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여운 친칠라를 닮은 친구, 열정이 남달랐던 사람, 엄마, 아빠를 위해 다정한 편지를 쓰던 딸, 오래 알고 지내고 싶었던 동료. 신애진 씨를 기억합니다. 애진 씨는 경영 컨설턴트라는 꿈을 이룬지 얼마 되지 않아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 참사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가족들은 애진 씨가 세상에 좀 더 오래 기억되기를, 애진 씨가 없더라도 우리 사회가 살 만한 곳이기를 바라며 아름다운재단을 찾아주셨습니다. 애진 씨가 평소 돕고 싶어했던 청년들을 지원하고 싶은 마음을 담아 추모기금을 출연하신 건데요. 애진 씨의 뜻을 안고 아름다운재단을 찾아주신 가족들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애진이가 살았던 세상, 우리 아이들이 살아가야 할 세상은 아름다워야 한다고 믿어요.”
Q. 자녀인 애진 씨의 이름으로 기금을 출연하셨는데요. 아름다운재단에 기금을 출연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A. 안녕하세요, 신애진 아빠 신정섭, 엄마 김남희, 동생 신재원입니다. 애진이가 떠나고, 애진이의 회사에서 사망보험금이 나왔습니다. 외국계 회사이다보니 보험금이 나오는데 시간이 걸려서 2024년 1월에 기부를 진행하게 되었어요. 사회에서 받은 거니, 사회에 돌려드리는 게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사회에 기여하고 싶다는 건 평소 애진이가 했던 말이기도 하구요. 비록 애진이는 이 세상에 없지만, 애진이가 살았던 세상, 우리 아이들이 살아가야 할 세상은 아름다워야 한다고 믿어요. 아름다운재단이라는 이름에 끌렸던 이유이기도 하죠. 재단이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고 변화를 만들어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마음을 정할 수 있었습니다. 미력하나마, 우리 사회가 앞으로 나아가는 일에 함께 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기부하게 되었습니다.
Q. 애진씨의 이름으로 만든 신애진기금을 약정하는 날, 아름다운재단 매니저들과 함께 애진 씨의 삶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애진 씨의 성장기, 또 학창시절을 따라가다보니 정말 똑부러지고 야무진 청년이었다는 인상을 받았는데요. 애진씨의 꿈은 무엇이었는지, 또 어떤 가치관을 지닌 청년이었는지 궁금합니다.
A. 애진이는 꿈이 많은 아이였습니다. 커가면서 꿈의 모습은 계속 바뀌어 갔지만, 항상 하고 싶은 것이 명확했습니다. 화가를 꿈꿀 때도 있었고, 가수, 사진작가, 교사를 꿈꾸기도 했습니다. 호기심 많은 애진이는 고려대 생명과학부에 입학을 했습니다. 대학생활을 하면서 사진동아리인 일상다반사, 경영학회인 MCC, 그리고 마라톤까지 여러 동아리에서 열심히 활동했습니다. 대학생활동안 친구도 많이 사귀고, 경험도 다양하게 하면서 자신이 하고 싶어하는 일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알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청년들의 자립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Q. 기금 협약식에서 청년을 지원하는 일에 관심이 있다는 내용을 전해주셨는데요. 기금이 어떤 곳에, 어떻게 쓰이길 바라시는지 궁금합니다.
A. 애진이가 청년 창업에 관련된 일을 하고 싶어했기에, 청년들 자립활동에 지원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청년들이 곧 우리 사회의 기둥이고 앞으로 우리 사회를 이끌어갈 동량(棟梁: 집안이나 나라를 떠받치는 중대한 일을 맡을 만한 인재를 이르는 말)들이니까요. 우리 사회의 청년들이 지나친 경쟁과 높은 실업률로 많이 지쳐 있고, 꿈을 빼앗긴 채 사회적으로 고립되어 가고 있습니다.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결코 넘을 수 없는 벽에 가로막혀 있습니다. 우리 청년들이 숨이라도 한번 쉴 수 있도록 작은 힘이나마 보태고 싶습니다.
Q. 평소 기부자님이 품고 계신 나눔에 대한 생각이 궁금해집니다.
A. 애진이 일기장에 버킷리스트가 있었습니다. 꿈을 이루고 나면 장학사업이나 공익사업을 하고 싶어했어요. ‘모교에 장학금 기부하기’도 그 중 하나였습니다. 고려대 장학금 출연은 애진이의 심부름을 했을 뿐입니다. 벤처캐피탈리스트가 되고 싶었던 것 역시 청년 창업을 지원하고 싶었던 것이니까요. 아름다운재단 기금 조성 역시 애진이가 사회에서 받은 걸 사회에 돌려드리는 것일 뿐입니다. 정작 저희는 나눔에 무지했어요. 기부는 돈 걱정이 없는 부자들만 할 수 있는 거라는 생각을 하고 살아, 저희와는 무관한 일로만 알았죠. 애진이 덕분에 나눔과 인연을 맺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공감하고 연대하는 게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근간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는 애진이가 기부를 한 것이구요, 앞으로는 저희들도 나눔을 실천하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애진이가 꿈꾸었던 일들을, 함께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Q. 애진 씨가 사회 생활을 시작할 때, 사회 선배로서 들려준 여러 조언을 해주셨을 것 같아요. ‘신애진기금’으로 만나게 될 청년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무엇일지요?
