 거 같다, 힘들더라도 조금만 힘내서 키워보면 안 되겠냐고 했어요.” -김나영
퇴원 후 베이비박스를 운영하는 한 기관에 전화했다. 반년만 맡아주면 일하면서 돈을 모아 새집을 얻은 뒤 아이를 데려올 생각이었다. 기관에서는 아이를 한 달만 맡아주겠다고 했다. 나영 씨는 그동안 일자리와 아이를 맡길 수 있는 어린이집을 알아봤다. 예방접종을 위해 환희를 데리고 병원에 다니기도 했다.
“병원에서 베이비박스로 돌아가는 내내 애를 보면 죄책감에 눈물이 나는 거예요. 해줄 수 있는 것도 없고,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은 반지하에서 사는 게 아이한테 미안했어요. 근데 입양은 못 보내겠는 거예요. 베이비박스에 가서 아기를 주잖아요. 그러면 못 보잖아요. 그게 너무 마음이 아픈 거예요.” -김나영
일주일 만에 아이를 데려올 수 있었던 이유, 119응급하우스
그러다 환희의 얼굴이 뉴스에 나오는 일이 생겼다. ‘미등록 영아 사망 사건’으로 떠들썩하던 때 취재 나온 기자가 모자이크도 없이 환희의 얼굴을 방송에 내보낸 것이다. 아이 얼굴이 부정적인 사건으로 전국에 보도된 것도 걱정이었지만, 코로나에 걸릴 수 있는 상황에서 기자들과 무작위로 접촉할 수 있다는 생각에 불안해졌다. 두 사람은 환희를 어떻게든 빨리 데리고 나오고 싶었다. 그렇게 찾아간 곳이 킹메이커였다. 킹메이커의 배보은 대표는 두 사람이 찾아온 날을 선명하게 기억한다.
“저랑 통화한 날 바로 사무실로 찾아왔어요. 그만큼 긴박했던 거예요. 청소년부모를 지원하다 보면 정부 지원이 없는 게 아니에요. 그 찰나의 순간, 도움이 필요한 그 순간에 지원이 없어요. 그때 도우면 얼마든지 이 친구들 스스로 아이를 키울 수 있는데, 절차 때문에 그 골든타임을 놓치는 거예요. 119응급하우스 같이 바로 입주할 수 있는 빈집이 있었기 때문에 두 사람이 일주일 만에 아이를 데리고 올 수 있었던 거예요.” -킹메이커 배보은 대표
킹메이커는 단순히 집만 제공한 게 아니다. 두 사람이 신생아를 데리고 일주일 만에 이사할 수 있도록 함께 짐도 옮기고, 필요한 물품도 같이 샀다. 나영 씨는 적어도 한두 달은 걸릴 줄 알았던 이사가 일주일 만에 이뤄지는 걸 보며 살아갈 힘을 얻었다. 입주 전에는 아기를 데려오면 굶기지는 않을까, 기저귀도 못 갈아주는 건 아닐까 불안에 시달렸다.
“집이 좋으니까 빨래가 하루도 안 돼서 말라요. 아기한테 깨끗한 옷을 입힐 수 있고, 깨끗한 환경에서 깨끗한 밥을 먹일 수 있어요. 아침에 햇빛 받으면서 일어날 수 있고요. 해가 드니까 아기가 낮에 안 자고 밤에 자는 환경을 만들어 줄 수 있어서 좋아요.” -김나영
보이스피싱, 명의도용 등 범죄에 노출되는 청소년부모들… 긴급 복지, 선지원 후 절차가 필요한 이유
입주 후 킹메이커의 안내에 따라 혼인 신고와 친부 인지 신고도 마쳤다. 배보은 대표는 이런 ‘초밀착 사례관리’로 상황에 맞는 지원을 제때 해야 작은 자원으로 큰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고 말한다. 때를 놓치면 자원 하나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열 배의 자원을 쏟아도 해결할 수 없는 큰일이 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두 사람이 킹메이커의 안내에 따라 바로 친부 인지 신고를 하지 않았다면 이후 많은 비용과 시간을 들여 소송해야 했을 것이다. 덕분에 지금 나영 씨와 동수 씨는 아이를 키우고 일자리를 찾는 일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 배보은 대표(킹메이커)는 제때 지원받지 못해 범죄에 노출된 청소년들을 자주 목격한다고 말한다.
