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의 동행] 시리즈를 시작하면서 기부자라는 이름 뒤에 숨은 한 분 한 분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리며 지속적으로 만나는 시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세번 째로 넉넉하지 않은 생활 속에서도 13년 간 기부를 하시는 밝은 웃음과 넘치는 에너지의 소유자 조명자 기부자님을 만나고 왔습니다.
밝고 따듯한 에너자이저를 만나다
조명자 기부자님(72)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13년간 장기 기부를 하고 계십니다. 사실 폐지를 주으며 넉넉하지 않은 생활을 하신다는 것을 들었을 때는 이렇게까지 밝은 분이라는 상상을 하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집으로 들어서는 저희를 맞이한 것은 72살의 나이라고 믿기지 않는 밝은 웃음과 넘치는 에너지를 가진 분이셨습니다.
“평생 여러 가지 일을 했지만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어. 돈 하고 인연은 별로 없나봐.”
많이 가진 것이 행복의 기준이 되는 요즘. 평생 이어지는 경제적인 어려움이 지겹고 지칠 법도 한데 실패담을 이야기하시면서도 지치지 않은 표정이었습니다. ‘곧 불혹’을 앞두고 있는 저이지만 아직도 철이 없는 것인지 작은 일에도 잘 낙담하는 저는 대체 저 에너지와 웃음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궁금했습니다.
몇년 전 뇌출혈로 수술을 하시며 몸은 더 약해지셨다고 합니다. 무거운 고철을 들고 옮기시느라 손 마디마디 관절이 붉거져 있습니다. 계속 되는 허리병으로 오늘도 병원을 다녀오셨다고 합니다. 병원을 나서면서 길에서 붕어빵을 사드시는데 고운 얼굴과는 다른 손을 보면서 ‘할머님도 고생 꽤나 하셨네요.’라는 말을 들으셨다고 하시면서 껄껄 시원하게 웃으십니다.
지치지 않는 저 에너지의 근원은 무엇인지 궁금해서 제법 집요하게 기부하시게 된 동기에 대해 물었습니다.
“그냥 예전부터 조금이라도 가지면 퍼주고.. 호박이 생기면 호박죽을 끓여서 노숙인에게 나눠주고. 옷이 생기면 아이들 입으라고 가져다주고. 그냥 그렇게 살았던거 같아. 근데. 생각해보면 며느리가 세 번의 유산을 하면서 생명의 소중함에 대해 더 깨달은 거 같지. 지금 그 손자는 잘 자라서 재단 기부자로 등록되어 있어.”
‘며느리의 세 번에 걸친 유산과 나눔이 어떻게 연결이 되는걸까?’ 언뜻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내가 어려우니 주변을 더 돌아보게 되고 .. 그런거 같아.. 하하. 잘 모르겠어. 그냥 예전부터 계속 했던거라. 뭐 별것도 아니고 얼마 되지도 않잖아. 에이. 뭘 이런거 가지고.”
웃음이 많은 기부자님은 끝내 쑥스러운 웃음을 터트리십니다. 2시간 정도 기부자님을 뵙는 동안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에이. 뭘 이런 거 가지고.’ ‘부끄럽지.’ ‘이게 뭐라고.’ ‘더 해야하는데.’ 그런 말씀이셨습니다. 한 달에 30여 만원의 생계비. 그 중 1%가 훌쩍 넘는 금액을 기부하시면서도 늘 더 나누고 싶고, 주고 싶은 기부자님. 내가 넉넉하니까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게 아니라 내가 어려우니까 더 어려운 사람을 생각하는 그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졌습니다. 그 넉넉한 마음이 밝음의 원천일까요.
