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여성 산재회복 지원사업은 아름다운재단이 노동건강연대와 함께 진행온 사업입니다. 2024년, 어느덧 3년차를 맞이한 본 사업을 통해 다양한 일터에서 일을 하다가 몸과 마음을 다친 청년여성들을 만났고, 그중 일부에게 회복을 위한 금전적 도움을 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청년여성들이 해내고 있는 일, 그들이 버텨내고 있는 삶,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주어진 혹은 그들이 직면해야 하는 일터, 가정, 사회의 모습에 대해서 조금은 더 알게 되었습니다. 2024년부터 새롭게 자문위원으로 연구보고서 집필에 함께 한 심서현 자문위원의 후기와 청년여성 산재회복 지원사업 연구보고서를 전해 드립니다. |
‘세인트 먼데이’를 아시나요?
세인트 먼데이는 노동자의 역사에서 월요일부터 금요일 5일 동안 9시에서 6시까지 일하고 토요일과 일요일은 쉬는, 대체로 우리가 생각하는 ‘정상적인’ 노동 형태가 적응되지 않은 날에 만들어진 단어입니다.
공장 노동을 처음 해보는 사람들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노동하는 것이 어색했습니다. 노동자 신분이 아니었다면 술을 먹고 친구들과 노는 날들이어야 하는데, 5일 동안 아침 일찍 일어나 공장 노동을 하고 6시에 퇴근하는 삶이 괴로웠던 거예요. 그래서 토요일, 일요일에 몰아서 친구들과 술을 먹거나 놀다가 월요일에 출근을 못하게 되는 상황이 잦아지게 된 것이죠. 그때 노동자들이 숙취와 피로로 인해 출근하지 못하면 ‘성스러운 월요일이었다!’라고 이야기하며 자신의 결근을 행복해했던 역사가 ‘세인트 먼데이’라는 단어로 전해 내려오고 있답니다.
그러한 역사는 순간이고, 곧 자신의 노동에 가족들이 빵 한 조각을 사느냐 마느냐는 문제가 달리게 되었습니다. 자유로웠던 노동자들은 공장이 정한 ‘정상적인 노동 형태’에 적응하면서 주말에만 쉬며 주 5일 노동을 당연하게 생각하게 되었죠. 공장을 멈추고 싶지 않은 기업가는 토요일과 일요일에도 일할 수 있는 노동자를 찾아 나섰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멈추지 않는 공장의 기계와 함께 움직이는 노동을 하게 된 것이죠.
사실 이러한 역사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차이점이 있다면 과거에는 ‘고된 노동’이 눈에 보였지만 지금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죠. 로켓배송으로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새 상품을 받아보고, 받는 순간 빠른 반품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다시 새로운 상품을 하루가 지나지 않아 받아봅니다. 이 과정에 숨어있는 노동, 그 행위를 하는 주체를 찾아 나선 것이 바로 <청년여성 산재회복 지원사업>의 핵심입니다.
우리 삶을 편하게 하는 보이지 않는 노동
우리는 식당에서 갓 나온 따끈따끈한 고등어 한 마리, 된장찌개로 노동자와 마주칩니다. 급하게 포장된 듯한 택배로 노동자와 마주칩니다. 어떤 옷을 살지 고민하는 순간에도 노동자를 마주칩니다. 꽃을 심는 게임을 하는 순간에도 노동자와 마주칩니다. 노동자가 어디에 있냐고요? 고등어를 굽는 수고로움, 주문한 택배를 포장해서 바코드를 찍고 내보내는 순간, 이 옷이 더 잘 어울릴 것이라는 친절한 권유와 높아지는 데이터를 감당하지 못한 게임이 꺼지면서 마주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에 있는 수고는 곧 노동으로 직결됩니다.
점점 보이지 않는 노동은 노동자가 새로운 병을 앓게 합니다. 이 병을 ‘직업병’이라고 부릅니다. 우리와 가장 가까이 일하는 노동자는 쉽게 병들고 쉽게 대체되기 때문에 기업은 무엇을 배우지 않아도 바로 노동할 수 있는 가장 저렴한 노동자를 찾습니다. 이런 노동을 하는 사람들, 바로 사회에 갓 뛰어든 청년이며 여성인 노동자입니다. 가장 밑바탕의 노동을 하기 때문에, 가장 눈에 보이지 않는 노동자를 이번 사업에서 찾게 되었습니다.
‘블루칼라’라고 부르는 가장 전통적인 육체노동은 사회가 구체적인 노동을 원하는 것만큼 세분화되면서 직업병은 큰 부상이 아닌 작은 부상의 누적으로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일을 위해 도시로 이동했던 과거의 ‘이촌향도’ 현상은 전통적인 노동 중심 지역으로 노동자가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노동이 ‘필요한’ 곳으로 뻗어나가게 되었습니다. 과거에는 큰 현상으로 이름 지을 수 있던 것들을 더는 과거의 개념으로 볼 수 없게 된 것이죠. 그렇기에 우리는 찾아야만 찾을 수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야만 했습니다.
