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엔조 마리가 디자인한 세디아1 의자를 만들었습니다.
이 의자를 처음 봤던 것은 DDP(동대문 디자인 플라자)에서 열린 엔조 마리 전시회 소개 기사의 사진에서 였습니다.
투박한듯 귀여운 모습에 일단 시선이 갔지만 그 보다 더 마음을 끌었던 것은 이 의자가 만들어진 엔조 마리의 프로젝트 <아우토프로제타지오네>(아마 이 단어 평생 못외울 것 같습니다)때문이였습니다.
이탈리아의 디자이너인 엔조 마리는 가구와 다양한 생활소품들도 만들고 그림도 그리고, 디자인에 대한 이론서도 쓰는 작가입니다. 80세가 넘은 노디자이너인 엔조 마리가 만드는 가구들은 대개 박물관이 아니면 구경 할 일 조차 없는 고가의 제품들 입니다.
그런데 <아우토프로제타지오네>프로젝트는 전혀 다릅니다.
1974년 엔조 마리는 자급자족이란 의미를 가진 <아우토프로제타지오네>이란 책을 출판하였습니다. 여기에는 19가지의 가구 도면이 담겨져 있었습니다.
의자를 비롯해 테이블, 책장, 침대, 플로우 조명 등 삶의 질을 높여줄 수 있는 필수적인 가구들의 도면이었습니다.
이 가구들은 특별한 가구 제작 기술을 가지지 않은 사람들도 못과 망치만으로 만들 수 있는 단순한 형태로 디자인 되어 있습니다.
30여년의 일생동안 아무 기술 없이 살아온 저 이기에 보는 순간 이것은 저를 위한 가구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도면에 있는 사이즈대로 인터넷에서 목재를 구입하고 못과 망치만으로 쉬엄쉬엄 2시간만에 완성을 했습니다.
완성된 의자를 보고 있으니 왠지 모를 뿌듯함이 느껴졌습니다. 의자에 앉았더니 그렇게 마음이 편안할 수 가 없고 멍하니 의자에 앉아 있는데 일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작은 비용으로도 가구를 가질 수 있다는 의미에서 ‘90%를 위한 가구’라는 이름으로도 소개되고 있지만, 사실 재료값으로 구입할 수 있는 가구들도 온라인에서 의자만 검색해보면 수십, 수백개는 나올 것입니다.
그렇기에 저비용만이 이 프로젝트를 설명할 수 있는 키워드는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엔조 마리의 인터뷰를 보면 누구나 직접 자신이 필요한 물건을 만든다는 그 자체에 더 큰 의미를 두고 있는걸 나중에서야 봤습니다.
아주 오래 전에는 모두 자기가 필요한 물건을 직접 만들어 쓰는 시절이 있었습니다. 집도 직접 짓고, 가구도 직접 만들고, 먹을 거리도 직접 길렀습니다. 그런데 현대로 오면서 자신의 필요한 물건은 만드는 것이 아니라 구입하는 것으로 생산자와 소비자가 완전히 분리되었습니다.
생산의 과정을 모른채 구입된 제품들은 쉽게 버려지고 대체 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생산 과정을 직접 경험한다는 것은 그 제품에 대한 애착이 달라지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아침에 눈을 뜨면 의자가 잘 있는지 보게 되고 멍하니 앉아보게 되고, 틈틈히 사포로 한번씩 밀어주게 됩니다.
무엇이 되었든 DIY를 해보고 싶으신데 저처럼 아무 기술이 없으신 분들께서는 한번 엔조 마리의 <아우토프로제타지오네>로 시작해 보시는거 어떠세요? 날씨도 참 좋으니까요.
글 | 이창석 간사
호기심유부녀
당장 <아우토프로제타지오네>프로젝트의 의자 도면을 남편에게 보여줘야겠어요. 절대 제 손에는 망치를 들지않을것이야요.ㅋ
심플플랜
만들고 있는걸 보고 있으면 한번 만들어 보시고 싶으실꺼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