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재단에서 일하고 있는 3~6년차 매니저들이 제주에서 사회를 바꾸고 있는 단체와 기업의 대표들을 직접 만났습니다. 총 3개 단체를 방문했는데요. 이번에는 이주민, 난민을 위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천구교 제주교구 이주사목센터 <나오미센터> 방문기를 들려드릴게요. |
6년동안 미뤄둔 숙제(?)를 시작했다
2018년 6월, 제주에 입국한 예멘인들로 우리 사회는 ‘난민’이란 존재를 새롭게 마주했다. 혹자는 혐오의 대상으로, 혹자는 우리가 품어야 하는 존재로 이들을 만났다. 그 당시 일었던 사회적 혼란은 대단했다. 관심의 무게도 난민 보다는 그로 인한 갈등에 집중됐다. 그들이 왜 여기에 왔는지, 난민이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세세히 알기 어려웠다. 그렇게 6년의 시간이 흘렀고, 몰랐던 사실은 여전히 모른 채 남아있었다. 언젠가 알게 되겠지, 마냥저냥 미뤄오다 마침 제주에 있는 단체 방문 기회가 생겼다. 제주에서 예멘 난민 관련 활동 단체를 만나 난민에 대해 알아보는 기회로 삼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찾아간 곳이 천주교 제주교구 이주사목센터 <나오미센터>였다.
나오미센터는 2004년 카톨릭 제주교구에서 필리핀 이주민들을 대상 영어 미사를 드리는 일로 처음 시작됐다. 미사로 연을 맺게 된 이주민들에게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진료소와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공부방을 운영해왔다. 그러던 중, 2018년 초 제주에 550여명의 예멘 난민들이 대거 입국했다.
예멘 난민에 새로운 희망이 된 ‘제주’
내국인에게는 낯설지만 제주는 ‘국제자유도시’로 무사증, 쉽게 말해 비자가 없이도 입국이 가능한 곳이다. 여행으로 입국한다는 목적만 분명하다면 30일간 체류할 수 있다. 이때 제주도 내에서만 머물러야 한다는 조건이 있지만, 난민의 경우 인도적 차원에서 출도 제한을 한시적으로 해지해 왔다. 2018년 봄 이전, 여행을 목적으로 무비자로 입국한 후 난민 신청을 위해 육지로 갈 수 있는 무사증입국국가 중에는 ‘예멘’도 있었다.
2015년 예멘에 내전이 발생하자 사람들은 전 세계 곳곳으로 흩어졌다. 그 중에는 말레이시아도 있었다. 말레이시아는 국교가 이슬람으로 예멘 난민들이 정착하기에 좋은 조건이었다. 하지만 말레이시아에는 공식적으로 난민법이 없다. 난민이라는 지위를 인정받을 수 없는 상황에서 예멘 난민들은 더 안전한 삶의 조건을 찾아야 했다. 때마침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와 제주를 연결하는 저비용 항공 노선이 생겼다. 아시아 최초의 난민법을 가진, 무사증입국이 가능한 대한민국 제주로의 이주가 예멘 난민에게 새로운 희망으로 떠올랐다. 그때부터 예멘 난민의 제주 이동이 시작됐다.
예맨 난민 입국이 갑자기 증가하자 법무부는 부랴부랴 무사증입국 금지국가로 예맨을 지정했다. 난민신청자에게만 인도적 차원에서 허용했던 육지로의 이동도 예멘 난민의 입국 이후 없애버렸다. 제주로 들어온 550여명의 예멘 난민들은 가져온 돈은 바닥나고, 육지로도 가지 못하고, 노동도 할 수 없고, 그저 난민심사만 기다리며 그야말로 제주 길바닥에 나앉은 상황에 처했다. 난민법은 있지만, 실질적으로 난민신청자를 보호하지 못하는 한국 정부의 대처에 국내외 비판이 커졌다. 동시에 이들 낯선 존재에 대한 사회적 혐오 또한 거세졌다.
난민은 누구인가?
한국의 난민법은 난민을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난민”이란 인종, 종교, 국적, 특정 사회집단의 구성원인 신분 또는 정치적 견해를 이유로 박해를 받을 수 있다고 인정할 충분한 근거가 있는 공포로 인하여 국적국의 보호를 받을 수 없거나 보호받기를 원하지 아니하는 외국인 또는 그러한 공포로 인하여 대한민국에 입국하기 전에 거주한 국가(이하 “상주국”이라 한다)로 돌아갈 수 없거나 돌아가기를 원하지 아니하는 무국적자인 외국인을 말한다.
