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8월 22일 아름다운재단이 13살 생일을 맞이하였습니다. 갓 태어나 걸음마를 시작하는 재단을 일으켜주시고, 13년이란 시간을 함께 해주신 오랜 동반자. 기부자라는 이름 뒤에 숨은 한 분 한 분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자 지속적으로 만나는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13년의 동행 ① – 권오국 기부자 인터뷰]
지난 8월 8일 막바지 여름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날 아침. 재단 캠페인팀 김아란 팀장, 기부자회원관리 담당 박해정 간사 그리고 나. 우리 셋은 강남 센트럴시티터미널에서 만났다. 8월 22일 아름다운재단 창립 13주년을 맞아 13년 동안 계속 기부해 온 기부자님들을 찾아가 인사하는 ‘13년 기부자님을 찾아갑니다!’프로젝트 1호 를 진행하기 위해서였다.
첫 기부자는 경북 영주시에서 자영업을 하는 권오국 기부자님이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정보는 2000년 12월부터 아동청소년지원-미래세대 1%기금과 공익활동지원-1%기금에 13년째 꼬박꼬박 기부하고 계시다는 것밖에 없었다. ‘어떤 분일까?’, ‘재단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실까?
2시간 30분여를 달려 낮 12시 30분 영주고속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벌써 터미널로 마중 나와 있었다. 마흔 아홉살이라기에는 너무 젊고 멋진 권 기부자님! 한눈에 서로를 알아본 우리는 예전부터 잘 아는 사람들처럼 서로의 속내를 내놓고 떠들기 시작했다. 영주의 명물 부석사로 옮겨 무량수전을 둘러보면서, 여름 땡볕에 쑥쑥 익어가는 영주 사과밭을 둘러보면서 우리의 이야기는 계속됐다.
김미경(아름다운재단) : 먼저 어떻게 2000년 처음 기부를 시작하게 되셨는지 이야기해 주시겠어요?
권오국 기부자(권오국) : 2000년 아름다운재단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였어요. 아름다운재단 소개 방송을 들으면서 참여해 보고 싶은 맘이 들었어요. 그런데 그때 당장은 실천 못했어요. 그냥 생각만 하고 시간이 좀 흘렀죠.
그러다 2000년 12월 잡지에 소개된 걸 다시 보고는 직접 전화를 걸었지요. 그때도 766-1004번이었나요? 처음엔 아마 월 5천원씩을 시작했을 거에요. “아이구 일단 함 해보자. 많지 않은 금액이지만 일단 주면 그쪽에서 알아서 잘 쓰겠지. ” 머 그렇게 생각했지요.
김미경 : 기부 액수나 영역을 정하게 된 특별한 배경이 있는지요?
권오국 : 하하. 그 액수가 적정하다고 생각했던 게 아니라 당시 돈이 없어서 그것밖에 못했던 거죠. 혼자 자영업을 하다 보니 매월 통장에서 돈이 빠져 나가는 게 제일 무서운 일이죠. 통장에 잔고가 없는 일도 종종 있었으니까 못 빠져 나가는 때도 있었죠. 잔고가 없어서 돈이 못 빠져 나가면 너무 창피스럽고 그랬어요. 처음에 매월 5천원을 내면서 굳이 어떤 영역에 쓰라고 정할 생각은 민망해서 못하겠더라구요. 재단이 알아서 투명하게 알아서 잘 쓸 거라고 믿었습니다. 그래도 기왕이면 앞으로 나갈 길이 미래니까 미래세대를 위한 사업에 썼으면 하는 바램만 전했었습니다.
김미경 : 13년간 계속 기부를 하고 계신데요. 중간에 중단하고 싶은 맘이 든 적은 없었는지요?
권오국 : 솔직히 없었다고는 말 못하겠죠. 2009년 쌍용자동차가 파업할 때 수입이 없어서(※권 기부자님은 지난 94년부터 쌍용자동차 영주 대리점일을 하고 계신다) 목수 보조일을 했었습니다. 집에 갖다 줄 생활비가 없어서 친지에게 빌려서 갖다 주기도 했구요.
지갑에 1만원짜리 한 장이 없을 때도 있었고 단돈 1천원이라도 필요할 때가 있었습니다. 기부금이 빠져나가는 날 통장에 잔고가 없는 일이 잦아지니, 정말 이거라도 중단해야 하는 거 아닌가? 진지하게 생각하기도 했죠. 단돈 한 푼이라도 필요한데 말입니다. 그런데 그만두겠다고 차마 전화를 걸 수가 없더라구요.