노동 이면에 숨겨진 고통
<청년여성 산재회복 지원사업>의 참여자를 모집하면서 지속된 노동 불안정과 노동을 하면서 겪은 여러 가지 재해가 더 이상 ‘최악’의 상황이 아님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제 우리 사회의 최악은 자신의 노동으로 인해 발병한 병명이 확실하더라도 치료받지 못하는 상황, 정신적 재해로 인해 근거가 부족해 산업재해를 신청하지 못하는 상황, 그리고 아무리 일하더라도 자신의 생계를 온전하게 누리지 못하는 상황, 결과적으로 이로 인해 자신의 노동을 지속하지 못하는 상황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또한 「근로기준법」,「산업안전보건법」,「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 해당하는지 아닌지 여부를 미처 파악하지 못한 채 홀로 견디고 있는 상황이 너무나 많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생계를 위해 미뤄뒀던 ‘직업병’을 치료하거나, 자신이 메꾸지 못한 빚을 청산하는 게 사업 참여자들이 산재회복비 100만 원을 사용한 방법이었습니다.
이번 사업을 통해 가장 크게 보인 것은 ‘여성’인 노동자가 견디고 있는 노동환경의 문제였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토로할 수 없는 상황에서 물리적으로 고립되고, 결국 심리적 고립으로 이어져 신체적으로 드러나는 고통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고통도 토로하는 청년여성 노동자가 계속 증가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정신건강의학과에 바로 가서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고 약을 처방받기 전에, 주변에서 또는 같은 일을 하면서 겪는 정신적 피로와 고통을 공감하는 공동체 속에서 자신의 정신적 상처가 커지기 전에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과정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2023년과 2024년의 사업에서 이들이 고립된 채 노동하고 있으며, 모일 수 있는 공동체가 없으니 참고 견디다 못해 병증을 진단받고 약을 먹기까지의 과정이 상당히 짧아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한번 생긴 손목의 염좌를 치료할 시간조차 주지 않는 저임금과 고된 노동은 가벼운 염좌를 염증으로, 하루하루 우울했던 단순한 상황을 우울증으로, 회사에서 지속되는 괴롭힘이 공황장애로 하나의 병이 되면서 이들은 불가피하게 고립되고, 그 고립을 벗어날 수 없는 상황에서 몸과 마음이 빈곤한 상황으로 확대되었습니다. 청년여성 노동자들의 이러한 상황을, 빈곤을 타개하려고 했던 움직임을 단순한 통계와 수치로 확인했다면 우리는 여전히 어떤 노동이 우리를 편리하게 만드는지, 또한 그 노동 속에 어떤 노동자가 숨죽여 있는지 알 수 없었을 것입니다.
조금이나마 고통을 덜어주는 사회적 보호망
서글프게도 <청년여성 산재회복 지원사업>의 신청자는 줄지 않고 있습니다. 나아가 신청서를 내기 위해서 자신의 고통을 더 구체적으로 서술하고 증빙하게 되었습니다. 사업에 참여하는 한 명의 연구자로서 이상한 기분이 드는 것은 사실이었습니다. 어떤 노동이 이들을 절박하게 하는지, 그리고 노동건강연대가 사업을 지속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무엇인지 너무나 확실해졌기 때문입니다. 청년여성 노동자들은 이 사업을 단순히 ‘고통스러운 노동과정을 토로하는 것’으로 여기는 것을 넘어, 좋지 않은 자신의 환경에서 벗어날 수 있는 통로로, 그리고 어딘가 본인을 도와줄 수 있는 곳을 찾아내고 있는 것입니다.
‘어른’의 개념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을 뜻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청년’과 ‘여성’의 이름으로 사회에서 ‘어른’이 되는 방법은 너무나도 비좁고 가파르기에 이들이 ‘책임’질 수 있는 상황 자체가 너무나 어려운 상황으로 느껴집니다. 이들이 아프다면, 홀로 서기 위해 노동하다 다친다면, 어른으로 설 수 있게 도와주는 사회적인 보호망이 우리 사회에 있어야 합니다. 100만 원의 산재회복 지원금이 절실해지지 않는 사회가 온다면, 지금은 희미해져 보이지 않는 노동자의 고통을 최소화하고, 일하는 청년여성 노동자가 생계를 위해 모든 것을 버리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와야 합니다.
그것이 노동건강연대와 아름다운재단이 지속하고 있는 <청년여성 산재회복 지원사업>의 참여자가 줄어드는 희재가 올 수 있는 날일 것입니다.
글 | 심서현 자문위원
사진 | 임다윤
2024 청년여성 산재회복 지원사업 결과보고서
노동건강연대는 모든 노동자들이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권리를 옹호하고 이를 위한 활동을 하는 사회운동단체이자 비영리민간단체법상 비영리민간단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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