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변화의시나리오 스폰서 지원사업으로 발달장애청년허브네트워크 사부작은 <배제된 노동 연구 모임>을 열고 ‘지금의 노동 시스템에서 어떻게 다른 세계를 열어갈 수 있을까’부터 ‘지금 만나는 장애 청소년들과 같이 어떤 일을 하면 좋을지’에 대한 문제의식을 나눴습니다. 이후 확장성을 갖고 각자의 독특성을 유지하며 더불어 함께 사는 상호의존과 상호돌봄의 ‘공동의 삶’이란 주제로 공동포럼을 열었습니다. |
발달장애인의 노동 이야기
사부작은 2021년부터 해마다 ‘발달장애와 마을 포럼’을 진행해왔어요. 2022년 포럼 주제는 ‘노동’이었는데요. 누군가의 활동(작업)이 이윤을 남겨야만 노동으로 가치 있다고 인정하는 지금의 노동시스템 안에 중증장애인이 들어설 자리는 없잖아요. 그런데 2022년 포럼에서 김도현 선생님이 ‘공공시민노동’ 개념을 말씀하셨어요. 그것은 누군가의 활동이 주변에 영향을 미쳐 바람직한 방향으로 변화한다면, 그것을 노동으로 인정해 공공영역에서 급여를 지급한다는 내용이었어요. 그리고 ‘공공시민노동’은 ‘권리중심 중증장애인 맞춤형 공공일자리’로 실제로 구현되고 있었고요.
중증장애인이 춤추고 노래하며 자신의 권리를 옹호하는 활동 그리고 중증장애인의 생존활동이 사회를 변화시키는 의미 있는 노동이라니! 우리는 사부작청년들을 생각했어요.
사부작청년들이 마을에서 옹호가게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동아리 활동을 하며 거리를 누비는 것은, 지역에 존재를 드러내는 것은 얼마나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인가!
사부작이 중심이 되어 지역에서 발달장애인의 노동 이야기를 같이할 사람들을 모아보자고 생각했어요.
사부작청년들은 마을에서 일상을 어떻게 보내는지 궁금해요!
사부작청년들은 길동무와 함께 마을에서 그림, 훌라춤, 요가 등 다양한 동아리를 만들고 활동해왔어요.
잠깐 용어 정리가 필요하겠어요. 우리는 사부작과 연결되어 활동하는 발달장애청년을 사부작청년이라 부르고요. 사부작청년과 함께 동아리 활동이나 다양한 마을활동을 하는 이웃을 길동무라고 한답니다. 참, 사부작에 함께 오시는 활동지원사도 길동무라고 불러요. 그리고 활동지원사분들은 사부작청년들과 춤도 같이 추고요. 발달장애인이 편히 갈 수 있는 가게를 알리는 옹호가게 프로젝트 같은 마을활동을, 사부작청년들과 함께 하시죠. 최근엔 활동지원사분들과 사부작청년들이 의기투합해서 한 끼를 같이 준비해서 먹는 ‘모던푸드’란 동아리를 만들었어요. 사부작청년들의 일상, 대충 그림이 그려지시나요?
그러나 청년들이 지역에서 일상을 보내는 일은 늘 즐겁고 매끄럽지만은 않아요. 그래서 자주 긴장하게 되지요. 그러면서도 조금씩 서로를 견디고 참는 힘이 쌓이는 걸 느끼기도 해요. 그렇게 사부작청년들은 길동무들과 다양한 활동을 하며 주변과 관계를 맺고 확장해 나가는 중이랍니다.
‘배제된 노동 연구모임’ 시작
그럼 다시 노동 이야기로 돌아가서, 사부작은 사부작청년들의 다양한 활동을 어떻게 노동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인지 그 고민을 지역 공동체와 함께 해보고 싶었어요. 그리자 이런 내용으로 2023 변화의시나리오 스폰서 지원사업에 선정되는 기쁜 일도 생겼지요. 그 덕분에 사부작은 무엇을 어떻게 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우리 일단 만나요!’라는 심정으로 용기를 낼 수 있었어요. 마침 마포지역엔 돌봄과 생태를 고민하며, 관련 활동을 하는 다양한 단위들이 있어서, 그곳에 모임에 초대한다는 메일을 보냈답니다. 마포다정한재단, 마포희망나눔, 마을전환연구소, 성미산학교, 노들장애인야학 자원교사, 마포구 구의원, 정의당 지역사무소와 사부작까지 모두 11명이 9월 어느 날, 첫 만남을 가졌어요.