─ 출처/ 국가법령정보센터
한국은 이 정의에 따라 ‘전쟁’을 난민 인정의 조건으로 보지 않는다. 즉, 예멘에 아무리 내전이 났다 해도 폭탄이 그 사람을 ‘겨냥해서’ 떨어진 것이 아니라면, 난민으로 인정되기 어렵다. 한국전쟁으로 수많은 난민이 발생했던 우리의 역사를 생각했을 때, 전쟁으로 인한 이주를 난민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무척 놀라웠다. 실제로 2018년 말에 있었던 제주 예멘난민 대상 난민심사결과, 난민 지위로 인정받은 사람은 단 2명이었다고 한다. 이 2명은 예멘에서 신문기자로 일했던 경력(?)이 인정되어 정치적 견해로 박해 받을 수 있다는 이유로 난민 신청이 통과됐다.
그렇다면 난민으로 인정받지 못한 나머지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중 대다수의 사람들이 인도적 체류자격을 부여받았다고 한다. 인도적 체류 자격이란, 난민으로 인정되지는 않으나 ‘인도적 차원’에서 체류 허가를 부여한 사람이다. 난민인정자에 비해, 인도적 체류자격자는 6개월에서 1년마다 체류허가를 받아야 한다. 경제활동이나 노동의 조건에서도 난민인정자에 비해 열악하며, 계속해서 체류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상황이 이들을 불안하게 만든다.
<나오미센터>와 <제주 난민 인권을 위한 범도민위원회>
2018년 6월 제주 사회가 예멘 난민으로 혼란을 겪자 나오미센터를 포함한 시민사회가 발빠르게 움직였다. 오랜시간 난민관련 활동을 했던 베테랑 활동가가 나오미센터와 결합했다. 또 나오미센터를 포함한 33개의 제주 소재 NGO단체가 힘을 합쳐 ‘제주 난민 인권을 위한 범도민위원회’(이하 범도민위원회)를 결성했다. 숙소, 식재료 및 물품, 의료, 가족상담, 노동상담을 나오미센터에서 도맡았고, NGO단체에서는 한국어교육, 문화교육, 일자리창출, 법률조력과 같은 사회적응지원활동을 지원했다.
나오미센터와 범도민위원회는 제주에 발이 묶인 예멘 난민들이 더 나은 삶을, 빠르게 찾아갈 수 있도록 백방으로 노력했다. 탄원서를 쓰고, 정부를 만나 호소했다. 이들의 노력 덕분에 2018년 가을께부터 난민심사가 시작됐다. 대부분 난민 지위가 아닌 인도적 체류 자격을 얻었다. 그나마 이들에게 걸려있던 출도금지는 해제되었다. 예멘 난민들은 육지에서 더 나은 일자리와 삶을 찾기 위해 제주를 하나 둘 떠났다. 그 해 말 제주에 남은 사람들은 100여명 남짓이었다. (이때 제주를 떠났지만, 아직도 명절이면 많은 예멘 난민들이 고향을 찾듯 제주를 찾는다고 한다.)
제주 사회가 점차 안정을 찾게 되자 나오미센터는 제주에 남은 예멘 아이들에게 눈을 돌렸다. 부모의 결정으로 생전 처음 들어본 나라에 오게 된 아이들.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황급히 이주를 결정한 부모에게서 아이들은 어디로 가게 될지, 어떤 삶을 살게 될지 충분한 설명을 듣지 못했다. 받아들일 시간도 없이 낯선 땅에 떨어진 아이들의 사회 적응이 필요했다. 학교 적응을 위한 도움을 주었고, 그렇게 적응한 아이들은 여전히 제주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다.
‘지금’ 제주에 살고 있는 아이들
나오미센터가 최근 관심 갖는 아이 하나가 있다. 2018년에 입국한 예멘 가정의 한 아이 A다. 처음 제주에 들어와 유치원부터 다니기 시작한 아이는 이제 초등학교 3학년이 되었다. 아이는 그동안 새 나라에 적응하기 위해 열심히 한국어를 익혔다. 또래 친구들과 어울리고자 열심히 한국TV를 보고, 형제들과도 대부분 한국어로만 생활했다. 그러다보니 아랍어를 잊어버리고 말았다. 앞으로 여기서 살 아이들인데, 아랍어 좀 못하면 어떤가? 하는 생각이 들지만 현실은 다르다.
