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게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로 혹은 온라인으로 수많은 기부자님을 만나왔습니다. 하지만 기부자님과 직접 만나 따스한 눈빛을 나누고 고개를 끄덕이며, 서로에 대해 궁금한 점을 쏟아낼 수 있는 뜨거운 소통이 부족함에 늘 아쉬움을 느낍니다.
그래서 고민 끝에 ‘찾아가는 서비스’가 탄생했습니다.
2013년, 재단과 함께 10여년을 동행해주신 오랜 기부자님과의 만남을 가진 뒤 잠시 멈추었던 그 기회를 다시 만들어보려고 합니다. 꼭 오랜 기부자님이 아니셔도 좋습니다. 아름다운재단과 아름다운재단 간사가 궁금한 기부자님, 사회 변화를 만드는 일, 나눔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기부자님과 함께라면 분명 즐겁고 의미 있는 만남이 될 테니까요.
뜨거움이 자리하는 7월. 무겁진 않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청량한 나눔 이야기를 가진, 어느 청년 기부자님과의 만남으로 2015 찾아가는 서비스를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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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의 선물, 기부
지난 7월 7일 오후 3시, 아름다운재단. 기분 좋은 수런거림에 더위에 나른해진 일상이 팔딱였다. 2015년 ‘찾아가는 서비스’의 첫 주인공 최명제 기부자의 에너지다.
기부자소통팀에서 진행하는 ‘찾아가는 서비스’는 기부자와 더 적극적인 소통을 하기 위해 마련됐다. 저마다의 삶터에서 일상을 지키느라 아름다운재단과 쉬이 닿을 수 없는 기부자를 직접 찾아가 그간 궁금했던 서로를 듣고 이야기하는 기회인 셈. 그런 의미에서 이번 최명제 기부자의 ‘찾아가는 서비스’는, 반갑게 맞아 후하게 대접하는 ‘환대’마저 품었다. 기부자이기 전에 2010년에 아름다운재단과 인연을 맺은 최명제 기부자가 오랜만에 직접 재단을 방문한 까닭이다.
서수지 간사의 아름다운재단 캠페인 및 찾아가는 서비스 설명이 끝난 뒤 재단 라운딩이 시작됐다. 1층부터 옥상까지 곳곳에 지문처럼 새겨진 아름다운재단의 이야기를 함께 나눠갔다. 생애주기 나눔과 나눔의 식탁, 나는 반대합니다 캠페인, 아름다운재단 제1호 기부자 김군자 할머니 생신파티… 지난 시간을 듣고 있노라니 사각지대를 찾아 세상에 알리고 그들과 연결고리를 만드는 아름다운재단이 오롯이 느껴졌다. 그가 재능기부자로 경험한 2010년과는 분명 다른 온도를 품은 공간이었다.
재단 라운딩을 마치고 다시 찾은 인터뷰 장소에선 작은 이벤트가 진행됐다. 매년 생일마다 나이만큼 기부하는 최명제 기부자에 대한 고마움과 그의 나눔을 응원하는 서프라이즈 생일파티였다.
쑥스럽지만 진심이 담긴 축하곡이 끝나고 드디어 본격적인 대화가 시작됐다. 기부가 목적이 아닌 통로로 흘러든 ‘우리’의 이야기, 누구라도 기꺼이 환대할 수 있는 사람들이 호출한 가슴 따뜻한 시간이 열린 것이다.
나와 이웃을 위한 생일 세리머니
대개의 시작은 소박하고 그 동기는 우연에 기댄다. 최명제 기부자의 첫 기부 역시 다르지 않았다.
“학부시절에 영화감상 동아리 회원이었는데 그때 영문과 동아리 선배가 아름다운재단의 번역 재능기부를 하고 있었죠. 시간이 빠듯해진 선배가 후배들에게 그 일을 물려줬고 제가 3번째로 물려받은 겁니다. 2010년 겨울방학 때 두세 달, 1주일에 두세 번 재단에 나와 번역을 도왔는데 오래하진 못했어요.”
