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재단은 많은 비영리 공익단체들이 변화를 이끌 수 있도록 기회의 문을 넓게 열어두고 1%가 100%가 될 수 있다는 믿음으로 변화를 추구하는 다양한 공익활동을 지원합니다. ‘2023 변화의시나리오 프로젝트 지원사업’에 참여한 생명다양성재단의 활동을 전해드립니다. |
할머니의 지혜로부터 쌓아가는 지속가능한 생태 문명의 미래
인류는 오랜 기간 자연이라는 토대 위에 고유한 문화를 만들어 왔다. 그 과정에서 삶을 둘러싼 자연환경과 상호작용하며 다양한 지식을 습득할 수 있었다. 그러나 산업화, 세계화, 도시화가 진행됨에 따라 생태계 파괴와 더불어 이러한 지식의 상당 부분이 잊혔다. 지역공동체는 해체되고 고유문화는 획일화되었다. 자연 혹은 지역공동체와 상호의존적인 관계를 맺음으로써 얻어왔던 것들은 소비를 통해 해결하게 되었다.
인류의 삶은 물질적인 풍요와 편리함으로 채워졌지만 머지않아 인류는 그러한 삶이 지속 불가능한 것임을 곧 깨달았다. 대자연의 회복력이 무너지는 크고 작은 징조들 즉 기후 위기, 생물다양성 손실, 생태계 붕괴 등의 현상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과는 다른 방식이, 지속가능한 생태 문명을 위해 생각과 행동의 총체적인 변화를 추구하는 생태적 전환이 필요한 때이다.
생태적 지혜를 얻는 과정
생명다양성재단은 그 생태적 전환을 일궈나갈 상상의 토대가 될 수 있는 재료를 찾고자 민속생태 아카이브 프로젝트 <우리의 살던 고향은>을 기획했다. ‘2023 변화의 시나리오 프로젝트 지원 사업’으로 진행한 본 프로젝트는 한국의 도시화 이전을 경험하신 지역 어르신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우리나라의 옛 자연, 자연과 더불어 살아온 일상의 이야기를 수집하는 것에서 시작했다. 강원 태백, 경기 양평, 경북 안동, 전북 익산 총 네 지역에서 만난 어르신 10명(1번 만나 인터뷰한 어르신들 포함하면 12명)과 평균 4회씩 주기적으로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어르신들이 들려주신 이야기 속 지식은 우리가 학교나 책에서 배운 지식과는 달랐다. 문장으로 쓰여 있지도 않고 분석적이거나 논리적이지도 않았다. 특별한 연구자에 의해 개발되지도 않았다. 대부분 구전으로 전해져 온 것들이며 직관적이고 실제적이었다. 읽고 쓰는 것이 힘든 어르신들도 적지 않았으나 그들은 자연과 부대껴 살며 그 안에서 관찰하고 직접 경험함으로써 지식을 받아들였다. 이 지식은 삶을 살아가며 맞닥뜨리는 온갖 조건들 속에서 결정을 내려야 할 때 탁월하게 작용했다. 이러한 경험이 쌓이면 지혜가 되었다.
어르신들의 삶의 토대가 되는 자연과 문화는 서로 분리되어 존재하지 않았다. 해서 그들의 지식에는 풍부한 생물다양성, 문화 다양성, 언어 다양성이 녹아있었다. 이러한 지식이 담긴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다양성의 가치와 인간과 자연 사이의 상호 의존성에 대해서도 배울 수 있다.
할머니들의 지혜를 전파하다
어르신들의 인터뷰 영상은 생명다양성재단 유튜브에 업로드했다. 영상에는 어르신들의 맛깔스러운 입말, 특유의 거리낌 없고 재치 있는 입담이 고스란히 담겼다.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옛 한글 단어들이나 사투리가 심심찮게 등장하는 것도 흥미롭다.
어르신들이 전해주신 이야기를 바탕으로 엮은 아카이빙북 전자책도 발간되었다. 아카이빙북은 모든 지역의 이야기를 한데 모아 주제별로 나누어 구성하였다. 옛이야기와 함께 재단 연구원들의 첨언, 이재각 작가의 지역별 사진,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제작한 김희라 작가의 일러스트 등으로 채워졌다. 아카이빙북 전자책은 생명다양성재단 홈페이지에 업로드(https://www.diversityinlife.org/category/archive)되어 있다. (무료 다운로드)
인터뷰 영상, 아카이빙북 자료를 활용하여 수업, 워크숍도 진행했다. 수업은 인터뷰 진행 지역 중 한 곳인 안동의 한 초등학교에서 3~4학년, 5~6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이루어졌다. 학생들은 같은 고장에 사는 어르신들의 이야기 영상을 통해 안동의 과거 생태환경을, 재단 연구원의 수업을 통해 안동의 현재 생태환경 이야기를 들었고 그 후엔 자신의 눈으로 바라본 안동의 생태에 대해 서로 말하는 시간을 가졌다.
워크숍은 생태·환경 교육가들을 대상으로 이루어졌다. 다양한 연령대(20~60대)와 지역(서울, 경기, 강원 등)의 참가자들이 함께했다. 이 워크숍은 이야기 영상보다는 아카이빙북을 바탕으로 전개되었다. 어르신들의 이야기에서 발굴한 생태적 키워드를 뽑아서 아카이빙북에 나온 이야기, 첨언, 일러스트 등을 활용하여 참가자들에게 소개했다. 참가자들은 자연과 어울려 살아왔던 어르신들의 삶을 어떻게 현대에 적용할 수 있을 것인지 상상했다. 거기에서 각자의 실천을 찾아나가기도 했다.
어르신들의 지혜가 다음 세대로, 다른 지역으로 퍼져나가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그 지혜가 현시대에 맞게 정착하고 보다 생태적 전환의 미래를 이루어 가는 데 일조하려면 우리가 더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새로운 원동력을 얻을 수 있었다.
글, 사진 : 생명다양성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