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이곡리에서 학교를 다닐 때는 동네에 사람이 많았다. 다니던 학교가 폐교될 당시 이곡리가 속한 ‘원북면’의 인구는 6,000명 정도였다. 20년이 훌쩍 지난 2022년 기준 원북면의 인구는 약 4,300명이다. 인구는 급격하게 줄었고, 고령화되어 갔다. 젊은 사람들은 밖으로 나가고, 아이들은 태어나지 않았다. 한 걸음 한 걸음 걸을 때마다 인사드려야 할 삼촌, 이모, 아줌마, 아저씨가 많았던 그런 모습은 이제 보기 어렵다. 동네에 아이가 태어나면 면 소재지에 현수막이 걸려 뉴스에 나오곤 한다.
태안과는 먼 강원도에서 환경운동을 하다가 다시 태안으로 돌아오기를 결정하고, 일을 준비하면서 동생과 작당모의했다. 시작은 단 2명일 뿐이지만 우리의 활동이 정말 ‘작당’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하면서 말이다. 그러는 중에 아름다운재단 <변화의 물꼬>를 만났다.
물꼬
1. 논에 물이 넘어 들어오거나 나가게 하기 위하여 만든 좁은 통로
2. 어떤 일의 시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다니던 학교가 폐교되면서 지역 소멸을 몸으로 느꼈다. 그런 우리는 ‘지역 소멸’을 줄이기 위한 소셜 미션을 가진 (예비)사회적기업을 만들었다. 소멸되어 가고 있는 전국의 ‘이곡리’의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경제활동(농업)을 돕고, 좋은 제철 농산물을 얻으려고 계획했다. 12곳의 이곡리가 사계절 제철 농산물을 생산할 수 있도록 대한민국에 고루고루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을까?
그리고 지역을 기록하려고 계획했다. 없어지고 있는 사투리를 기록하여 ‘사투리 사전’을 만들고, 동네 어르신들을 인터뷰하여 지역의 기억을 기록하려고 했다. 참으로 속상한 말이지만 어르신들이 돌아가시면 마을의 옛날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없어진다는 뜻도 된다. ‘사람들에게서 잊혀졌을 때 사람이 죽는 것’이라고 말했던 <원피스>의 명대사처럼 잊히지 않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지역의 모습을 사진이나 영상으로 붙잡을 수 있지만 이전에는 그렇지 못했다. 원북면 이곡리의 입구까지 바닷물이 들어왔었고, 염전이 있었다는 사실은 그 지역을 살아온 사람들만 알 수 있는 것이다. 문을 닫은 염전의 타일로 물수제비 놀이를 하던 우리가 염전부터의 모습만 기억하는 것처럼 말이다.
지역과 마을 기록해야 하는 이유는 선명하다. 하지만 ‘어떻게’ 기록해야 하는지 무엇을 기록해야 하는지는 안개 속에 있는 것 같았다. 더불어 우리의 역량이 맞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도 있었다. 그러다가 <변화의 물꼬>를 만나게 되었다. 사람을 만나는 일은 만나기 직전에 가장 에너지를 많이 쏟는다.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무슨 말을 해야 이 사람이 나를 만나줄지, 이 사람이 시간을 써서 나를 만나줄 만큼 내가 그 가치를 설명할 수 있을지 등의 고민을 수도 없이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변화의 물꼬>는 그 고민을 단박에 해결해 줄 수 있는 좋은 ‘핑곗거리’가 되었다. 우리가 만난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줬고, 공감해 줬다. 분명 이야기를 들으러 갔는데 이야기를 쏟아내고 온 것 같지만 말이다. 물꼬란 것이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논에 물꼬를 터 본 사람을 알겠지만 처음부터 크게 뚫지 않는다. 작게 통로를 내면 물이 지나가면서 길이 넓어진다. 물꼬를 텄더니 봇물이 터지다니!
우리는 막연하게 사진이나 글로만 기록하려고 했다. 그런데 사람들을 만나고, 영상으로 그림으로 지역을 기록할 수 있는 방법은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특히 어른들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것이 인터뷰가 아니라 요리책이 될 수도 있고, 시가 될 수도 있고, 노래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은 우리가 그동안 얼마나 좁은 시야를 가지고 있었느냐에 반성을 하게 했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그런데 우리의 마을들은 아이를 키울 힘과 지구력을 가지고 있을까? 아이들은 이 마을을 나를 키워줄 마을이라고 생각하고 있을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우리가 마을에 애착을 가지고 있는 것은 다만 우리가 처했던 상황에 의해서 였던 것이 아니었는지 하는 생각들까지 이어졌다. 그렇다면 마을의 아이들이 마을에 대해서, 마을의 어른들에 대해서, 친구에 대해서, 선생님들에 대해서 조금 더 알게 되면 어떨까? 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오만하게도 말이다. 그래도 실행된다면 아주아주 재미있는 일일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학교를 선정하는 것이 걱정이었다. 더 정확하게는 우리가 하는 일에 함께 해 줄 학교가 있을지 걱정이었다. 하지만 운영하고 있는 카페 겸 독립서점에 찾아오시는 손님들에게 ‘아이들이 직접 마을을 기록하는 일’을 하려고 한다고 소문을 내놓은 덕에 함께 하고 싶다고 연락을 주신 선생님이 있었다. 근흥초등학교 2학년 담임선생님이었다.