한 시절의 재능기부는 최명제 기부자에게 남다른 경험이었다. 이제까지 알지 못했던 ‘기부’를 곰곰이 생각하고, 그로 인한 변화를 발견했다. 둘러보니 기부는 일상 곳곳에 스며있었다. 친구들 몇몇도 이미 이러저러한 곳의 기부자였다. 십시일반은 생각보다 힘이 셌고 따뜻했다. 분명 존재했으나 보지 못했던 세상. 그것을 발견한 그는 주저 없이 기부를 결심했다. 막상 결심하니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고민이었다. 흔히들 자동이체서비스를 선택하지만 그는 내키지 않았다. 인식 없는 습관적 기부를 원치 않았다. 기부는 ‘관심’에서 출발한 ‘참여’의 한 방법이었으므로. 그것은 ‘깨어있는 연결’을 위한 수단이요 통로였다. 그가 자신만의 기부를 고안한 이유다.
반복되더라도 무심하거나 무감각해지지 않으려고 ‘더 불편한’ 방식을 잡았다. ‘찾아간다’는 행위는 귀찮을뿐더러 용기가 필요하다. 혹여 초대받지 못한 손님으로 자리할까, 괜한 행동이 업무에 방해되진 않을까 노심초사하기 십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매년 생일마다 나이만큼의 금액(만 원 단위)을 재단에 방문해서 기부하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2011년 스물셋의 여름, 그의 아름다운재단 첫 기부가 시작됐다. 용기로 다려진 빳빳한 신권을 정성스레 봉투에 담아 재단을 직접 방문한 지도 벌써 4년째다.
나를 위한 기부
“첫 기부… 인식하진 못했지만 돌아보면 몇 번의 기억이 있어요. 초등학교 때 반 친구 중 귀가 잘 안 들리는 친구에게 선생님과 함께 돈을 모아 보청기를 선물한 게 그 하나고, 두 번째는 고등학교 시절 선배들과 비밀리에 다리가 불편해서 공부할 기회를 잃은 동네 누나의 검정고시를 도운 적이 있어요. 1주일에 한 번씩 과목을 나눠서 가르치곤 했는데 그게 특별한 경험으로 남아 있어요.”
선생님과 선배들로부터 시작된 일종의 ‘나눔교육’은 최명제 기부자에게 더불어 사는 의미를 곱씹게 만들었다. 함께 살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나눠야 하는지는 물론 그 결과가 자기 자신에게 어떤 동력을 제공하는지 자연스레 깨달았다. 거창한 철학은 아니었다. 다만 ‘누군가와 연결돼 있다’는 사실의 생생한 체험일 뿐. 그래서 그에게 기부는 “많은 사람들과의 새로운 만남”이다.
“고등학교 때부터 기숙사 생활을 한데다 서울로 학교를 오니 학교 사람 말고는 만날 사람이 없었어요. 그때 재단과 만나면서 정이 들었죠. 재능기부 기간은 끝났지만 기부자로 다시 만날 수 있고 그렇게 인연을 이어오니 좋아요.”
최명제 기부자는 아름다운재단(기부)을 통해 ‘사람’을 만났다. ‘만남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과 만났다’는 게 더 정확하다. 자신을 돕기 위한 기부가 다정한 매듭을 짓고 이내 따뜻한 네트워크를 선물한 것. 아름다운재단을 통해 더 많은 이웃을 알게 된 그는 매일 조금씩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한다. 과거와는 분명 다른 세상을 여행 중이다. 어제보다는 오늘, 오늘보다는 내일 더 행복하고자 기부를 실천한 최명제 기부자. 그와의 만남이 반갑다.
글. 우승연 | 사진. 김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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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까 말까 고민될 때는 하라!’ 역시 그랬다.
늘 생각 해오던 일을 드디어 실천했을 때 드는 기분은 ‘어? 생각보다 어렵지 않네?’, ‘역시 하길 잘했다.’인 것 같습니다.
기부자님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다음 만남에 대한 기대가 더욱 커졌습니다.
소통에서 오는 에너지를 마음 깊이 느낄 수 있었으니까요.
기부자님이 계시는 곳이라면 어디든 신나게 달려갈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아름다운재단과 한 발짝 더 가까워질 수 있는 기회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 2015 찾아가는 서비스의 재미난 후기는 조만간 새로운 포스팅으로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기대해주세요^^
썬그리
므찐 명제 🙂
흰머리대마왕
나눔을 실천하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좋은 표정이네요. 덩달아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