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재단은 아동복지시설 퇴소 후 생계를 위해 경제활동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비진학 자립준비청년을 대상으로 다양한 배움의 기회 제공을 통해 선택권을 확장하고, 지지체계 형성을 통한 심리정서적 안전망 마련하고자 ‘청년배움지원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본 사업은 생활 금융 플랫폼 카카오페이의 지원으로 진행되며, (사)파이나다운청년들과 협력사업으로 운영되었습니다. |
“청년배움지원사업은 제게 ‘행복한 추억’입니다. 이 사업을 통해 지금껏 제가 배우고 싶었던 것들을 원 없이 전념하며 도전할 수 있었어요. 그 시간이 한결같이 다 좋아서 ‘행복한 추억’으로 남아 있어요.” – 이진(가명)
“저는 청년배움지원사업이 ‘엄마 같다’고 생각했어요. 선생님들은 철없던 제가 성장할 수 있도록 여러모로 응원해 주셨고요. 함께 활동하며 만난 형이랑 누나와도 자립을 포함한 걱정거리를 얘기할 수 있어 참 따뜻한 경험이었습니다.” – 오윤기(가명)
아동복지시설을 퇴소한 자립준비청년은 학교 교육과 직업 훈련의 기회가 충분치 못해 삶과 일 속에서 적지 않은 곤란에 부딪히곤 한다. 그 실정을 헤아린 아름다운재단은 ‘청년배움지원사업’으로 자립준비청년의 자립 역량을 기르고, 지지 체계를 꾸리며 사회의 구성원으로 바로 설 수 있도록 힘쓰고 있다. 그중에 여건상 대학에 진학하지 않았거나, 중·고교를 자퇴했던 비진학 청년들은 배움의 가치를 각별히 마음에 새기며 다양한 학습에 집중하고 있다.
새로운 삶과 꿈의 시작
커피와 운동 등 관심 분야의 배움에 몰두하고 있는 이진, 오윤기 청년. 청년배움지원사업으로 새롭게 배움의 열의를 다지며 그들은 뜻깊은 나날을 맞이하고 있다. 비진학 청년인 그들은 자립정보를 공유하는 오픈채팅방과 담당 사회복지사를 통해 처음으로 이 사업을 마주하게 됐다. 무엇보다 규정된 학습이 아니라 자신이 추구하는 배움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는 점이 특별했다. 게다가 또래 청년들과 소통하는 팀별 커뮤니티 활동도 무척 신선하게 다가왔다.
“저는 베이커리카페 창업을 준비하고 있어요. 초등학생 시절부터 빵을 좋아해 파티셰가 꿈이었는데요. 아동복지시설 퇴소 후에는 베이커리카페 창업이 보다 현실적인 것 같더라고요. 이를 위해 고민이 많았던 차에 청년 배움 지원사업에 동참할 수 있어 너무 설렜습니다. 이제 제가 원하던 것을 배울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어요.” (이진)
“저는 부득이하게 아동복지시설에서 중도 퇴소하게 됐어요. 그러면서 제가 지원받을 수 있는 복지도 사라지더라고요. 그래서 뭐라도 시도하고 싶어 청년배움지원사업을 신청했는데, 대상자로 선정돼 표현할 수 없이 기뻤어요. 다만, 진로를 확정 짓진 못해 지금은 관심사인 운동 위주로 배우는 중이에요.” (오윤기)
배움으로 새로운 길을 걸어갈 수 있어 설렜고 기뻤다. 그도 그럴 것이 그동안 청년들의 삶은 결코 마음 같지 않았다. 실제로 이진 청년은 고등학교 졸업 이후 생계를 위해 취업을 해야만 했다. 원래는 대학에 진학하고 싶었지만, 사정상 그러지 못해 한동안 속앓이도 심했다. 하지만 곧 정신을 다잡았다. 어차피 베이커리카페는 대학에 진학하지 않아도 창업할 수 있다며 애써 자신을 달랬다. 자산을 모으기 위해 사무직으로, 또 경력을 쌓기 위해 카페에서도 근무하며 성실한 하루하루를 살아냈다.