“난민 지위에서는 귀화가 가능하지만 인도적 체류 상태에서는 귀화가 불가능해요. 이 아이들은 자국 상황이 변하거나 체류 자격을 못 받을 경우, 언제든 한국을 떠나야 하는거죠.”
한국에서 평생 살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 아이들이 한국 언어와 문화만 배우는 것이 앞으로 어려움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나오미센터는 이런 현실을 바꾸고자 제도 변화를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그것만큼 아이들의 자존감을 기르는 일에도 힘을 쏟고 있다고 한다.
“이 아이들에게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건 과연 뭘까요? 그건 바로 아이들이 여기를 떠나 새로운 곳에 가서 다시 시작을 하더라도 그거를 견딜 수 있는 ‘내적 힘’을 키워주는 거예요. 그래서 지금은 공부 좀 안 해도 돼, 못 해도 된다고 말해요. 그대신 자존감을 기르는 방식으로 프로그램을 바꾸고 있어요. 영화도 보고, 인문학 수업도 하고, 독서 논술도 하면서 아이들이 자기를 소중하게 여길 수 있는 힘을 만들어 주는 것, 그것이 저희의 주안점입니다.”
떠날 사람이 아닌 함께 살아갈 ‘이웃’으로 바라보기
나오미센터 김상훈 안드레아 사무국장은 우리를 맞이하기 위해 발표자료까지 준비해주셨다. 3시간 동안 물 한 모금 마실 새 없이 제주의 특징, 예멘 난민 이야기, 2018년 당시 제주의 상황, 지금 만나고 있는 아이들에 대한 고민 등을 거침없이 이야기했다. 마지막에 이르러 김상훈 사무국장이 바라는 한국의 변화에 대해 이야기했다.
“현재 이주민, 난민 관련 정책은 이들 모두를 손님으로 바라보는 관점입니다. 언젠가 떠날 사람이라는 거죠. 하지만 이제는 바뀌어야 해요. 이들이 우리의 이웃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정책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주민 인구가 높은 농촌 현실에서 이런 관점이 무엇보다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인력난에 허덕이는 농촌에서는 이주민들의 노동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농가소득이나 현실을 고려했을 때, 합법적으로 이주민노동자를 고용하는 게 쉽지 않다는 게 정상훈 사무국장의 지적이다. 현장을 전혀 반영하지 못한 비현실적 정책에 인력이 필요한 농민들은 미등록이주민 노동자들을 찾고, 일자리가 필요한 이주민은 불법적으로 농장을 찾게 되는 악순환이 계속 된다. 이러한 농촌 상황에 대한 근원적 해결책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계속해서 불법이 불법을 만들어 낼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한국 정부가 이들을 이웃으로 받아들이고 함께 살 수 있는 차원에서 정책을 만들어 가기를 바란다고 김상훈 사무국장은 거듭 강조했다.
두려움을 넘어 앞으로 나가기
난민이나 이주민을 떠올렸을 때, 당연히 함께 사는 게 맞다고 머리로는 말한다. 하지만 막상 처음 보는 외국인들 수십명이 우리집 앞에 서 있을 때, 과연 그때도 그렇게 말할 수 있을지 솔직히 장담할 수 없다. 김상훈 사무국장은 말했다.
“두려움은 자연스러운 겁니다. 하지만 그 두려움 때문에 타인, 나와 다른 사람, 이웃을 마주하는 것 자체를 거부하는 건 죄예요.”
나오미센터를 만나기 전 6년의 시간은 두려움을 앞세워 알아도 모르는 척 해 왔던 시간이었다. 마음 한 구석, 알아야 한다는 부담감은 점점 커졌지만 어렵고 복잡하다는 이유로, 또는 낯설다는 핑계로 어떻게든 외면해 왔었다. 이번 방문으로 난민에 대해, 그리고 이주민에 대해 알지 못했던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두려움을 내려놓고 마주하자, 이제는 더 이상 외면할 수 없게 되었다. 나오미센터에서 알게 된 정보를 나의 주변에 알리고, 난민과 이주민에 대해 알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더 알아보고 싶어졌다. ‘앎’에서 끝나지 않고, 함께 ‘행’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함께 하고 싶은 큰 용기와 마음이 새로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