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재단에서 일하고 있는 3~6년 차 매니저들이 제주에서 사회를 바꾸고 있는 단체와 기업의 대표들을 직접 만났습니다. 사라져가는 ‘제주해녀문화’를 음식과 이야기에 담아 지키고 있는 로컬 식문화 그룹 <해녀의부엌>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
“충분히 사회를 이롭게 하면서도 돈이 되는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해녀의부엌 김하원 대표의 수많은 인터뷰를 보며 영리 기업에서도 ‘공익을 생각하는 마음’을 배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두 조와 달리 영리 기업을 방문하기로 선택한 이유였다.
제주해녀문화를 대중에게 알림과 동시에, 소중한 지역 문화가 사라지지 않도록 고민하는 곳. 지역의 폐공간을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하여, 청년예술인이 설 수 있는 무대를 제공하기도 하는 곳. 지역 어촌계가 잘 살아갈 수 있도록 기부하는 것을 넘어, 그들이 겪고 있는 불합리한 유통구조를 바로잡기 위한 노력도 하는 곳. 해녀의부엌은 아름다운재단에서 일하고 있는 우리의 눈에도 아주 매력적인 곳이었다. 설레는 마음을 안고, 택시를 타고 긴 시간을 달려 해녀의부엌 북촌점에 도착했다.
작은 것 하나에도 온 진심을 담아
해녀의부엌 북촌점은 ‘불턱’을 형상화하고 있다. 불턱이란, 해녀들이 물질하다 나와 모닥불에 몸도 녹이고, 잠깐 요기도 하며,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는 곳이라 한다. 우리가 앉아있는 의자는 해녀복을 새활용하여 만든 의자였는데, 손으로 만져보고 있으면 괜히 해녀복을 입고 있는 듯했다.
그렇게 해녀복을 입고, 불턱에 앉아. 인숙 해녀님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었다.
“배가 고플 시간이면 해녀 일을 하고 있던 어머니를 찾아갔어요. 바다에는 땔감이 없으니 감태를 뜯어 불을 붙이고 거기다 뿔소라를 구워주셨죠. 그래서 감태향을 맡으면 어릴 적 어머니와의 추억이 떠올라요.”
뿔소라 구이의 맛과 향이 더 깊어졌다.
미디어아트까지 보며, 오감으로 해녀의 삶을 짧게나마 느꼈다. 짧아서 아쉽지만,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해녀의 이야기를 잘 알리기 위해, 장소, 음식, 이야기, 인테리어 하나까지도 깊이 고민하고 준비한 진심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북촌점에서 나오며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미디어아트 대신 연극 프로그램이 있는 종달점도 가보고 싶다.’였다.
사람들이 뿔소라를 사야 하는 이유?
‘제주해녀문화’는 지난 2016년 유네스코 인류문화무형유산으로 등재되었다. 하지만 해녀분들의 삶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기후변화로 인해 수산자원이 사라지고, 복잡한 유통구조로 인해 해산물의 수익이 감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1970년대 1만 4천여 명이던 제주 해녀는 어느새 3천 명 이하로 줄어들었고, 그 중 90%가 60대 이상일만큼 고령화도 심각한 상황이라고 한다.
해녀의부엌 김하원 대표는 해녀 분들께서 처한 문제를 ‘뿔소라’로 설명해 주었다. 해녀의 주 소득원인 뿔소라는 일본 수출 의존도가 높아서 가격 경쟁력을 잃어버렸다. 해녀 분들이 숨을 참고 바다로 들어가 하나하나 잡아온 뿔소라는 양식산 전복의 10분의 1 가격까지 떨어졌다고 한다.
김하원 대표는 제주 해녀 집안에서 태어났다. 뿔소라 문제는 해녀들의 문제이기 이전에 가족의 문제이기도 했다. ‘사람들이 뿔소라를 사야 할 이유를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한예종에서 연기를 전공한 김하원 대표가 선택한 건 ‘연극’이었다. 해녀 어르신들과 청년예술인들이 만든 연극 공연은 이전에 없던 새로운 ‘제주 해녀 문화’였다. 그리고 그 연극은 관람객 40% 이상이 해녀 채취 해산물 구매를 문의하도록 만든, 즉, 사람들이 뿔소라를 사야 하는 이유가 되었다.
