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재단은 노동건강연대와 2022년부터 ‘청년여성 산재회복 지원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본 지원사업을 통해 산재보험 사각지대에 있는 청년 여성이 일상을 회복할 수 있도록 생계비를 지원하고, 청년여성 노동환경 실태조사를 진행해 지금의 산업재해 사각지대를 해소하고자 합니다. 파트너로 함께 하는 노동건강연대 전수경, 박한솔 활동가의 이야기를 들려 드립니다. |
청년여성산재회복지원사업 협력기관 노동건강연대 전수경 & 박한솔 활동가 인터뷰
‘산업재해’란 노무를 제공하는 사람이 업무에 관계되는 건설물·설비·원재료·가스·증기·분진 등에 의하거나 작업 또는 그 밖의 업무로 인하여 사망 또는 부상하거나 질병에 걸리는 것을 말한다. – 산업안전보건법 제2조 제1호
산업안전보건법과 함께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역시 산업재해(이하 산재)에 대해 ‘업무상의 재해, 즉 업무상의 사유에 따른 근로자의 부상·질병·장해 또는 사망’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산재의 인정과 보상은 대형 사고나 중대재해를 중심으로 실행되고 있다. 그 속에서 산재가 분명한데도 불구하고 줄곧 외면받는 대상이 있다. 바로 청년여성층이다. 청년여성은 성별과 연령에 따른 노동 고정관념 탓에 산재보상의 사각지대에 머무른 지 오래다. 최근 미디어에 묘사되는 일부 화려한 이미지와 달리 청년여성의 노동환경은 녹록지 않다.
청년여성산재회복지원사업 협력기관 노동건강연대 전수경 & 박한솔 활동가 인터뷰
아름다운재단은 그 현실에 입각해 노동건강연대와 파트너십을 맺고 <청년여성 산재회복 지원사업>을 진행했다. 일선에는 노동건강연대 전수경 활동가와 박한솔 활동가가 앞장섰다. 경험이 풍부한 전수경 활동가와 열정이 가득한 박한솔 활동가는 산재에 노출된 청년여성이 일상을 회복하도록 지원하는 한편, 실태조사를 기반으로 청년여성의 노동환경을 개선하고자 혼신의 힘을 다하는 중이다.
아무도 모르는 청년여성의 이야기
고용노동부가 2022년 발표한 <2021년 산업재해 현황분석>에 따르면 2021년 산재를 승인받은 노동자 가운데 여성 근로자의 비율은 22.75%이며 그중 청년여성의 연령층인 18~34세는 14.54%였다. 전체로 환산하면 그해 산재를 승인받은 근로자 중 3.3%에 해당한다. 아름다운재단이 노동건강연대와 진행했던 ‘산재보상 사각지대 해소 지원사업’에서도 전체 지원자 대비 청년여성은 5.02%에 지나지 않았다.
“현재 청년여성층은 서비스직의 저변에 상당수 자리하고 있지만, 그들의 산재보상 사례는 드문 편이에요. 한 해 10만명 정도가 산재보험으로 치료를 받는데 남성이 80%를 차지하고, 여성 비율은 20%정도 되거든요. 건설현장, 중공업 같은 산업에서 일어나는 사고는 바로 산재라고 생각을 하지만, 여성들이 많이 종사하는 서비스직, 돌봄, 문화예술 같은 직종에서는 산재를 먼 이야기라고 생각해 왔죠. 산재치료를 받고 싶다고 하면 해고하거나 재계약을 하지 않는 일도 폭넓게 일어나죠. 청년여성은 비정규직, 프리랜서, 일용직 등의 형태로 노동조합이 없는 일터에서 일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따라서 산재를 입어도 홀로 목소리 내기가 어려워요. 더구나 산재는 당사자가 스스로 입증해야 하기에 생계가 우선인 형편이라면 더더욱 신경 쓸 여력이 없어요.” (전수경 활동가)
“아울러 직종에 따라 다양한 직업병이 발생하는데요. 건설 현장, 물류 배송, 음식 배달 등의 일은 누구나 고되다고 생각하지만, 청년여성의 노동은 상대적으로 덜 힘들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에요. 그래서 청년여성이 일하느라 다치고 아프면 산재가 아닌 자기관리에 소홀했다고 오해하는 시선이 많더라고요.” (박한솔 활동가)
소외당하는 현실과 그릇된 편견에 둘러싸인 청년여성의 노동환경. 전수경 활동가와 박한솔 활동가는 누구도, 심지어 자신도 산재에 관심 두지 못하는 청년여성층을 깊숙이 들여다보기로 했고 <청년여성 산재회복 지원사업>은 그렇게 2022년에 시작됐다. 전수경 활동가와 박한솔 활동가는 청년여성의 이야기들을 수집하며, 그들을 위한 새로운 사회적 합의를 도모할 수 있다는 생각에 신나고 벅찼다.