사실 2009년 재단에서 기부를 좀 더 해달라는 요청 전화를 받은 적도 있었습니다. 정확하게 기억이 나진 않지만 무슨 책을 만드는데 책값을 더 기부해 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지금 제 통장이 마이너스인데 이번엔 그냥 봐주십시오. 더 못 하겠습니다.” 하고는 전화를 끊었죠. 얼굴이 화끈화끈했습니다.
뒤돌아 생각해 보니…기부하는 금액이 많았으면 그때 딱 그만뒀을 거 같습니다. 그런데 금액이 워낙 적다 보니…하하하. 아이구 이것도 못하고 살면 너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계속 했죠.허허.
김미경 : 인생에서 이처럼 13년간 계속한 또 다른 일이 있으신지요? 또 다른데 기부하는 데가 있으신지요?
권오국 : 글쎄. 쌍용자동차 대리점을 94년부터 했으니까 13년은 넘었고, 아내 만나 결혼하고 아이 낳아 기른 것도 13년 넘었네요. 그런데 그 외의 일은 13년간 계속한 일이라? 특별히 없네요. 다른 기관에 13년간 기부 계속한 일도 없구요. 정말 벌써 13년이 됐습니까?
김미경 : 기부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어떤 형태의 기부와 지원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십니까?
권오국 : 제 아들들에게 늘‘사회는 혼자 사는 것이 아니다. 내가 배고프면 남도 배고프고, 내가 배부르면 남도 배부르게 해줘야 한다. 늘 주위를 돌아보고 그 사회에서 필요한 작은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그게 기부가 아닐까요? 늘 주위를 돌아보고 자신의 생활에서 쪼개서 사회에 조금씩 보태면서, 사회의 작은 틈을 메우는 역할. 많은 사람들이 기부를 ‘생활’이 아니라 ‘생색’으로 생각하는데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부는 생색이 아니라 생활이 되어야겠죠.
노인들에게 풀뽑기 시키고 돈주는 식의 퍼주기식 복지 지원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해요. 지속적으로 퍼주는 식의 지원이 아니라 근본적인 해결을 해주는 식의 복지와 지원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더 시급한 지원이 필요하면, 빨리 판단해서, 기준을 바꿔서라도 그쪽으로 지원을 해야겠죠. 물론 이럴때도 투명하게 사업 보고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 전제가 되어야 하겠지만 말입니다.
김미경 : 아름다운재단에 계속 기부하고 계신 이유를 하나로 꼽는다면 뭘까요? 어떤 상황이 오면 기부를 중단하실 건가요?
권오국 : 투명성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1년에 한 번씩 배달돼 오는 나눔가계부를 꼼꼼히 들여다 보고 문제제기할 정도로 치밀하지는 않지만.
쭈욱 훑어보면서 투명하게 운영하고 있다는 걸 발견하곤 합니다. 그게 재단에 기부를 계속하게 하는 가장 큰 원동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뒤집어서 재단이 누구 개인의 이익을 위해 사적으로 운영된다든지, 투명하게 기부금이 사용되지 않는다든지 하는 일이 발생한다면 당연히 곧바로 기부를 중단할 것입니다.
김미경 : 어릴 적부터 이웃을 돕는 일에 관심이 많았었나요?
권오국 : 글쎄. 초등학교 때부터 동네 마을길 청소, 꽃길 가꾸기 등을 열심히 해서 칭찬을 많이 들었던 것은 같네요. (쑥스러워한다) 칭찬받고 싶어서 자꾸 했는데 그러면서 공동체를 위해 일하는 것이 즐겁다는 걸 익힌 것 같기도 합니다. 요즘도 주민자치위원회, 체육회 봉사 등을 많이 해서 아내가 안 좋아하기는 합니다.‘집안 일을 더 열심히 해야지 왜 나가서 그러느냐?’고 구박받기도 하지요. 집안 일도, 이런 일도 다 열심히 하고 싶어요. 이런 저를 보고 ‘정치하려고 그러느냐?’고 눈을 흘기는 주변 사람들도 있는데요. 굳이 찾아가서 정치를 할 생각은 없지만 저한테 다가온다면 자연스럽게, 착한 정치를 하고 싶은 생각은 있습니다.