A. 늘 애진이와 재원이에게 네 꿈이 무엇인지 생각하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 꿈을 향해 가라고 말했습니다. 돈이나 사회적 지위는 수단이 될 수는 있더라도 목적이 될 수는 없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오늘이 힘든 이들에게 이런 말이 얼마나 비현실적인 건지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꿈을 놓아서는 안됩니다. 우리 주위에는 서로 공감하고 연대하는 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혼자 이루지 못하는 꿈도 ‘여럿이 함께’라면 이룰 수 있습니다. 저는 그리 믿습니다.
“생명과 인권의 관점에서 우리 사회를 돌아봐야 합니다.”
Q. 애진 씨를 기억하기 위해 사진전을 진행하셨는데요. 간단하게 사진전을 소개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A. 애진이가 대학시절 일상다반사라는 사진 동아리를 했습니다. 동아리 친구들과 연락이 닿아 애진이 생일을 맞이해 친구들과 함께 사진전을 진행했습니다. 친구들이 각자의 그리움을 담아 애진이와 함께했던 순간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어요. 애진이 일상사진과 친구들 편지, 애진이 영상, 그리고 엄마가 애진이가 보고 싶을 때마다 그렸던 그림들을 모아 전시했습니다. 사회적 애도의 시작은 개인에 대한 애도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의 삶의 이야기를 통한 공감이 사회적 애도의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모두 그물망 같은 관계로 이어진 삶을 살고 있습니다. 책임 있는 자들이 참사를 외면하며 우리들을 ‘각자도생’의 사회로 내몰고 있습니다만, 관계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합니다. 이번 사진전을 통해 친구를 잃은 상실과 아픔을 같이 나눌 수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Q. 이태원 참사 100일 추모제에서 응원을 보내주신 시민들을 생각하며 동화책을 쓰셨다는 내용을 기사에서 보았습니다. 참사 이후 힘이 되었던 기억들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A. 참사가 발생하고 무척이나 힘든 시간들이었습니다. 개인적인 감정을 추스르기도 버거운데, 2차 가해로 가슴을 난도질하고 이를 방치한 이들이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그래도 힘을 낼 수 있었던 것은 시민들의 공감과 연대였습니다. 혼자였다면 아마 지금도 집 밖으로 나오지 못했을 것 같다는 생각을 종종 합니다. 그 추운 겨울날 녹사평 분향소에서 만난 자원봉사자 분들과, 손잡아 주시던 분들을 잊을 수 없습니다. 그 분들이 잡아 주신 따뜻한 손 덕분에 버틸 수 있었습니다.
Q. 애진 씨와 같은 청년들이 안전한 사회를 살아가기 위해 한국 사회에서 이것만은 꼭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신 게 있다면 무엇일까요?
A. 정부는 이태원 참사의 원인이 ‘군중유체화’(군중에 휩싸여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고 둥둥 떠밀려 이동하는 현상)라고 말하지만, 군중유체화는 원인이 아니라 현상일 뿐입니다. 참사의 원인은 참사를 예견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 일도 하지 않은 행정기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많은 인파가 모이는데, 지자체와 경찰은 무엇을 했던 것일까요? 행정조직의 수장, 그리고 그 직원들이 자신의 업무를 정확히 파악하고, 수행했더라면 이태원 참사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는 일은 국가의 기본적이고 최우선적인 의무입니다. 국가의 기본 정책과 방향이 국민의 생명보호를 최우선으로 할 때 이런 참사를 막을 수 있습니다. 모든 행정업무는 정부의 정책과 방향에 따라 계획되고 움직이는 것이니까요. 가장 기본적인 것부터 다시 살펴봐야 합니다. 생명과 인권의 관점에서 우리 사회를 돌아봐야 합니다.
Q. 이태원 참사 특별법이 통과되고, 얼마 전 특조위* 활동이 시작되기도 했는데요. 특조위 활동에 당부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무엇일지, 시민들이 어떤 것들을 주목해야 할지 알려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는 2024년 9월 23일 첫 전원위원회를 열고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A. 책임은 개인에 대한 형사적 책임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사회적참사의 경우에는 참사의 원인과 구조, 사후 대응까지 참사를 재구성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시험을 봐서 틀린 문제가 있으면 무엇을 잘못 알았는지, 왜 틀렸는지 따져봐야 합니다. 그래야 다시 틀리지 않습니다. 특조위는 참사의 실체에 접근할 수 있는 가장 적합한 틀입니다. 유가족으로서 바라는 건 오직 하나, 진상 규명입니다. 부디 진실을 밝혀야 할 특조위의 소중한 시간을 허비하지 말아 주시기를 간곡히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민 여러분이 지켜봐 주셔야 합니다. 누가 특조위의 조사 활동을 외면하거나 배척하는지, 누가 특조위 의사결정을 방해하고 지연시키는지, 누가 특조위의 권고를 무시하는지 똑똑히 보고 진상 규명을 외쳐야 합니다. 우리는 이미 세월호를 비롯한 사회적참사에 대한 조사가 어떤 어려움을 겪었고 어떻게 진실이 갇혔는지 경험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