그러나 해녀의부엌이 만든 연극이 가지는 더 큰 의미는 따로 있다. 해녀 문화는 유네스코가 문화유산으로 지정할 정도로 가치 있지만, 정작 해녀 어르신들은 본인의 삶이 초라하다며 연극으로 만드는 걸 부담스러워하셨다고 한다. 하지만 연극을 보고 나면 눈물을 훔치며 “그래도 나 잘 살아왔네.” 하신다고. 해녀의부엌은 해녀 문화의 가치를 해녀 분들 스스로가 느낄 수 있도록 한다는 점에서 또 다른 존재가치가 있다.
바다가 딱 내어주는 만큼만, 공존 그리고 상생
“해녀의부엌의 사업이 아무리 의미 있다고 해도, 해녀 분들이 좋아하지 않고, 해녀 분들께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의미가 없어요.”
김하원 대표는 해녀와의 ‘공존’, ‘상생’을 강조했다. 이는 ‘해녀의 정신’과도 이어진다. 특별한 잠수 장비 없이 오로지 본인의 호흡에 의지하는 해녀들의 채취 방법은 남획이 원천적으로 제한된다. 그래서 해녀 문화는 자연과 공존하는 문화로 여겨진다. 해녀의부엌은 해녀 해산물의 가격 경쟁력을 회복시키기 위해, 해산물을 시가 대비 20-30% 높게 구매하고 있다. 또 수익금의 일부를 지역 어촌계에 기부하고 있다. 이 기부금은 해녀 분들의 고령화로 인한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도록 기중기 같은 기계를 구매하는 등 해녀 어르신들의 복지를 위해 사용된다고 한다.
“숨 얼마나 참아요? 바다 몇 미터까지 들어가요? 어떤 해산물을 잡았을 때 가장 기뻐요?”
연극이 끝나고 해녀와의 이야기 시간에 관객들이 주로 묻는 질문이라고 한다. 오랜 세월 이어진 문화가 사라진다는 건 어쩌면, 이런 시시콜콜한 이야기가 사라진다는 것일지 모르겠다.
김하원 대표도 20년 정도 뒤엔 해녀가 사라질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그래서 해녀의부엌은 여러 방법으로 해녀 문화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해녀 분들이 함께하지 못해도 해녀 문화를 전할 수 있도록 미디어아트 모델을 개발하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해녀 문화를 아카이빙 하는 노력들까지. 해녀가 사라질 수도 있다는 걸 인정하되, 할 수 있는 만큼 지키기 위한 노력을 하는 것도 ‘해녀의부엌’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녀의부엌을 통해 만난 제주해녀문화가 어땠냐고 물어본다면 위 영상을 보여줄 것 같다. 전통문화, 유네스코, 강인한 여성상 이런 단어보다는 ‘우리네 어머니, 할머니’같은 말이 먼저 떠올랐다. 그래서 ‘제주해녀문화’를 더 지키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아름다운재단의 매니저로서 김하원 대표의 이야기를 되새겨봤다. 해녀의부엌이 ‘사람들이 뿔소라를 사야 하는 이유’를 고민한 것처럼, 아름다운재단도 ‘사람들이 아름다운재단에 기부해야 하는 이유’를 고민해야 하고, 해녀의부엌이 해녀와 공존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것처럼, 아름다운재단도 좋은 비영리단체들과 상생할 수 있도록 제 역할을 해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녀들은 물 위로 떠오를 때마다 참았던 숨을 한 번에 몰아쉰다. 이때 휘파람 소리 같은 소리가 나기도 하는데 이를 ‘숨비소리’라 부른다. ‘숨비소리’는 숨을 쉴 수 없는 깊은 바닷속에서 빠져나와 내뱉는 ‘살아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사라져가는 제주해녀문화. 해녀의부엌과 김하원 대표님의 노력으로 제주 해녀의 숨비소리를 길이길이 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