참여자들은 ‘지금의 노동 시스템에서 어떻게 다른 세계를 열어갈 수 있을까’부터 ‘지금 만나는 장애 청소년들과 같이 어떤 일을 하면 좋을지’ 까지 다양한 욕구와 기대를 가지고 있었어요. 그러나 ‘우리가 계속 만나 중구난방 얘기하다가 보면 더듬더듬 무엇인가를 찾아가게 되지 않을까’라는 한 참여자의 말처럼 무언가 딱 정리되지 않은 공부 여정을 함께하기로 했지요.
<문화/과학: 장애와 역량>을 같이 읽고
우린 책을 같이 읽고 두 번의 모임을 갖고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모임 참여자들은 장애인과 만난 경험치가 다양했어요. 그래서 책을 읽고 이야기 나눌 때 각자의 경험이 보태지며 내용이 확장되어 매번 두 시간이 모자랄 지경이었죠. 여러 챕터 중에서 김도현 선생님의 ‘기본소득인가 공공시민노동인가?’를 처음 접한 한 참여자는, 자신의 활동 분야에서 어떻게 연결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싶다고 했지요. 참여자들이 가장 재밌게도 읽었지만 그만큼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준 글은 이진희 대표님(장애여성공감)의 ‘불구의 몸들이 서로 돌보는 정치’였답니다. 장애인, 비장애인의 돌봄 관계에서 실패를 드러내고 상호의존, 상호돌봄의 관계로 확장해 나가는 이야기는 우리가 각자 처한 상황들을 되돌아보게 했어요.
그래서 만장일치로 얼마 전 이웃이 된 고병권 선생님과 이진희 대표님을 모셔서 강연을 듣기로 했지요. 강연은 마을에 여는 포럼으로 진행하고요.
2023 발달장애와 마을 포럼: 공동의 삶
포럼은 고병권 선생님의 ‘포함의 정치를 넘어 공동의 삶으로’를 시작으로 이진희 선생님의 ‘불구의 몸들이 서로 돌보는 정치’ 그리고 일본의 중증 발달장애인이 활동지원사와 자립생활지원센터의 지원으로, 지역에서 자립하는 이야기를 담은 ‘길가의 풀’을 공동체상영했어요. 그리고 사부작 북토크 ‘마을에서 경계 없이 다정하게’로 마무리되었는데요.
각자의 독특성을 유지하며 더불어 함께 사는 상호의존과 상호돌봄의 ‘공동의 삶’이란 주제가 포럼 전체를 관통하며, 사부작청년들이 길동무와 함께 등장하여 소통하고 관계하는 것을 드러낸 사부작 북토크에서 정점을 찍었다는 생각이 든답니다.
우린 서로 다정하게 의존하며 살아가야 하니까요!
배제된 노동 연구모임은 2024년에도 지속됩니다
연구모임에서 나눈 이야기와 포럼 내용을 기록한 ‘배제된 노동 연구모임 기록 자료집’을 제작했어요. 그동안 나눈 이야기를 정리하다 보니 연구모임이 정말 다양한 이야기를 쏟아내며 다음 단계로 확장하기 위한 기반을 다지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되돌아보니 새삼 놀라운 일이기도 합니다. 사부작이 주축이 되어 지역의 단위들이 모이고 네트워크를 조직하다니! 이미 지역에 작은 변화의 파장이 시작된듯하여 기쁩니다. 한 참여자는 장애 분야를 공부하다 보면 생각의 지평이 넓어지고 급진적인 사고를 하게 한다고 하셨어요. 바로 장애인을 비롯해 취약한 모든 이들이 우리 사회를 공동의 삶으로 향하게 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하게 됩니다.
참여자들 모두는 배제된 노동 연구모임을 지속하길 원하셨어요. 이제 본격적으로 노동을 이야기해보자고 하셨답니다.
지역의 작은 파장이 큰 물결이 되길 희망하며, 2024년 우리의 모임은 어떤 이야기를 쏟아내며 진행될지 너무나 궁금합니다.
글, 사진 | 발달장애청년네트워크 사부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