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프티콘 대신 주고받는 ‘기부 인증 문자’
2022년 생일날 아침, 고요하던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메시지를 확인해보니 각종 프랜차이즈 카페 기프티콘과 주소만 넣으면 집으로 배달되는 선물들이 도착해 있었다. 나의 생일을 축하해주는 이들이 있다니 감격스러울만큼 고맙고 황송한 마음도 잠시. 쓰지 않는 물건, 그 물건과 함께 도착할 포장 쓰레기, 유효기간에 맞춰 꼭 마셔야 하는 커피를 보며 고마운 마음 가운데서 불편함이 삐죽 튀어나왔다. ‘아, 이걸 다 어떻게 한담’
기프티콘 보내기가 활성화되면서 마음을 표현하는 일이 참 간편해졌다. 선물을 고르고 만나 전달하거나 머쓱하게 주소를 물어 보내던 예전과 달리 이제는 메시지 하나면 손쉽게 축하할 수 있다. 고마움과 축하, 위로와 격려가 수월해졌지만 필요없는 물건들이 쌓이고 그와 함께 택배, 포장 쓰레기가 잔뜩 발생하는 상황은 불편하다. 그렇다고 생일 축하를 거부하고 싶지는 않다. 생일 축하는 받고 싶다. 그것도 열렬히 받고 싶다. 하지만 불편함 없이 내가 원하는대로 받고 싶다. 어떻게 하면 그런 생일 축하를 받을 수 있을까? 고민하던 차에 재단의 ‘아름다운DAY 기금’이 떠올랐다.
‘오, 그럼 나만의 생일 기부 이벤트를 만들어 보면 어떨까?’ 아이디어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저의 최애 단체에 기부해주세요
아름다운DAY기금은 생일, 돌, 결혼 등 특별한 날을 맞아 아름다운재단에 기부할 수 있는 기금이다. 여기서 착안한 나의 생일 기부는 지인들이 기프트콘이나 생일선물을 나에게 보내는 대신 내가 소개하는 여러 단체들에 각자의 이름으로 기부를 하는 것이다. 일시든 정기든 후원 방식도 기부 금액도 정하지 않았다. 기부 후 나에게 인증하는 것도 선물하는 이의 자율에 맡겼다.
생일 기부를 위해 우선 어떤 단체에 기부를 요청할지 정해야 했다. 한 단체에 집중하기 보다 선물하는 이의 취향(!)을 고려해 여러 단체를 소개하고자 했다. 내가 직접 보고, 듣고, 느끼고, 경험한 것 중 가장 좋은 것으로 고르고 싶어 이미 정기후원하고 있는 단체들에 기부를 요청하기로 했다. 단체 소개와 기부할 수 있는 방법을 안내하는 콘텐츠도 만들었다. 각 단체가 어떤 이슈를 다루고 있는지, 얼마나 멋지게 활동하고 있는지, 나는 왜 이 단체를 애정하는지를 꼼꼼히 적어 온라인 이미지로 만들었다. 그리고 친구들이 잘 볼 수 있도록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으로 걸고, 인스타그램에도 올렸다. 실제 기부까지 손쉽게 참여할 수 있도록 단체의 기부페이지 링크도 하나 하나 연결했다. 기부 요청 콘텐츠를 만드는 데 생각보다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콘텐츠를 만들며 후원을 시작했던 나의 초심을 돌아보고, 단체 활동에 대해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준비를 거쳐 생일이 되었고, 긴장되는 마음으로 하루를 보냈다. 기프티콘이라는 편리함 대신 기부라는 번거로움을 감수하고 내 생일을 축하해줄 이가 있을까? 우려와는 달리 그 해 생일 기부 인증을 꽤 받았다. 단체에서도 내 이름으로 몇몇 일시후원이 들어왔다며 감사 전화가 오기도 했다. 평소 연락이 뜸했던 친구도 생일 축하한다며 기부 인증 문자를 보내줬다. 100개의 기프티콘 보다 더욱 고맙고, 반가운 생일 축하 선물이었다.
생일이 ‘두렵지 않은’ 이유
생일 기부 이벤트가 성공(!)하니 다음해 생일이 더 손꼽아 기다려졌다. 나이에 숫자 하나가 더 올라간다는 게 조금 서글프지만 생일 기부 이벤트를 준비하며 그런 마음도 달랠 수 있었다. 또 이 기회를 빌어 내가 관심있는 사회 문제를 주변 이들에게 알리고, 기부로서 참여를 이끌어 내며 은은한 효능감도 맛볼 수 있었다. 이런 즐거움을 계속 만끽하고자 2024년에도 기부 이벤트를 진행했다. 작년에 축하해준 친구들이 어김없이 기부 인증과 축하인사를 보내줬고, 새로운 친구들의 참여도 있었다. 기쁜 마음으로 생일을 보냈고, 그날 밤 23시 59분 올해 생일이 끝났다는 아쉬움 보다 내년 생일엔 또 어떤 단체를 소개할지로 마음이 설렜다.
내년 생일 준비는 이미 시작됐다
내년에는 새로운 단체를 더 소개해 볼 참이다. 이를 위해 나의 기부 단체 리스트도 조금 더 늘려 볼 생각이다. 꼭 생일 기부 이벤트 때문만은 아니다. 나의 지지와 응원을 보내고 싶은 단체가 아직도 많기 때문이다. 물론 소박한 월급으로 기부 리스트를 늘린다는 게 적지 않은 부담이긴 하다. 그러나 작지만 꾸준한 기부로 응원의 마음을 보내는 게 단체에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개인 시민 기부자들의 소중한 기부금으로 운영되는 아름다운재단의 구성원으로서 너무 잘 알고 있기에, 앞으로도 정기기부하는 단체를 계속해서 늘려가고 싶다.
바람이 있다면 기프티콘 보내기만큼이나 생일 기부가 쉬워져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면 좋겠다. 버튼 하나만 누르면 바로 기부가 되고, 또 기부 요청도 개인 프로필 보다 더 눈에 잘 띄게 보여질 수 있게 말이다. 그렇게 되면 기부도, 기부요청도 쉬워져 기부로 축하하고 축하받는 일도 더 자연스러워질 것이다.
생일 기부가 기프티콘만큼이나 흔해지는 날이 올 때까지 나의 생일 기부 이벤트는 한 땀 한 땀 만들어갈 예정이다. 기프티콘으로 가득찬 선물함 대신 기부 인증 메시지로 요란한 생일을 맞이할 수 있게 내년 생일도 잘 준비해야지. 그러니 2025년 생일도 ‘기부로’ 마음껏 축하해주세요.