근흥초등학교는 2학년의 전체 인원은 3명이다. 전교생이 18명이었고, 같은 학년이 3명이었던 나의 옛날이 생각나서, 그때의 작은 학교가 얼마나 좋았는지 알기에 선뜻 좋다고 했다.
3명이면 어떻고, 저학년이면 어때!
<변화의 물꼬 1단계>에서 만났던 선생님들께 강사를 부탁드리고, 새로운 강사님들을 모시기 위해 사업을 준비하면서 만났던 분들에게 다시금 연락드렸다. 모두 선뜻 같이 하겠다고 말씀해주셔서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저학년이라 지도를 그리고, 글을 쓰고, 인터뷰를 하고, 사진과 영상을 찍고 하는 과정들을 잘 따라올 수 있을까 걱정했지만 그 걱정은 기우였다. 너무나 잘 따라오고, 너무나 멋진 결과물들을 도출했다. 책으로 만들기로 약속했기에 그 과정이 기대가 될 정도였다.
근흥초등학교와 아이들이 사는 곳은 ‘용신리’다. <구석구석 용신리>라는 이름을 짓고 약 두 달 동안 아이들을 만나면서 이 프로그램을 기획하기를 너무 잘했다고 스스로를 칭찬했다. 내가 기쁜 것을 둘째치고, 아이들이 마을에 대해 이렇게 꼼꼼히 기록하고, 알아본 적이 처음이었다는 것에 저 아이들에게 마을에 대한 기억을 줬다는 것에 기뻤다. 2학년 교과 과정에 마을에 대해 공부하는 것이 있다는 것을 운영하면서 알게 되었다. 아이들의 처음에 우리가 있었다는 것에 마음이 더욱 두근두근했다.
마지막 프로그램이 끝나고 선생님께서 보내주신 톡에 ‘남자 사장님, 드론삼촌. 아이들이 일상을 나눌 어른들이 많아졌다는 것이 가장 큰 감사함’이라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랬다. 학교에 가기 위해 근흥 면소재지를 다니면서 느꼈던 기시감이 이것이었음을 깨달았다. 버스에도, 길에도 아이들이 삼촌이나 이모라고 부를만한 어른은 없었다. 오히려 우리가 그렇게 부를만한 분들만 있었던 것이다. 아이들의 입장에서는 모두가 할머니, 할아버지였다. 그렇게 지역이 고령화되어 있었던 것을 우리도 어른이 되어 이론상으로만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아이들에게 지역의 ‘삼촌’, ‘이모’가 되었다. 물론 누나인 나는 강사로도 만났기에 대부분 선생님이라 불렸지만, 남동생은 ‘서점 삼촌’이라고 불렀다. 프로그램 중에 산책하면서 드론으로 영상을 찍고 마을을 하늘에서 기록하는 것도 있었다. 그 강사가 ‘근흥초등학교’ 출신의 지역 청년이었다. 일부러 지역의 어른들이 아이들과 만날 수 있게 한 것이었다. 그 강사를 아이들은 ‘드론 삼촌’이라고 불렀다. 나를 볼 때마다 드론 삼촌을 만났던 이야기를 하면서 신나하는 아이들을 보니 덩달아 신이 났다. 무슨 일이 생겼을 때 도움을 청하고, 마음의 고민이 생겼을 때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는 어른이 될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그런 도움을 줄 수 있는 아이들이 아직 지역에 남아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3명의 아이들 중 2명의 전학이 결정되어 2024년 근흥초등학교 3학년은 1명이 된다. 작은 학교들은 하루하루 살얼음판을 걷듯 폐교의 기로에 서 있고, 학교들은 학생들을 유치하기 위해 광고를 한다. 지역 소멸은 해결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작은 학교의 폐교는 당연하게 생각하는 형태는 결국 지역 소멸의 가속화를 불러온다. ‘효율’이 앞세워진 현실 속에서 모두 바람 앞의 등불이다.
그럼에도 지역 소멸이라는 고민을 안고, 그 지역을 기록해야겠다는 마음을 갖고 여전히 달리고 있다. 확실히 사람을 만나는 것이 주된 일이니 쉬운 일은 아니다. 어느 누군가는 이 일이 쓸데없는 일이라고 말할 것이다. 솔직히 우리 욕심일 수도 있다. 그래도 욕심 좀 부려보려고 한다.
2024년에도 많은 아이들에게 삼촌과 이모를 만들어 주고, 더불어 고민을 함께 나누고 이야기를 토로할 수 있는 우리의 친구도 만들어 보고자 한다. 여러분, 오세요. 태안으로!
글/사진 김은지
※ 김은지님의 ‘소멸 되어가는 지역 기록하기’ 는 2023 변화의물꼬 지원사업 2단계 항해하기의 지원을 받아 진행됐습니다.
사회 문제는 소수의 힘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는 시민들이 늘어나고, 느슨한 관계망이 만들어진다면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나갈 수 있습니다. 아름다운재단은 변화의물꼬 지원사업을 통해 더 많은 시민들이 다양한 사회문제에 주체적으로 참여함으로써 시민사회가 더 너르게 확장되기를 기대합니다. |
박진수
달려가고시습니다 공감합니다 기성세대 어르으로 무한책임을 느낌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