“숙련된 사회복지사도 수십 번을 전화하고도 어떤 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 답을 못 듣는 경우가 많아요. 청소년부모 당사자는 어떻겠어요. 지원받을 수 있다고 해서 전화해서 물어보면 잘 모르겠다 딴 데로 전화해라, 다른 데 전화하면 안 될지도 모른다, 일단 신청해 봐라. 신청할 때 내야 하는 서류는 또 얼마나 많아요. 그럴 때 불법적인 게 아이들한테 더 빠르고 확실한 거예요. ‘명의 빌려주면 100만 원 줄게’하면 눈에 딱 보이잖아요.” -킹메이커 배보은 대표
나영, 동수 씨도 마찬가지였다. 출산을 앞두고 병원에 갈 돈이 없어 부동산 명의를 빌려주고 100만 원을 받았다. 잘못이라는 걸 알았지만 당장 병원비가 없었다. 그 후 두 사람은 주택 소유자로 분류되어 신혼부부와 관련된 어떤 주거 지원도 받을 수 없어 더 사각지대로 몰렸다. 배보은 대표는 많은 청소년 부부들이 취약한 상황에서 보이스피싱 운반책, 대포 통장, 전세 사기 등 각종 범죄에 노출되는 악순환을 겪고 있다고 말한다. 복지보다 불법이 더 빠른 것이다. 배보은 대표가 끊임없이 ‘긴급복지’, ‘선지원 후 절차’를 외치는 이유다.
주거 지원에서 자립까지 앞으로의 남은 과제
나영 씨는 요즘 아기가 하루하루 크는 것만 봐도 뿌듯하다고 말한다. 빚도 갚아야 하고, 돈을 모아 앞으로 살 집도 구해야 하는 등 과제가 많지만,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손에 닿을 것 같지 않던 아이와 보내는 일상을 찾았다. 그가 앞으로를 비관하기보다 낙관하는 이유다. 동수 씨는 온라인쇼핑몰 물류센터에서 일용직으로 일하며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정규직을 알아보고 있다.
두 사람의 사례에서 보듯 청소년부모 주거지원사업은 궁극적으로 ‘청소년부모의 자립’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킹메이커와 아름다운재단이 함께 청소년부모주거지원사업을 한 지 5년 차. 그동안 주거 지원을 통해 기반을 만든 청소년부부가 본격적으로 일을 구해 자립해야 하는 과제가 남아있다.
킹메이커는 올해 기존의 주거 지원과 초밀착사례관리를 이어감과 동시에 청소년부모의 자립 역량을 키우는 사업을 시작했다. 다양한 일자리 지원 사업이 있지만 청소년부모 맞춤은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청소년부모가 아이를 키우느라 얼마나 힘든지, 아기가 아픈 날 왜 일을 나가지 못하는지, 왜 일 경험이 없는지 고려하며 지원하는 정책은 아직 전무하다.
“어떤 일자리 정책이든 기회를 주고 못 하면 그냥 땡인 거예요. 청소년부모에게도 실패해볼 기회가 필요해요. 실패하고 실수해도 다시 도전해야 자기 적성을 찾을 수 있잖아요. 그렇게 20대에 자립하도록 도와야 이후에 계속 지원해야 하는 악순환을 끊을 수 있어요. 그러려면 18살에 임신해서 19살에 아이를 낳고 20대 초반에 양육에 집중해야 하는 청소년부모의 특수한 생애 주기를 이해한 지원이 새롭게 만들어져야 해요. 저희의 시작이 인큐베이팅 하우스였다면, 다음은 이를 기반으로 청소년부모들이 일하기 위해 배워야 하는 모든 사회화 기능, 근로 역량을 길러 자립할 수 있도록 앞으로 계속 지원할 계획입니다.” – 킹메이커 배보은 대표
글 ㅣ우민정
사진 ㅣ임다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