“취업한 후 스스로 생활비를 벌고, 경험도 생겨서 뿌듯했는데요. 가끔 힘겨울 때면 의지할 사람이 없어 외롭기도 했어요, 마음을 나누는 친구들은 모두 대학에 다녀서 일정 맞추기가 어려웠거든요. 대학에 진학하지 못해 못내 아쉽더라고요.” (이진)
그런가 하면, 오윤기 청년의 삶 역시 기대했던 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오윤기 청년은 중거리 육상선수였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전국 1위에 입상할 정도로 실력이 뛰어났다. 하지만 시설에선 내내 운동을 반대했다. 그 때문에 체육고등학교에 진학할 수 없었고, 체계적으로 훈련받지 못하면서 육상에 대한 흥미도 점점 사라져만 갔다. 그래도 운동이 좋았다. 그간 눈여겨보던 복싱으로 새롭게 출발하고 싶었다. 단, 재학 중인 고등학교에는 복싱부가 없어 타 지역으로 전학을 떠나야 했다. 그러려면 거주하던 아동복지시설에서도 중도 퇴소해야 했다. 고심 끝에 오윤기 청년은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전학을 결단했다. 다행히 숙식은 전학 간 고등학교의 기숙사에서 해결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도 잠시, 예기치 못한 우여곡절 끝에 복싱부는 해체되다시피 했다. 그 후 몸도 맘도 오갈 데가 없어 학업을 중단하고 공사장에서 현장직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급여가 많진 않았지만, 직접 돈을 벌어 쓰는 과정이 재미있었어요. 그런데 별다른 계획이 없는 데다 조언을 구할 사람도 없어 매번 충동적으로 돈을 쓰게 되더라고요. 아무래도 미래가 두려웠어요. 그래서 지금은 아침 6시에 출근하고 오후 5시에 퇴근해서 저녁에 운동한 다음 9시쯤 잠들어요. 자유롭게 시간을 활용하면 자기관리가 어려울 것 같아 여지를 두지 않으려고요.” (오윤기)
다양한 배움과 즐거운 활동의 시너지
답답함과 막막함이 앞을 가렸던 이진 청년과 오윤기 청년의 지난날. 그런 그들에게 배움은 기대 이상의 기쁨을 선사했다. 지금껏 소망했지만 아직은 배우지 못했던 다양한 활동에 열중하며, 이진 청년은 꿈에 다가설 수 있어서, 오윤기 청년은 희망을 찾아낼 수 있어서 행복했다. 그사이 그들의 마음에는 서서히 여유도 생겨났다. 이제는 생각했던 대로 살아갈 수 있겠다는 자신감과 의지력도 솟아났다.
“저는 베이킹을 공부하며 로스팅 관련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었는데요. 그 덕에 커피 메뉴를 개발하는 직종으로 취업할 수 있었어요. 그뿐 아니라 배움에 대한 지원이 폭넓어 운전학원에 등록해 면허증도 땄고요, 여행을 떠나 유명한 카페거리에도 갔는데 너무 보람찼습니다.” (이진)
“저는 운동을 좋아해 크로스핏을 배우고 있고요. 한편으론 검정고시에 도전하기 위해 노력하는 중인데요. 이렇게 여러 가지 배움을 시도할 수 있어 의미가 남달랐어요. 더구나 배움활동보조비도 지원돼 크게 도움됐는데요. 매월 고정비용을 납부한 후 맛있는 음식도 먹을 수 있어서 정말 좋았습니다.” (오윤기)
그들의 도전과 성취는 그것이 다가 아니었다. 그들은 재정 컨설팅과 개인 상담도 받으며 성장을 이어갔다. 특히 이진 청년은 재정 컨설팅을 통해 배움활동비를 유용하게 활용했고, 일상 속 자산관리법을 습득할 수 있었다. 또한 오윤기 청년은 개인 상담을 통해 삶의 불안이 줄었고, 새로운 진로를 모색할 수 있었다. 아울러 그들은 팀별로 진행된 또래 커뮤니티 활동을 각별한 경험으로 간직했다. 실제로 그들은 또래 활동을 통해 친구들을 만났고, 특별한 추억들이 생겼다.
“저는 또래 활동으로 팀원들과 뮤지컬을 관람하고, 터프팅도 체험하고, 글램핑도 즐길 수 있었는데요. 다들 성장 환경이 비슷해서 그런지 공감대 속에 빠르게 친해졌어요. 이제는 SNS 소통방에서 중요한 정보도 공유하고, 따로 연락도 주고받으며 서로 격려하고 있어요.” (이진)
“저도 또래 활동이 인상적이었어요. 저는 팀원들과 식사하고 방탈출카페에 다녀왔던 그때가 기억에 남아요. 당시 제가 걱정이 많았는데요. 팀원들이 제 얘기에 귀를 기울여 주고, 힘도 북돋워 줘서 마음을 바로잡을 수 있었습니다.” (오윤기)
다양한 배움과 즐거운 활동의 여정. 그 속에서 그들은 스스로 일어서고 서로 의지하는 법을 익혔다. 그래서 이진 청년은 청년배움지원사업을 ‘행복한 추억’이라고, 오윤기 청년은 ‘엄마 같다’고 표현했다. 여기서 ‘행복한 추억’과 ‘엄마 같다’는 표현에는 따스함과 포근함이 녹아있다. 햇살을 닮은 그 따스함과 포근함이라면 이제 그들은 겨울 같은 세상을 뚫고 삶을 꽃피울 수 있다. 나아가 외로움과 두려움의 알을 깨고 꿈으로 날아오를 수도 있다. 그렇게 그들이 쨍한 삶을 세우고 벅찬 꿈을 펼치길 이 사업의 모두는 힘껏 응원하고 있다.
글. 노현덕 l 사진. 이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