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재단은 (사)이주민과함께와 영유아 건강권 지원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영유아 건강권 지원사업>은 한국에 거주하는 만 7세 이하 이주배경 아동 중 미등록 또는 체류자격이 있으나 건강보험이 상실/중지된 상태인 아동에게 의료비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본 지원사업을 통해 건강권 사각지대 이주민 영유아의 생존 위협요인을 줄이고 건강한 사회 구성원으로 성장하도록 도와주고자 합니다. 건강권 사각지대에 놓인 이주민 영유아의 의료 접근성을 높이고자 힘쓰고 있는 (사)이주민과함께 김아이잔팀장과 정지숙 상임이사를 만나고 왔습니다. 미등록 이주아동 의료비 지원 소식을 전해 드립니다. 

이주민과함께, 가장 마지막까지 이주민의 옆에서 곁을 지키는 사람들

김아이잔 팀장과 정지숙 상임이사를 만난 곳은 부산에 있는 ‘이주민과함께’ 사무실이었다. 사무실에 들어서자 눈에 띈 건 몽골어, 캄보디아어, 스리랑카어, 네팔어, 베트남어 등 다양한 언어로 이루어진 다문화도서관이었다. 이곳은 일요일마다 이주민을 위한 무료 진료소가 열리는 장소이기도 하다. 정지숙 상임이사는 ‘이주민과함께’를 ‘가장 마지막까지 이주민의 옆에서 곁을 지키는 사람들’이라고 소개했다. 아름다운재단과 <영유아 건강권 지원사업>을 함께하게 된 이유도 이주민의 인권을 위해 오랜 시간 싸우며 어려울 때 손 내밀 수 있는 곁이 되어왔기 때문이다.

이주민을 위한 다국어 안내 가이드

“4년 전, 대학병원 사회사업팀에서 전화가 왔어요. 아이가 위급한데, 미등록 이주아동이라 병원비가 8천만 원이 나와서 치료를 못 받고 있다고요. 이주민 단체니까 도움받을 수 있겠다고 생각해서 전화했을텐데, 우리가 무슨 돈이 있겠어요? 그래도 일단 병원에 달려가서 만나 보고 모금도 하고 기금 신청도 했어요. 이후에도 이런 영유아 사례가 여럿 있었어요. 그동안 이주노동자 의료 지원은 해왔는데 아동 지원은 없었거든요. 안정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죠.” – 정지숙 상임이사

건강보험이 없어 치료를 미루는 아이들

<영유아 건강권 지원사업>을 담당하는 김아이잔 팀장은 이주민 부모가 겪는 차별로 인한 취약성이 자녀인 영유아들에게 고스란히 이어진다고 말한다. 강제 추방이라는 위협적 상황 속에서 미등록 여성 이주노동자들은 불안정한 임신과 출산을 경험한다. 이 때문에 아이들이 이른둥이로 태어나거나 신생아 질환을 앓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미등록 이주아동의 경우 건강보험을 적용받을 수 없어 의료비가 천정부지로 치솟는다. 이 때문에 가장 취약한 영유아임에도 불구하고 치료받지 못해 병이 악화하기도 한다.

심장병을 앓는 라띠(가명, 만 4세)도 그랬다.

“라띠는 신생아 때 심장병이 발견됐어요. 출생 당시에는 심각한 질환이 아니었고, 신생아한테 흔히 발생하는 질환이었는데 건강보험이 없어서 수술을 4년이나 미뤘어요. 막대한 수술비를 비혼모인 엄마가 혼자 감당할 수 없었던 거죠.”- 김아이잔 팀장

라띠는 아름다운재단의 <영유아 건강권 지원사업>과 지역 사회의 모금을 통해 올여름 수술을 받았다. 의료비는 6,100만 원이었다. 건강보험에 가입할 수 있었다면 4년 전에 300만 원으로 할 수 있던 수술이었다. 라띠와 라띠의 엄마가 감당해야 했던 것은 20배가 넘는 의료비뿐이 아니다. 치료받을 수 없던 기간 동안 라띠가 겪은 아픔과 그걸 지켜만 봐야 했던 라띠 엄마의 고통이었다.