김미경 : 그동안 재단에 섭섭했거나 아쉬웠던 점은 없었는지요?
권오국 : 글쎄. 재단에 섭섭했던 특별한 기억은 없네요. 그보다 재단 간사들은 보수가 어떤가요? 신념은 흔들릴 때가 많으니까 현실적으로 대우를 해줘야 그 일을 계속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말입니다. 인건비를 제대로 줘야 한다는 거죠. 나눔가계부에 나온 걸 보니까 너무 적은 것 같던데요? 물론 기부자들이 내는 돈을 몽땅 어려운 사람들에게 주어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저도 개인사업 하다 보니 잘 아는데 인건비, 경상운영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간사들에게 제대로 대우를 해줘야 제대로 어려운 사람을 잘 도울 수 있을 거 아닙니까? 말하고 보니 이건 재단에 섭섭했던 기억이 아니네요. 하하.
김미경 : 앞으로도 계속해 주실 거죠?
권오국 : 기부금을 좀 더 많이 내야 할텐데. 더 많이 못내는 것이 미안합니다. 하지만 앞으로 적은 액수이지만 계속 할 생각입니다. 내년엔 기부금 액수를 좀 높이도록 해볼께요. 재단이 현재처럼 투명하게 계속 잘 운영된다면 우리 아들들도 계속 저를 이어 할 수 있도록 꼭 이야기하겠습니다.
“사는 게 별 거 없어요. 돈을 벌려면 악쓰며 벌어야 하는데 그건 아무래도 제가 잘 하기 힘드네요. 재미있게 서로 도우며 사는 것이 중요한 거 아니겠어요?” 이런 저런 이야기 중에 권오국님이 흘리듯 이야기한 그의 인생론의 한 대목이었다. 영주고속버스터미널에서 아쉬운 이별을 하고 서올로 돌아오는 내내 권오국님의 그 말이 귓전을 울렸다. ‘재미있게 서로 도우며 사는 게 인생이 아니겠어요?’ 13년 기부자님께 변변찮은 감사 선물을 드리러 갔다가 오히려 커다란 선물을 되받아온 듯한 느낌의 하루였다.
글_김미경(아름다운재단 사무총장) / 사진_김아란(팀장)
p.s 권오국 기부자님께서 보내주신 사과가 오늘(8월 22일) 창립기념일에 맞춰 도착하였습니다 ^-^ 저희 간사들 하나씩 먹고도 남아서 어떤 분은 2개를 드셨어요 ㅋㅋ 잘 먹었습니다!! 고맙습니다. 기부자님 🙂
새근이
이런분이 있어 세상은 아직 따뜻하고 행복한것 같아요.
손영주
전 그냥 아름다운재단에서 일하는 영주..
글을 읽고 마음이 또 서서히 뜨거워지네요. 이런 인터뷰 기사 참 좋아요. 꾸밈도 없고 잘 보이려 쓴 글도 아닌, 정말 있는 그대로 이야기들…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좋아요!!
13년이라
나는 13년동안 한결같이 해온것이 있는가, 뒤돌아봐지네요. 삶과 나눔은 매한가지구나. 또 한번 생각합니다. 고마운 글입니다!
sun
아침에 핸드폰액정이 깨져서.. 기분이 안좋았는데.. 이글을 읽고 보니, 나쁜 기분이 싹 도망가네요.. 많이 배웠습니다. ‘재미있게 서로 도우며 사는 게 인생’ 고맙습니다.
한가위야~어서와~
13년동안 쭈욱 기부를 하시다니~~ 정말 대단하십니다~
영주 사과..저도 참 좋 좋아하는데요. 저도 먹어보고 싶군요~ ㅎㅎ
angela
‘재밌게 서로 도우며 사는게 인생’이란 말씀이 와닿네요. 멋있는 분이십니다^^
샘
권오국 기부자님께서 보내신거였군요…지금 먹구 있는데 너 맛있고 예뻐요~ 이리 오래동안 함께 해주시고, 재단 간사 처우도 걱정해주시니.. 감동입니다.열심히 할게요~!
지나가며
훌륭한 분이시네요. 많이 배우고 갑니다. 재단 창립기념일도 아울러 축하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