누구나 할 수 있다는 공감, 재단과의 인연이 시작되다
조명자 기부자님은 2000년 재단이 창립하던 시기부터 지금까지 계속 기부해주고 계십니다. 뇌출혈로 수술하시고, 생활이 어려워지면 기부금을 잠시 낮추더라도 한 번도 빠지지 않고 기부해주고 계십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더 밝은 에너지로 봉사 활동을 하시며, 꾸준히 기부를 해주시는 재단의 대표 기부자로 청와대에 초청을 받으시기도 하셨습니다. 재단을 알기 전에도 계속 봉사를 해주셨고, 지금도 은빛 도우미로 기부자님보다 더 연세가 많으신 할머님들을 찾아가 봉사를 해주고 계십니다.
“방송을 보면서 누구나 기부할 수 있다는 얘기를 들으며 나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지. 그 전에도 봉사 활동을 계속 했지만 기부를 한 건 처음이고. 그만한다는 생각은 안했던거 같아. 얼마나 된다고. 부끄럽지. 내가 나눌 수 있는게 있다면 그게 감사하지.”
아름다운재단은 창립 초기부터 1% 나눔 캠페인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습니다. 1% 나눔 캠페인은 학생은 용돈 1%, 직장인은 월급 1%, 작가는 인세 1% 이런 식으로 생활과 밀접하게 관련된 나눔 캠페인으로서 ‘누구나 무엇이든 나눌 수 있다’는 취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조명자 기부자님은 그 캠페인의 의미와 정말 부합되는 삶을 살고 계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년에 행사(나눔의 식탁)할 때도 갔었고, 처음에 재단 생길 때도 갔었고, 가서 박원순 시장님도 뵙고. 많이 갔지. 재단에서 이런 저런 행사있을 때마다 자주 가고 재단 덕분에 즐거운 일도 많았지. 청와대에도 가보고.”
말씀 중간 중간 갑자기 생각 난 듯 자리를 비운 기부자님은 사진을 몇 꾸러미 가져오셨습니다. 재단 활동에서 했던 나눔의 식탁 등 다양한 활동에 참여하신 덕분에 여러 가지 사진이 있으신데 못 찾아서 끝내 아쉬워하셨지요. 그 중에서도 재단에서 추천되어 청와대에 방문했던 사진은 액자에 곱게 걸려 있었습니다.
재단이 만들어진지 13년. 재단에는 누적으로 10만 여 명의 기부자님이 계시고, 매년 일시, 정기를 포함해서 약 2만 여 명의 기부자님이 꾸준히 기부에 참여하고 계십니다. 13년 넘게 하신 분도 1000여 명이 넘습니다. 그 분들을 언제 다 뵐지는 모르겠지만, 그 분들의 소중한 기부금으로 또 누군가가 웃고, 저희가 웃는 것처럼. 재단과 기부자님의 만남이 재단의 활동이 이렇게 웃음을 드릴 수 있다면, 소중한 추억이 된다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2시간이 어떻게 지났는지. 말솜씨 좋으시고, 에너지 넘치시는 기부자님과는 2시간이 아니라 이틀을 있어도 못다한 이야기가 많을 것 같았습니다. 재단의 여러 가지 일에 함께 해주신 기부자님. 어려운 일이 있어도 본인보다 더 힘든 사람들을 생각하며 기부를 이어오신 기부자님을 이제 저희가 찾아뵙게 되어서 참 기쁜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하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또 마음으로도 많은 제약이 되는 시대. 넘치지는 않지만 하루 하루 열심히 생활하시며 나보다 더 힘든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그 마음은. 많은 것을 가져도 계속 모자라고, 가질 수록 더 위를 향하는 시대에 행복하게 의미 있게 사는 법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굳이 기부자님을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기부를 해주시는 분으로 부각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기부자님의 따듯함, 활기참, 마음의 여유를 담고 싶었습니다. 마음의 여유는 경제적 여유에서 나오는 것만은 아님을 오늘 또 배웠습니다. ‘옆집 엄마’로 불리고 싶다는 그 마음처럼 정말 따듯했던 만남. 참 고맙습니다 🙂
글 | 박해정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