“본 사업은 올해 200명, 지난해 400명, 총 600명이 신청했어요. 예상보다 신청자분들이 많아서 당황하기도 했지만 반가웠어요. 다만, 그중에 산재보상은 단 세 분만 받았더라고요. 극소수죠. 그 이유를 확인한 결과, 산재보상에 대해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이더라고요. 거기다 본 사업은 신청할 수 있지만, 산재는 신청하지 못한 각자의 사정도 있었고, 산재를 신청하더라도 절차가 여간하지 않아 반려가 빈번히 발생하는 탓도 있었죠.” (전수경)
“신청자분들의 직종도 전반적으로 겹치지 않고 다양했어요. 상담원, 생산직, 배달원은 물론 세차, 양봉, 도자기 등 사회의 다방면에 분포되어 있었는데요. 그분들의 다수는 근골격계 질환을 앓고 있었어요. 무리한 활동으로 허리 디스크가 찢어지고 어깨뼈가 빠졌는가 하면, 반복적인 근로로 무릎과 손목에 염증이 발생하기도 했죠. 또한 정신질환을 호소하는 경우도 적잖았는데요. 특정한 사건도 있었지만, 정신질환은 대체로 직장 내에서 청년여성을 대하는 불편한 문화와 태도 때문에 가중되고 있더라고요.” (박한솔)
100이라는 숫자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
청년여성층이 <청년여성 산재회복 지원사업>에 주목할 수 있도록 열중했던 지난해에 이어 올해 전수경 활동가와 박한솔 활동가는 청년여성의 산재 관련 이야기를 더욱 폭넓게, 한층 자세히 확보하는 데 정성을 기울였다. 그 가운데 신청자들이 계획한 지원금 사용처 역시 살펴보며, 이면에 숨어 있는 청년여성의 일과 삶을 헤아려 나갔다.
“본 사업은 명칭 그대로 산재회복을 지향하는데요. 산재회복에 대한 정의와 요건은 저마다 다르기 때문에 지원금 사용처를 딱히 제한하지 않았어요. 들여다보니 주로 치료비로 활용됐고요. 휴식이 시급한 분들은 무급휴가 동안 필요한 생계비로, 운동과 영양이 부족한 분들은 건강관리비로 사용되기도 했어요. 각자의 상황에 맞춰 주거비와 부양비로 지출되기도 했고요.” (박한솔)
“이 산재회복 지원금은 100만 원이에요. 지원 대상자 심층 인터뷰 중에 제가 100만 원이 용도에 따라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은 액수 아니냐고, 지원금의 체감 정도를 여쭤본 적이 있었어요. 당시 그분이 펄쩍 뛰면서 한 달에 절반은 일해야 마련할 수 있는 큰돈이라고, 너무 감사하다고 단호하게 말씀하시더라고요. 그 대화 속에서 산재회복 지원금은 숫자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그분들의 노동이 사회로부터 인정받고 지지받았다는 의미가 담겨있으니까요. 그래서인지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났다고 말씀하신 지원 대상자분들이 꽤 있었어요.” (전수경)
본 사업의 실효성과 가치성은 두드러졌다. 하지만 예산에 따라 지원 대상자는 지난해 50명, 올해 60명으로 한정됐다. 그런 만큼 전수경 활동가와 박한솔 활동가는 지원 대상자를 선정하는 과정이 가장 힘겨웠다. 신청자 총 600명은 대다수 사정이 어려웠고, 일부는 지원금을 통해 생활과 건강이 호전될 만한 상황이었지만, 심사 기준에 의해 순위를 정해 지원해야만 했다.
“신청자분들을 모두 지원할 수 없어 안타까웠죠. 그런데도 신청자분들은 심사 인터뷰 이후 전화나 문자 메시지로 한결같이 고마움을 표현했어요. ‘지원 여부를 떠나 제 얘기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라면서. 게다가 신청자분들은 설문조사에서 서로를 위한 응원의 메시지도 남겼는데요. 하나같이 ‘일하다 몸과 마음이 아프면 버티고 참지만 말고 바로 병원에 가세요’라고 당부했고요. ‘어딘가에는 당신을 도와주려는 사람들이 있으니 우리 서로를 포기하지 말아요’라며 격려도 아끼지 않았어요. 아주 인상 깊었죠.” (박한솔)
“그러한 모습에서 청년여성에게 특별한 이타심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요.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세상과 소통하고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이 가득했어요. 그렇게 선한 영향력을 펼칠 수 있는 잠재력이 상당하기 때문에 청년여성의 산재회복을 위한 지원은 장기적으로 우리 사회를 위한 지원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전수경)
청년여성들의 사려 깊은 마음씨는 전수경 활동가와 박한솔 활동가에게 크나큰 감동을 선사했다. 그래서 그들은 청년여성과 더욱 연대했고, 산재보상 관련 변화 지향점도 제시할 수 있었다. 그들에 따르면 청년여성의 상황을 다각적으로 고려한 산재보상 지원사업이 시급하고, 그 지원사업은 서류나 절차의 간소화로 문턱을 낮춰야 한다. 동시에 일당백 역할을 감당하는 이른바 ‘무적의 활동가’ 양성도 필요하다. 무적의 활동가가 산재 정보를 전달하고, 유관 사업을 연계하며, 청년여성을 끊임없이 지지하는 가운데 산재로 입은 심신의 상처는 오롯이 회복되리란 확신이다.
지금껏 본 사업을 수행하며 전수경 활동가와 박한솔 활동가는 청년여성의 이야기마다 세심하게 경청했고, 진심으로 공감했고, 성심 다해 지지했다. 그 과정에서 지원 대상자들은 서서히 산재회복을 실현해 나가는 중이다. 전수경 활동가와 박한솔 활동가는 이제 청년여성의 산재회복을 위한 자그마한 씨앗을 심은 셈이다. 시기는 명확하지 않지만, 사명감이 깃든 그들의 경험과 열정이 지속된다면 그 씨앗은 반드시 청년여성의 건강권과 사회적 안전망으로 열매 맺을 듯하다.
글 | 노현덕
사진 | 김권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