영유아건강권지원사업 담당자 김아이잔 팀장

미등록 이주민이 아니어도 이런 사례는 수두룩하다. 체류 자격이 있어도 돈이 없어 건강보험료를 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영유아 건강권 지원사업>의 지원 대상을 미등록 이주아동뿐 아니라 ‘체류 자격이 있으나 건강보험이 상실, 중지된 상태인 아동’으로 확대한 이유다. 덕분에 알리사(가명, 만 1세)는 의료비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알리사는 열이 나서 응급실에 갔는데 2시간 만에 심정지까지 발생하는 위급한 상황이었어요. 바로 중환자실에 입원했고, 코로나19 확진을 받은 후 3개월 동안 치료받았어요. 알리사는 체류 자격이 있었지만, 건강보험료가 체납된 상태라 고액의 의료비가 발생했어요.” – 김아이잔 팀장

알리사의 아버지는 월 150만 원을 버는 이주노동자였다. 네 명의 자녀를 키우는 그가 1인당 월 15만 원인 건강보험료를 낼 길은 없었다. (이주민 건강보험료는 소득과 상관없이 평균 보험료를 적용해 2024년 기준 150,990원이다) 알리사가 건강보험이 실효된 이틀 동안 나온 병원비는 350만 원. 건강보험에 가입했다면 3개월 입원비와 맞먹는 금액이다. 알리사의 아버지는 이틀 후 연체된 건강보험료를 납부했지만, 내국인처럼 공단 부담의 의료비를 소급받을 수는 없었다. 이주민은 소급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지숙 이사는 건강보험의 ‘꼼꼼한 이주민 차별’ 때문에 이주민의 건강보험 가입이 의무화됐지만, 혜택은 누릴 수 없다며 현실을 꼬집었다.

영유아 건강권은 생명과 직결된 문제

알리사는 <영유아 건강권 지원사업>을 통해 무사히 퇴원했다. 지원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많은 이주민 가정이 건강보험이 없는 아이의 의료비를 내느라 고리의 빚을 내고 경제적 악순환에 빠진다. 정지숙 이사와 김아이잔 팀장은 그간 의료비로 인한 빚으로 좌절하는 이주민 가정을 여럿 봐왔다. <영유아 건강권 지원사업>을 통해 지원하는 비용은 300만 원으로 한정적이지만, 당장의 경제적, 심리적 어려움을 해소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나는 혼자가 아니구나, 나를 걱정하고 위로하고 공감해 주는 분들이 있구나’라고 이 분들이 힘을 얻기도 하고 위로받기도 하니까 그 의미가 크지 않을까 생각해요.” – 김아이잔 팀장

“막다른 길에 몰렸을 때, 누군가 손을 내밀면 그거에 의지해서 사람들이 일어나잖아요. 그렇게 일어나는 사람들을 볼 때 보람을 느껴요.” – 정지숙 상임이사

(사)이주민과함께 – 정지숙 상임이사

네말린근병증이라는 희귀난치성 질환을 앓고 있는 흐엉(가명, 만 3세)도 그랬다. 흐엉이 지난 3년 동안 낸 의료비는 5억이었다. 지역 사회의 모금과 부모의 노력으로 고액의 병원비를 감당해 왔지만, 그마저 한계에 부딪혔다. 급기야 올 5월에는 호흡이 어려운데도 병원비를 내지 못해 퇴원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때 흐엉의 손을 잡을 수 있었던 것도 <영유아 건강권 지원사업> 덕분이었다. 지원을 마중물 삼아 흐엉은 다른 지원을 더 받아 치료를 이어가고 있다.

두 사람은 미등록 이주아동인 흐엉의 치료가 앞으로도 쉽지 않을 것을 안다. 생명유지장치를 해야 하는 흐엉은 비행기를 타고 본국으로 돌아갈 수도 없다. 이는 비단 흐엉만의 사정도 아니다. 아파도 치료받지 못하는 이주아동을 보며 두 사람은 민간 차원의 노력도 계속되어야겠지만, 궁극적으로는 제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국적과 체류 자격과 상관없이 모든 아동이 건강권을 평등하게 보장받을 수 있는 제도 말이다.

“건강권은 생명과 직결된 문제예요. 치료가 시급한 아이들이 제도가 개선될 때까지 기다릴 수 없어요. 취약한 영유아에게 지속적인 치료가 필요하듯이 <영유아 건강권 지원사업>도 지속적으로 필요해요. 10월에 접수가 끝나는데 벌써 내년에도 사업이 진행되는지 문의하신 분들이 많아요.” – 김아이잔 팀장

왼쪽부터 (사)이주민과함께 – 정지숙 상임이사, 김아이잔 팀장

현재 ‘이주민 영유아 건강권 실태 조사’도 진행 중이다. 이전까지 하나하나의 사례로만 접했던 영유아 건강권의 실태를 파악할 기회다. 이를 통해 발 빠르게 제도 개선 방안과 지원사업의 보완점을 찾아가려고 한다. 치료가 시급한 아이들에게 사회가 변할 때까지 기다리라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글 | 우민정
사진 | 김주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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