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 서쪽이라 서촌이라 불리는 동네. 이제는 주말이면 관광객으로 분주하다. 그곳에 아름다운재단이 있다.
이 곳은 하루가 다르게 오래된 집들이 상가로, 보통 동네에 있는 소박한 상가들은 트렌디한 가게로 바뀌고 있다. 하지만 분주한 큰길을 살짝 벗어나면 여전히 조선시대부터 이어져온 작은 골목길들과 소박한 한옥들도 자리를 잡고 있는 동네이다.
그 길을 지나다 낡은 자판기 아래에, 건물 위 찢어진 천막에, 얽혀 있는 건물 밖 배관에, 인도의 볼라드에 무언가 그려져 있는걸 봤다.
그냥 낙서일까? 한 명이 한 걸까? 누구 왜 한 걸까? 아님 의도가 담긴 걸까?
의문 부호들이 머리 속에 떠다녔다.
그 그림들을 보면서 얼마 전에 읽은 윤고은 작가의 단편소설집 <1인용 식탁>에 수록된 <인베이더 그래픽>이란 단편이 떠올랐다.
스페이스 인베이더는 1978년도 타이토에서 출시한 게임이다.
그 중 인베이더는 주인공을 공격하는 적들의 이름이다. 아마 80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다면 이 게임으로 전자 오락의 세계에 입문을 했을 것이다. 당시의 일본에서는 <스페이스 인베이더> 때문에 100엔짜리 동전을 3배로 찍어냈다는 일화가 있다. 이 게임의 인기를 말해주는 에피소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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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이더 그래픽은 <스페이스 인베이더>의 인베이더들을 타일로 거리에 몰래 붙여두는 거리 미술이다.
파리에서 시작해서 이제는 세계 각 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여전히 작가는 누군지도 모르고 어떤 이유에서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도시에 숨겨진 인베이더를 찾는 것을 하나의 놀이문화로 발전시켜 자기가 발견한 인베이더를 웹사이트에 공유하고 있다. 그 웹사이트가 인베이더 그래픽이다.
<파리 거리의 인베이더> 출처: http://www.whereisdarrennow.com/
소설의 내용은 현실에서 실패를 거듭하며 백화점에서 몰래 소설을 쓰는 소설가와 그 소설의 주인공인 경쟁에서 실패한 증권사 직원 균에 대한 것이다. 균은 초단위로 실적에 쫓기는 삶에서 인베이더 그래픽 사이트에 들어가는 것을 하나의 해방구로 삼고 있다. 결국 균은 직장을 그만두고 프랑스 파리로 가서 인베이더 그래픽을 직접 찾아 다니고 인베이더 그래픽을 그린다.
책에서 인베이더는 세상의 균열을 깨닫게 만드는 도구이다. 완벽한 시스템으로 둘러 쌓인 증권사 직원 균은 세상이 완벽하지 않음을 깨닫는다. 짧은 소설이니 읽어보시길 권하며 내용 소개는 요정도만 드리겠다.
내가 거리에서 봤던 것들이 서울문화재단에서 서촌을 대상으로 실시한 <도시게릴라 프로젝트> 였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몇 달의 시간이 지난 후였다. 낡은 것과 새로운 것, 기와를 올린 단층 주택들과 가장 트렌디한 스타일의 상업구역이 뒤섞여 있는 서촌의 미묘한 균열들을 게릴라 미술들이 메우고 있었다. 다음날이 되면 누군가 지워버리고 허물어 버려서 없어질지 모르는 게릴라 미술들은 곧 사라져 버릴지 모르는 서촌의 낡은 것들에 대한 애정이 아니였을까싶다.
서울문화재단 <도시게릴라 프로젝트>
사실 복잡한 생각을 굳이 할 필요 없다. 서촌에 온 인베이더의 게릴라들은 보는 것만으로 웃음이 나고 즐겁다.
만약 서촌에 구경을 오실 일이 있다면, 이 작은 게릴라 인베이더들을 구경해보시라 권하고 싶다. 그 숫자가 무려 200여점이라고 한다. 물론 이미 사라진 것들도 많을 것이다.
팁을 드리자면 빠르게 걸으면 보이지 않는다. 목적지 없이 느리게 천천히 걷다 보면 어느 순간 나타난다. 오래되고 낡은 것에 관심을 기울이면 더 잘 찾을 수 있다.
글 | 이창석 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